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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정일 - 머리카락을 그리다

박영택

구상화라 하더라도 눈으로 판독되지 않는 경우가 있다. 특정한 대상을 묘사한 것이 틀림없어 보이면서도 그것이 무엇인지 한 눈에 가늠되지 않는 그림말이다. 오정일의 첫 개인전에 나온 그림을 보면서 다소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우선적으로는 섬세한 선들과 지독한 그리기에 다소 놀라면서 질렸다. 맹목적인 그리기의 욕망, 수많은 시간의 누적과 순수한 행위의 반복 등이 정교하고 두툼하게 깔린 화면이었다. 근자에 회화에 대한 새로운 관심과 모색이 분주한 마당에 그 역시 동일한 영역 내에 서식하지만 필선의 맛과 극도의 집중된 회화의 질은 다른 작가들과는 다소의 차이를 지닌 새삼스러운 부분이 있다. 얇고 가는 신체의 일부인 머리카락 혹은 가는 전선줄의 엉킴, 거대한 우주공간의 은하수 같아 보이는 대상은 실재이면서 추상적이고 명료하면서도 그 명료함이 오히려 낯설음을 유인하는 미묘한 그림이었다. 가늘고 작은 선 하나하나가 살아 숨 쉬는 에너지로 발산되는 이 회화는 주제나 내용보다는 어떻게 그리느냐의 문제(내용과 조우하는 방법론의 모색) 및 기존의 회화에 대한 개념을 대신해 새로운 생각의 갈래를 풀어나가는 매개로 다가왔다.

90년대 이후 회화에 대한 인식론적 사유나 새로운 방법론 및 그 의미의 환생에 대한 여러 움직임들이 있어왔다. 신체성과 수공성을 지닌 회화가 시각 환경이 급속하게 변화한 이 상황에서 어떤 위상을 차지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이 그 핵심일 것이다. 사실 회화행위는 자신과 이 세계와의 관계를 확인하는 일이자 온 몸의 감각을 동원해 그 세계를 인식하는 일이다. 다시 말해 자신이 무엇을 보고 있는 가를 확인하는 작업에 다름 아니다. 그러기에 회화는 특정한 의미로 고정되지 못하고 한 개인에 의해 매번 새롭게 환생한다.


오정일에게 회화행위는 특정 대상을 화면이란 공간에 투사하는 일로부터 비롯된다. 몸으로부터 출발하여 대상을 향해 나아가는 성적에너지(리비도)가 예술행위를 이끌어내는 인간의 근원적 에너지에 다름 아니라고 보는 그는 자신의 리비도를 작동시키는 모든 타자들을 그림의 대상으로 호출한다. 결국 화가가 그리는 회화작품은 모두 작가의 리비도적 전이의 결과물이고 이는 그의 초상일 것이다. 이렇듯 화면이 거울과 같은 자신의 반영체라고 생각하는 것은 회화의 의미에 대한 나르시시즘적 사고에서 기인한다.

그는 어느 날 문득 머리카락에서 추상적이면서도 무궁무진한 조형적 가능성을 발견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화가인 앤드류 와이어스의 ‘ Farm Road라는 작품에 깊이 경도되면서 그 그림 안의 인물, 즉 금발을 땋은 여자의 뒷모습에 매료되었다. 머리카락에서 무궁한 조형의 맛과 힘을 만난 순간이었다. 머리카락은 관념적 이미지의 순수성을 동반하고 감상적인 매력을 성취하도록 도와주는 한편 그 풍부한 질감은 비록 묘사가 용이하지 않지만 인간의 다층적인 정서를 표현할 수 있으며 어떤 힘과 충격을 관자에게 전달해주는 대상으로 선택되었다.

오래전부터 머리카락은 얼굴과 대비되면서 에너지가 담겨져 있다고 여겨졌거나 길게 풀려 출렁이는 머리는 생명을 앗아가는 위협과 매혹을 발산하는 것으로, 그런가하면 남자의 머리는 지도력과 힘, 개인의 강인함을 의미하는 토포스였다. 서구에서는 ‘곱슬곱슬하다’라는 말의 어원에 ‘꼬시다’의 뜻이 들어있으며 머리털은 ‘작은 머리’라는 뜻을 지닌다.

머리털은 인간만이 지닌 특별한 신체의 일부이다. 그것은 부분에 불과하지만 전체와 연관되어있다. 오정일은 매력과 욕망, 정신과 생명, 한 개인의 기호와 모든 것을 전적으로 대변하는 기이한 털 뭉치를 그림의 대상으로 삼았다. 일종의 페티시즘이자 은밀한 엿보기, 미시적 접근등이 함께 뒤따른다. 그는 머리카락의 조형성을 통한 형상화를 시도한다. 그것은 누군가의 머리카락이자 얼굴을 대신하고 육체를 저당 잡혀 오로지 머리카락만으로 대체한 이상한 육체다. 보는 이들에게 상상력과 욕망, 호기심과 두려움을 동시에 증폭시켜주기도 한다.

그는 대상의 형태를 은유적으로 파악하여 그 실재에 접근했다. 그러니까 일상적인 머리카락의 형태가 명암법과 공모하는 은유의 기획을 통해 매우 낯선 상황아래 놓였다. 사실 현실계에서도 머리카락은 그 조형적 유동성으로 인해 여러 가지 형태로 재창조되고 있음을 본다. 시대나 유행에 따라 혹은 개인적 감정의 표현을 위해 여러 가지 헤어스타일이 존재하는 것은 그만큼 머리카락이 현실에서 부단히 조형화되고 또 다른 형태로 끊임없이 탈바꿈되는, 변신하는 신체임을 보여준다.


