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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사실회화의 어제와 오늘 전 (7.14--8.27, 성남아트센터 미술관) / 복제와 환각 또 하나의 일상

이선영

극사실회화 전은 49명의 작가가 참여하고, 부대행사로 학술 세미나까지 열린 대형전시였지만, 규모에 걸 맞는 논리와 역사를 완벽히 갖추었다고 볼 수 없다. 극, 사실, 회화라는 개념과 그것이 하나로 종합되었을 때 예기되는 것, 즉 복제(재현)로부터 환각(시뮬레이션)에 얽힌 미학적인 논리가 불확실했고, 미술사적 차원에서 1970년대에 발생하여 이후 현재까지 주류는 아니었지만 지속적인 흐름을 형성하고 있던 한국형 극사실주의 회화의 족적을 가시화함에 있어서 누락된 부분--예를 들어 1980년대 민중미술의 한켠에 존재했던 극사실적 흐름--도 발견된다. 해외작가 4명이 덧붙여진 것도 뜬금이 없다. 굳이 외국 작가가 나란히 보여 져야 한다면, 서양과 한국의 차이점을 감식할 수 있는 작품 선정이 이루어졌다면 좋았을 것이다. 외국작가들은 재현 대상에 대한 개인의 취향이 드러나거나 대상을 조형적으로 재구성 한 후 모사하는 방식, 상품 물신적 시각에 있어서 한국 측 참여 작가들과 유사한 성향을 보인다.

전시제목에 삽입된 ‘일상’만이 수많은 작품을 관통하는 두루 뭉실한 키워드로 남아 있다. 일상은 현실이라는 단어보다는 자명한 듯이 다가온다는 이점도 있다. 남자의 뒷모습을 화면 가득히 담아낸 이석주의 [일상](1985)부터 부시시한 일상을 스냅사진처럼 담아낸 이지송의 [블랭크](2007)까지, 그림들 속의 일상은 쓸쓸함과 권태어린 표정을 담고 있다. 1970년대 극사실주의를 시작했던 1세대 작가에 의해 재현된 일상이 어디선가로부터 연원한 빛의 반사에 의해 외로운 인간 존재를 초월적 차원으로 고양시키는 분위기가 있는 반면, 2세대 작가는 머리꼭지로부터 어두운 그림자에 의해 서서히 삼켜지는 듯한 상황이다. 1세대와 달리 후자의 경우 초월을 가능하게 하는 또 다른 차원이 삭제되어 있다. 수직적 위계는 수평적으로 확장되면서 말소된다. 그것은 회화를 둘러싼 매체계의 변화에 상응하는 것이다. 특히 회화적 재현의 중간 매체라 할 수 있는 사진이 그렇다. 아날로그 카메라가 눈과 렌즈의 구멍을 정확하게 맞추어야 한다면, 디지털 카메라는 널찍한 액정을 대상과 몸 사이 어딘가에 적당히 위치시키면 된다.





아날로그 방식이 보는 관점이나 대상의 물질적 조건에 보다 밀착해 있다면, 디지털 방식은 주체로부터 더 멀찍이 떨어져 있으며, 대상들 간의 호환도 손쉬운 균질성을 가진다. 디지털 방식은 변형과 조작에 훨씬 유연하다. 전시된 작품들은 주체와 대상에 내재된 거리로부터 거리의 상실에 이르는 추이들, 그리고 실재의 환영이 환각으로, 복제가 복제의 복제로, 재현으로부터 시뮬레이션에 이르는 추이들이 복잡하게 뒤섞여 있다. 많은 작품들이 우리 주변에 널린 인공적 대상들(상품, 사물)과 자연적 대상이 화가들의 신기에 가까운 붓놀림으로 화면에 고정되어 관객의 감탄을 자아낸다. 한 장의 사진처럼 고정된 장면들은 현실의 부재를 충만한 현전으로 변화시킨다. 전시장을 돌아다녀 보면 마치 잘 차려진 잔칫상을 받은 것처럼 시각적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포만감은 정지된 것을 변화시키려는 어떠한 시도에도 꿈쩍할 것 같지 않다는 점에서, 무표정한 일상과 동어 반복적이다. 일상은 질서 유지라는 면에서 동일한 것으로 남아야 하는 동시에, 정체의 극복을 위해 변화할 것을 요구받는다.

무엇보다도 예술 작품은 일상의 동일성 속에서 이질성을 끌어내야 한다. 질 들뢰즈는 [의미의 논리]에서 플라톤적 이원론으로부터 출발한 신학적이고 재현적인 논리에 내재된 동일자의 모델을 공격한다. 동일자의 모델은 원본과 복제라는 두 가지 차원을 가정한다. 그것은 중심, 환원, 유사함, 합목적성, 본질적 실재, 역사 등의 개념을 파생시켰다. 그러나 복사가 반복되면 심층과 표면을 구별하던 차원이 사라지고, 가짜 존재들(시뮬라크르)이 번성한다. 원본이 되는 모델이 사라지고 시작도 끝도 없는 차이들의 유희가 시작된다. 이 전시는 재현에서 시뮬라크르에 이르는, 뫼비우스 띠처럼 하나로 연결된 스펙트럼에서 대체로 재현 쪽에 가까운 작품들이 많았다. 사실주의적 재현이 극단에 이르면 시뮬라크르에 가까워지는데, 한국의 극사실주의는 서구의 그것에서 보여지는 기계적인 복제에 완벽히 충실한 작품이 드물다. 우리의 극사실주의 회화에는 대상에 투사된 주체의 시각이 분명히 감지되고 이러한 시각들은 대상을 서정적, 관념적, 초현실적 시선에 의해 재구성된 장면으로 변화시키곤 한다. 더 나아가 회화적 재현에 대한 메타적 차원의 반성이 전면에 드러난 작품도 있다.





