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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판화의 세대별 경향성

고충환

한국현대판화가협회 기획전_프린트스펙트럼



한국현대판화는 한국현대미술의 형식실험의 주요한 견인차 역할을 하면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괄목할만한 성장을 해왔다. 그리고 창작환경의 변화와 함께 판화의 정의 또한 변천을 겪게 된다. 처음엔 판화가 모더니즘의 형식논리와의 연관 속에서 논의되었으며, 따라서 판화 고유의 물성과 현상이 판화 자체와 동일시되었다. 이후, 판화가 인쇄매체와의 연관 속에 논의됨으로써 그 생리나 역사가 인쇄술의 그것과 맞먹는 것으로 인식되었다. 이어 판화는 사진이 초래한 환경변화에 반응하게 되는데, 이는 사진재판법의 도입으로 나타난다. 사진재판법이 처음에는 부분적으로 적용되었으나 현재에는 거의 모든 판법에 응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후, 판화는 컴퓨터의 등장으로 인해 디지털환경과 맞닥트리면서 현실과 가상현실, 실상과 허상, 원본과 사본과의 관계에로까지 그 논의가 확대 재생산된다. 생리적으로 판화는 여타 장르에 비해 기술적인 제약이 많은 장르이다. 그런 만큼 새로운 미디어가 등장할 때마다 이에 민감하게 반응하게 되고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편이다. 이는 판화에 대한 정의가 새로운 미디어의 등장에 강하게 연동돼 있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판화의 이러한 특수성이 정통판화와 더불어 온갖 형식실험의 결과들을 아우를 수 있도록 해준다.


현재, 판화에 대한 논의에 있어서 협의적인 의미가 판에 대한 이해에 맞춰져 있다면, 광의적으론 복수 재생산 가능성에 맞춰져 있다. 판의 정의나 복수성에 대한 이해 여하에 따라서 판화가 정통판화에 한정될 수도 있고, 사실상 복수 재생산될 수 있는 거의 모든 것을 포괄하기도 한다. 사실 장르적 특수성에 천착했던 모더니즘 시대에는 판화의 특수성 논의가 비교적 용이했었다. 그러던 것이 후기 근대와 더불어 장르와 장르를 가로막고 있던 벽이 허물어지면서 판화의 특수성 논의가 상대적으로 더 다원화되고, 단적으로 정의내리기가 어렵게 되었다. 이를 부정적으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오히려 창작환경이 그만큼 더 역동적이고 유연해졌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앞으로도 판화는 계속 새롭게 정의될 것이고, 그 정의 역시 새로운 정의에 의해 대리되고 보충될 것이다.


이 전시는 한국현대판화가협회의 기획전 형식의 전시로서, 총 50명의 판화작가들이 참여했다. 작가 선정은 월간미술 이건수 편집장이 30대의 작가들을, 임대근 국립현대미술관 학예연구사가 40대의 작가들을, 그리고 김복기 월간아트 대표가 50,60대의 작가들을 각각 선정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김용식 회장과 필자가 협의하여 결정하는 방식을 취했다. 따라서 작가 선정을 맡은 각 주체들의 판화에 대한 평소 관념이나 입장이 반영돼 있으며, 각 세대에 따른 차이와 특수성이 자연스레 표출돼 있다.


50.60대. 이들 작가군은 비교적 정통판화에 충실한 편이다.
그 주요작가들을 보면, 윤명로는 <얼레짓>, <익명의 땅>, <크랙>, 그리고 근작에서의 <겸제 예찬>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석판화 작업을 통해 마치 수묵화의 먹놀이를 형상화한 듯, 동양적 사유를 암시해주는 특유의 화면을 보여준다. 그리고 김봉태는 플렉시그라스에 실크스크린한 작업으로서, 단순화된 기하학적 형태와 강렬한 색채대비가 어우러진, 그 자체 오브제로도 읽혀질 수 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한운성은 찌그러진 콜라 캔, 얽히고설킨 매듭, 불 꺼진 신호등으로써 사회를 풍자한다. 시대를 풍자하던 소재들이 근작에 와서는 벌레 먹은 과일이나 채소류로 옮아가고 있다. 그런가하면 이승일은 목판의 나뭇결을 그대로 떠낸 릴리프판화에다가 꽃과 인물 등의 형상을 채색한 일련의 작업을 보여준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소재들이 사사로운 추억의 계기들을 환기시키는가 하면, 그 계기들이 모여 공(空)의 정신세계를 표상한다. 그리고 김형대는 판목의 나뭇결을 조형화하는 방법으로써, 김상구는 널목판 고유의 칼맛을 극대화하는 방법으로써 목판화의 한 전형을 예시해준다.

