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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학 / 생명의 메타포로서의 자연

고충환

김종학, 생명의 메타포로서의 자연


설악산 화가 김종학이 대규모 회고전을 열었다. 그동안 상업 화랑과는 인연이 많았지만 미술관 전시는 처음이어서 미술시장에 연이은 평단의 뒤늦은 평가로 보는 시각이 많다. 그런 만큼 이번 전시에서는 단순히 작가의 트레이드마크로 알려진 설악산 꽃그림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작가의 주요 작품들을 중심으로 화력 전체를 개괄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고, 이로써 미술사적인 자리매김을 시도하고 있다는 인상을 준다.

작가가 그림을 시작한 1960년대 초중반을 기점으로 보면 50년 남짓한 세월을 아우르고 있고, 세간의 평가를 뒤로 한 채 설악산에 칩거한 1970년대 후반을 중심으로 보면 30여년 세월을 아우른다. 1970년대 후반(엄밀하게는 1979년)을 기준으로 이전 그림과 이후 그림이 나뉜다는 말이다. 대략적으론 추상회화와 구상회화로 구분되지만, 실상은 외형적으로만 구상회화이지 그 이면에선 여전히 추상회화의 주요 요소와 성질들이 여실히 작동되고 있어서 구상과 추상이 종합되는 어떤 경지로 봐야하지 않을까 싶다. 그의 꽃그림은 말하자면 다만 소재가 꽃이라는 점을 제외하면 이전에 그려진 꽃그림의 제 경향들, 이를테면 아카데미즘이나 인상파 풍의 경향들과는 판이한 자신만의 독창적인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후기 그림들, 이를테면 설악산의 풍경과 풍정을 소재로 그린 그림들이 하나같이 독창적이고 완성도가 높은 것이듯, 초기 추상회화 역시 미술사적인 조망에 덜하지 않는 상당한 경지를 보여주고 있다. 주지하다시피 작가가 화력을 시작한 1960년대 초중반은 한국현대미술의 아방가르드로 평가되는 앵포르멜 경향이 대세를 다투던 시절이었고, 연이은 1970년대 모노크롬 회화 경향에로의 전환을 예비하던 시절이었다. 당시 작가는 그 경향의 한 가운데 있었다.

그때 그려진 그림들(예컨대 작품 603)을 보면 어떤 대상을 재현한다기보다는 그저 활달한 붓질과 거칠고 질박한 마티에르가 어우러져 내적 에너지의 분출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었다. 기본적으론 특정 대상을 재현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그림이지만, 굳이 재현의 논리를 빌려 말하자면 그 재현의 대상이 외적 대상으로부터 자기 내면으로 숨어들어간 액션페인팅과 추상표현주의, 뜨거운 추상과 서정추상에 가까운 것이었고, 그 내부에 격렬한 파토스를 응축한 주정주의에 경도된 것이었다. 색채 역시 금욕적일 만큼 절제된 것이어서 연이은 소위 모노크롬 회화 경향의 작가들이 밟는 수순(이를테면 앵포르멜에서 모노크롬으로)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응축된 에너지와 격렬한 제스처가 앵포르멜을 실현하는 한편으로 무채색이 모노크롬 회화 경향을 예고하고 있는 것.

그런가하면 한국현대미술사 초기에 나타난 특이현상으로서 판화에 대한 화가들의 인식을 들 수 있다. 당시 판화는 오히려 회화를 견인하는 전위로 여겨졌는데, 현대미술을 위한 각종 형식실험의 실험실 역할을 했다. 물론 전통적인 목판화보다는 서양에서 수입된 석판화와 특히 실크스크린이 여기에 해당하는데, 아마도 미군부대 주변에서 흘러나온 재료들과 이제 막 정착단계에 접어든 인쇄소로 나타난 환경변화에 힘입은 바 클 것이다. 작가 역시 예외가 아니어서 이 방면에서 뚜렷한 성과를 보여주고 있는데, 1966년에 제작한 작품 <역사>가 제5회 동경국제판화비엔날레에서 장려상을 수상한 것이다. 특이한 것은 목판화로 제작된 것이면서도 전통적인 판법과는 거리가 먼 현대적인 판법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목재를 부분 오브제로 차용해 그 표면에 잉크를 칠하고 종이에 찍어낸 콜라그래프 기법이 엿보인다. 더불어 화면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여백과 함께 최소한으로 인출된 이미지가 무슨 항공지도를 연상시키고, 일종의 개념미술을 떠올리게 한다.

