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하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의 개관이 미술계 안팎의 주목을 받고 있는 가운데,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과 서울시립미술관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두 개의 주목할 만한 비디오아트 전시들이 열리고 있었다. 비디오아트라는 말이 오래된 느낌을 주기도 하고, 유사한 작품들이 미디어아트, 실험영화 등의 새로운 외피를 두르고 있는 와중에 비디오아트라는 명칭을 전면에 내걸고 기획된 전시가 반갑지 않을 수 없었다. 두 기획전은 나름대로 규모를 갖춘 특별전으로서, 국립현대미술관의 과천관에서는 퐁피두센터의 비디오아트 컬렉션을, 서울시립미술관의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는 독일의 ZKM, 일본 ICC, 미국의 Video Data Bank 등 8개 기관 아카이브의 소장 작품들이 설치, 상영되었다.
먼저, 서울시립미술관 ‘Analog Welcome , Digital Archive (2013.11.16 - 12.15)’전은 크게 두 가지 취지를 가지고 있다. 우선, 참여한 각 기관들과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의 레지던시 작가들이 네트워크 형성의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비디오아트라는 것을 디지털 아카이브 시대에 어떻게 다룰 것인가를 대표적인 기관들을 통해 재고해본다는 것이다. 현대 영상작품의 아카이브 기능이란 아날로그 매체의 기록과 보관을 넘어 HD를 비롯한 매체 형식의 변화를 수반한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전시된 작품들에서 디지털 아카이브의 역할이나 아카이빙의 상징성을 찾아보기는 어려웠다. 참여한 기관들의 화려한 면면에도 불구하고, 한 두 개의 작품으로 기관이 추구하는 디지털 아카이빙의 의미를 찾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디지털 아카이브가 단순히 기존 영상물의 디지털화, 혹은 웹 스토리지의 역할을 담당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이 전시는 아날로그적인 가치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상태에서 아날로그라는 단어가 주는 매끄러움에 과도하게 집착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적인 예로, 최근 작품들조차도 60년대 작품들과 비슷한 수준의 화질로 상영하는 것은 아날로그적 미학을 오해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렇듯 전시 제목에 비해 아날로그-디지털의 미디어 환경 속에서 전시 자체를 너무 안일하게 구성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비디오 빈티지’전
한편, 국립현대미술관 과천전에서 열린 ‘비디오 빈티지(2013.10.2-12.31)’전은 63년부터 83년까지의 비디오아트를 작품 성격에 따라 세 개의 카테고리로 분류하고 이를 연대기순으로 배치하였는데, 오히려 작품보다는 전시공간의 데코레이션이 기억에 남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보기 힘든 작품들을 편안히 볼 수 있도록 그 시대의 거실, 서재를 재현한 아늑한 공간에는 작품설명 리플릿이 제공되어 친절한 큐레이팅 효과도 느낄 수 있었다. 그렇지만, 지나치게 세련된 공간의 구성이 오히려 작품의 의도를 방해할 수 있다는 우려가 들었다. 비디오사에서 중요한 작품들 대부분을 프로젝터가 아닌 모니터로 볼 수 있는 기회 자체가 요즘에는 드문 일이지만 (그런데 희한하게도 모니터의 거친 입자를 표현하고자 했던 차학경의 작품 <입에서 입으로>는 프로젝터로 전시되고 있었다), 가부장적 공간을 역설하는 마사 로슬러를 비롯해 작품들에 등장하는 비디오 액티비스트들의 외침을 고급 앤티크 인테리어샵에서 최근 유행중인 북유럽식 의자에 앉아서 보는 듯한 느낌 또한 어울리지 않는 낯선 광경이 아닐까 싶었다.
예술사에서 비디오라는 매체는, 기록과 보존이 더욱 중요해진 지금 분명 다시 짚고 정리해볼 필요가 있다. 그러나 각 작품이 내포하는 정치적 담론들과 기록들이 두 전시를 통해 얼마만큼 제대로 전달되었을까. 진실이 가려진 채 화려하게 포장된 지금의 시대상을 은유하고 있는 것일까.
김지하(1979-) 홍익대 영상학과 박사. 매사츄세츠대 실험영상의 디지털아카이빙 객원연구원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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