오정일은 어둠으로부터 머리카락이라는 형상을 이끌어내는 방식을 보여준다. 마치 바로크 화가들이 원근법적 공간 대신 인위적 조명을 통해 화면 밖으로 대상을 돌출시켜 입체감을 실현시키듯이 말이다. 여기서 어둠은 무궁무진한 가능성이 내포되어 있는 공간(창조적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정신적 공간)에 해당되고 그 어둠의 무한한 공간 위에 드러나는 형상, 검은 색 바탕 화면 위에 긋는 필선들은 빛의 흔적(에너지)를 암시한다.

본질적 에너지의 형상화를 위해 작가가 선택한 회화적 테크닉은 바로 선이다. 여기서 선은 감정이 내재할 수 있는 표현적 성격, 운동성이 개입되어 작가의 표현적 행동의 흔적이 되는 한편 한 개인에게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는데 쓰여 지기도 한다. 오정일의 직관적이며 다소 신비스러운 속성을 지닌 선은 가시영역내의 최소단위인 머리카락의 형태와 일치한다. 그는 머리카락을 심듯이 선을 사용해 그려나간다. 그 선은 머리카락의 형상으로부터 파생되었지만 작가가 표현하고자 하는 근원적 에너지의 상징이자 기호가 된다. 머리카락에 잠복해있는 선적 조형성을 통해 인간의 내밀한 감정의 영역에 접근하여 그 본질을 표현하고 있는 선은 동시에 에너지로 파악된다. 여기서 부드러운 곡선은 생명력과 여성성을 상징하며 둥근 선들은 남성에게 에로틱한 자극을 제공한다. 곡선은 자연현상의 운동성을 암시하며 그러한 운동성은 보는 이로 하여금 역동적인 에너지의 시각적 인식을 또한 불러일으킨다.

그의 그림은 무엇보다도 편집증적 선긋기다. 세필(1,2호 붓을 깍아 만든 털/선)로 오랜 시간의 노동이 요구되는 고단한 과정이며 그렇게 완성된 화면과 작가의 정신세계 사이에는 모종의 결속이 다져진다. 작가에 의하면 머리카락 굵기와 일치하는 선/붓으로 화면을 가득 채워가는 일은 의식을 매우 안정적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순간을 경험하는 일이란다. 어떤 행위에의 몰입을 통해 의식의 극한까지 접근해서 완전히 몰입함으로써 자신을 잊고 그로인해 최고의 고양을 경험한다는 얘기다.

그런 의미에서 그에게 회화는 의식의 집중적 연속인 셈이다. 아울러 그는 주관적이며 인위적인 빛의 사용을 통해 어두운 부분들의 신비감을 극대화하는 한편 주관적으로 명암을 조작하고 눈으로 지각되는 대상의 형상을 조절하여 극적이거나 새로운 형상에의 가능성을 모색한다. 그에 따라 일부를 임의로 어둠에 묻어버림으로써 대상을 전혀 낯선 대상으로 탈바꿈시킨다. 따라서 그림을 처음 봤을 때 구체적인 대상이 잘 떠오르지 않는다. 관자들은 너무나 사실적이면서도 좀처럼 가늠되지 않는 대상에 곤혹스러울 것이다. 그러다가 일정한 시간이 지나면 점차 머리카락이 눈에 들어오고 나무 같은 손목과 정수리 부분, 배꼽 밑 부분과 성기 등이 서서히 다가올 것이다.(그림을 판독하기 위해 시간과 일정한 거리, 단계적 경험이 요구된다) 이 그림은 결국 실재와 상상이 융합되어 만들어진 새로운 주관적 형상의 현실적 존재감, 즉 ‘상상의 실재화’에 다름 아니다.





또한 글로스 바니쉬를 사용해 이룬 표면의 광택은 화면에 유리와 같은 투명성의 견고한 재질감을 부여한다. 그래서 마치 거울이나 사진의 표면을 대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는 ‘화면을 현실계로부터 철저히 격리시키고 있는 피막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는 것이자 피막 내부의 화면을 이상적 세계로 끌어 올리고 피막 외부를 불완전한 현실계로 구분시킴으로써 관람자의 리비도가 이상계인 피막 내부로 집중되도록 유도하는 장치’(작가노트)다.


화가의 손은 눈이 행한 것을 이어받아 이를 더욱 더 발전시켜 앞으로 그것을 밀고 나간다. 따라서 화가의 행위는 단순히 시각적 인식의 내용을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시지각에 의한 인식의 불완전성을 지적하고 손의 행위를 통해 그것의 불완전성이 보완될 수 있다는 점에서 비로소 의미 있는 행위가 된다. 사실적 회화양식이라도 실재는 마음과 세계 사이의 변천하는 관계 속에서만 포함된다. 세계와 이를 반영하는 마음은 둘 다 끊임없이 변화하기 때문에 이 세계를 정확히 재현하고자 하는 시도는 여전히 화가의 매력적인 영역의 일이다. 구상과 재현은 매번 다르게 환생한다. 작가는 추상적 조형성과 사실적 조형성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면서 동시에 두 가지 조형적 특성을 아우르고자 한다. 재현대상으로 실재의 머리카락을 설정하였지만 그 접근 방식으로서 추상적 의미영역에 놓여있는 선의 조형적 개념에 의지하거나 선묘에 집착하는 것도 그래서이다.

사람의 얼굴을 대신하는 뒷모습, 그 머리카락을 다소 그로테스크하고 신비롭게 체험시키는 한편 회화의 가장 근원적인 선과 빛 등을 통해 그림의 에너지를 발산시키는 동시에 구상과 추상, 실재와 환영 사이의 본원적인 질문을 끌고 가는 오정일의 회화는 근래 회화의 부흥과 복원을 알리는 여러 신호 중 가장 독자적이고 매력적인 발신음을 들려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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