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체와 설치, 확장되는 조각
올해 역시 예년과 마찬가지로 정통적인 조각과 함께 입체나 설치 개념으로도 범주화하기 어려운 전시들이 많았다. 흔히 탈 조각 혹은 비물질 조각이란 말로서 형용되는 이 새로운 경향성은 주로 신진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으며, 이는 기성작가들이 여전히 정통적인 조각개념을 견지하고 있는 것과는 비교된다. 그리고 올해도 어김없이 광주비엔날레와 부산비엔날레 그리고 미디어시티서울 전시가 열려 탈 장르와 함께 탈 조각 현상을 두드러지게 했으며, 차후로도 이 현상은 더 가속화될 전망이다.
한편, 정통적인 조각 개념은 직조와 함께 각종 주형을 이용한 간접적인 방법론을 구사한 경우들이다. 그리고 새로운 경향성은 공간을 적극적으로 해석한 설치조각, 전통적인 재료의 한계를 넘어선 부드러운 조각, 공공조형물의 한 대안으로서 떠오른 스트리트 퍼니처, 다양한 영상매체와 결합한 영상조각, 소리를 조각의 한 형태로 해석한 소리조각, 그림자를 조각의 한 형태로 해석한 그림자조각 등을 볼 수 있었다.이처럼 조각의 개념과 방법론은 점차 확장해가는 추세에 있으며, 이는 그대로 조각에 대한 정통적인 개념의 틀을 넘어서는 탈 장르, 탈 조각의 경향성으로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조각과 관련해서는 정통적인 방법론을 구사하는 작가들과, 특정의 방법론에 구속받지 않는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제작방식을 구사하는 작가들의 경우를 구분해야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다. 그러니까 조각의 개념과 장르적 성격을 재정의 해야 될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현실인식을 바탕으로 하여 본 글에서는 올 한 해 동안 열린 조각, 입체, 설치 관련 전시들을 크게 정통적인 조각개념과 새로운 경향성의 작품으로 나눠서 살펴보고, 그리고 올해 열린 각종 조각상 수상현황과 남겨진 과제들을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직조, 정통적인 조각의 개념을 대상으로 한 전시들흔히 조각의 정통적인 개념은 원래 직조 즉 재료를 직접 다루는 방식에만 한정해야 하지만, 여기서는 편의상 각종 주형을 이용한 간접적인 방식을 포함하기로 한다.
개인전을 중심으로 그 주요 전시들을 보면 다음과 같다. 즉 <박은선전>(3.5-3.20. 박여숙화랑. 구와 기둥을 기본단위로 하여 순수 추상조형을 탐구한 조각), <이원경전>(3.10-3.16. 인사아트센터. 비움을 형상화한 조각), <홍승남전>(4.28-5.4. 노암갤러리, 4.28-5.11. 이화익갤러리. 기하학적 형태에 바탕을 둔 간결한 단순미와 절제미가 돋보이는 미니멀 조각), <장승효전>(4.30-5.20. 세종문화회관 야외공간), <김인경전>(5.19-6.2. 모란갤러리), <설총식전>(7.14-7.20. 관훈갤러리. 현대인의 일상을 우화적이고 풍자적인 모습으로 형상화한), <이기칠전>(9.3-9.30. 김종영미술관. 자신의 작업실을 소재로 한 전시), <최태훈전>(9.8-9.20. 갤러리아트사이드. 프라즈마 기법에 바탕을 둔 직조 고유의 노동의 힘을 느끼게 하는), <배형경전>(10.13-10.19. 학고재. 무쇠와 동으로 빗어낸 인체조상이 인간실존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유재흥전>(12.1-12.7. 갤러리아트사이드), <이용덕전>(12.15-2005.1.4. 표갤러리. 음각된 부조로 나타난 인체조각이 실제에 대한 일종의 착시효과를 불러일으키는), <황지선전>(12.3-12.17. 갤러리인), <김주호전>(5.7-5.20. 학고재), <최충웅전>(5.26-6.8. 모란갤러리), <정현전>(6.4-7.2. 김종영미술관), <심재현전>(6.4-6.30. 갤러리 세줄), <강용면전>(6.23-7.18. 아트파크), <한애규전>(9.13-9.25. 아트포럼 뉴게이트), <최인수전>(10.2-10.13. 금산갤러리), <차기율전>(10.22-10.31. 국민아트갤러리), <김무기전>(12.7-12.21. 아트포럼 뉴게이트), <신현중전>(12.15-12.25. 스페이스 셀) 같은 전시들이 주목된다.
