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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김품창, 내 마음속의 미술

김소영

2011년 초 칼바람 불던 겨울 저녁, 회사 메인 뉴스인 뉴스데스크를 한 시간 반 정도 앞두고 정신없이 바쁘게 기사를 쓰고 있는데 전화를 받았다. 서울 인사동에서 개인전을 앞두고 있는 화가라며 자신을 소개한 남자는, 아침에 제주도에서 비행기를 타고 올라와, 경기도 파주 출판단지에서 주문한 도록을 찾았는데, 집으로 내려가는 김에 여의도에 들러 나에게 꼭 한 권 전해주고 싶다는 것이었다. 회사 앞까지 왔다고 말해 얼추 그의 이동 시간을 계산해보니 저녁도 먹지 못하고 찾아온 것이 분명했다. 만나지 않으면 왠지 나중에 너무 미안해 질 것 같았다. 


그의 이름은 김품창. 제주도에서 그림을 그린 지 딱 10년 되었다고 했다. 그 기념으로 서울에서 처음으로 개인전을 열게 되었다. 고향은 강원도이고 제주도는 근처에도 가보지 못한 가난하고 평범한 미대생이었는데, 대학 3학년 때 스승이었던 화가 이왈종이 제주도에 내려가면서 평소 눈여겨 본 그에게 “너는 화장실 청소 1년만 더 하고 제주도로 내려와라”한 것이 그만 운명이 되고 말았다.  

  

Q. 그럼 대학교 졸업하고 바로 제주도로 내려가신 거예요?

A. 아니죠. 수년간 서울에서 작업을 했었죠. 하루에 열 시간씩 5년을 그렇게 보냈는데 어느 날 작업의 한계가 보이더라고요. 그 때 제겐 스승님이 절실하게 필요했어요. 문득 이왈종 교수님 생각이 나더라고요. 이튿날 비행기를 타고 제주도에 내려가 주소가 적힌 쪽지 하나 들고 11시간 동안 물어물어 찾아갔습니다. 다행히 절 기억하고 계셨어요. 그 날 밤 좋은 말씀 듣고 올라왔고, 후로도 몇 번 왔다 갔다 하다가, 가족과 함께 아예 짐 싸들고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 때가 2001년 서른 중반이었죠.


Q. 스승님은 제주도가 왜 작업하기에 좋다고 하셨나요?

A. 한 마디로 자연 속에 살면 감성이 풍부해진다는 이유였지요. 서울에서는 사람들이 콘크리트 건물같이 인공적인 환경 속에 살고 있으니까 감성이 자극받기가 싶지 않아요. 또 아무래도 미술계도 사람 사는 곳이다 보니 인간관계를 무시할 수가 없는데, 이런 저런 행사를 다 챙기다 보면 정작 작업에 열중하는 시간이 줄게 되거든요. 선생님은 그런 점을 지적하시며 제주도로 오라고 하셨지요. 이왈종 선생님이 살던 집에 저희가 들어가 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제주도 생활은 생각처럼 낭만적이지 않았다. 섬사람들은 뭍에서 온 사람이라며 마음의 문을 좀처럼 열지 않았던 것이다. 힘들었던 제주도 정착 생활에 대해 이야기를 하던 그가 갑자기 울컥하더니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였다. “정말 고맙습니다. 제 긴 얘기를 들어줘서. 제 이야기를 들어주는 기자는 처음입니다.” 그러자 내 두 눈도 갑자기 뜨거워지면서 눈물이 쏟아질 뻔하였다. 나도 모르게 “별 말씀을요. 나머지 이야기는 제주도에 취재가서 들을게요.”라며 덜컥 약속을 하고 말았다. 말이 씨가 되는 법인지 마음 넓은 부장은 뜬금없이 이름 없는 화가를 취재하러 굳이 제주도까지 내려가겠다는 내 고집을 못 이기는 척 하시고는 출장을 허락하였다. 

