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한성
18년 전으로 기억된다. 스웨덴의 사브(SAAB) 자동차 원더드라이빙 이벤트에 참여하게 되었다. 우리나라와 일본·홍콩팀 20여 명을 초청했다. 대부분 신문, 잡지사 기자였고 자동차 칼럼니스트도 있었다. 당시 자동차 전문지(AUTO)의 맥가이버 시승기 칼럼니스트여서 MBC 방영드라마 ‘맥가이버’의 주연 성우였던 나도 참여했던 것이다. 우리 일행은 노르웨이 오슬로로 갔다. 도착한 때가 점심시간이어서 식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배고픔도 잊은 채 가이드 P에게 물어봤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를 꼭 봐야겠기에 국립미술관에 가야 하는데 택시 이용하면 시간이 얼마나 걸리느냐”고. 그랬더니 지금 가도 입장할 수 없을 거라고 했다. 그때가 2시 30분쯤이었다. 백야 기간이 아닐 때는 오후 3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이었다. 일단 가보겠다고 내가 서두르자 몇몇 기자들이 함께 나섰다.
국립미술관에 도착한 것은 7분 전 3시였다. 경비담당자에게 보디랭귀지를 해대며 멀리 한국에서 절규를 보러 왔는데 오늘 밖에 시간이 없다고 얘기했다. 입장마감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안 된다고 했다. 규정을 모르고 와서 미안한데 <절규>만 보고 바로 나오겠다고 사정했다. 그러나 어떤 재롱(?)도 소용이 없었다. 잠깐만 보여주면 될텐데 되게 빡빡하게 어쩌고저쩌고 후들거리며 돌아서는데 그가 우리를 불렀다. 오슬로 시내에 있는 뭉크 개인박물관에 가서 <절규>를 보라는 것이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우리는 진품 <절규>를 보러온 것이지 카피된 짝퉁은 우리 집에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내 표정이 화가 나 보여서인지 친절한 표정으로 그곳에도 진품 <절규>가 있다고 했다. 말을 잘못 알아들었나 하며 일단 개인박물관을 찾아갔다. 뭉크처럼 잘생긴 큐레이터가 반갑게 우리를 맞아주었다. 영어를 잘하는 K 기자에게 자세히 좀 물어보라고 부탁했다. 이곳에도 <절규> 원본이 있다는데 그럼 국립미술관에 있는 것은 진품이 아닌지 궁금하다고 말이다.
큐레이터의 설명은 이랬다. 뭉크는 넉 점의 <절규>를 그렸다는 것이다. 그 중 한 작품이 국립미술관에 있고 나머지 세 작품은 이곳에 있다며 우리를 안내했다. 그곳에 정말 <절규> 원본이 있었다. 탄성의 절규가 나올만큼 감격스러웠다. 다만 나머지 두 작품은 습작한 것처럼 미완성이어서 참 아쉬웠다. 나는 바보 같은 질문을 또 했다. 이 작품과 국립미술관에 있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좋으냐고 큐레이터는 정중하고 진지한 표정과 음성으로 말했다. “그것은 보는 사람 나름일 뿐 우열을 가리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절규>를 보고 온 수다(?)가 너무 길었다. 이유가 있다. 소위 글로벌하지 못한 사고방식과 고정관념에 포위되어 있던 나는 <절규>를 보는 과정에서 느낀 것이 참 많았다. 박물관이나 미술관은 우리나라처럼 평일엔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는 것도 그렇다. 그리고 세계적인 명화는 모나리자의 미소처럼 단 한 작품만 있다고 생각한 편견 같은 것 말이다. 작가에 따라서는 같은 작품을 여러 점 그린 경우가 있다고 한다. 미술은 물론 오페라, 연극, 영화 등 문화예술에 제법 관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스스로가 실망스러웠다. 어쨌든 우리가 보고 온 그 절규가 얼마전 1,300억 원이 넘는 가격에 경매되었다. 에드바르트 뭉크의 <절규>는 내게 그런 에피소드를 남겨준 명화이기도 했다.
- 배한성(1946- ) 성우, 서울예술대학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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