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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용남 / 누드김밥

박영택

누드김밥


소풍날은 늘 설레었다. 김밥과 사이다 등을 가방에 담아 대개 근거리에 위치한 능을 향해 걸어갔던 추억이 떠오른다. 다소 지루하고 힘겨운 걸음 속에서도 작은 배낭에 든 먹을거리를 생각하면 턱없이 기쁘기도 했다. 죽은 이의 공간에서 재잘대는 어린 생명들의 웃음과 발자국 소리, 음식냄새와 노래가 어지러히 맴돌던 그 때를 기억해본다. 간혹 김밥을 먹을 때가 있으면 어린 시절 소풍가던 그 날이 불현듯 떠오른다. 그러면 이른 아침부터 고글고글한 쌀에 밑간을 하고 시금치와 계란, 단무지 등을 집어넣어 가지런히 김밥을 말아주시던 어머니 생각도 난다. 얇은 나무도시락에 넣어 신문지로 싼 다음 노랑고무줄로 묶어 담았던 그 김밥. 박용남은 대리석으로 누드김밥을 재현했다. 그도 김밥을 보면서 유년기의 소풍날을 떠올렸고 어머니를 떠올렸으며 현재 딸아이의 김밥을 말고 있는 자신을 보았다. 누드김밥을 보면 꼭 뒤집어진 세상 같기도 하고 원안의 사각형이 유년기, 소년기, 성년기, 노년기라 부를 사람의 한 평생처럼 보이기도 했던 것이다. 그는 주변의 모든 것들을 보면서 자연스레 부풀어 오르는 여러 생각들을 대리석으로 깎고 다듬었다. 색을 지닌 견고한 돌로 일상의 사물을 모방했다. 그는 돌로 그림을 그린다. 이런 작업은 기존 조각의 관습적인 어법과는 무척 다르다. 그는 돌로 상상하고 돌로 말하는 이다. 개인의 추억, 일상에서 접한 모든 사물들에서 떠오르는 단상들을 자연스레 조각으로 전이해내는 힘이 돋보인다. 대리석이란 재료로 상투적인 누드나 뭔지 알 수 없는 덩어리를 쪼아대는 것뿐만 아니라 김밥이나 족발, 쌀알과 단추도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일상의 사물과 세계를 새롭고 낯설게 보여주는 것이며 상투적인 사고를 전복시켜주는 것, 그것이 미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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