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 10년 미술시장] 上. 빈사의 미술 동네
그림값 반토막 … 내놔도 안 팔려
중앙일보 2003. 10.15
문자 문화가 퇴각한 이 시대 시각예술의 근본이 미술이다. 산업디자인 등 인근장르에
주는 파급효과도 주목되는 이 견인차 장르인 미술 시장이 1990년대 초반이후 10년째 침
체 일변도이다. 깊은 늪 속의 현대미술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를 두고 현황과 대안을
제시하는 시리즈 '침체 10년 미술시장 어디로'를 연재한다.
호시절이었다. 단군 이래 최대의 호황이라던 그 때는 과장없이 자고나면 그림 값이 올
랐는데, 서양화가 장욱진의 경우 그야말로 드라마틱했다. 보통 5호 내외의 작은 그림
을 그렸던 그의 1989년말 작품 값은 점당 1천5백만원 수준. 이것이 이듬해 4월에는 4천
만원으로 껑충 뛰었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그의 라이벌인 서양화가 박고석의 현대
화랑 개인전 때 매겨진 작품 값 수준으로 간단하게 상향 조정을 한 것이다.
미술시장이 후끈 달아올랐던 80년대말 90년대초 장욱진 작품 값은 고공비행을 거듭했
다. 이규일('아트 인 컬처'발행인)씨 증언에 따르면, 그해 7월에 6천5백만원을 호가하
더니 12월 타계 직후 드디어 1억원을 돌파했다. 그림값 폭발은 그뿐 아니라 당시 인기
작가 그룹 대부분이 그랬다.
부동산 투기대책이 연이어 발표되던 그때 뭉칫돈 일부가 재테크 차원에서 미술시장으
로 흘러들었고, 작품이 없어서 못팔던 시절이었다. 겨우 70년대에 상업화랑이 생겨나
막 정착했었음을 염두에 두자면 그건 분명 이상과열이었다. 또 거품 붕괴 직전의 상황
이기도 했다. 하지만 화랑들은 달콤함을 즐겼다.
89년말 화랑협회 가입 화랑 50여개가 91년들어 2백여개로 '빅뱅'했던 것도 그 무
렵. '일단 투자부터 하세요'라며 겨우 형성되기 시작한, 그러나 안목없는 컬렉터들을
부추겼던 화랑들은 미처 몰랐다. 93년 이후 작품값 거품이 급격하게 빠지면서 '잃어버
린 미술계 10년'으로 직결될 줄은….
그것은 일본경제 거품 붕괴와 흡사한 상황이었다. 이후 현재까지 화랑가는 황량하다.
실물경제 흐름과 상관없이 꿈쩍도 않는 '빙하기 10년'은 혹독하다. 업친데덥친 격으로
두 개의 해일이 거푸 미술동네를 덮쳤다. 하나는 턱없는 시장과열 현상을 빚던 시장을
어느날 갑자기 '우물 안 개구리'으로 만든 97년 미술시장 개방, 다른 하나는 국제통화
기금(IMF) 사태가 그것이다.
이후 재테크 차원에서 콜렉션을했던 이들이 작품을 되팔려고 화랑에 나왔을 때 그들은
다시 한번 놀랐다. 어느정도 가격 추락을 각오했지만, 문제는 거래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장기적 안목에서 콜렉터 보호와 시장 유지에 관심이 없었던 화랑들이 작품을
받아주지 않았다.
이때 이후 미술품은 재테크는커녕 환금성(換金性)이 없음이 확인돼 침체일로를 걷고있
다. 지금까지도 박수근.이중섭.김환기.천경자 등 국민작가급인 4~5명이 아니면 거래 자
체가 어렵다. 왕년의 인기작가 권옥연.변종하.이만익.김흥수.이상범.변관식.노수현.오
지호.도상봉 등도 그렇다. 경매에 내놓을 경우 예전 구입가의 반토막이 나기 십상이
다. 그렇다면 시장침체는 다름아닌 화랑들이 원인제공을 한 셈이다. 그 구체적인 현상
이 미술계 최대 현안인 '리세일 마켓(재판매 시장) 실종이다.
