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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훈 / 결혼식장의 이면

박영택

박정훈-결혼식장의 이면


역사상 사랑과 결혼은 엄밀히 분리되는 양상을 보여왔다. 유럽에서 결혼계약의 기초가 된 것은 서로 간의 성적 매력을 기반으로 한 애정공동체가 아니라 경제적 상황이었다. 우리의 경우도 신분제유지와 연관된다. 흔히 이야기하는 낭만적 사랑의 관념은 18세기에 와서 사회적으로 구성되기 시작하였다. 이 낭만적 사랑의 이데올로기는 가부장적 사회를 지탱하게끔 여성의 눈을 감겼다. ‘콩깍지’가 그것이다. 남편의 사랑에 목매고 의존하며 자식을 위해, 가족을 위해 자신의 삶을 희생하는 것을 당연시하였다. 그러나 오늘날 그 같은 낭만적 사랑으로 여성을 구속하려는 공모는 깨지고 있다. 아울러 모노가미(monogamy, 일부일처제)의 신화 역시 균열이 가고 있다. 현재 한국사회에서는 결혼한 가정의 거의 절반에 육박하는 숫자가 이혼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혈연. 친족 중심이나 자녀 중심의 기족관계보다 나의 행복과 개인 생활의 만족감이 중요한 가치로 부상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에 따라 기존의 결혼제도가 아닌 대안적인 여러 다양한 시도와 실험이 전개되고 있음도 본다. 그래서인지 오늘날 결혼식은 이전과는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검은머리 파뿌리될 때까지’ 결혼이 유지되어야 하다고 믿는 사람들도 점차 없어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혼식은 여전히 이루어진다.연평균 약 34만건의 예식이 치뤄지고 있단다. 그 많은 쌍이 동일한 식장에서, 똑같은 식순과 예복, 장식물 그리고 획일적인 피로연, 웨딩사진, 신혼여행 등을 반복해내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주체적인 결혼과 결혼문화는 부재하다. 모든 것은 소비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코드와 자본의 욕망에 따른 순환체계를 가질 뿐이다. 신혼부부는 다들 두툼하고 똑같은 웨딩앨범을 증거물로 받아둘 것이다. 생각해보면 결혼식은 이른바 전시적인 목적에 의해 이루어진다. 세상에, 지인들에게 자신들이 결혼했음을 증거 하기 위한 의식적인 전시행위다. 그리고 그것은 사진으로 봉인된다. 결혼식장이란 전시공간(벽면에는 숲의 요정들이 춤추며 선회하거나 천사들이 날아다니는 ‘이발소’ 그림이 그려져 있고, 주변에는 조악한 조각품과 촛대 등이 놓여있다.)과 신랑과 신부, 하객들, 그리고 화환과 피아노, 연단과 조명, 피로연자리 등이 모두 그런 전시를 구성하는 요소들이다. 이 전시공간은 또한 빈부의 격차가 노골적으로 드러나기도 한다. 2만원의 식대를 제공하는 지방예식장과 수 십 만원의 최고급호텔에서 이루어지는 식장의 풍경은 차원이 다르다. 그곳에 모인 사람들의 옷차림 역시 현격한 차이를 드러낸다.

알다시피 결혼식은 일상과는 다른 차원이라고 믿기에 다양한 허구와 환상이 개입된다. 그리고 그것은 한 사회가 요구하는 일정한 코드에 의해 모방된다. ‘일생에 단 한 번 뿐’이라는 그 이유 때문에 그토록 과잉의 지출을 하면서 순간적인 허구를 연출하는 것이다. (그런 과정에 불가피하게 양측 간에 갈등이 생기고 마찰이 지속된다.) 결혼식 사진은 그 모든 과정을 꼼꼼히 기록하고 영구히 보존해서 그 시간을 지속시킨다. 그러한 사진을 찍는 데는 보통 수 백만원이 든다고 한다. 그러나 그런 기록으로서의 웨딩사진이 과연 어떤 의미를 얼마만큼이나 지니고 있을까?박정훈은 결혼식 사진, 이른바 웨딩사진을 오랫동안 찍어왔다. 처음엔 아르바이트였다가 지금은 생업이 되었다. 전국의 수많은 식장을 주말마다 다녔다고 한다. 자연스레 결혼식장과 그 공간에서 이루어지는 다양한 풍속을 목도하게 되었을 것이고 여러 상념이 꼬리를 물었던 것 같다. 세상이 요지경임을 너무 일찍 깨달았을 것 같다. 결혼을 하는 당사자들과 그 장소를 찾는 하객들의 여러 모습에서 그는 동시대의 흥미로운 단면을 보았다. 행복하고 경사스러워야 하는 결혼식이지만 정작 그 의식은 상투형의 틀 속에서 소모되고 사람들 또한 그 연기적인 겉치레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기계적인 행동들이 무감각하게 반복된다. 결혼이란 의미 있는 의식이 축복 속에서, 진정한 기쁨 속에서 이루어지기 보다는 비정한 형식이 되어 변질되어 버린 것에 대한 안타까움도 묻어있다.

그래서 박정훈은 공식적인 사진을 찍는 틈틈이 그 공적인 기록앨범에 차마 담을 수 없는, 담아서는 안되는 것들을 기록하기 시작했다. 사실 그런 모습이야말로 진짜 결혼을 둘러싼 생생한 장면인 것이다. 해서 그의 시선은 식장주변을 은밀히 엿보며 미끄러진다. 정작 식장 내부가 아니라 신부대기실, 부조금을 받는 책상, 피로연테이블, 식장 바깥 풍경 사이로 돌아다닌다. 그의 눈에 걸려든 것은 식장 안으로 입장하기 직전의 분주한 신부 모습, 테이블 밑에 쪼그리고 앉아 만원권 지폐를 세는 아가씨, 전통한복을 차려 입은 신랑이 흰색 돈봉투를 건네받는 모습, 얼마를 부조할지 잠시 고민하며 지갑을 열어보고 있는 아줌마, 사이다와 맥주병, 오프너와 종이컵이 놓인 지저분한 붉은 색 천으로 덮힌 테이블 풍경 그리고 그와 대조되는 호화로운 식탁(스테이크를 나르는 웨이터의 모습)풍경, 아울러 빈부의 차이에 따라 극명하게 구분되는 하객들의 옷차림과 가방 등이다. 생생하고 구체적인 그 장면은 다소 희화적이다. 형식적 절차 뒷면에서 노골적으로 드러나고야 마는 씁쓸한 상황이다. 그것은 한국의 예식장에서만 볼 수 있는 문화적, 사회적인 풍경이기도 하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결국 그가 찍은 사진은 결혼사진에 들어오지 않은 어떤 이면이자 여백들이자 갑자기 드러나버린 어두운 상처들인 것이다. 이상한 웨딩사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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