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디터 람스 / 최소한의 디자인이 최대한의 디자인이다

고충환

디터 람스, 최소한의 디자인이 최대한의 디자인이다


산업디자인의 살아있는 전설, 디자인의 신, 전후 모던 디자인의 역사에 중요한 가치 기준을 제시한 디자이너, 디자이너들의 디자이너, 애플의 아버지, 아이팟과 아이폰의 조상. 1955년부터 1997년까지 40여년을 독일 가전 명문 브라운사에 재직하다가 은퇴한 디자이너 디터 람스(Dieter Rams, 1932-)에게 바쳐진 찬사들이다. 이 찬사들은 그저 근거 없는 말잔치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를테면 람스는 1950년대부터 줄곧 디자인은 단순명료해야 한다고 주장해왔고, 그 주장은 마침내 1980년대에 소위 디자인 10원칙으로 정리된다. 첫째, 좋은 디자인은 혁신적이어야 한다(새로움의 추구). 둘째,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쓸모 있게 만든다(실용성 혹은 기능성의 최적화로서 생활철학을 엿볼 수 있는). 셋째, 좋은 디자인은 아름다워야 한다(미학). 넷째, 좋은 디자인은 제품을 이해하기 쉽게 만든다(소통).

다섯째, 좋은 디자인은 정직하다(금욕주의 내지는 본질주의). 여섯째, 좋은 디자인은 불필요한 관심을 끌지 않는다(장식성의 배제). 일곱째, 좋은 디자인은 오래 지속된다(단순한 유행을 넘어서는, 시대를 앞서가는 미적 감수성으로서 디자인의 지속성을 강조한 대목). 여덟째, 좋은 디자인은 마지막 디테일까지 철저하다(장인정신을 강조한). 아홉째, 좋은 디자인은 환경 친화적이다(에코 곧 생태학적 관심과 통하는). 그리고 마지막으로 좋은 디자인은 최소한으로만 디자인하는 것이다(미니멀리즘).

생활철학과 미학, 소통과 장인정신, 그리고 환경마저 아우르는 이 정신은 소위 Less and More라는 디자인 철학으로 환원된다. 덜 만드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꼭 필요한 만큼의 소박한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이며, 있을 건 있고 없어도 될 것은 아예 만들지 않는다는, 군더더기가 없는 디자인, 최소한의 디자인, 그러므로 오히려 최대치의 디자인을 지향한 것이다.

덜 만드는 것이 더 좋은 것이다? 이 말은 한눈에도 단순한 것이 더 아름답다는 미니멀리즘의 정신을 상기시키고, 특히 최소한의 구조(프라이머리 스트락처)를 추구한 도날드 주드의 본질주의 태도를 떠올리게 한다. 서양의 경우에 그 정신은 프로테스탄티즘 곧 청교도주의와 금욕주의에서 그 미학적 공감을 확인해볼 수가 있다. 그 정신은 동양의 경우에도 낯설지가 않은데, 이를테면 유교의 전통적인 미의식 중 중용(생활철학에서)과 절제미(미학에서)를 추구한 것이 그렇다.

이러한 사실을 의식한 듯 이번 전시에서는 전시장 한쪽에 사랑방을 전통적인 방식 그대로 재현해 놓아 디터 람스의 디자인과 유교정신이 하나로 접맥되는 것임을 예시해주고 있기도 하다(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덧붙이자면, 국내에서 미니멀리즘 작품이 호응을 얻는 이유를 이렇듯 유교적 미의식에 연유한 정서적 친화력에서 찾는 예도 있다).
이렇듯 장식성을 배제한 극도로 엄격한 스타일이나 단순하고 절제된 형식에 실용성을 결합한 디자인에 영향 받은 디자이너들도 많다.

이를테면 애플사의 디자이너 조너선 아이브나 일본 무지 브랜드의 디자이너 후쿠사와 나오토가 널리 알려져 있는 편이다. 특히 조너선 아이브와 디트 람스와의 유사성에 대해서는 각별한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디터 람스가 1958년 디자인한 브라운사의 휴대용 라디오 T3과 2001년 조너선 아이브가 디자인한 아이팟, 1987년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태양열 계산기 ET 66과 2007년 출시된 아이폰의 디자인이 그렇다. 디터 람스(현 78세)와 조너선 아이브(현 43세)가 거의 반세기 가량의 시차를 극복하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이처럼 시대를 뛰어넘어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로서 세계 유수의 디자이너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디자인의 힘은 어떻게 가능해진 것일까. 다시 디터 람스 자신의 말을 옮겨보자. 디자인의 첫째 기능은 실용성이다(기능주의). 제품 디자인의 핵심은 대량생산, 기능성, 미래성이다. 디자인은 단순명료하며 정직해야 한다. (시대에 한정되지 않고) 미래에도 살아남는 디자인은 정직하고 단순한 디자인이다. 군더더기를 붙이지 말고, 금방 버려지게 될 것을 만들지 마라(유행에의 경고). 그저 예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사물(제품)의 본질을 포착해 그 본질에 맞춘 디자인이 중요하다(본질주의).