본디 미술품은 일반공산품이나 소비재와 구분된다. 따라서 싫증이 났거나 바꾸려할 경
우 되팔 방법이 없으니 콜렉터들이 국내 미술을 외면하는 것이다. 시장 자체가 복잡한
이중가격의 정글인데다가, 환금성이 없다는 것을 뼈아프게 확인한 콜렉터들은 두번 다
시 화랑에 얼씬하지 않는다. 때문에 젊은 작가들의 작품판매를 포함해 미술시장 자체
가 급격하게 얼어붙어 현재까지 10년 세월이 흐른 것이다. '과거 청산없이 미술시장은
되살아나지 않는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이런 배경이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의 추산으로 국내 콜렉터는 1천5백명 수준. 한해에 작품 3~4점을 구
입하는 개인을 포함하고 여기에 미술관.기업 등 기관 콜렉터들을 포함한 숫자다. 이런
열악한 상황에서 화랑.작가들이 출혈을 감수하고 전시회를 여는 게 신기할 정도다. 그
러면 국내 미술시장의 규모는 어느 정도일까? 연매출액은 많이 잡아 2천억원대로 추산
된다. 그러나 대형건물 한켠에 의무화된 공공조형물을 제외한 순수한 작품 거래액은 1
천억원을 훨씬 밑돈다.
'그 액수는 로또 서너번 당첨되는 액수'라고 화랑들은 자조한다.'10년전 번 돈으로 겨
우 버틴다'는 푸념도 거듭 들린다. 그러나 현대미술은 역시 현대미술이다. 시각예술의
총아이자, 산업디자인 인근 장르에 주는 파급효과도 주목되는 견인차 장르다. 이 장르
활기 부족은 길게보면 국가 경쟁력과 관련된 사안이다. 무엇보다 교양과 문화의 척도
인 현대미술을 어떻게 되살릴 것인가? 그것이 문제다.
[미술품 가격 책정의 문제점] 호수로 가격 매기는 관행 여전
IMF 뒤 값 폭락에 이중가격 형성
'몇 달전 거금 2백만원을 그림에 투자했다. 공산품과 다른 맛이 엄청 좋았다. 한데 우
연한 기회에 다른 화랑에서 그 작가 작품이 걸려 확인했더니, 웬걸 절반이라고 한다.
화랑주인이 딱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봤다. 작품 값이 이렇게 춤춘다니…. 말도 안
된다. 이제 다시는 그림 안 산다.'
실제 상황이다. 지방의 그 애호가는 화랑의 이중가격제 정글 앞에 발길을 돌린 사람이
다. 김순응 (서울옥션 대표)씨의 진단을 들어보자.
국내미술 시장은 근대시장 이전의 난장(亂場) 수준이라는 것, 수요와 공급에 따라 가격
이 형성되지 않는 상황에서 시장이 살아나길 기대하는 것은 나무에서 물고기를 잡는 격
이다.('한 남자의 그림사랑'1백45쪽)
이중가격제 이전에 호당(號當) 가격제도 문제다. 작품의 물리적 크기로 값이 산정되는
데다가 값을 공급자가 매긴다는 모순 때문이다. 또 IMF 관리체제에 편입된 이후 떨어
진 가격을 자존심 때문에 작가들과 화랑이 인정치않고 있지만, 막상 실제 거래는 훨씬
낮은 가격에서 이뤄진다.
이중가격제는 이렇게 해서 형성됐다. 외국처럼 유통경로를 다원화해 화랑과 경매시장
이 50대 50으로 균형을 잡는 게 시급하다. 작가와 화랑들이 그 이전 과대평가된 가격
의 거품을 빼고 새롭게 출발을 해야한다. 시장 재건의 관건인 '콜렉터에 대한 신뢰 회
복'은 이 토대 위에서 비로서 가능하다는게 전문가들의 중론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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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10년 미술시장] 中. 40~50대 스타작가 키우기
'소장하고 싶은 작가?…글쎄요'
원로.외국작가 작품에만 관심 몰려
해외서 인정받는 스타도 국내선 외면
중앙일보 2003.10.16
'그림 그리는 데 이렇게 많은 돈이 들다니 정말 괴롭다. 동료인 고갱을 봐도 알 수 있
듯이 그림을 담보로 돈을 빌리는 일도 불가능하다니. 뒷시대 화가들이 더 풍족한 생활
을 할 수 있도록 우리가 발판이 될 수 있다면….'
화가 빈센트 반 고흐가 토해낸 고백 한 대목이다. 1899년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에
서 밝혔던 고흐의 소망은 20세기 들어 서구미술의 활력을 뒷받침하는 시장 인프라 형태
로 폭넓게 깔려 있다.
