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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품창 / 제주도의 일상, 그리고 꿈꾸기

박영택

김품창 / 제주도의 일상, 그리고 꿈꾸기


미술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것을 이미지 안에서 구현하고자 하는 기이한 욕망을 드리우고 있다. 이미지는 마술(이미지와 매직은 결국 동의어다)이었다. 그것은 주술적이고 종교적이며 한 개인의 가장 이상적인 생애의 열망을 감추지 않는다. 사실 전통적인 그림들은 한결같이 유토피아 의식을 거느리고 있다. 결국 그림은 당대인들이 추구하는 행복에 대한 도감의 구실을 한다. 해왔다. 예를들어 산수화나 민화를 보면 그 안에 당대인들이 꿈꾸고 간절히 희구했던 이미지들이 가득하다. 자연 속에서 자연과 함께 행복한 삶을 지속하고자 하는 소망들이 더없이 소박하고 애틋하다. 너무 간절하다. 이 인간적인 욕망은 유장하고 심원하다.

김품창의 근작은 제주도라는 특정한 공간에서 자연과 사람, 뭇생명체와 가족이 조화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관찰해서, 상상해서 그린 그림들이다. 그것은 자신의 꿈과 소망의 한 장면을 천진하게 형상화한 것도 같다. 사실적이면서도 기실 몽상과 초현실에 가까운 그림이다. 동화책의 삽화나 아동용 책자의 일러스트에 유사한 도상들은 쉽고 재미있다. 한결같이 이야기 그림이자 친근한 일상의 정경을 안기는 것이다. 부드러운 이 채색화는 전체적으로 몽롱한 꿈속 장면을 환각적으로 선사하면서 모종의 줄거리를 연상시켜준다. 그래서 이 이미지는 책처럼 읽힌다. 그만큼 편안하면서 ‘가독성’이 있다. 실제적인 제주도 풍경 안에 물고기와 사람이 날고 인어가 등장하는가 하면 바다 속으로 현실풍경이 이동하기도 한다. 현실적인 시공간을 넘어서는 판타지가 파도처럼 일렁인다.

화면을 차지하는 공간, 장소는 제주도다. 구체적인 특정 장소가 부감되기도 하고 창공과 바다의 내부가 배경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마치 제주도를 조감하고 부감하는가 하면 바다의 안과 밖을 동시에 바라본다. 화면은 지평선이나 수평선에 의해 구획되거나 경계지우지지 않고 두루 섞여서 퍼져나간다. 중력의 법칙이 지워진 자리이자 하늘과 바다, 땅의 구분이 모호하다. 서로 혼재되어 있다. 아울러 지상의 생명체와 바다 속 어류가 공존하고 인간과 인어, 별과 집, 갈매기와 문어, 새와 고래가 한 공간에서 조우한다. 사람들과 고래, 문어가 새와 함께 날고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기도 한다. 화면 안에 무수한 생명체가 바글거린다. 모든 것들이 한 공간에서 평화롭다.

분리와 배제가 아니라 통합과 공존이고 모두가 상생하는 장면이다. 제주도란 공간 안에서 인간과 자연은 그렇게 분리되거나 분화되지 않고 밀착되어 있다. 자연 속에서 뭇생명체들이 어우러져 사는 모습이 그가 그린 풍경화다. 이 채색화로 그려진, 그리고 전복껍데기를 이용해 그 위에 그림을 그려나가 만든 풍경은 현실과 이상, 사실과 환상, 실제와 꿈의 완강한 구분을 넘어서려는 어떤 의지의 표명 같기도 하다. 화가의 눈이란 현실계의 강고하고 고정된 법칙에 사로잡히지 않고 그것을 풀고 느슨하게 하고 넘어서면서 또 다른 세계의 비전을 보여준다. 그의 눈은 보이는 것 안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보고 있는 것만이 아니라 보고 싶은 것을 보게 해주는 것이기도 하다.

평면의 종이위에 채색으로 그려나간 그림은 더없이 행복해 보이는 순간들이다. 앞서 언급한 일종의 유토피아그림이다. 비현실적이지만 흔히 아이들의 상상화나 공상화에서 빈번하게 접하는 익숙한 이미지이기도 하다. 그의 그림이 아동화를 모방하는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 그림에서 엿보이는 천진함과 기발한 상상력, 순박한 마음과 소박한 형상화는 그의 그림이 추구하는 지점일 것이다. 그러나 쉬워 보이는 그림, 누구나 그릴 수 있는 그림 같지만 그 안에 그만의 복잡하면서도 정교한 구성체계와 도상의 차별성이 없다면 너무 무난한 그림이 될 수도 있다.

한편 전복껍질위에 그려나간 그림은 벽면에 설치되는데 평면의 전시장 벽에 부조적으로 튀어올라와 촉각적인 느낌을 부여한다. 제주도에 있는 오름 숫자인 368개에 맞춰 총 368개의 전복껍질이 화면이자 프레임이 된 그림이 등장한다. 그가 제주도에서 발견한 이 오브제, 새로운 화면은 그 형태 자체가 제주도라는 섬의 윤곽과 부단히 조응하고 동시에 그 위로 솟은 구멍들이 산과 오름을 연상시켜주는 한편 거친 질감이 제주도의 지형적 특질과 돌의 표면과 유사한 부분이 많아서 선택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작고 제한된 표면이지만 그는 이 오브제 위에 평면에 그려나간 그림들을 새롭게 구성해 보인다. 그 작은 조각들이 모여 제주도란 섬을 그려나간다.

근작은 이전 작에 비해 제주도 생활감정과 체험이 보다 짙어졌다는 인상을 준다. 아마도 제주도 생활이 깊어가면서 생긴 변화가 아닌가 생각해본다. 제주도 사람들의 일상적인 생활 모습 그리고 기족들과의 단란한 한 때를 기록한 그림은 제주생활의 일기이자 자신의 일상을 편안하게 가시화한 것이다. 아이를 태우고 자전거를 타는 모습의 그림이 눈에 들어오는데 이처럼 자신의 일상이 스스럼 없이 들어온 그림이 좋아 보인다. 그림 안에는 가족과 제주도 풍경, 온갖 생명체가 공존하는 장면이 번갈아가며 등장하고 지상과 천상, 수중세계가 모두 한 공간에 존재한다.

중력이 무화되어 버린 공간에 모든 것들은 둥둥 떠다닌다. 현실적으로 가능치 않고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작가는 자연법칙을 거스르면서 모든 존재들을 한 공간에 공존시켰다. 새삼 거대한 생태계의 풍경을 만나고 있는 느낌이다. 이렇게 그의 그림에 등장하는 많은 대상들은 얽히고설킨 무수한 생명체들의 어우러짐을 보여준다. 이 세상에 ‘나 홀로’란 절대 있을 수 없다는 메시지다. 모든 것은 어떤 인연에 의해 이렇게 만났다. 공간은 그런 무수한 인연들이 이룬 생의 거대한, 치밀하고 유연한 유기적 조직이자 생명의 연쇄망이다.

아마도 이런 생명체의 조화와 공존, 이른바 상생에 대한 메시지와 이의 형상화가 그동안 그가 제주도에서 보고 느낀 것인 듯 하다. 그가 제주도에 내려가 산지도 1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타지에서 온 그가 제주도에서의 생활을 소재로 하나씩 둘씩 그린 그림도 그런 시간만큼 가득 차올랐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그는 제주도란 공간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의 삶을 조금은 깊이 있게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들과 함께 사는 자신과 자신의 가족도 동시에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 시선의 자취가 근작을 통해 흥미롭게 형상화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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