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세헌
이근배 시인은 시 ‘혹애(酷愛, 지독한 사랑)’에서 컬렉션 대상물에 대한 지극한 사랑을 ‘혹애’로 표현한다. 그 분은 상당한 수의 조선 벼루를 모으고 있다고 한다. 지금 생각해 보니 나도 호기심(Curiosity)이 좀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시절 우표를 모을 때가 있었다. 인도의 우표는 우리 것과 같이 검소한 편이었으나 일본이나 싱가포르의 우표는 하얗고 빳빳한 종이에 칼라로 프린팅되어 있어 그 인쇄술에 감탄했었다. 그리고 우표에 인쇄된 생경한 외국 풍경과 아름다운 새와 꽃에 매료되었다. 그러다 우리 집안과 친척의 편지 봉투지를 모두 뒤져 우표를 잘 발라낸 후 깨끗하게 보관한다고 가장자리 천공 부위를 가위로 반듯이 잘라낸 웃지 못할 에피소드도 있었다. 고서를 모아본 적이 있으나 봉해 놓았으므로 내용을 보지 못해 오래 가지 못하였다. 화동양행을 통해 주화와 지폐도 모았다. 처음엔 금화와 각국의 화폐를 모으다, 지금은 기념주화만 모은다. 나중에 손자 손녀들이 자라면 역사와 문화와 인물 등에 대해 얘기해 줄만한 것들로, 스토리텔링이 될만한 것만 모은다. 조폐공사에서 발행한 한국인물 시리즈 50인은 한 달에 한 분씩 발행하여 몇 개월이 걸렸다. 아들, 딸 하나 씩이니 두벌씩 모았다. 손자와 손녀의 태어난 해의 십이간지 기념 주화와 백일기념 주화를 선물해 주었다. 손자는 나와 같은 토끼띠이고 지난 12월에 백일이 된 손녀는 집사람과 같은 뱀띠이다. 또 인사동, 평창동으로 그림을 보러 다니게 되었다.
시(詩)를 쓰다 보니 말을 건네는 그림이 참 편해 보였다. 시중화 화중시(詩中畵 畵中詩)라고 하지 않는가. 몇 년 전 인사동에서 오세영 시인과 오세영 화가의 시화전이 있었다. 요즘 전시하고 있는 유경채, 유희영 선생님의 사제동행전도 재미있는 기획이다. 장욱진, 김인환, 천경자, 변종하, 우재길, 김점선, 이종상, 사석원, 이우환, 유희영 선생님의 그림 등에 끌렸다. 그리하여 전시회에 갈 때마다 도록을 모았다. 대형 전시회의 도록도 모았다. 한국화, 구상화, 추상화, 판화 등으로 보는 눈도 좋아졌고, 서양화 보는 법도 배우게 되었다. 시간 날 때마다 도록을 보면 그 풍경에 마음을 누일 수 있었고, 그림은 마음에 들어와 병풍이 되었다.
샤갈 등의 아트 포스터를 병원 복도에 걸었다. 친구인 정장직 화백 등 대전 작가들의 판화도 걸었다. 목판화의 묵직한 재질감과 수묵이 주는 담백함도 좋았고, 실크 스크린의 화려한 판화도 맛 났다. 북한 공훈 작가들의 세밀화에 매료 되어 연변작가들의 그림을 보았다. 백두산을 그린 약 2m의 대작 한 점은 표구하여 옥천문화원에 기증하였다. 그러다 옥천이 고향인 김달진 선생을 만났다. 미술계의 ‘걸어 다니는 사전’인 김달진 선생한테 부탁해 화가들의 작품 도록을 부쳐달라고 하여 지방에서의 목마름을 충족시킬 수 있었다.
사진과 음악에 저작권이 엄격해진 이후 시화전에 이미지가 필요하여 사진에 입문하였다. 작년에 한국사진작가협회에 입회하게 되어서 더욱 사진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작년에 있었던 ‘대한민국사진대전’에서 최민수 선생님의 작품 <Human>을 매입하였다. 1957년이나 1960년대의 부산 풍경사진을 전통한지에 프린팅한 것인데 역사의 한 장면을 집안에 들여 놓은 것 같아 좋았다.
병원을 신축할 때엔 신달호 조각가의 2m짜리 청동 가족 조각상을 주문 제작하였다. 지금봐도 건강과 화목을 상징하는 자랑스런 조각상이다. 아들이 주말 부부일 때 며느리를 응원하느라 오정훈 선생님의 판화 <그녀를 만나러 갑니다>를, 손자가 태어났을 때는 임봉재 선생님의 그림을, 손자가 백일이 되었을 때 사석원 선생님의 그림을, 손녀가 태어났을 때 서재홍 선생님의 그림을 기념으로 선물하였다. 그중에도 고등학교 선배인 하태진, 하동철, 유희영 선생님의 그림을 소장할 수 있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작품을 소유하기 위해 행복한 고민을 한다는 것은 누구라도 유추할 수 있으리라. 지금 바로 하고 싶은 것은 이종상 선생님의 그림을 소장하는 것이고 이종상 선생님께서 율곡 초상화를 그린 5,000원권 언컷시트 화폐에 선생님의 사인을 받는 일이다.
- 송세헌(1952- ) 충남의대 졸업, 외과전문의, 시인, 사진작가. 현 옥천 중앙의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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