이를테면 국내 금융권에서는 미술품 담보 대출을 취급하지 않지만, 선진국 대부분은 이
를 얼마든지 인정해 준다. 김순응 서울옥션 대표 등 전문가들에 따르면, 해외의 경우
현대미술품은 투자가치 면에서 유가증권.부동산 등과 동등하거나 오히려 더 유리하다.
웬만한 은행이 VIP고객의 투자를 돕기 위해 아트뱅킹 파트를 운용하는 것도 그 맥락이
다. 미국에서의 미술품 투자 평균 수익률은 지난 3년간 물경 54%. 영국 철도연금기금
의 경우 1970년대부터 기금 일부를 미술에 투자하는데, 연평균 수익률이 11%라고 한
다. 국내 미술계는 선진국 미술 시장을 부러운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잃어버린 10년'을 보낸 국내 미술계의 더 화급한 위기 징후는 따로 있다. 스타작가의
기근 현상이 그것이다. 물론 90년대 초 미술값 거품붕괴의 여파라지만, 미술산업을 위
한 성장 엔진이 결정적으로 부실한 것이다. 그 때문에 '시장 재건'을 위한 조치가 없다
면 앞으로 10년 뒤 역시 별 비전이 없다는 게 미술계의 중론이다.
현재 40대 전후 작가들의 처지는 우울하다. 쉽게 말해 길 가는 이들을 붙잡고 '요즘 누
가 미술계의 스타인가?'를 물어보자. 서너명의 작가를 떠올릴 사람들이 드물 것이다.
그것은 컬렉터 입장에서 보자면, '소장하고 싶은 작가(collectable artist)'층이 거의
없거나 극히 얇다는 판단으로 이어진다. 그런 까닭에 80년대 말 미술시장 개방 이후 일
부 큰손 컬렉터들은 외국 작가들의 작품을 매력적인 구입 대상으로 삼기 시작했다.
물론 우리에게 월드 마켓에서 통하는 40~50대 작가층이 없는 것은 아니다. 50대 작가로
는 김홍주.고영훈.이상남 등이 거론된다. 주로 페인팅 분야의 이들은 이미 아트페어
등 해외 미술시장에서도 상품성이 입증됐다.
40대 중에서 경쟁력을 가진 작가들은 더 많다. 여성작가 이불을 비롯해 서도호.김수자.
조덕현.이기봉.최정화 등이 그들. 요즘 각광받는 사진 장르에서도 민병헌.이정진.김아
타 등이 포진했다. 이 작가들은 서구의 미술관과 화랑에서 개인전을 열었고, 해외 미술
관들이 일찌감치 컬렉션을 해뒀을 정도다.
이들 외에 해외아트페어에서 판매가 되는 작가로는 전광영.정광호.노상균.김유선.김창
영.함섭.양만기.김택상.함진 등이 거론된다. 그렇다면 작가가 없는 것이 아니라 애호가
와 컬렉터들이 갖는 '작가 기근 심리'가 문제인 셈이다.
컬렉션을 하기에 전통적인 페인팅이나 조각 같은 친근감이 덜해서 그럴까? 아니면 그들
은 90년대 초반 거품 붕괴의 피해자들이라서 그럴까? 그것이 대답의 전부는 못 된다.
현대미술은 어차피 대중문화산업처럼 스타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그렇다면 현재 미술계
의 작가 기근 심리는 이들이 걸출한 작가 반열에 오르는 노력이 부족했음을 말해준다.
어쨌거나 이들 작가들이 '컬렉션을 해두고 싶은 작가'로 선뜻 떠오르지 못한 것은 빈사
의 미술동네 현주소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잠재력이 풍부한 40~50대 스타작가들을 중심
으로 한 글로벌 마케팅 작업에 국내 문화기관이 어떻게 나서야 할까. 구체적인 지원 시
스템과 인프라 구축 문제는 다음 회에 다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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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10년 미술시장] 외국작가들에 자리 내준 국내 시장
환금성 입증이 주요인
당장 눈을 돌려봐도 해외 작가들의 작품을 주변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서울은 물론
경주.천안 등 지방에서도 해외 작가들 작품이 적지 않은데, 이들은 1990년대 초 거품
붕괴로 국내 미술계가 빈사 상태에 빠져 '소장하고 싶은 작가'를 배출하지 못할 때 빈
칸을 채운 것이다. 이들 작품은 언제라도 되팔 수 있는 환금성(換金性)까지 입증됐던
터 아닌가.
