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열
그윽하고 분방함을 누구와 더불어 즐길까 幽芳誰共賞
높은 절개 뭇 사람들 시샘하는구나 高節衆同猜
그러므로 은둔 군자 所以隱君子
외로운 마음 여기 펼쳐 보이는게지 孤懷倚此開
- 김석신, <도봉도>_구름 속 부용화
함경도 철령(鐵嶺)에서 나온 한 줄기가 남쪽으로 육백리를 달리다가 양주(楊洲)에 이르러 흩어졌다 동쪽으로 비스듬히 돌아 갑자기 솟구친 기암(奇巖)이 곧바로 도봉산(道峰山)이다. 하나처럼 보이지만 도봉(道峰), 만장봉(萬丈峰), 자운봉(紫雲峰) 이렇게 세 봉우리가 서로 다퉈 자태를 뽐낸다. 도봉산을 부용화(芙蓉花)에 빗댄 한산거사(漢山居士19세기)의 <한양가(漢陽歌)>도 아름답지만 또 도봉산 동쪽에 자리한 안산(案山) 초안산(草案山) 기슭 녹천(.川)에서 보이는 그 모습은 사슴 뿔 같이 기이하다.
뿔이라고는 해도 한 덩어리 화강암으로 이뤄졌는데 흐트러짐 없는 장엄 그대로다. 수려한 산세를 타고 흐르는 봉우리에 바위 꽃 만발하듯 수도 없는 기화요초(琪花瑤草)를 이루어 연이은 줄기 남쪽으로 북한산 삼각산(三角山)이 황홀하다. 이처럼 특별한 생김이 저 무학대사(無學大師1327-1405)의 눈길 끌었을 터이지만 그 보다 훨씬 전부터 수도 없는 절집들이 들어섰던 것이다. 조선왕조 개창과 더불어 수도 서울을 이루었던 한양은 고려시대에도 남경(南京)이라는 큰 도읍이었으니 장엄하기 그지없을 도봉산 기운 내리받고 있던 땅이므로 도봉산을 병풍삼은 천축사(天竺寺), 망월사(望月寺), 회룡사(回龍寺), 원통사(圓通寺)가 모두 신라시대 때 들어섰던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어쩌면 1805년 어느 날이었을 게다. 형조판서로써 명형관(名刑官) 평판이 자자했던 이재학(.在學1745-1806)의 다섯 해 유배 마침을 위로하고 또 사은사(謝恩使)로 청나라를 향하는 좌의정 서용보(徐.輔1757-1824)를 환송하기 위한 도봉산 야유회가 열렸다. 이 때 화원가문 의 명가 개성김문의 김석신(.碩臣1758-1816이후)이 따랐다. 이 성대한 모임을 기념하여 『도봉첩(道峯帖)』을 엮으면서 김석신이 그린 <도봉도>도 함께 묶어두었다. 동그라미 구도 속에 사선으로 엇갈린 계곡과 산줄기가 현란하여 활력 넘치는 이 눈부신 그림에는 커다란 건물들이 숲인 듯 자연 그대로다. 왼쪽 멀리 망월사, 오른쪽 만장봉 아래 천축사가 자리잡고 있으되 한복판에 자리한 건물은 도봉서원(道峯書院)일 것이 분명하다.
1519년 12월 20일 38살의 청년 조광조(趙光祖1482-1519)가 저 멀리 전라도 능주(.州) 유배지에서 ‘밝은 해가 이 세상을 내리 비추니 거짓없는 나의 마음 환히 밝혀 주리라’는 절명시를 남기고 입에 피를 쏟으며 세상을 떠났을 때 눈부신 태양이 한 번 빛을 토해냈다. 그로부터 54년이 지난 1573년 양주의 목사(牧使) 남언경(南彦經1528-?)이 도봉산 아래 영국사(寧國寺) 옛 터 양지바른 곳 도봉서원을 건립하고 향사(享祀)하였다. 젊은 날 혼신을 기울여 부패한 관료세계에 맞선 개혁정치가 조광조는 문득 힘겨울 때면 이곳 도봉계곡에 이르러 정좌(靜坐)한 채 산과 물을 즐겼으니 바로 그를 추모하고자 하는 뜻이었다. 송시열(宋時. 1607-1689), 김수항(金壽恒1629-1689), 이재(.縡1680-1746)와 같은 노론 선비들이 발길 들여 놓아 번화하기 삼백년이었지만 1871년 서원철폐에 따라 이곳도 철거당하였고 꼭 백년이 지난 1971년 세운 겨우 3칸 사우(祠宇)로 근처 일대 바위에 명가들이 새겨놓은 여러 글씨들만 숨은 듯 꿈틀대고 있을 뿐이다. 1650년 도봉서원을 참배한 송시열은 계곡 큰 바위에 힘찬 필치의 ‘도봉동문(道峰洞門)’이라고 새긴 뒤 부족하였던지 비온 뒤 맑은 바람이란 뜻의 ‘광풍제월(光風霽月)’이란 글씨를 더 새겨 우람한 자연에 대한 감동어린 찬사를 헌정하였다. 저 조광조가 살던 생애 너무 짧아 지은 글과 읊조린 노래 거의 없으되 아마도 어쩌면 이 곳 도봉산에 발길 닿았던 이재학과 서용보 그리고 김석신 일행은 사림(士林)의 도학(道學) 태산북두(泰山北斗)라 하는 조광조가 남겨놓은 난죽병풍제화시를 끝도 없이 불러 계곡 물결에 떠내려 보냈을지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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