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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현재 / ‘당신의 시선으로’ 열어가는 세상

김영호



정현재/‘당신의 시선으로’ 열어가는 세상 


김영호 | 중앙대 명예교수, 미술사가


정현재가 세 번째 개인전을 준비하며 조심스럽게 자문을 청해 왔다. 두어 시간 차를 달려 도착한 금암리 작업실에는 10년 넘게 제작한 작가의 그림들이 사방 벽마다 겹겹이 세워져 있다. 캔버스 위에 얹혀진 다채로운 질료의 물성이나 붓과 나이프로 새긴 농익은 터치들에는 화가로서 걸어온 열정의 시간들이 오롯이 스며있다. 무엇보다 주목되는 것은 특정 주제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은 자유로운 작업 방식이다. 풍경에서 정물에 이르는 주제, 구상과 추상의 경계를 넘나드는 형식들을 일견하면 같은 작가의 작품이라는 사실을 의심하게 될 정도다. 뒤늦게 화업의 길에 들어서면서 미술사의 다양한 표현 방식들에 매혹된 결과일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다채로운 주제와 형식들을 동시에 수렴하는 나름의 의도가 없지 않을 터인지라, 우리는 그 의도를 작가가 선택한 제명에서 찾아보려 한다.     

정현재는 ‘당신의 시선으로’라는 제명을 줄곧 사용하고 있다. 흥미로운 화두다. ‘당신’이란 ‘어떤 사람’이라는 뜻을 지닌 호칭이다. 화자에 따라 당신은 ‘너’가 되기도 하고 ‘그’가 되기도 하고 ‘나’가 되기도 한다. 신분이나 나이와 성별을 가리지 않고 모두를 포괄하는 인칭 대명사로 쓰이고 있어 뉘앙스도 풍성하다. 당신의 시선은 결국 우리 모두의 시선이자 각각의 개성적 시선이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각각의 ‘시선’이 하는 일은 무엇일까? 시선은 세계를 받아드리는 눈길이며, 시각 정보로 전환하여 이미지를 만들고 다양한 의미를 생산해 내는 가늠자의 역할을 한다. 자신의 기억을 더듬거나 생각을 보듬기도 하고 공감대를 형성하며 타인과 대화도 가능하게 한다. 현대미술의 영역에서 시선의 문제는 작품에 독자적 의미를 부여하는 원천으로 다루어지기도 한다. 결국 정현재가 채택하고 있는 화두로서 ‘당신의 시선으로’는 우리 모두 각자가 지닌 세계관에 대한 존중의 태도를 담아내고 있다. 

좀 더 따져 보자. 정현재가 채택한 ‘당신의 시선으로’라는 말에는 유기적인 세계관이 조용히 숨쉬고 있다. 유기적 세계관이란 열어가는 세계관이다. 인식 주체로서 너와 그와 나가 서로 다른 존재이면서도 인과적 관계로 연결되어 있다는 말이다. 나아가 너와 그와 나라는 주체들의 시선은 불변하거나 고정적인 어떤 실체가 아니라 가변적으로 변화하며 유동적인 관계를 만들어 간다는 것이다. 결국 정현재가 채택한 ‘당신의 시선으로’라는 화두는 불가에서 말하는 공(空)의 세계관과 연결되어 있다. 이제 다시 화가의 작품으로 돌아가 보자. 

화가 정현재의 시선은 일상적 사물과 풍경을 향해 있다. 자신이 몸담고 있는 금암리 주변의 산이나 언덕과 같은 자연 풍경이거나, 혹은 여행 중에 마주했던 다양한 장소들이 작품에 등장한다. 일상적 경험은 작가가 채택한 다양한 기법으로 캔버스에 각인되고 작품으로 변주되며 새로운 의미를 부여받는다. 이렇듯 정현재의 작품은 일상적 시선을 환상적 정감의 세계로 이끄는 과정이며 다양한 주제나 형식을 통해 다채로운 의미와 가치를 만들어 낸다.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삶을 노래하는 일이다. 하지만 그려진 그림에 표상된 삶의 노래는 현실 세계와 다르다. 미학자 헤겔이 말했듯이 저녁노을보다 저녁노을을 그린 그림이 더 가치가 있는 이유는 그것이 정신으로 태어난 풍경이기 때문이다. 정현재의 작품이 만들어 내는 가치는 작가가 예술 작품을 통해 공유하고자 하는 어떤 가치일 것이다. 그것이 무엇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역설적이게도 그렇기 때문에 다양한 의미를 만들어 낼 가능성이 주어져 있다. 분명한 것은 작가의 작품 앞에서 작용하는 관객들의 시선은 논리가 아니라 정감이며, 작품 앞에서 일어나는 심리적 경험과 체험의 형태로 보는이들에게 감동을 선사한다는 점이다. 우리가 정현재의 작품을 정감으로 받아드리고 거기에서 우리들 사이의 동질 혹은 차이를 발견해 내며, 이를 통해 타자 사이의 유기적 관계를 발견해 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더없이 고마운 일일 것이다. 

이번 개인전과 관련해 생각해 볼 또 하나의 화두는 전시 공간에 관한 것이다. 작품은 어떤 공간에 어떻게 배치되느냐에 따라 의미 구조가 다르게 나타나게 마련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전시 공간이나 전시 도록의 작품 배열 방식은 작가가 경험한 시간과 제작 과정의 흐름 순서대로 정리하기를 권한다. 작가가 살아온 삶의 과정에서 연마해 온 작가의 독자적인 시선과 성찰의 과정이 전시를 통해 연출될 수 있다면 더없이 좋을 것이다.  

향후 고려해볼 일도 없지 않다. 예술이 특정한 작가가 주도하는 의미생산의 형식이고 보면 작가의 실험과 도전 정신은 작가 자신의 고유한 형식과 내용에 이를 때 비로소 제대로 된 가치를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정현재의 경우도 작가의 정체성을 더욱 강화하기 위해서 지속적으로 연구해야 할 과제가 있다. 자신이 선호하는 주제에 대해 숙고하고 자신의 독자적인 형식을 순차적으로 일구어 내는 일이다. 이러한 과제는 특정 주제와 그에 적합한 특정 형식을 ‘한 우물 시리즈’로 제작하는 방식을 통해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생각이다.
2024.5


 

당신의 시선으로, 91X91cm, Acrylic paint mixture on canvas, 2020
  



당신의 시선으로, 90.9X72.7cm, Acrylic paint mixture on canvas, 2020

   


당신의 시선으로, 91x91cm, Acrylic paint mixture on canvas
   



당신의 시선으로, 72.7X72.7cm, Acrylic paint mixture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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