그런가하면 <우리시대의 아이콘>에 천착해온 곽남신의 근작은 실루엣으로 드러난 꽃잎 형상을 소재로 해서, 심플하면서도 암시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특히 그가 도입한 공판법은 에칭에 의해 판에 생긴 비정형의 구멍을 조형의 한 요소로 끌어들인 것으로서, 이는 그 자체 판화의 표현영역을 확장시킨 것이다. 그리고 김용식은 비정형의 세선 또는 스크래치가 중첩된 화면을 통해 일종의 내면적인 빛을 형상화한다. 김승연의 판화에서의 도시의 야경은 단순한 풍경묘사에서 더 나아가 현대인의 심리적인 초상마저 느껴진다. 메조틴트 판화 고유의 빛과 어둠이 대비되는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다. 그리고 페이퍼캐스팅의 다양한 변주를 보여주는 박광열은 근작에서 우편엽서와 같은 사사로운 물품들을 재현하는 행위를 통해 메일아트의 한 가능성을 시사해준다. 진작부터 판화의 형식적 특수성을 유연하게 해석해온 윤동천의 디지털프린트는 일상적인 삶의 현장으로부터 채집해온 것들로써 대비되는 화면을 보여준다. 여기서는 이미지와 정보가 동격으로 인식되는 동시대의 이미지의 존재방식이 읽혀진다.
그리고 다양한 판법들을 소화해온 안정민의 근작은 투명 아크릴 판에다 각종 들풀이나 식물의 씨앗을 붙여서 압착시킨 작업이다. 이종협 작업 역시 종이에다가 실재의 꽃잎을 대고 찍어낸 판화로서, 이는 최근의 생태담론에 대한 반응과 함께 판화의 표현영역을 확장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둥지>를 소재로 한 임영재의 소멸법 판화에서도 이러한 생태담론에 대한 반응이 느껴진다. 둥지는 일종의 기억의 저장고를 암시하는 것으로서, 작가는 기억의 편린들을 마치 화석과도 같은 이미지로 재구성해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소멸법에 의한 그의 판화는 거의 회화의 그것을 연상시킬 만큼이나 물성이 두드러져 보인다. 개펄을 소재로 한 송대섭의 모노타입 역시 이러한 생태담론과의 연관 하에서 살필 수 있다. 개펄은 생명의 보고로서, 그 자체 일종의 생태에 대한 메타포로서 기능한다.


40대. 이들 작가군은 정통판화나 판법에 구애를 받지 않으면서 다양한 주제와 방법을 구사하는 편이다.

먼저, 풍부한 부식효과를 보여주는 강승희의 판화는 정적이면서도 서정적인 느낌을 불러일으킨다. 그리고 옷이나 오래된 천 조각을 모티브로 한 이혜영의 페이퍼캐스팅 작업은 사사로운 것들이나 버려진 것들에다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일상사와 개인사에 대한 공감이 읽힌다. 김홍식은 스테인리스스틸 판 부식 작업으로써 익명적이고 차가운 느낌의 도시 이미지를 형상화한다. 이렇게 부식판을 판화의 한 형식으로 제안함으로써 판화의 범주를 확장시키고 있다. 그리고 전통적인 도상들의 현대적인 재현에 천착해온 임영길은 근작에선 세계의 4대 근원원소인 흙, 물, 불, 공기를 갖고 철학적 사유를 전개한다. 일종의 레이저커팅 목판화로써 세밀화 기법의 한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또한 백승관은 각종 이미지가 프린트된 차트 플레이트를 통해 설치판화의 한 전형을 보여주는 한편, 이로부터 이미지의 인용과 합성, 전사나 복제된 이미지 등의 동시대의 이미지의 존재방식에 대한 사유를 이끌어낸다.


그동안 유리에칭과 스테인리스스틸 망에 프린트된 이미지를 통해 판화의 표현영역을 확장했던 서정희의 근작은 만개한 꽃잎 형상이 프린트된 디지털 프린트의 이면에다가 라이트박스를 장착시킴으로써 내향적인 분위기가 느껴진다. 유리에칭은 임정은의 작업에서도 확인된다. 작가는 유리에칭과 더불어 때론 유리에다가 직접 그림을 그리고, 이를 고도의 열에 구워내는 방법으로써 빛과 색이 어우러진 환상적인 공간을 연출해낸다. 여러 형태의 변주된 기하학적 형태가 중첩 전개된 양상을 보이며, 이로써 중세 스테인드글라스를 현대적인 문법으로 각색한 듯한 인상을 자아낸다.


그런가하면 박영근과 정원철의 판화에서의 특징적인 점은 조각칼 같은 전문적인 도구 대신에 치과용 소형 드릴을 이용한다는 점이다. 박영근은 드릴을 이용한 드로잉으로써 속도감이 느껴지는 독특한 화면을 연출하고 있으며, 근작에서는 일종의 서사구조를 도입해서 그 내용의 범주마저 확장하고 있다. 정원철의 판화에서는 정교하고 섬세한 묘사가 돋보인다. 위안부 할머니와 외국인 노동자들, 그리고 최근의 이라크 사태를 소재로 한 일련의 판화들에선 일종의 사회학적 주제의식이 읽혀진다.


