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한국문헌사의 쟁점 ⑸] 채륜과 종이…한국와서 획기적 개량된 제지술

편집부

[한국문헌사의 쟁점 (4)] 채륜과 종이…한국와서 획기적 개량된 제지술

종이는 서기 105년에 중국 한나라의 채륜이 발명했다고 배웠다. 하지만 지난 1995년 중국 사천성에서 채륜 이전인 BC179∼ BC87년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종이 실물이 출토되면서 채륜 발명설은 흔들리고 있다. 무엇보다 한 개인이 종이를 발명했는가라는 질문 자체에 대해 회의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과연 채륜은 종이를 발명한 것인가.
◇종이의 발명자
지금까지 출토된 매장 문화재 중에서 채륜 이전의 종이로 판명된 것은 10건에 이른다. 연대는 대체로 BC179∼AD98년이다. 재료는 마지(麻紙) 5종,나머지 5종은 정체를 확인하지 못한 식물섬유였다. 문자나 지도가 기록된 실물도 2종이나 있다. 문헌 기록도 있다. 고문헌의 기록 중 종이가 언급된 것으로는 105년 이전의 것이 무려 16건인데 이중 8건은 누에고치의 솜으로 만든 견서지다. 이미 이 시절 누에고치를 이용한 종이가 있었던 것이다.
종이 실물이 출토되면서 채륜의 종이 발명설은 설득력을 잃었다. 뿐만 아니라 이제 누가 종이를 발명했는가라는 질문 자체가 의미를 잃어가는 상황이다. 그 이유는 종이의 제작 과정 자체에서 찾아볼 수 있다.
종이는 누에고치를 옷감으로 가공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견’됐다. 옷감을 만들기 위해서는 섬유질 사이에 있는 점액질을 제거하기 위해 널찍한 대발에 담아서 물가에서 방망이로 두드리면서 빨아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부서져 나올 수밖에 없는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섬유가루가 대발에 남아서 뒤엉겨서 미세한 막을 형성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종이의 원조가 된다. 종이 지(紙)에 실 사(사) 변이 쓰이는 이유다. 아마 누에고치를 두드려 빨아 옷감을 만들던 기술자 중 누군가는 대발을 깨끗하게 청소하지 않고 햇빛에 말리다가 어느날 대발에 남아있는 흰 막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이 종이 발명으로 이어졌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 첫 발견을 어느 일꾼이 했는가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어쩌면 수많은 인부들이 같은 생각을 동시에 했을 수 있고,어느 틈엔가 종이 제작 기술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었을 것이다. 종이는 한 개인의 발명품이라기보다 집단의 문화적 창작품이라고 보는 게 합당하다.
따라서 채륜은 발명자였다기보다는 종이의 혁신적 개량자로 보는 쪽이 옳다. 채륜 이전까지는 제지술이 미숙해 종이가 보편적으로 활용되지 못했다. 당시 조정의 물품 담당자였던 채륜은 제지술을 개량해 공급량을 대폭 늘리면서 종이를 대중적으로 보급한 것이다.
◇닥종이의 우수성
몇년 전 도쿄종이박물관에 갔을 때 수백 점에 달하는 조선 종이의 실물에 놀랐던 일이 있다. 전주의 종이박물관보다 정작 우리 고지(古紙) 컬렉션이 많아 보였다. 당시 박물관 관계자는 궁녀가 쓴 것으로 보이는 조기 후기 종이 한 장을 들고와서 여기에 씌여진 한글 이름이 무엇이고 어느 시대 종이인지 등을 묻고는 정작 보고 싶은 컬렉션을 공개하는 데는 인색했다. 한중일 3국 사이에 아직도 팽팽한 문화적 대결 의식이 느껴진 현장이었다.
중국의 제지술은 200년쯤 한국에,610년에는 일본에 전파된다. 종이의 재료가 되는 식물은 기후 환경의 절대적인 영향을 받는다. 따라서 비록 제지술이 처음 시작된 곳은 중국이지만 동양 3국이 사용한 재료는 자연스럽게 달라졌다. 중국은 당나라 이후부터 대나무를 사용한 죽지(竹紙)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한국은 시종 한국의 환경에서 잘 생장하는 저지(楮紙:닥종이)를 개발해 사용했고,일본은 청단목을 재료로 삼은 안피지(雁皮紙)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
종이 전문가들은 죽지,저지,안피지 등 3종 중에서 저지를 가장 우수한 것으로 꼽는다. 육안으로 보면 질의 차이는 금방 드러난다. 죽지는 섬유에 유해한 목소(木素) 성분이 많아서 쉽게 산화된다. 쉽게 찢어지니 수명도 길지 못했다. 일본 안피지는 죽지에 비해 가볍고 반질거리며 수명도 긴 편이나 흔들면 소리가 날만큼 바스락거린다. 이와 비교해 닥종이는 가장 안정감이 있는 종이다. 종이 섬유가 길고 견고해서 오래 가는데다 책으로 만들면 가장 품위 있어 보이는 것도 닥종이다.
서명응의 ‘보만재총서’나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에 보면 “고려지가 색상이 희고 견인하고 매끄럽고 윤택하고 두껍고 질기다”는 칭찬이 나온다. 한국의 저지는 고려지라는 이름으로 중국과 일본에도 많이 수출됐다. 특히 중국에서 고려지의 인기는 높았는데 조선의 사신이 중국에 갈 때에는 조공품으로 빠지지 않았다. 비록 중국의 제지술을 받아들였지만 획기적인 품질개량은 한국에 와서 이뤄진 셈이다.
◇한지의 재탄생
한중일 3국이 각자의 종이 문화를 아무리 자랑한다 한들 근대 이후 서구에서 들어온 양지(洋紙)의 압도적 우위를 부정할 수는 없다. 과거에는 찬란했던 우리 전통 닥종이는 이제 도태돼 애물단지가 됐다. 양지는 기계화를 통한 대량생산이 가능하여 생산원가가 저렴하고,섬유의 밀도가 높아서 양면인쇄가 가능하다. 이에 비해 생산 원가가 높고 수공업에 의존하는 전통 한지의 경쟁력은 낮을 수밖에 없다.
하지만 전통 한지는 그 나름의 우수성을 아직도 적지 않게 간직하고 있다. 양지는 제조과정에서 화학처리가 불가피하다. 표면 가공을 위해 각종 표백제와 첨가제를 다량으로 넣기 때문에 인체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높다. 종이의 수명 역시 길지 않다.
이에 비해 한지는 순수 자연섬유와 천연재료만을 이용하는데다 화학 처리를 하지 않아 먹어도 탈이 없을만큼 안전하다. 제조 과정을 기계화한다면 한지의 부활 가능성은 충분하다. 장식용 문양지와 채색지,황토 벽지 등으로 한지를 응용하거나 각종 생활문화 상품에 한지를 활용하는 것도 좋다. 서구식 개발과 성장이 한계에 부닥치고 우리 옛 것에서 미래의 대안을 찾아보려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한지도 그렇게 부활의 날을 꿈꾸고 있다.
/조형진(강남대 교수)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