우선 서울 여의도 구 쌍용빌딩. 이 공간 1층 로비를 장식한 대형작품은 미국 작가 프랭
크 스텔라의 대작이다. 천안의 고속버스 터미널 앞. 아르망의 우뚝 솟은 초대형 작품
이 오가는 이들의 시선을 끌고 있다.
서울 시내의 주요 호텔에서도 외국 작가들 작품을 만나기란 어렵지 않다. 신라호텔 로
비의 프런트 데스크 뒤를 장식한 작가는 미니멀리즘의 작가 도널드 저드다. 조선호텔
의 프런트 데스크 뒷면에는 엘즈워스 켈리의 판화가 나란히 걸려 있다. 경주 힐튼호텔
의 경우 시그마 폴케의 대형 페인팅이 투숙객의 시선을 끈다.
지난 10여년새 국내에 작품이 속속 반입된 작가들은 미국 작가만 해도 서체(書體) 추상
화의 월렘 드 쿠닝을 포함해 앤디 워홀.샘 프랜시스.줄리안 슈나벨.로이 리히텐슈타인
등 상당수다. 장 드 뷔페.아르망.세자르.장 포트리에(이상 프랑스), 발레리오 아다미.
엔조 쿠키.미모 팔라디노(이상 이탈리아), 아키 펭크.요제프 보이스.알젤름 키퍼(이상
독일) 등도 빼놓을 수 없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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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체 10년 미술시장] 下. 글로벌 시대 새 시스템을
주식시장처럼 작품값 공시해야
제 3의 기관서 가격변동 투명하게 공개
스타작가 마케팅에 국가도 적극 나서야
중앙일보 2003. 10. 20
요즘 미술계는 표면상 별 문제가 없어 보인다. 웬걸 안녕하다. 유행처럼 번지는 이른
바 블록버스터전.키즈전에는 사람들이 북적댄다. 28만명을 끌어들인 '밀레전'을 비롯
해 '렘브란트전'같은 대형 볼거리가 그렇고, '동화 속의 미술여행'같은 꼬마 관객 입장
료 수입을 겨냥한 방학특수(特需)도 짭짤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일회성 이벤트는 공
허하다.
비유컨대 암 환자가 의사처방 없이 감기약을 고집하는 격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
다. 침체 10년의 불황을 '한집 한그림 걸기'같은 표피적인 대중화 캠페인으로 다스릴
수는 없는 얘기다. 월간 '미술세계'가 이런 설문을 던졌다. '귀하의 문화생활 중 미술
이 차지하는 비중은?' 영화관람이 71%라는 응답에 비해 전시관람은 2%였다는데, 그 2%
라도 제대로 만족시키는 최선의 방책은 '시장 정상화''시장 재건'이란 명제로 요약된
다.
'물론 가정이지만 만일 공정거래위가 미술시장을 정밀 조사한다면 기겁을 할 것이다.
난장(亂場)수준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시장기능 자체가 없기 때문이다. 투명하지 않은
거래, 가격 담합 등은 정말 원시적 수준이다. 이런 정글 구조야말로 애호가들에게 '끼
리끼리 노는 미술동네' 라는 인상을 주는 장애물들이다.'
컬렉터 K씨의 말대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는 시장 정상화는 화랑.작가가 쥐고 있
는 '숨겨진 작품값'노출 작업이 우선이다. 일반인들이 주식이나 부동산 시세를 훑어보
듯, 재화(財貨)임이 분명한 미술품도 투명하게 가격공시가 돼야 하고, 그런 투자환경
이 시장 정상화의 첫 수순이다. 그 일례가 일본의 작가별 가격을 밝히는 '미술연감' 발
행이다. 가격공시 시스템은 화랑협회나 공신력을 가진 제3의 기관이 주관하는 게 합리
적이다.
즉 전시회 때 작가가 정한 작품값은 상장 주식으로 치자면 등록가격일 뿐이다. 상장
뒤 수요 공급에 따라 주식시세가 형성되듯, 미술품 역시 작품 완성도와 수요에 따라 바
뀔 수 있고, 그 상황을 공개하자는 것이다. 그것이 10년 전 거품 붕괴 때 한순간에 무
너진 컬렉터의 신뢰를 회복하는 장기 처방이다. 연공서열에, 연줄망으로 움직이는 국
내 미술계의 기형적 풍토 역시 이를 통해 해소될 것으로 기대된다.
