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현서
기어가는 나비에 고개 돌리는
당신은 기어가는 나비에 고개 돌린 적이 있는가? 아니, 본 적이 있는가? 나비는 우리가 일상에서 소외되어 우리가 귀 기울이지 않으면 볼 수도 없고 인지할 수도 없는 목소리이다. 『애도의 미학』은 주목받지 못하는 죽음, 애도의 위계, 그리고 사회의 감각이 외면하는 존재들의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평범한 일상을 걷다가 그런 나비들 앞에 멈춰 서기를 권한다.
예술에 관한 해석과 이야기는 많다. 최근 예술의전당에서 열리고 있는 마르크 샤갈의 그림에 대한 해석에서부터, 특히 <오필리아>, <별이 빛나는 밤> 등등 유명한 작품 속에 숨겨진 이야기는 정말 다양한 책에서 다루고 있는 듯해 보였다. 나는 그런 것들에서 벗어나 예전부터 지금까지 문제가 되고 있는 사회에 대한 예술 작품에 더 흥미를 보였는데, 그 이유는 인간 삶에서 예술은 떼어놓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평소에 사회 문제와 관련한 예술을 근처에서 찾아보기가 힘들다. 논쟁거리가 되어서 그런 걸 수도 있고, 혹은 사람들이 불편한 것들을 피하고 재미있는 것만을 찾는 경향이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즉, 자극적인 것을 찾으면서도 정작 재미로만 소비하는 사람들에게, 『애도의 미학』(한선아 저, 미술문화, 2025)은 사회 문제와 예술을 연결하여 독자에게 물음을 던진다. 그리하여 심각하고 무거운 주제들을, 예술을 통해 외면해 왔던 우리 자신을 조심스레 돌아보게 만든다. 더 이상 재미의 소비가 아니라, 그 대상이 곧 나라는 생각을 할 수 있도록 말이다.
총 9장으로 구성된 이 책은, 취약성과 비폭력에서 시작해 미디어와 프로파간다, 돌봄과 방치, 집단적 비극, 환대의 조건, 장애와 불능, 사랑과 인류애, 성폭력과 전쟁, 이민과 이주의 문제까지 사회 곳곳에 감춰진 '소외된 존재'의 얼굴을 다룬다. 각 장은 철학자·예술가의 작업을 빌려, 우리가 왜 누군가의 고통에 눈을 감는지, 누구의 죽음을 '숭상'하고 누구의 죽음을 '소멸'시키려 드는지 묻는다.
먼저 취약성과 비폭력에 대한 주제로, 죽음이라는 단어를 가져왔다. 저자는 " ‘어떻게 죽을 것인가'라는 질문이 '어떻게 죽었는가'라는 질문으로 전환될 때, 우리는 부당한 죽음을 당연하게 직면해야 했던 비참한 삶에 대해, 무엇보다 그 삶을 더 이상 살 만한 것이 아닌 삶으로 방치한 세계에 관해 어떤 뒤늦은 발견에 도달하게 된다"라고 말하였다. 즉, 죽어도 아직 죽은 것이 아니다. 잘 산 이의 죽음은 애도의 대상으로 숭상하는 반면, 비천한 삶을 산 이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조용히 처리된다.
저자가 죽음과 관련해 선택한 작가는 테레사 마르골레스로 『공기 속에서』라는 작품을 통하여 죽음에 대해 더 깊이 공감할 수 있도록 하였다. 시신을 닦은 물로 만들어낸 물방울이 우리들의 피부에 닿을 때 불쾌함을 느끼기보다 슬픔을 느끼고, 그 슬픔 속에서 어떤 필수적인 언약을 감각해내기를 저자는 바란다.
또한 인상 깊었던 부분은, 미디어가 현실의 참상마저도 필터링해 우리에게 선택적으로 보여준다는 부분이었다. 저자는 "뉴스의 원재료는 연속적인 필터를 통과해야 하며" 결국 우리는 복잡한 현실의 일부만을 소비하게 된다고 일깨운다. 직접적으로 필터를 거슬러 올라가지 않으면, 플랫폼의 콘텐츠 기반 필터링과 협업 필터링으로 필터 버블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다반사다. 우리에게 주어진 세계만이 전부라고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감각은 무뎌지고 확대되고 왜곡된다. 나 역시 자주 스쳐 지나갔던 반복적이고 자극적인 기사 속의 '죽음'을 하나의 사건으로만 받아들였던 무감각을 저자의 글을 통해 다시금 생각해 보게 되었다. 타인의 고통을 올바르게 바라보기 위해서라도, 앞으로는 현실을 파악할 수 있는 감각적 경계가 누구에 의해 조형되어 왔는지 분명하게 파악하는 일이 저자의 말처럼 필요해 보인다.
'사람이 된다는 것은 자리를 갖는다는 것'이라 말한 인류학자 김현경의 말을 인용하여 저자는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인간이지만, 모든 인간이 사람 취급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말했다. 하지만 자리라는 것은 추상적이고 비가시적이기에 어떻게 존재하는 건지 분명히 파악되지 않을 수 있는데, 그것을 확인 가능하게 하는 것이 '환대'라고 하였다.
저자는 그런 환대받지 못하는 인간에 대하여 초점을 맞춘다. 머무를 자리 없이 죽음을 선택하는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침묵으로, 버티기로 저항한다. 미국의 행위 예술가 윌리엄 포프 L의 '기어가기'의 행위도 저항의 한 행동으로 저자는 소개한다. 침묵하며 기어갈 뿐인 행위자는 끝도 없이 말을 걸며 자리를 내어 받지 못한 존재들조차 살아갈 권리가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표현한다. 저자는 단 한 사람만이라도 기어가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 무릎을 굽힌다면, 낙원을 기다리는 용기가 심어질 것이라고 기대한다.
이 책의 장점은 저자의 주장에 수동적으로 동의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삶과 주변을 되돌아보면서 '화두'를 던진다는 점이다. 또한 현실의 비극을 무감하게 재현하기보다, 예술·문학·사회학의 다양한 언어를 통해 감각의 회복을 요청함으로써 조금 더 나은 세상이 오기를 바라는 희망을 심게 된다.
일상이 지나치게 익숙하게 느껴질 때, 혹은 예술을 그저 아름다움의 영역으로만 생각하게 될 때, 『애도의 미학』을 통해 감각을 새롭게 흔들고 다정한 세계를 상상해 볼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 이미지 출처
『애도의 미학』 product.kyobobook.co.kr/detail/S000215705960
테레사 마르골레스, <공기 속에서 EN EL AIRE, 2003/2006
desingel.be/en/programme/dedonderdagen/teresa-margolles-mex-en-el-aire-in-de-lucht-20032006
윌리엄 포프 L, <톰킨스 스퀘어 크롤 Tompkins Square Crawl>, 1991
www.moma.org/audio/playlist/301/3908
우현서 atmanriv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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