   

자신의 작품앞에 선 작가 김품창


서귀포시에 있는 그의 작업실에 들어가자 한 면을 차지하는 큰 캔버스에 하늘인지 바다인지 모를 푸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미소 짓는 가족은 강아지, 문어와 다정히 손을 잡고 있었고, 돌고래에 올라 탄 인어는 복어와 즐거운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바다와 하늘과 땅이, 물고기와 사람과 동물이 캔버스 안의 푸른 세상에서 재미있다는 표정으로 부유하고 있다. 제목은 <어울림의 공간>. 그의 모든 작품 안에서 자연과 인간은 사이좋게 어울리고 있었다. 작업실 한 편에는 전복 껍데기가 수북하게 쌓여있었는데, 수 년 전부터 전복 껍데기에도 같은 주제로 그림을 그려오고 있었다. 제주의 오름 숫자만큼 전복 껍데기 385개에 그림을 그려 섬 모양을 만들어 놓은 작품에선 섬사람의 제주 사랑이 고스란히 전해졌다. 그런데 이 밝고 맑은 그림들은 역설적으로 그가 제주도에 내려와 사람들 텃세에 밀리고, 라면으로 끼니를 때울 정도로 가난에 힘겨웠을 때 탄생하였다.   


Q. 언제 가장 힘드셨어요?

A. 하루라도 빨리 자리를 잡아야겠다고 생각하고, 쉬지 않고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거든요. 그런데 어느 날 아침밥상에 라면이 올라온 거예요. 집사람이 쌀은 아들 도시락 싸줄 정도만 남았다고 그러더군요. 순간 가장으로서 정말 미안하고 너무 괴로웠습니다. 집사람과 서로 껴안고 엉엉 울었어요. 다시는 그림을 그리지 않겠다고 붓을 꺾었는데, 집사람이 다시 붓을 손에 쥐어주더군요. 그 때가 제가 바닥을 쳤던 게 아닌가 싶어요.


Q. 작품 분위기가 뭐랄까 맑고 동화책 보는 것 같아요.

A. 제가 원래 동화를 좋아하고, 집사람이 동화 작가입니다. 그리고 자연이 원래 동화적이에요. 섬에서는 친구랑 크게 어울릴 일이 없다보니 혼자 있을 때가 많아요. 그래서 작업실에 벌레가 들어와도 반갑습니다. 가끔 벌레에게 ‘넌 어디서 왔니’하며 말을 걸기도 하죠. 집 앞 바닷가에서 본 돌고래가, 방파제 공사가 시작되곤 보이지 않아서, 가끔 바다를 보고 ‘돌고래야 넌 어디로 갔니’ 하고 물었죠. 몇 년 후에 다시 나타난 돌고래를 보고 어찌나 반가웠던지. 그렇게 살다보니 저의 그림도 동화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자연을 지배하는 것 같지만, 파도가 칠 때 바닷가에 가보면 인간의 허약함을 볼 수 있다는 김품창. 하늘에서 보면 모든 것이 다 보잘 것 없다면서, 인간은 겸손해야 한다는 그의 이야기를 뉴스에 담아 내보냈다. 그는 갤러리나 홍보맨들을 통하지 않고, 직접 도록을 들고 찾아와 준 유일한 화가였다. 그가 밥을 굶고 내게 찾아왔듯이, 나도 당일치기로 제주도에 취재 다녀오느라 밥을 굶고 나서는 이틀을 끙끙 앓았다. 아무튼 그 때의 흔치 않은 인연으로 화가 김품창과는 일 년에 두어 번 안부전화를 주고받는 사이가 되었다. 1년 후 그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작품 한 점을 구입해갔다는 소식을 전해주었고, 동화책에 삽화를 그리게 되었다며 책도 보내주었다. 작년에는 자신의 작품을 좋아해주는 컬렉터가 드디어 생겼다는 이야기에 함께 기뻐하던 기억이 난다. 김품창의 그림은 그렇게 ‘내 마음 속에 미술’이 되었다.



김소영(1973- ) 중앙대 예술경영 석사. 현 MBC 문화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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