이 가운데 특히 김주호의 소탈하고 유머가 넘치는 다양한 인물조각들은 세상과 사람,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의 계기를 끌어내고 있다. 생활에서 발견한 일상의 표정을 해학적으로 표현하는가 하면, 때로는 비판적인 시각으로 날카롭게 사회 현실을 풍자해온 작가의 면면이 느껴지는 전시였다. 그리고 최충웅전은 정년퇴임을 앞둔 작가의 작업세계 전반을 재조명하는 형식으로 열린 전시로서, 원시적인 소박성을 지닌 인체 목조와 함께 탑과 장승 등 전통적인 소재를 현대적인 미감으로 재해석한 청동주조 작품들이 전시되었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한국적인 미의식에 바탕을 둔 작가의 일관된 형식을 투영하고 있다.
또한 그 동안 침목을 소재로 하여 인체의 형태를 제작해온 정현은 이번 전시에선 아스팔트콘크리트(일명 아스콘)를 소재로 하여 인체와 자연이 내포한 생명의 원형적 형태를 제시하고 있다. 물성을 강하게 환기시키면서도 단순한 재료의 한계를 넘어서는, 조각의 본질을 추구한 경우로 보인다. 그리고 심재현의 스테인리스 추상조각과 움직이는 조각에서는 응축되고 절제된 형식 속에 함축된 일종의 종교적인 메시지가 읽혀진다. 또한 구리선을 골격으로 하여 그 표면에 형형색색의 유리 모자이크 조각을 부착하는 방법으로 12 지신상에 등장하는 각종 동물들을 형상화한 강용면의 조각에서는 전통과 현대와의 결합과 함께, 이를 통한 한국적 이미지가 느껴진다. 새로운 재료, 새로운 형식의 제안이 돋보였다.
그리고 한애규는 흙이 갖는 소재의 자연스러움과 친근함 그리고 고유의 가변성에 착안하여 환경과 상황에 따라 재정의되는 변화무쌍한 여성의 삶을 테라코타 조형작업으로 형상화하고 있다. 또한 최인수는 조각의 본질이랄 수 있는 물성과 양감을 비워냄으로써 일종의 탈 조각을 실현한다. 그리고 그 가능성을 선조에서 찾는다. 돌멩이와 겹겹이 중첩된 산세와 같은 고정된 형태에서 그 표현을 찾는가 하면, 심지어는 호수(물)와 같은 고정된 형태가 없는 자연 풍경마저 최소한의 선으로 환원된다. 여기서 선은 원래는 없는 것이다. 단지 면과 면이, 형태와 형태가 접해 있는 경계가 가상적인 선으로 지각될 뿐이다. 그러므로 마치 형태가 빠져나간 듯한 작가의 선 구조물은 일정정도 관념의 산물로 보인다.
그런가하면 차기율은 마치 포름알데히드 용액 속에 담겨진 듯한 투명 수지 속에 갇혀 박제가 된 짐승의 두개골과,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날카로운 의학 도구들이 결합된 오브제를 통해서 가학과 피학의 상호 작용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술과 인문학이 만나는 경계에 위치한 이 오브제들은 유사 고고학, 유사 박물학, 그리고 유사 의학의 형태로 현상한다. 그리고 무수한 가녀린 철사를 엮어 일종의 중얼거리는 나무를 형상화한 김무기의 조각은 그 자체로서 인간의 형상을 암시하며, 이와 함께 중력을 거스르며 천장에 매달려 있는 나무가 존재의 부조리를 떠올리게 한다. 또한 그 동안 생태와 같은 거대담론에 주목해온 신현중은 이번 전시에선 양서류 동물인 도롱뇽을 소재로 하여 생명과 환경에 대해 발언하는 한편, 일종의 정치적 은유를 실천하고 있다.
