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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선희 / 텍스트의 공동 생산 작업

이선영


텍스트의 공동 생산 작업


이선희의 작품은 주로 글자로 되어 있다. 다양한 매체와 방식으로 만들어진 글자들은 자체의 물성을 드러냄과 동시에, 인간의 외로움에 대한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를 담는다. ‘나’, ‘너’, ‘우리’ 같은 글자를 뜨개질로 떠서 의자 위에 걸쳐 놓은 작품 [우리 의자](2010)처럼, 함께 마주함이나 따뜻함 같은 의미가 손뜨개질이라는 온기 있는 형식과 결합 된다. 그러나 메시지 전달이 선명하지는 않다. 의자에 축 처진 편물에 새겨진 글자는 무엇인지 잘 알아볼 수 없다. 그녀의 작품은 관객의 관심과 행동이 결합되어야 효과적으로 읽혀진다. 알약이라는 형식에 담긴 글자들도 재미있는 디자인 언어 같은 물질성이 먼저 다가온다. 작가는 메시지와 형식 간의 균형을 중시한다. 부각되는 언어의 물질성은 그것이 단지 쉽게 읽히기 보다는 느껴지기 위해서 요구된다. 느낌은 시각 뿐 아니라, 공감각에 호소한다. 유리컵 안에 들어 있는 색색의 글자들, 알파벳이 새겨진 초콜렛으로 쓴 문장들은 깔끔한 장식성과 더불어 촉각과 미각을 자극한다. 그것은 만져보고 씹어 보고 싶게 한다.

관객의 이러한 충동과 행동만이 용기에 담겨 있는 내용물이 무엇을 말하는지 구체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 한다. 이선희의 메시지는 눈으로만 읽을 것이 아니라, 오감을 이용하여 체화할 것을 요구하는 듯하다. 타인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메시지는 자신의 작품을 향한 태도에도 해당된다. 메시지는 치유의 의미로 확장되어 약봉지나 캡슐 같은 형식이 많이 활용 된다. 작품 [take care of yourself](2009)는 ‘괜찮아’, ‘힘내’같은 단어가 약포지 안에 담겨 있다. 그것은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떼어갈 수 있게 발 형태로 늘어뜨렸다. 관객은 약봉지를 떼어갈 수 있고 작품 이미지가 새겨진 엽서로 누군가에게 편지를 쓸 수도 있다. 명확한 수신인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쓴다는 것 자체로 치유의 행위에 동참하는 효과가 있다. 여기에서 참여와 동참은 나와 타인들 간의 소통을 말한다. 함께 문제의식을 공유하는 것 자체에서 소통은 물론 치유가 이미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소통이든 치유든, 그것은 수동적인 수혜일 수 없다.




이선희의 작품에서 텍스트는 부차적인 요소가 아니라, 몸통을 이룬다. ‘짜여진 것’, 또는 ‘짜여진 방식’이라는 텍스트의 사전적 의미는 단어로 문장을 짜는 것 뿐 아니라, 편물이나 헌 옷 등에서 분해된 섬유를 활용하는 작품에서 두드러진다. 작가는 텍스트가 만들어지고 엮어져 가는 방식을 강조하면서 ‘자르기와 결합’이라는 전형적인 조작을 행한다. 그것은 단지 이미 확립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라기보다는 의미를 구축하는 과정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선희의 작품은 ‘예술을 위한 예술’이나 형식주의처럼 메시지 전달을 소홀히 하는 현대미술의 특정 경향과는 거리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녀의 작품이 작가에게서 기원하는 유일무의의 창조적인 의미나 형식을 관객에게 일방적으로 전달하고 주입하는 목적이 있는 것은 아니다. 수많은 기원을 가진 것들이 작가라는 매개자를 통해 엮이고 관객의 참여에 의해 일시적으로 읽힐 뿐인 텍스트라는 방식 자체가 단선적인 논리와 의미를 강요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 작가란 전대미문의 것, 유일무이의 것을 창조하는 자라기보다는 새로운 배열방식과 배치를 수행하는 자에 가깝다. 그것은 작품 배후에 존재할지도 모를 숨겨진 진리를 드러내고 계몽하는 자가 아니라, 관객(독자)과의 공동생산자로서 작품(텍스트)의 표면과 외연을 확장하는데 힘쓴다. 입체적인 캘리그래피 처럼 보이기도 하는 다양한 글자체들은 이선희의 작품이 현실에 대한 반영이나 재현, 복사가 아니라, 형태의 생산에 관심이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작품이란 현실을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기호들로 된 망을 엮는 것이다. 이때 기호들이란 문자와 단어들과 이미지를 의미한다. 작품은 언어요소들을 확정하고 이를 자유롭게 결합하여 얻어진 상상과 상징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실험이다. 그림 속의 빵을 실제 먹을 수 없듯이, 이선희가 예술을 통해 만들어내는 약이 실제의 치유효과를 가진다고 확신할 수 없다. 작가는 명확한 대답과 해답을 내놓는 존재가 아니라, 문제를 제기하는 자 일 뿐이다.