강애란은 책을 소재로 해서, 이를 설치판화와 디지털프린트 그리고 전자책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형식으로 변주해낸다. 그의 작업에 등장하는 책은 인류의 역사와 지식에 대한 메타포로 기능하고 있으며, 이로부터 일면 유목주의(의식의 유목)에 대한 공감이 읽혀진다. 그리고 오영재는 금속판에 이미지를 전사한 디지털프린트를 통해 다양한 유형으로 변주해낸 부적문자를 형상화하고 있다. 유희경의 작업은 복제 이미지와 디지털프린트가 혼성된, 여러 이질적인 이미지의 지층들이 중첩된 화면을 보여준다. 각종 광고나 미디어에 등장하는 대중적인 이미지의 인용과 혼성으로써 현대인의 소외와 익명적인 자기 정체성 문제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미시세계를 주제로 한 정경미의 판화에서도 여러 이질적인 이미지가 혼성되고 있다. 드로잉과 페인팅, 사진과 전사 이미지가 반복 중첩된 화면으로써, 그리고 복제 이미지가 콜라주된 화면으로써 현대인의 다원적인 삶의 풍경을 보여준다.


한편, 디지털프린트와 관련해서 그 성과가 두드러진 정상곤은 근작에선 각종 대중매체에 등장하는 일상적인 이미지들 중 일정부분을 차용, 각색한다. 이로써 어떤 이미지가 그 맥락이 달라질 때엔 그 의미마저 달라질 수 있음을 지시한다. 인용과 차용, 그리고 혼성이 교차하는 이미지의 동시대적 존재방식을 다루고 있는 것이다. 역시 디지털프린트에 바탕을 둔 최성원의 작업은 캔버스 천에다 이미지를 프린트한 다음, 그 가장자리를 따라 오려낸 뒤에 이를 재차 다른 소재에다가 박음질해서 붙이는 식이다. 이외에도 의복의 안감과 겉감을 뒤집어 보이는 등의, 일종의 발견된 오브제 개념에 그 맥이 닿아있는 이들 작업에서는 사물에 대한 새로운 시각방식이 느껴진다. 그리고 김창수의 디지털프린트에 나타난 현대인의 초상은 마치 매체를 통해본 것과 같은 즉물적인 이미지가 읽혀진다.

30대. 이들 작가군은 사진과 영상매체의 세례를 직접적으로 받은 세대이니만큼 이를 작업에 보다 적극적으로 반영하는 편이다. 더불어 특정의 형식이나 방법보다는 내용과 주제에 경도된 듯한, 소위 신세대 판화의 트랜드가 느껴진다.


이종철의 사진은 일상적인 생활공간에서의 조형적인 요소들에 주목케 한다. 예컨대 벽에 패인 못 자국을 통해 조형의 한 요소인 점을 다양한 형태로 변주시킨다든가, 벽에 난 크랙을 통해 심리적인 상처를 암시하는 등의 일종의 중의적 의미를 겨냥하든가 한다. 그리고 김수강의 검 프린트는 보자기나 병뚜껑 등의 일상적 소재에다 부드럽고 우호적이고 서정적인 분위기마저 느껴지는 특유의 아우라를 부여함으로써 한낱 기성품을 미학적 오브제로 되살려낸다.


배남경은 사진을 목판화로서 재현한 이미지를 보여준다. 작가의 작업은 흔히 사진의 질감과 목판화의 질감이 서로 어울릴 것 같지 않다는 선입견을 재고하게 만든다는 점에 그 의의가 있다. 수성안료를 수차례에 걸쳐 반복 중첩시킨 그의 판화에서는 수묵화에서의 먹의 질감이 느껴지고, 오래된 흑백사진에서의 시간의 결이 느껴진다. 그런가하면 신경희의 작업은 가구 등의 실물을 일정한 크기로 축소해서 일종의 미니어처로 만든 다음, 이를 사진으로 찍고 재차 컴퓨터에서의 조작과정을 거쳐 프린트해낸 디지털프린트를 보여준다. 그럼으로써 현실에 바탕을 둔 모형이 프린트로 전이되는 전 과정을 함축해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로부터는 작가의 유년의 방을 엿보는 듯한 심리적이고 무의식적인 자기 반성적 계기가 느껴진다.