또한 올해 열린 전시들 중에서 정통적인 조각을 대상으로 한 주요 기획전으로는 <부산조각프로젝트>(5.22-8.29. 을숙도 조각공원 일대. 2004 부산비엔날레의 일부로 열린), <정지와 움직임전>(9.16-11.28. 서울 올림픽미술관 개관 기념전 형식으로 열린), <스테인리스 조각 이야기전>(5.13-6.10. 포스코미술관. 스테인리스를 소재로 한 조각), <2004 야외공간 프로젝트>(3.6-3.25. 세종문화회관 광장), <되돌아보는 한국현대조각의 위상전>(11.13-12.12. 모란미술관) 같은 전시가 주목된다.
이 가운데 <2004 야외공간프로젝트>는 그 동안 심포지엄의 형태로나 접할 수 있었던 본격적인 석(石)조각을 대규모적으로, 그것도 서울 도심 한가운데에서 만날 수 있었던 보기 드문 기회를 제공한 것으로 사료된다. 그리고 <되돌아보는 한국현대조각의 위상전>은 그 동안 한국현대조각과 관련하여 뚜렷한 업적을 남기고 있는 모란미술관이 기획한 전시여서 그 의미가 더 배가된 것으로 생각된다. 본 미술관이 1996년부터 매년 기획해온 <오늘의 한국 조각전>에 출품했던 작가들을 초대해서 그 동안의 전시성과를 점검하고, 시대적 변화 속에서 다양하게 전개되는 한국조각의 확장과 방향성을 모색한 전시였다.
그리고 올해 열린 전시들 중에서 정통적인 조각을 대상으로 한 주요 국외작가 전시로는 <알렉산더 칼더전>(2003.12.9-2004.2.7. 국제갤러리. 움직이는 조각 곧 모빌의 창시자로 알려진), <안토니 카로전>(1.9-2.29. 서울시립미술관), <로댕전>(2003.12.12-2004.2.8. 로댕 갤러리), <근대조각 3인전>(2004.11.26-2005.2.6. 로댕 갤러리) 등이 주목된다.
이 가운데 60, 70년대 미니멀아트와 개념미술을 통해서 현대조각의 새로운 장을 연 안토니 카로의 이번 전시는 ‘야만인들’이라는 주제로 열렸다. 노년에 접어들어 구상으로 회귀한 이후의 최근작들을 중심으로 한 이번 전시에서는 고대문화와 역사 그리고 문학 등 타문화에 대한 작가적 호기심과 함께 서사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로댕전>에서는 로댕 갤러리의 소장품을 중심으로 해서 지옥의 문, 칼레의 시민과 관련된 작품들, 소설가 발자크를 모델로 한 개별 작품들, 로댕 데생집에 수록된 드로잉과 석판화 등 총 56점이 출품되어 로댕의 조각에 대한 이해를 돕는 계기가 되었다. 또한 <근대조각 3인전>은 로댕, 부르델, 마이욜 등 3인의 대표적인 작품들을 통해서 현대조각의 기틀을 마련한 서구 근대조각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전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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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치, 확장된 조각의 개념을 대상으로 한 전시들확장된 조각의 개념은 조각의 개념을 설치로까지 확장한 설치조각, 재료의 한계를 넘어서는 부드러운 조각, 그리고 개념적 성향이 강한 개념조각과 같은 형식실험과 함께 메시지가 강한 여타의 방법론을 포함한다. 그 경향이 기성작가보다는 신진 작가 층을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올해 열린 전시들 중에서 이런 확장된 조각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주요 개인전은 다음과 같다. 