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배진희 / 가족의 일상, 가정의 내부

박영택

배진희- 가족의 일상, 가정의 내부



박영택(경기대교수, 미술평론가)


가족구성원은 페르소나를 벗고 맨 얼굴로 대하는 이들이다. 기호로서의 얼굴이 필요치 않은 관계다. 세상에서 가장 편하고 자연스러운 상태로 일상을 함께 영위하는 이들은 함께 먹고 자고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앞날을 도모하며 반복적인 일상을 지속해나간다. 가장 본원적인 욕망과 휴식을 거리낌 없이 나누는 이들이다. 그런 하루하루가 쌓여 그들의 생애를 수놓을 것이다. 거실과 식탁, 방안에서 하루의 시간과 길고 긴 생애의 나날들이 매번 수북히 쌓여가는 것이다. 배진희는 그 가족의 일상이 전개되는 장소에서 자신의 가족을 보았고 이를 사진으로 기록했다. 일기처럼 이미지로 쓰여지고 기록된 이 사진은 가족들의 어느 한 순간을 봉인한다.

그런데 이 기억은 일반적인 가족사진의 기록과는 다른 지점에서 반복된다. 비근한 일상이자 매일같이 순환하는 소소한 가족들의 삶의 모습일 뿐이다. 구태여 그런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두고자 하지는 않을 것이다. 아니 사진으로 찍혀서 오랫동안 남겨져서는 좀 곤란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식탁에 둘러앉아 밥을 먹거나 속옷차림이나 추레한 츄리닝 차림으로 소파에 누워서 텔레비전을 시청하는가 하면 훌라후프를 돌리거나 얼굴에 팩을 하고 앉아있는 장면 등은 가족들간에는 아무렇지도 않지만 타인이 보았을 때는 다소 창피하거나 쑥스러운 장면일 것이다. 그러나 배진희는 그런 장면만을 수 년에 걸쳐 찍고 있다. 현재의 집으로 이사 온 후부터 지금까지 그곳에서 벌어지는 식구들의 행동과 몸짓, 반복되는 일과를 관찰자의 시선으로 엿보고 있다. 그것은 자신의 근원이자 피를 나눈 이들의 삶을 관찰하는 일이자 그로인해 부풀어 오르는 여러 상념과 애정, 혹은 형언하기 어려운 복합적인 감정을 즉자적으로, 최대한 객관적으로 드러내는 일이다.

사실 자신의 가족의 일상을 관찰하고 기록한다는 것은 자신의 삶을 그 가족구성원 안에서 바라본다는 의미도 거느리고 있어 보인다. 물론 사진 찍는 당사자는 빠져있지만 그곳에 분명히 작가 자신도 있었고 참여하고 있음은 당연하다. 작가의 시선에 걸려든 가족들의 동선은 대부분 거실과 식탁에 국한된 편이다. 사실 집안에서 가족구성원들의 행보란 제한되기 마련이다. 각자의 방으로 흩어지기 전까지 그들은 대부분 식탁에서 밥 먹고 거실에서 지극히 편안한 자세로, 다소 민망한 차림으로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운동기구와 함께 하고 더러 얼굴에 팩을 하거나 잠을 청할 것이다. 먹고 자는 일, 건강과 미용, 현재와 장래의 일들을 서로 상의하고 걱정하는 일 또한 그 안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거의 모든 가정에서 매일 같이 일어나는 지극히 보편적인 풍경이다. 그 풍경 속에서 가족들은 서로의 살내음을 맡으며 사회에서 겪은 상처와 무게를 조금은 느슨하게 풀어헤치면서 위로받거나 충전의 기회를 갖을 것이다.

그렇게 가족들이 모여 앉아 함께 모여 앉은 하는 시간이야말로 새삼 그들이 가족이고 동일한 운명을 겪고 있으며 흡사 세상의 변방에 모여 간절한 목숨을 도모하고 있다는 엄정한 사실을 깨닫게 해주는 지도 모르겠다. 가족들은 분명 가족들간의 관계맺기를 매번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가족의 어원은 라틴어 ‘familia’에서 비롯된다. 파밀리아는 주인의 지배하에 있었던 안주인과 아이들, 그리고 하인을 가리켰다. 그러니까 가족은 한 지붕 아래 살아있는 개개인 전체를 뜻하는 말이었다. 가족은 문화인류학에 의하면 ‘불(부엌)의 공유’라고 한다. 즉 함께 식사하는 공동체(식구)를 말한다. 가족은 흔히 출생을 통해 이어지는 혈연관계, 생계를 책임지는 가장 그리고 가사를 돌보고 가족을 배려하는 아내라는 성 역할과 더불어, 생물학적 분업을 기초로 하는 자연적인 단위로 이해하여왔다.

가족에 대해서는 세 가지 통념이 지배적인데, 그것은 첫째, 가족은 자연발생적, 생물학적으로 형성된 것이고, 둘째, 가족은 공동체적인 본성을 지니고 있고, 셋째, 핵가족이 가장 보편적인 형태라는 것이다. 그러나 가족 집단은 공간과 시대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존재해왔다. 우리가 가족의 역사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그것이 사회나 체제를 이루는 기본단위이기 때문일 것이고, 각 개인에게 있어서는 일상생활을 매개하는 가장 중요한 고리이자 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공간이기 때문일 것이다.

