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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길 / 숨 쉬고 부유하고 반영하고 접속하는

고충환

이상길 / 숨 쉬고 부유하고 반영하고 접속하는



숨 쉬는 상자. 처음에 상자는 사방천지가 막혀 있었다. 그래서 그 속에 무엇이 들어있었는지 몰랐고, 더욱이 상자가 숨을 쉬리라고는 더더욱 생각하지 못했다. 그리고 상자는 조금씩 열리다가 마침내 위쪽이 트였고, 그 속엔 마른 꽃잎들이 수북이 담겨져 있었다. 다름 아닌 마른 꽃잎들이 숨을 쉬고 있었고, 그 기운으로 무쇠철판으로 꽉 막힌 상자의 한쪽 면이 열린 것이다. 여기서 무쇠철판 재질의 상자는 집을, 사회를, 제도를 상징하고, 자기를 옥죄는 또 다른 자기(이를테면 아집이나 고집과 같은 스스로 만든 집?)를 상징한다. 그 집 속에서 나는 연약하지만 종래에는 무쇠 재질의 집을 돌파할 수 있을 만큼 강력한 숨을 쉰다. 숨은 우주의 근원적인 에너지인 아니마를, 생명을, 여성성을 상징한다. 그 숨은 비록 마른 꽃잎만큼이나 무력하지만, 그 숨결이 우주의 끝에 가 닿을 만큼 질기다. 이 상자 작업에서 작가는 마른 꽃잎의 미미한 숨이 무쇠철판의 집으로 상징되는 견고한 것들을 뚫는다는 역설을 도입해 시적 아름다움을 더한다.

부유. 상자 속에 갇혀있을 때 나는 답답했다. 그래서 언젠가는 상자를 탈출하리라는 무력하면서도 가열 찬 꿈을 꾸었다. 그리고 마침내 상자를 열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그렇게 나는 허공을 부유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작업에서 작가는 철선들을 얼기설기 엮어놓거나 철선 구조물 사이사이에 비정형의 깨진 색유리 조각들을 매달거나 끼워놓았다. 철선 구조물은 꽉 막힌 철판 구조물과 다르게 사통팔방이 열려 있어서 그 사이에 끼워진 유리조각들이 흡사 허공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고 부유하는 것처럼 보인다. 여기서 나는 색유리 조각들만큼이나 많은 나들로 흩어지고, 나의 꿈은 알록달록한 색유리 조각들만큼이나 영롱하다. 나는 더 이상 총체에 얽매이지도, 총체로 소급되거나 소환되지도 않는다. 나(나의 몸)는 조각들이며, 파편들이며, 편린들로 분산된다. 철선 구조물은 철판 구조물에 비해 그 실체가 희박하고 물질감이나 물체감이 없는 편이다. 그런 희박한 실체감이 오히려 그렇게 흩어지고 분산된 존재로 하여금 더 잘 부유할 수 있게 해준다. 그리고 그 이면엔 실체감이 없는 조각, 일종의 탈조각으로 하여금 조각을 확장하려는 기획이 엿보인다.

반영. 이상길의 조각은 드러내놓고 자기를 주장하거나 표상하지는 않지만, 은근히 자기 반성적이고 자기반영적이다. 반영한다는 것, 그것은 거울에 자기를 비춰보는 행위이다. 그리고 이 행위를 수행하거나 암시하는 것으로 치자면 스테인리스스틸 소재만한 것이 없다. 그래서 작가의 조각에는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이 많고, 스테인리스스틸 재질에 관한 한 남다른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형태로 치자면 기하학적이기보다는 유기적인 형태가 많고, 정형보다는 비정형의 형태가 많다. 아마도 유기체의 꼴이나 성질을 닮은 형태가 더 쉽게 감정이입할 수가 있고 공감을 끌어낼 수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테면 비상하는 새의 자태를 추상화한 것 같은, 응집력으로 비정형의 둥근 형태를 만들어내는 물방울을 양식화한 것 같은, 하트 형태를 암시하는 것 같은, 자갈돌을 확대해 놓은 것 같은 유기적이고 자연스런 형태들이다. 그리고 심지어 정형의 원형을 조형할 때마저 일정 부분을 원형의 안쪽으로 함몰시켜 정형을 피했다. 이 형태들은 하나같이 광택 마감으로 처리해 외부환경을 그대로 반영하는 일종의 거울 역할을 하면서, 동시에 외부환경을 자기의 안쪽으로 끌어들여 조형물 자체의 범위를, 공간을 확장시킨다. 이렇듯 자기반영성과 공간의 확장은 그 이면에서 스테인리스스틸 소재 고유의 물성에 대한 작가의 감각적 이해가 뒷받침되고 있기에 가능한 일일 터이다.