독일 모던디자인의 역사

당연하게도 이런 디터 람스의 디자인 정신의 이면에는 전사가 있다. 세기말의 유겐트스틸(Jugentstil), 기능주의(기능적인 것이 가장 아름답다), 바우하우스, 그리고 울름조형대학으로 상징되는 독일 디자인 역사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부연하면, 세기말(1800년대 말)에 유럽 전역에 미술공예 운동이 일어났다. 생활 속의 미술을 모토로 한 이 운동이 아르누보고, 그 독일 판 버전이 유겐트스틸(유겐트슈틸이라고도 한다)이다.

그 초기 양식이 주로 식물 문양을 양식화하는 등 자연주의적이라고 한다면, 그 후기 양식은 추상적이고 기하학적인 선으로 특징된다. 특히 그 후기 양식은 건축가 앙리 반 드 벨데를 자극해 독일공작연맹(DWB)의 창설을 촉진시킨다. 그리고 형태는 기능에 따른다는 설리반의 입장이나 로스의 무장식주의로 대변되는 기능주의는 다르게는 실용주의 내지는 프레그마티즘으로 알려져 있다. 삶을 기능에 종속시키는 도구주의적 측면이 한계로 지적되기도 하는데, 특히 건축에서 똑같은 구조를 반복적으로 배열해 효율성을 드높이는 태도가 그렇다.

그런가하면 1919년 발터 그로피우스가 설립한 바우하우스는 바이마르 시기와 데사우 시기, 그리고 전후 미국에서의 뉴 바우하우스 시기로 구분되며, 이 가운데 정작 바우하우스 정신이 개화한 것은 뉴 바우하우스 시기에서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특히 미국 근현대 건축 양식은 바우하우스 출신 작가들에게 크게 힘입고 있다). 그리고 디터 람스가 브라운사에 최초 입사한 1955년은 바우하우스를 졸업한 막스 빌에 의해 울름조형대학이 설립된 해이기도 한데, 이후 브라운사는 울름조형대학과 함께 산학연계 프로그램 형식으로 디자인을 개발하기도 한다.

이번 전시(2010.12.17-2011.3.20. 대림미술관)에는 디터 람스가 브라운사에 입사한 이듬해인 1956년 한스 구겔로트와 함께 디자인한 라디오 오디오 겸용 SK4(당시 혁신적인 디자인으로 주목을 받음)를 비롯해, 1960년에 디자인한 606 만능 선반 시스템(사용자가 임의로 재배열할 수 있는 새로운 선반 시스템으로 현재에도 여전히 그 방식 그대로 생산되고 있는)이 선보인다. 이외에도 전시에는 계산기와 면도기 등 일상용품으로부터 오디오와 녹음기 등 독일 브라운 가전품, 그리고 덴마크의 비초에(Vitsoe) 가구 등 디터 람스가 디자인한 제품들과 스케치, 그리고 아카이브를 포함한 400여 점이 전시된다.

특히 디터 람스 후기의 개인적 취향을 반영한 각종 오디오 제품 디자인이 흥미롭다. 일반 대중들뿐만 아니라 오디오 마니아들의 관심을 끌 것 같고, 특히 애플 디자인의 원조가 궁금한 사람들의 궁금 점을 해소해줄 듯싶다. 그리고 여기에 미니멀리즘이 삶의 현장과 만나지는 접점과 함께, 유겐트스틸에서 시작해 디터 람스에서 완성되는 독일 모던 디자인의 역사를 확인해볼 수 있는 유익한 자리가 될 것이다. 독일 프랑크푸르트 응용미술관과 일본 오사카 산토리 미술관이 공동으로 기획한 이 전시는 일본과 독일 그리고 영국을 거쳐 현재 서울에서 전시가 열리고 있으며, 서울 전시가 끝난 이후에는 미국의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에 순회 전시될 예정이다.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