즉 <김홍석, 김소라전>(8.21-10.10. 아트선재센터), <김주현전>(8.25-8.31. 갤러리 피쉬), <홍장오전>(9.1-9.11. 스페이스 셀. 미세한 유리조각을 이용한 소품과 공간을 이용한 설치조각으로써 외계와 개인간의 관계를 표현한), <이불전>(10.1-11.12. pkm갤러리), <이승택전>(10.12-10.31. 미아 미술관. 한국 설치미술의 선구자로 평가받고 있는 작가의 작업 전반을 회고한 재조명전), <김석전>(11.2-11.12. 갤러리우덕. 자신의 정체성, 아이덴티티를 묻는 작업), <안규철전>(3.5-4.25. 로댕갤러리), <홍명섭전>(3.19-4.2. 표갤러리, 3.26-4.25. 마로니에미술관), <이형구전>(3.4-3.28. 성곡미술관), <박지은전>(11.24-11.30. 갤러리 아트사이드), <데비 한전>(5.14-5.30. 브레인펙토리), <김수지전>(5.14-6.1. 아트스페이스 휴), <이기일전>(5.27-6.20. 프로젝트 스페이스 집), <박소영전>(4.2-4.16. 가갤러리), <박원주전>(6.6-7.16. 프로젝트스페이스 사루비아다방), <김윤경전>(6.23-7.6. 갤러리 인), <유승민전>(7.26-8.13. 아트스페이스 미음), <함진전>(8.28-9.21. pkm갤러리), <이동욱전>(9.2-9.12. 브레인팩토리), <이진용전>(12.10-12.24. 박여숙화랑) 등의 전시가 주목된다.
이 가운데 안규철은 이번 전시에서 연이은 문으로 이어진 49개의 방을 보여준다. 여기서 49개의 방은 작가의 개인적인 서사로부터 비롯된 것이지만(작가의 현재 나이와 일치하는), 사실상 그 방의 의미는 그 이상으로 암시적이다. 작가 개인의 정체성과 함께 삶의 서사를 상징하는 이 방들은 그 자체로서 마치 욕망이 작동하는 천 개의 유형을 밝힌 질 들뢰즈의 ‘천 개의 고원’에 그 맥이 닿아 있다. 수많은 문들로 연이어진 똑같으면서도 다른 방들이 횡단적 연계성의 실천논리를 말해준다. 그리고 이는 수많은 격자들로 연이어진 똑같으면서도 다른 원고지의 칸들을 재현한 홍명섭의 작업에서 또 다른 형식을 얻는다. 그러니까 작가는 전시장 바닥에다가 끈을 이용하여 가상의 원고지 형태를 재구성하고 있으며, 관객들로 하여금 그 격자무늬로 된 칸들 속을 거닐 수 있게 했다. 일종의 끈 드로잉인 셈이다. 여기서 아무 것도 씌여 있지 않은 빈 원고지는 말할 것도 없이 관객 각자가 메워나가야 할 백지 상태의 삶을 암시하며, 원고지를 구성하고 있는 연이어진 격자들은 삶을 구성하고 있는 수많은 계기들을 암시한다.
또한 이형구는 이번 전시에서 볼록렌즈와 오목렌즈를 비롯한 유사 실험도구를 이용하여 얼굴의 특정 부위를 왜곡시켜 마치 사이보그와도 같은 비정형의 형상을 재현한다. 그 이면에는 인간의 욕망과 콤플렉스에 대한 반성이 깔려 있다. 그리고 박지은의 작업은 메디컬아트로 범주화할 만한 일면을 예시해준다. 설핏 보기에도 섬뜩하 리 만치 정교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는 스테인리스스틸 소재의 의료도구와, 캡슐로 된 의약품을 본떠 만든 부드럽고 유기적인 쿠션을 대비시키고 있다. 그리고 의료용 모니터에 나타난 그래프는 신체의 질적 조건을 계량화하고 추상화한다. 이런 각종 의약품이나 의료용 도구들이 질병과 치유, 중독과 해독, 결벽증과 공포증과 같은 신체를 매개로 한 일종의 생물학적 위생학을 떠올리게 한다.