우주와의 접속. 칠흑같이 새카만 밤에 보석같이 빛나는 별들을 올려다볼 때면 불현듯 살아있다는 사실이 신기해진다. 저 별들 중에 한 별에서 누군가도 똑같은 생각을 할까. 비록 인간과 같지는 않겠지만, 인간과는 다른 생명체가 분명 어느 별엔가 살고 있을 것이다. 생명체가 살고 있는 별이 지구가 유일하다고 믿기에는 별들이 너무나 많다. 그래서 나는 어느 별엔가 누군가가 살고 있다고 믿기로 했고, 그 누군가와 교신하고 싶고, 그 누군가에게 내 마음을 전해줄 전파망원경을 만들었다. 거대한 깔때기 형태의 망원경은 겉과 속이 다르다. 가녀린 스테인리스스틸 봉을 촘촘하게 감아올려 만든 어둑한 속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연이어진 띠와 용접자국이 마치 길게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유성 같다. 외계인이 보내온 전파는 아마도 그 연이어진 띠가 만들어놓은 섬세한 굴곡을 따라 더 잘 전송될 것이다. 그리고 매끄러운 표면의 겉은 하늘을 반영하고, 하늘을 향한 내 마음을 반영한다. 이처럼 전파망원경이 구체적인 형태를 띠고 있다면, 마찬가지로 우주와의 접속을 표상한 다른 작업들은 상대적으로 더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형태를 하고 있다. 사각박스 형태의 기하학적 구조물이 그런데, 복잡하고 섬세한 부분구조를 싸안고 있는 심플한 형태가 우주적 비전(이를테면 무슨 우주 연구에 소용되는 거대한 기계나 기관 같은)을 연상시킨다. 그 형태가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것은 이런 우주적 비전을 도식화(이를테면 만다라에서처럼)한 것일 터이다.

전통과의 접속. 백자달항아리는 단연 한국미술의 정점이며 한국미학의 정수다. 근작에서 작가는 어눌한 듯 반듯하고 정형인 듯 비정형인 오만가지 형태와 색감과 표정을 자기 속에 품어 들이고 있는 달 항아리에 천착한다. 달 항아리를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한 것인데, 얼핏 보기에도 달 항아리와 차갑고 샤프한 금속 재질과의 궁합이 잘 맞지가 않을 것 같다. 그런데도 작가는 전통적으로 도자기를 제작할 때 가녀린 흙 막대를 감아올리면서 전체 형상을 빗어내는 프로세스를 따라 가녀린 스테인리스스틸 봉이나 띠를 연이어 붙여 용접하는 방법으로 형태를 만든다. 그리고 그 표면을 갈아 부드러운 질감을, 때로는 명경 같은 질감을 연출한다. 여하한 경우에도 달 항아리 자체와는 사뭇 다른 현대판 버전이 만들어질 것이다. 이렇듯 미래형으로 기술하는 것은 아직 형식실험 중이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작가가 우주와의 접속을 꾀하면서, 동시에 다른 한편으론 전통과의 접촉을 시도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미래에서 과거로, 과거에서 미래로 연이어진 소재 혹은 주제의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것인데, 그 스펙트럼이 무슨 존재의 스펙트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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