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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대형의 ‘큐레이터 따라하기’] ⑬ 스타는 죽지 않는다

이대형

파리 중심부에 위치한 그랑팔레 주변. 성지순례를 연상케 하는 사람들의 행렬이 이어졌다. 월드컵 축구경기가 열리는 것도 아닌데 3만5000여명이 모여들었다. 놀라지 말라. 축구가 아닌 미술이 보여준 열기다.
지난 23일부터 3일간 경매회사 크리스티의 주관으로 진행된 이번 경매에는 프랑스가 자랑하는 오트 쿠튀르 패션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과 그의 오랜 파트너 피에르 베르제가 지난 50년 동안 전 세계로부터 모아온 진귀한 예술품들을 선보였다. 5000억원에 상당하는 700여점의 작품은 그야말로 ‘세기의 세일’이라는 부제가 어울리는 규모였다. 오픈 첫날부터 사상 최고의 판매기록을 갈아치우며 3980억원 상당의 작품이 낙찰됐다.
경제 불황이라지만 여전히 소장가치가 높은 미술품은 살아남고 있다. 패션 디자이너이자 컬렉터였던 이브 생 로랑의 안목이 골라낸 작품을 보기 위해 사람들은 기꺼이 장시간 줄서기를 불편해하지 않았고, 미국과 러시아에서 날아온 슈퍼 컬렉터들 역시 다시 한 번 뉴스메이커가 되고자 경쟁적으로 작품을 구매했다. 피카소, 마티스, 마르셀 뒤샹, 브랑쿠시, 몬드리안, 조르조 데 키리코에 이르기까지 모던 아트 대가들의 작품들이 추정가보다 높은 가격에 팔렸다.
언뜻 보면 미술시장이 완전히 회복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브 생 로랑 경매 결과에 너무 현혹되어 미술시장이 회복됐다고 섣부른 진단을 내려서는 안 된다. 이 경우 좀 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먼저 작품의 가치를 결정하는 요인들에 대해 다시 한 번 되짚어 보아야 한다. 작품의 가치는 작가 이름, 사이즈, 제작연도, 기법, 전시 혹은 출판물을 통한 미디어 노출 그리고 작품 출처가 결정한다. 흔히 작품의 족보라고도 하는데, 이번 경매의 경우 패션계의 대부인 이브 생 로랑으로부터 나왔다는 프리미엄이 좋은 결과를 낳은 이유 중 하나다.
여기서 우리는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반세기 동안 신중하게 골라낸 작품에 스포트라이트를 쏠 것이 아니라 그러한 가치 상승을 가능케 만든 이브 생 로랑의 스타성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것을 가능케 한 정치, 문화, 사회적 풍토와 창의성을 산업으로 이끌어내 결국 글로벌 리더로 성장시킨 브랜드 마케팅의 힘을 기억해야 한다. 그는 적어도 프랑스 사람들에게는 자존심이었고 선망의 대상이었다. 비록 세상을 떠났지만 이브 생 로랑이 예술계에 던진 목소리는 계속해서 지켜질 것이다.
수익금의 상당 부분이 이브 생 로랑의 디자인 철학과 그 정신을 연구 발전시키는 이브 생 로랑 재단과 에이즈 리서치 기금으로 사용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영광만을 가져갈 수는 없는 모양이다. 이번 경매 행사에 출품된 작품 때문에 중국과 프랑스 사이에 분쟁이 발생했다. 문제의 작품은 토끼와 쥐를 표현한 청나라 시대의 청동상인데, 중국은 반환을 요구하고 있고 프랑스 법원은 이브 생 로랑과 베르제에게 합법적인 소유권을 인정하며 반환 거부를 정당화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이브 생 로랑의 오랜 파트너이자 컬렉션을 함께 만들어 온 베르제는 “중국 내의 인권문제 해결과 티베트 독립성 인정 그리고 달라이 라마를 중국에서 초대한다면 돌려줄 의사가 있다”며 반박했다고 전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분쟁을 통해 이브 생 로랑의 경매는 더욱 유명해졌다.

▲ 이브 생 로랑 컬렉션으로 1904년 에드워드 콜리 브루네존스의 태피스트리 작품(뒤쪽)과 서기 1∼2세기께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대리석 토르소 작품.
이브 생 로랑의 성공은 17세기 이후 줄곧 세계 패션의 중심 역할을 해온 프랑스의 문화적 자존심과도 연결된다. 패션과 예술에 대한 전 국민적인 열광과 지원이 있었기에 오늘날 크리스디앙 디오르, 샤넬, 루이뷔통 등의 명품 브랜드가 탄생할 수 있었다. 코코 샤넬 역시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예술과 패션에 대한 철학과 애정을 담은 샤넬 모바일 아트 프로젝트가 홍콩, 도쿄, 뉴욕, 파리 등 세계 주요도시를 돌며 샤넬의 앞서가는 브랜드를 알리고 있다. 바로 코코 샤넬의 정신과 아이덴티티를 기업 차원에서 이어가고 있는 것이다.
얼마 전 세상을 떠난 김수환 추기경에 대한 이야기가 아직도 신문과 라디오에서 흘러 나오고 있다. 그는 줄곧 자신을 ‘바보’라고 불렀고, 핍박받는 소수의 자유와 인권을 위해 기꺼이 자신을 희생했다. 그리고 남겨진 육신은 장기 기증이라는 이름으로 아름다운 사랑을 실천하고 떠나신 분으로 기억된다.
스타는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아래 가만히 서 있는 사람이 아니다. 보이지 않는 영향력을 발휘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람이다. 그리고 그 것은 일종의 정신이다. 그 정신을 지켜나가고자 하는 욕심도 필요하다. 밤 하늘의 별이 어디 움직이던가. 움직이지 않고 빛나기 때문에 사람들은 별을 보며 방향을 잡고 길을 나서는 것이고, 희미하기 때문에 더 아름다운 것이다. 당신도 자신의 정신과 철학을 소신 있게 지켜나가려는 강한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면 당신도 영원히 꺼지지 않는 스타가 될 수 있다.
큐레이팅 컴퍼니 Hzone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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