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육신에 치중된 보이지 않는 압력 때문에 나의 영혼은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 많은 에너지를 불필요한 것에 소모해야 한다. 끊임없이 가해지는 크고 작은 폭력에 맞서 우리가 변절되지 않는다는 것은 현실에서 가능이나 한 일일까? 우리는 얼마큼 더 잔인한 강자가 되어야 하는가? 때론 주체할 수 없는 분노로 잠을 이룰 수 없는 밤마다 겪게 되는 약자의 분노는 과연 유효한 것인가? 속도와 불안과 파괴적 성향이 20대의 내 심장에서 끓고 있었다.
돌이켜 보면 풍요롭기까지 했던 에너지들은 스스로를 일탈에의 중독을 찬미하게끔 한 것이다. 이미지에 대한 상상력은 극단적일수록 통쾌하다. 지난 일기장을 보듯 그림 속에는 세포가 바뀌기 전의 푸른 살의 내가 있다.” -작가의 생각
<전쟁을 겪지 않은 세대에게 ‘폭발’이 무엇이냐고 물어본다면, 스크린에 봐왔던 예쁘장한 폭죽을 대부분 연상하게 됩니다. 적어도 어릴 적 동네 공장에서 가스가 터진 생생한 기억이 없다면 말입니다. 할리우드의 장식적 폭발과 현실 속 ‘분노’가 개입된 폭발은 그 차원을 달리합니다. 현대 회화들은 심미적 명분 때문인지 ‘실험’의 수위를 낮추는 듯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소윤경은 ‘회화의 존재 이유’를 마치 혼자 대변하고 있는 듯 합니다. 다시 말해 회화의 ‘상상력’이 영화나 디자인보다도 열등하다는 핀잔과 잡음을 일축하는 셈이죠. 관객을 염두에 둔 마케팅도 좋지만, 상상력의 소멸은 회화의 공멸을 가져올 것입니다. 상상력이 탈색된 황폐한 링은 더 강하고 다양한 도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