화급한 미술시장 인프라로 감정제도 강화, 경매 활성화도 빼놓을 수 없다. 현재 화랑협
회에서 그 기능을 수행하지만, 보다 권위있는 제3의 기구를 설립하는 것이 컬렉터 신뢰
를 얻는 핵심 장치다. 또 선진국에서 작품유통의 50% 이상이 경매로 통해 이뤄지듯, 화
랑과 별도로 자유로운 유통채널을 구축하기 위한 경매회사 지원도 기본이다. 또 무엇보
다 10년 전 떠난 컬렉터들이 돌아오게 하려면 생산(전시 기획)기능 강화가 강조돼야 한
다.
1990년대 후반 이후 상당수 화랑들이 공공미술, 즉 신축 대형건물들에 의무화된 이른
바 빌딩 작품판매에 의존하면서 작가양성.작품판매라는 '메인게임'이 약화된 점은 우려
할 만하다. 전시기능 강화를 위해 큰 화랑과 작은 화랑 사이의 짝짓기도 거론되고 있
다.
국립현대미술관 정준모 학예실장은 '메이저 화랑이 실험성이 강한 전시를 하는 대안공
간을 육성하고, 거기에서 걸러진 작가들을 미래의 작가로 키우는 선진국들의 전략적 제
휴 시스템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그런 일상적 전시기능 강화와 함께 글로벌 스타 작가 마케팅에 국내 미술관들과 문화
관련 국가 기관들이 적극 나서야 할 것 같다. 60년대 미국 팝아트의 붐이나 90년대 영
국 출신 젊은 작가들이 대거 뜨는 것도 알고 보면 해당 국가의 정교한 전략적 마케팅
에 따른 것이다. 또 중국을 정예작가 수만명에게 작업실을 지어주고 지원하는 거대 스
튜디오촌(村)을 운영하고 있다. 문화관광부가 눈여겨볼 대목이다.
사회발전의 우회적 동력은 문화 영역에서 창출된다는 새삼스런 확인이다. 하지만 시간
이 없다. 현재 국회 예결위에 올라가 있는 양도소득세가 만일 예정대로 내년 초부터 시
행된다면, 허약 체질인 미술시장은 곧바로 황폐화할 것이 분명하다. 이런 국면에서 새
삼 미술계가 되새겨야 할 점은 시장 정상화.시장 재건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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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 컬렉터에게 배우자
마돈나·폭스바겐 등 미술시장 키우는 견인차
유명한 해외의 미술품 컬렉터로 대중가수 엘튼 존과 데이비드 보위가 꼽힌다. 보위의
경우 개인 호사가를 떠나 광고회사 '사치 앤드 사치'와 함께 영국의 현대 미술가들을
띄우는 데 공헌한 핵심 인사다. 가수 마돈나.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등도 안목 높은 컬렉
터이지만, 뜻밖에 '람보'배우 실베스터 스탤론도 만만치 않다.
뿐인가. 잘 알려진 시티은행이나 롤스턴 같은 다국적 기업들은 미술 컬렉션으로 기업
이미지도 올리고, 투자효과도 얻는다. 독일 보험회사 알리안츠의 베를린 지사는 미술관
과 다름 없으며 폴크스바겐의 경우 미술관을 운영하고있다.
이런 컬렉션 풍토야말로 미술문화의 훌륭한 견인차다. 미국의 경우 9.11로 미술시장이
침체될 것이란 예측을 깨고 최근 1~2년새 소더비.크리스티 같은 경매시장이 활황인 것
도 이런 배경이다. 침체 10년을 지낸 국내 미술계의 자구노력과 별도로 이런 양질의 개
인.기업 컬렉터들의 존재는 절실하다.
바브라 스트라이샌드 말대로 좋은 컬렉터는 열정(passion)과 안목(a good eye)으로 움
직인다. 미술품은 장기적으로는 효과적인 재화이지만, 구입할 때는 감동으로 사들인
다. 이런 재화를 읽어내고, 사회적 축적까지 돕는 문화 수요자들의 존재가 한국에 바
로 지금 요구된다.
/조우석 기자 wowowo@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