문제제기의 방식이 참신할 경우 이미 답은 마련되어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적어도 답에 상당히 진전한다. 그것이 정치나 경제, 철학 등의 방식과는 달리, 세상의 문제에 대응하는 예술의 방식이다. 만약 이선희의 작품이 현대인은 외롭고 격려와 위로가 필요하다는 메시지라는 몇 마디 문장으로만 축약될 수 있는 것이라면 예술 작품이란 장황한 동어반복에 불과할 것이다. 언어가 가지는 물질성을 드러내는 것은 메시지 전달이라는 점에서 다소간 불투명하고 우회적일지 모르지만, 문제를 효과적으로 문제시하고 야기하는 방식이다. 예술은 객관적인 사실을 증명하는 것이 거나 윤리적인 당위성을 설파하는 수단이 아니라, 새로운 방법의 실현에 몰두한다. 그것은 새로운 주제와 관계를 드러내준다. 작품에서 텍스트로의 중심이동은, 반영이나 표현 같이 주체와 객체의 이항대립에 근거하는 이전의 미학과 단절한다. 텍스트로서의 작품은 외부의 반영이나 내면의 표현이기보다는, 언어 형태 안에서 드러나는 바를 일컫는다.




작가이든 관객이든 인간은 언어의 주체라기보다는 언어를 통해 분명해지는 존재들이다. 이선희의 작품은 인간에 대해 언어가 가지는 위치와 밀접히 관련된다. 언어 자체가 인간이 태어나기 이전에 이미 상징적인 구조로 주어지는 것이므로, 주체의 의식과 무의식은 언어에 의해 구성된다. 현대의 정신분석학이나 언어학이 말하듯이, 개인은 태어남과 동시에 이미 구성되어 있는 기표의 구조 속으로 들어간다. 자아는 언설적 구성물이며, 주체는 단지 언어의 결과일 뿐이다. 주체는 기표에 종속되고, 기표에 의해서만 만들어진다. 독자 역시 텍스트를 창조하면서 텍스트에 의해 구성되고 움직여진다. 언어와 주체의 관계는 텍스트와 창조자의 관계와 같다. 그것은 상호 생산적인 것이다. 예술가는 그가 창조해 내는 것 속에 자신을 창조한다. 예술적 기술에 있어서 주체와 대상의 관계는 ‘조직하고 조직되는 관계(로브 그리예)이다.

주체와 대상의 관계를 이렇게 상호적인 것으로 이해할 때, 작품이 전달하는 메시지의 위상도 달라진다. 이선희의 작품은 메시지를 중시하지만, 유일한 의미를 자명한 것으로 전달하는 것이나 깊이 숨겨진 자신의 속내 이야기를 드러내는데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 작가는 텍스트라는 기호의 직조물을 독자와 함께 짜 나간다. 이때 강조되는 것은 변화와 결합의 기술이지, 지고한 독창적 창조물에 있지 않다. 텍스트로서의 예술작품을 강조하는 바르트는 언어의 소유자로 추정되어 왔던 주체 대신에 언어자체를 강조한다. 그의 논지에 의하면, 예술가들은 자신의 작품 뒤에 있지 않으며, 그 자신에도 뒤가 없다. 그는 텍스트를 짜고 있는 코드들의 수효가 높을수록, 텍스트의 목소리들이 근원을 포착하기 어려울수록 많은 가치를 가진다고 본다. 텍스트의 주도권을 가지는 것은 작가가 아니며, 창조자는 자신의 작품에 있어 특별한 의미나 비밀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작가는 ‘아직도 시험 중인 하나의 사상의 중간을 채워 넣기 위해 끼어드는 비어있는 존재’(블랑쇼)일 뿐이다. 작가에 대한 새로운 규정은 연속적으로 독자(청중, 관람자)의 위상을 변화시킨다. 텍스트의 기원은 무한히 다양하다. 그러나 이러한 다양함이 수렴되는 자리가 하나 있는데, 그것은 이제까지 주장된 것처럼 작가가 아니라 독자이다. 텍스트 뒤에 능동적인 사람(작가)도 없고, 청중 속에는 수동적인 사람도 없다. 바르트는 고전적인 작품이 독자에게 수동적인 수용을 강요하지만, 새로운 텍스트의 척도는 더 이상 그 목적성(종결된 생산물)에 있는 것이 아니라, 독자를 이끄는 생산 작업 자체에 있다고 말한다. 작품은 쉽게 읽혀지거나 보여지기 보다는 새로운 생산을 가능해야 한다. 훌륭한 작품의 기준은 언어의 무한한 생산성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작품 읽기를 통해 다양한 형식들을 결합하는 유희를 통해서 또 다른 작품을 생산하는 것이다. 텍스트로서의 이선희의 작품은 독자에게 보다 능동적인 실천을 요구한다.


출전 | 청주 미술창작 스튜디오 제4기 입주 작가 공동 워크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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