설악산 꽃그림

이처럼 작가 김종학은 화력을 시작한 전기에 해당하는 시기에 한국현대미술의 전위를 실천하고 실현한 핵심작가였었다. 그리고 1979년 불현듯 설악산으로 칩거한다. 그리고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그림을 그린다. 왜, 무엇이 잘나가던 작가로 하여금 다른 그림을 그리게 만들었을까. 이미 성취한 부분이 있는데, 그 성취를 뒤로 한 채 다시 시작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여기에는 작가의 개인사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무엇보다도 자신의 그림에 대한, 그리고 그대로 한국현대미술의 전위에 대한 의심과 자기반성이 작용한다. 1979년을 기점으로 보면, 그동안 1960년대의 앵포르멜과 1970년대의 모노크롬, 개념미술과 1970년대 말 막 움트기 시작한 이념미술(당시의 논법으로는 민중미술)이 작가의 의식을 관통했고, 그것도 치열하게 지나쳐갔다.

그리고 예술의 궁극은 자윤데, 이런 이즘의 논리나 이념의 논리가 오히려 자유의 실현을 가로막는다는 사실을 작가는 불현듯 깨닫는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우리 것, 나아가 내 것을 그려야 한다는 절박감과 사명감이 작가를 사로잡는다. 예술이 존재하는 이유 그대로 이즘으로부터, 이념으로부터, 형식으로부터, 일체의 소여된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그림을 그려야 한다. 이런 강박을 떠안고, 작가는 설악과 대면하고 자연과 독대하기에 이른다. 자유로운 그림의 가능성을 자연에서 발견한 것이다. 하지만 그 발견 자체만 놓고 보면 무슨 큰 일도 아니다. 자연이야말로 가장 오래된 소재가 아닌가. 문제는 소재가 아니다. 소재를 넘어서지 못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소재로서의 자연을 빌리되 소재를 넘어서 자연 자체가 드러나게 하지 못한다면 도로는 피할 수 없는 일이 되고 만다.

자연과 자연 자체는 다르다. 그리고 자연 자체의 본성은 무엇보다도 생명이며, 생명 있는 것들이 내뿜는 환희로서 표상되며, 그 환희를 표현하기에 무채색은 턱 없이 부족하다. 그래서 화면은 온통 형형색색의 컬러풀한 색깔들의 향연으로 뒤덮이게 되고, 그 색깔들 그대로 생명현상의 벅찬 감정을 노래하게 된다. 그래서 작가의 그림에 나타난 꽃 색깔은 실제보다 더 노랗고, 더 빨갛고, 더 파랗다. 결정적인 것은 색깔 자체가 아니라, 그 색깔을 통해서 부각되는 생명현상과 그 벅찬 감정이기 때문이다.
나아가 작가는 생명현상과 환희를 더 잘 부각하기 위해서 특유의 방법을 동원한다.

붓 그림과 함께 튜브 그림을 중첩시켜 그린 것이다. 튜브를 붓 대신 사용한 것인데, 따로 물감을 개지 않고 튜브 채로 캔버스에 대고 짜내면서 그림을 그린다. 그래서 꽃에는 두툼한 살이 오르고, 화면에는 질박한 마티에르가 조성된다. 여기서 캔버스는 자연 자체를 대리하게 된다. 자연 자체에 직접 육박해 들어가는 것이며, 단순한 시각정보의 차원을 넘어서 자연의 맨살이 만져지는 촉각적인 경지를 실현하고 있는 것. 이에 비해보면 붓은 거리감이 있고 간접적이다. 단순한 거리감이 아니라, 의식적인 거리감이 있다. 재고 말고 하다보면 자연 자체의 생명력을 놓치기가 쉽고, 흐릿해지기 십상이다. 그래서 작가는 여차하면 꽃에 대한, 자연에 대한, 생명에 대한 감흥이 사라지기라도 할 것처럼 재빠르게 그림을 그린다.

눈치 챘겠지만, 작가는 자연을 직접 보고 그리지 않는다. 사전에 자연을 충분히 보고, 그렇게 본 것을 즉흥적인 직관의 형태로 가둔다. 그리고 그 직관 그대로 화면에다 옮겨놓는다. 인간의 논리 쪽으로 자연을 끌어오는 것 즉 자연을 해석하는 것이 아니라, 자연의 원리 스스로가 부각되게 하는 것. 여기에 중요한 사실 한 가지를 덧붙이자면, 작가의 그림은 온통 빼곡하다.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면서 자연을 대면하기보다는 거리감 없이 클로즈업해 그린 것이다. 화면이 온통 컬러풀한 색깔들로 넘쳐나는 것이나, 튜브를 캔버스에 직접 대고 그린 것, 그리고 클로즈업해 그린 것이 전부 자연 자체에 육박하기 위한 것이며, 자연의 실체에 좀 더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것이며, 그 실체가 발하는 생명의 환희를 좀 더 직접적으로 감지하고 싶은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 감지된 그대로 관객에게도 오롯이 전달돼 온다.

작가의 그림은 단순한 꽃 그림이 아니다. 꽃으로 대리되는 넘쳐나는 생명력으로 신명나는 세계다. 작가는 그 세계 속으로 우리 모두를 초대하고, 그 신명과 더불어 치유 받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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