자연의 세계와 닮은 도상들은 조화로운 심층 질서를 반영하는 완벽한 모델로 간주될 수 있다. 이 전시에서 가지에 매달린 붉은 사과들의 이미지(최정혁)나 당분이 밖으로 스며 나온 희끗희끗한 포도알의 이미지(김대연)는 완벽한 자연의 생산물을 통해 그에 내재된 경이로운 질서를 재현한다. 풍경을 그린 작품들은 계절의 여운이 가득하여 서정적인 느낌을 주고, 주체가 강조하고 싶은 개념에 의해 자연은 관념적 풍경들로 변화하기도 한다. 대상은 고전적인 구도(구자승, 황순일)로부터 전면(all over) 구성(김강용, 서정찬)에 이르는, 미술사적 전범을 가지는 방식으로 포착된다. 보다 적극적으로 대상을 재구성하여 복제하는 경향은 초현실주의(신제남)로 귀착되곤 한다. 대상의 선택에 있어 작가의 관심이 배제될 수 없는 재현 회화에서 시대의 일단이 적나라하게 묻어난다. 조상현의 [복제된 레디 메이드](1978-1981)는 불조심 포스터, 민방위 훈련, 담화문 등이 붙은 시정 공보 판을 그대로 그렸다. ‘버린 물건 고쳐 쓰고 절약한 돈 저축하자’는 70년대식 구호가 시대를 반영한다. 시대상의 반영이 현실 비판으로 이어지는 것은 자연스러운데, 이러한 흐름의 일단을 이룬 계열의 작품이 빠져 있다.

반성은 시대 뿐 아니라 회화라는 양식 내부로 향하기도 한다. 전시장 들머리에 걸린 고영훈의 [코트](1973)는 화면 중간에 붕 떠 있는 검은색 코트를 그린 것으로 재현이 부재의 흔적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소파가 빛을 받아 낡은 표면이 부분적으로 빛나는 지석철의 [반작용](1979) 또한 마찬가지이다. 바닥에 깔린 낡은 신문지를 여러 방식으로 배열함으로서 평면적 조건을 가지는 회화와 재현적 대상 자체의 평면성을 교차시킨 이재권의 [잔상](1976), 나무 상자 위에 그려진 사과를 통해 환영과 실제를 조합한 이목을, 화선지 위에 유화 붓과 번지는 먹의 형상을 그대로 그린 이정웅의 [브러쉬](2008)는 회화의 조건을 성찰한다. 그림 내부에 또 다른 그림을 삽입(이석주, 한만영)함으로서, 대가와 실력을 겨루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그림에 대한 그림, 그림을 언급하는 메타적 차원의 그림이다. 이러한 다양한 계열의 작품들은 지시대상과의 유사성, 요컨대 도상성이 있다는 공유점만을 가질 뿐이다. 전시는 대상과의 유사성을 거부하는 추상화만 빠져있고, 미술사의 백화점이라 할 만큼 작품의 양식이 다양하다. 그래서 ‘극사실주의’라는 용어로 이 모두를 포괄하려는 것은 무리가 따른다.

마지막으로 지적할 것은 대상과의 닮음을 극도로 추구하는 것에 내재된 물신주의적 시선이다. 그것은 자본주의의 확대와 심화를 통해 나날이 주변을 채워가는 사물들의 다양한 목록을 작품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는 점 뿐 아니라, 이 전시가 근래에 미술시장을 휩쓸었던 극사실주의 계열의 작품 열풍에 대한 비평적 반응이라는 점이다. 이론적으로도 재현 회화와 시장은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데이비드 서머스는 재현의 어원 ‘repraesentatio’가 ‘현금으로 지불하는 것’을 뜻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현금이 교환될 상품에 직접적으로 등가인 것처럼, 상상력을 통해 대등한 힘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이다. 실물 같은 재현을 가능하게 했던 유화와 캔버스의 활용, 그리고 시장은 문화사적으로도 태생적 근친관계를 가진다. 작품은 대상에 대한 물신적 시선이 교환되는 장이 된다. 재현 대상이 사람일 경우 카메라의 시선이 의식되며(강강훈), 사물일 경우 그것의 표피와 그 안팎을 통과하는 영롱한 빛의 희롱이 포착된다. 극사실주의 2세대로 분류된 많은 젊은 작가들의 작품에는 상품물신주의(김명숙, 이은)부터 성적인 물신(오흥배)에 이르는 다양한 품목들이 마술 같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다.

출전 | 아트 인 컬처 9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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