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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인기의 작업

박영택

황인기의 작업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정선이 그린 금강산 그림이다. 금강산 일만 이천 봉우리가 한 눈에 쏘옥 들어온다. 새의 시선으로 굽어본 금강산은 지표에서 융기되어 솟구친 셀 수없는 봉들로 어지럽다. 그 깊은 골짜기와 오랜 시간을 견뎌온 암석의 산들은 견자들에게 엄정하고 오묘한 자연의 법칙과 기운과 왜소한 인간의 육신과 생애, 그리고 그 경외감을 자아내는 자연 속에서 생의 한 자락을, 오늘의 목숨을 되새겨보게 했을 것이다. 거의 종교적이고 이념적인 이 산수화가 돌연 낯설다. 황인기는 정선의 그림을 차용해 합판에 크리스털을 붙이고 엔진오일을 부착해서 재연했다. 오늘날의 산업용 재료들이 전통산수화를 흉내 내고 짐짓 딴청을 한다. 디지털이미지로 산수화가 환생하고 반짝이는 크리스털이 무거운 이념을 가볍게 부양시킨다. 정교한 수학적, 공학적 계산과 엄청난 시간과 노동이 지필묵의 전통적 재료체험을 대신했다. 마치 아이들이 레고 블럭을 쌓아 원하는 이미지를 구축해나가듯이 황인기 역시 레고 블록이나 리벳, 크리스털 등 다양한 일상의 재료들을 화면에 부착해 나갔다. 이미 존재하는 고전적 명화의 표면을 호명해서 이를 지금의 감각적 화면으로 환생시킨 것이다.

크리스털이나 레고 블록은 물질이고 오브제들이다. 이 강한 물성을 드러내는 것들이 회화를 만들어 보인다. 그것은 회화라기 보다는 저부조/조각이다. 회화와 조각 사이에서 유동한다. 화면에 근접해 들어가면 온통 물질들이 자신의 존재성을 강하게 발산하지만 뒷걸음질 치면서 물러서면 순간 기억 속에 간직된, 우리네 문화적 전통의 문맥 속에 잠긴 이미지가 홀연 등장하는 것이다. 정선의 금강산 그림이 크리스털로 화려하게 반짝이면서 현재의 시간 속에서 새삼 자신의 존재를 되물어보는 것 같다. 전통과 동시대 문명이, 아날로그와 디지털이, 문인적 사유관과 공학적 세계관이 마구 중첩되고 융합되어 정처없이 흐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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