근대 시민사회는 핵가족의 사생활을 구성의 중요한 축으로 삼았다. 다른 한 축은 공생활이다. 그래서 각자 사생활과 공생활을 독립적으로 누리고, 이 두 이질적인 영역을 잘 화합시켜 바람직한 시민이 되어야 한다는 프로젝트를 추진해나갔다. 그리고 시민 가족은 가족의 재생산이나 노동력 재생산과 같은 실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성숙한 시민을 양육하고 길러서 사회로 배출해야 한다는 점에서 정서생활이 요구되었다. 이처럼 근대 시민사회에서 요구된 가족은 구성원을 정서적으로 결속시켜야 하며 그래야 경제적으로도 안정을 이룰 수 있다는 논리에 기반한다.

근대에 들어와 가정은 정착의 중심이 되었고, 모든 활동은 이 가족을 지키기 위해 행해지고 모든 사고와 활동이 가족이란 중심을 향하게 되었다. 이른바 근대가 가족 안에 욕망을 가두고 그 안에서 맴돌게 함으로써 존재하고, 그리하여 사람들의 삶을 가족을 통해 이미 존재하는 기성의 질서에 한없이 끌어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오늘날 가족은 해체와 붕괴의 거센 흐름을 헤치고 복원되어야 할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으로 인식되는가 하면 가족주의, 가족중심주의, 가족이데올로기라는 부정적 함의를 지닌 것으로 극복되어야 할 경향으로 치부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전히 한국인의 생존방식은 가정, 가족 지향적 문화의 영향권으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못하다. 가부장제(patriarchalism)의 권력구조와 그것의 변형된 가족주의인 혈연, 지연, 학연의 유대의식은 한국 사회를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그러나 강력한 힘이자 권력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가부장제란 ‘남성이 여성을 지배하고 연장자인 남성이 연소자를 지배하는’사회구조를 말한다.

그런데 이 가족주의라는 것이 한편으로는 불안정한 사회의 심화되는 불안정성과 폐쇄성, 배타성 속에서 방어기제로서의 생존전략일 수도 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가족은 어떻게 보면 사회적인 것들이 삼투되는 장소로서 생각될 수도 있지만, 그 반대로 사람으로 태어난 생명체가 자신의 원초적인 충동을 사회구조 속에 투자하는 일종의 프리즘이기도 하다. 가족은 한 사회가 압축된 공간이기도 하고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생이 관철되고 훈육되는 곳이자 아울러 그 사회로 편입되거나 인정받기 위한 다양한 전략이 모색되는 장소이기도하다.‘사회’라는 것은 그러한 관계들이 복잡하게 얽혀있는 하나의 그물망을 지칭하는 것에 다름아니다.

따라서 ‘가족’을 단순히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원의 집합으로만 생각해서는 곤란할 것이다. 그것은 오히려 그것을 구성하는 구성원들이 어떠한 혈연이나 지연 그리고 기타 긴밀한 사회적 관계들의 그물망과 함께 어떻게 얽혀있는가 하는 관점에서 파악되어야 한다. 가족은 하나의 육체가 자신의 욕망을 풀어나가기 위해서 끊임없이 사회관계들 속으로 뻗어나가는 곳이며 또한 역으로 사회의 여러 가지 힘과 권력 그리고 이념과 상징들이 스며들어오는 장소이기도 한 것이다.

배진희의 가족사진은 가족구성원의 일상을 스냅사진처럼 촬영한 듯 하다. 그것은 가족에 관한 다큐먼트에 해당한다. 지극히 사적이고 반복되는 매일의 일과를 기록하고 저장한 그 사진은 보편적인 가족사진이 보여주는 일반적인 전형성을 위반한다. 차마 촬영되고 기록되기 곤란한(?)것들이 대부분이다. 소소하고 비근하며 타인의 시선에 도저히 잡히지 않는 한 가족의 몸과 가정 내부가 너무 환하게 들추어진다. 세상에서 풀려나 드디어 가정 안으로 들어온 이들이 그곳에서 벌려놓는 생의 흔적들과 이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사진에 담겼다. 그런데 어쩌면 오로지 한 개인에게만 의미를 지닐 법한 이 사진이 공적인 장소에서 보여지는 순간 그것이 누구나 공유하는 영역 안으로 급속히 삼투한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배진희의 사진은 특정한 가족구성원의 가장 인간적인 삶의 자취와 그들이 살고 있는 가정의 내부, 그 디테일들이 모종의 메시지를 발화한다. 그런데 결국 관자들은 이 사진을 통해 자신들의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일상을 떠올려볼 것이다. 그들과 같이 먹고 숨 쉬는 그 모든 ‘사건’들이 대를 이어 반복되며 선회하는 이 인간 삶의 엄정한 흐름을 다소 복잡한 감정으로 돌이켜보게 되는 것이다. 가족과 함께 보내는 이 삶, 그들과의 관계맺기가 무엇인가를 새삼 질문해보게 되는 것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