김혜균과 방인희는 의복을 변형시킨 판화를 보여준다. 특히 스웨터나 치마 그리고 벨트 등의 자신이 실제로 착용했던 각종 의복류와 액세서리를 소재로 한 방인희의 판화에서는 착용자의 몸 구조가 그대로 흔적으로 남겨져 있다. 말하자면 이는 일종의 물건에 각인된, 물건이 떠올려주는 기억의 한 형태일 것이다. 그런가하면 김영훈, 심진섭, 홍인숙 등의 판화에서는 자기 반성적인 경향성과 함께 일상사나 개인사에 대한 공감이 느껴진다. 일종의 존재론적 자의식이 김영훈의 판화에선 내재적으로 스며있는 반면에, 심진섭의 판화에선 외재적으로 반영돼 있는 것이다. 특히 먹지로 그리고 종이로 찍은 홍인숙의 판화는 전통적인 민화와 만화 그리고 일러스트가 중층화된 듯한 독특한 화면을 보여준다. 이와 함께 김종환은 TV의 색상 띠에 착안한 초상판화를 보여주고, 노자영은 전통적인 산수화를 차용해서 이를 복제 재생산하고 그 위에다가 분홍색의 단색조로 덧입힌 판화를 보여준다. 이 일련의 판화들에선 신세대 작가들의 미적 감수성을 대변해주는 한 경향성으로서의 팝아트에 대한 공감이 읽혀진다.


그런가하면 김현숙과 오연화는 각각 플라스틱과 실리콘을 재료로 한 캐스팅 작업의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이 재료들은 그 자체 현저하게 일상적이고 현대적인 물성을 반영하고 있는 것들이다. 이들 중 프라모델을 소재로 한 김현숙의 판화는 원래 조립형 장난감 모형을 모티브로 했었으나, 이후 장난감 모형 대신에 빗이나 옷걸이 등의 사사로운 물건 또는 망치나 장도리 등의 레디메이드에로까지 그 소재의 범주가 확장된다. 차후에 이 오브제들이 아예 레고처럼 자의적인 조립과 해체와 재구성이 가능한 기성품으로 복제 재생산될 수도 있지 않을까 싶다. 오연화는 하드보드지를 오려 붙여 중층화하는 방법으로써 실제의 일상공간을 재현하고, 이를 실리콘캐스팅 기법으로 떠낸다. 그의 작업에 있어서 공간을 떠낸다는 행위는 그대로 일상을 그리고 시간을 떠내는 행위와 동격인 것이다. 이로써 김현숙과 오연화의 작업은 판화와 조각, 평면과 입체, 그리고 설치마저도 아우르는 다중적인 작업의 한 전형을 예시해주고 있는 것이다. 더불어 여러 이질적인 판법들이 혼용된, 전통적인 병풍그림의 형식을 빌린 고자영의 작업에서도 이러한 설치판화의 가능성이 느껴진다.


그리고 김종명과 함영훈의 판화는 여러 비정형의 얼룩들로 구조화된 암시적인 화면이 특징이다. 정헌조는 엠보싱된 화면에 실크스크린을 부가하는 방법으로써 미니멀리즘을 연상시키는 심플하면서도 감각적인 화면을 보여준다. 종이와 연필, 그리고 아크릴 물감 등의 기본적인 재료를 사용하여 시간과 같은 추상적인 개념을 형상화하기도 한다. 이러한 미니멀리즘에 대한 공감은 우윤정의 작업에서도 엿보인다. 플라스틱 소재의 페트병 같은 각종 기성품의 표면에다가 실리콘을 덧바르는 식으로써 이를 떠낸 일련의 오브제들에선 마치 사물의 껍질을 보는 듯한 특유의 정서가 느껴진다. 이와 함께 일종의 후기 미니멀리즘으로 정의할 만한 일련의 평면작업들을 보여주기도 한다. 그런가하면 신수진은 한지에다가 이미지를 프린트하는 방법으로써 손금이나 나무의 나이테 같은 세월의 흔적을 재현해 보여준다. 이는 자연스레 조형의 제요소들 중 특히 선을 강조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실제로 이것이 세선을 중첩시킨 일종의 세밀 드로잉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상으로 작가들을 세대별로 구분해서 살펴보긴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편의적인 구분에 지나지 않는다. 작가들이 속해있는 실질적인 세대와 작가 개개인이 느끼는 심리적인 세대감이 일치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욱이 창조적인 정신이 요구되는 예술에 있어서만큼은 작가의 정신이 현실적인 한계를 뛰어 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구분이 어느 정도의 의미를 내포할 수는 있을 것이다. 일차원적이고 평면적인 구분으로써 형식별, 경향성별, 주제별 구분이 간과하거나 억압할 수도 있는 계기들을 피해갈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무엇보다도 작품을 관객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으며, 객관적 사실에 접근할 수 있는 보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 놓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전시가 한국현대판화를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으나, 적어도 그 동시대적인 경향성과 함께 대략적인 맥을 가늠해볼 수는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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