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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안 오피’ 전시를 보고...

김선경

신선한 권태

영국 출신의 줄리안 오피는 앤디 워홀 이후의 팝아트를 대표하는 중요한 작가라고 평가받고 있다. 가장 많이 알려져 있는 것은 픽토그램을 연상시키는 둥근 머리와 뚜렷하고 단순한 선으로 이루어진 전신상, 작가 자신의 주변 인물들을 클로즈-업해서 묘사한 반신상을 다룬 이미지들이다. 그의 작품들 중 특히 마음에 드는 작품들은 극단적인 클로즈업으로 신체의 형상을 단순하게 4,5개의 선만으로 표현해도 그 부위가 어디인지 알 수 있게 하는 이미지들이었다. 이런 매력적인 작가가 한국에서 전시회를 연다고 하여 들뜬 마음으로 소격동 국제갤러리를 찾았다.

국제갤러리에서 열린 ‘줄리안오피’ 전시는 1,2 층으로 구분되어 있는데 전시장 1층은 무용수 ‘카레리나’라는 실제 인물과 미술품 컬렉터 ‘루스’를 모델로 하여 제작한 작품들로 역동성이 두드러진다. 요가를 하고 있는 무용수의 움직임이 고정되어 있고, 길을 걸어가고 있는 컬렉터의 모습이 스크린 안에서 반복된다. 특히 전광판과 같은 거대한 모니터 안에서 움직이는 사람들의 움직임이 희한한 희열을 준다. 프레임 안에서 움직이고 있는 사람의 형상은 아주 간단한 실루엣은 그 박자와 움직임의 각도가 놀라울 정도로 재현되고 있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픽셀화 되어 있는 이미지일 뿐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서 망가져서 계속 반복되는 인형을 보는 듯 무력감에 빠진다. 신선함으로 느껴지는 리듬감, 프레임 속에 갇혀 무한 반복되는 인간의 움직임에서 오는 허무하고 부질없음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다. 스위치만 내리면 형상이 없어지는 디지털아트. 이 작품들은 허구와 실재의 상황이 빚어내는 환상으로 들어가는 최면에 걸리듯 한동안 자리를 뜰 수 없게 만드는 힘을 내뿜고 있다.

2층에는 최근작이 전시되어 있었다. 오피의 가족과 동료, 그리고 컬렉터들의 초상들로 이루어진 공간의 분위기가 아래층과는 판이하다. 이곳은 인물들의 모습이 일본의 망가형태, 15세기의 반아이크나 게인스보로와 같은 작가의 초상과 유사한 포즈로 제작되어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작가는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가끔씩 눈을 깜박거리거나 귀걸이를 살포시 움직이게 하여, 관람자의 발을 붙잡는다. ‘지금 방금 저 그림안의 사람이 눈을 깜박 거린 것인가?’ 놀라며 다시 뒷걸음치는 것이다. 마치 내가 작품을 보는 것이 아니라 작품이 나를 보고 있다는 느낌이다. 또 다른 작품들은 렌티큘러 기법으로 4개정도의 화면을 겹쳐놓아 3.5차원으로 우리를 인도한다. 이렇듯 가장 대중적인 방식의 화풍에 고전적인 예술양식의 형태를 겹쳐놓아서 최근의 작품에는 나름의 변화를 꾀하고 있었다. 그러나 망가의 캐릭터와 같은 작품들이나, 렌티큘러 기법은 이제 흔하디 흔해서 차라리 동그란 단추구멍 같은 눈을 깜박거리는 작품만이 특이하게 다가왔다. 줄리안 오피의 작품을 한마디로 이야기 하자면 ‘신선한 권태’라고 말할 수 있으리라. 신선하고 톡톡튀는 선, 리듬감마저 포착되는 움직임과 동시에 프레임안에 갇힌 무한 반복되는 걸음걸이, 깜박거리기만 하는 까만 눈에서 느껴지는 권태로움이 그렇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달고 쓴 우리네 인생과 닮아있다.

김선경(미술품 전문해설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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