그리고 데비 한은 문화에 대한 컨텍스트를 바탕으로 작업하는 재미동포 작가다. 그는 서양의 석고상을 청자로 재현한 일련의 복제된 형상을 소재로 하여 획일화된 한국 사회의 현실을, 미술교육의 현실을 패러디하고 풍자한다. 또한 김수지는 그 표면에 자신의 얼굴 이미지를 프린트한 봉제인형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탐색한다. 그 이면에는 자아마저도 소비의 대상이 되고 있는 자본주의 사회의 왜곡된 현실에 대한 비판이 놓여 있다. 이는 이기일 역시 그 경우가 크게 다르지 않다. 즉 작가는 담배케이스로 정교하게 재조립해 만든 로봇조각과 일련의 공간설치작업, 그리고 퍼포먼스를 통해서 소비로 나타난 사회적 현상을 개념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가하면 박소영, 박원주, 김윤경, 유승민은 소위 부드러운 조각으로 범주화할만한 일련의 작업들을 보여준다. 부연하면, 박소영의 투명 필름이나 천의 표면에 프린트된 나뭇잎 조각을 중첩시킨 형상들은 껍질과 허물 그리고 생물학적 변태를 상기시킨다. 시작도 끝도 없이 이어지고 중첩되고 전개되는 비정형의 형상들이 하나의 이미지로 고정되기를 거부한 채 애매한 경계를 드러낸다. 또한 일종의 오브제로서 도입된 각종 조명등과 조명 장치와 결합한 형상들이 공간에 투영된 빛을 걸러내면서 정적이고 관조적인, 그리고 시적인 아우라를 발생시킨다. 그리고 박원주는 A4 용지를 오리고, 접고, 붙이는 방법으로써 지금은 유물로나 남아 있는 사형을 집행할 때 사용했던 전기의자를 재현한다. 한낱 종이로 화한 이 오브제에서는 전기의자 본래의 질량의 무게도, 죽음의 그림자도 찾아볼 수가 없다. 대신 하얗게 표백된 그 오브제에선 작가의 다른 작업에서와 마찬가지로 사물의 재(탈)맥락화가 읽혀진다.
또한 김윤경의 작업에 등장하는 의상이나 집은 하나같이 인간의 정체성을 상징한다. 즉 작가는 마치 집처럼 거대한 크기로 증폭된 그 속이 비어 있는 의상 속을 관객이 직접 드나들게 하거나 그 속에서 쉬게 함으로써 의상이나 집이 가지고 있는 정체성의 의미를 추체험하게 한다. 그리고 유승민의 가녀린 골격을 지지대 삼아 그 표면을 속이 비쳐 보이는 반투명의 막으로 덮씌운 구조물 역시 집을 떠올리게 한다. 보기에 따라서는 마치 피부와도 같은 신축성 있는 소재와 유기적인 구조가 유기체의 기관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 형태 자체는 한정적이기보다는 자기확장적이고 연속적인 생물학적 변태의 생리에 그 맥이 닿아 있으며, 또한 조명에 의한 일종의 그림자 놀이는 사물의 안과 밖의 경계를 허문다.
이와 함께 함진과 이동욱은 일종의 미니어처 조각을 보여준다. 이 가운데 함진은 이번 전시에서 박제된 작은 곤충이나 음식 쓰레기, 손톱 등 신체의 작은 파편을 소재로 한 미니어처 형상을 통해서 마치 우리 안에 갇힌 애완동물처럼 변해버린 왜소하고 고립된 현대인의 초상을 드러내 보여준다. 또한 작지만 지극히 사실적이고 정교하게 재현된 미니어처 인간 형상을 소재로 한 이동욱의 작업에 나타난 극사실에 가까운 리얼리티는 모호하고 부조리한 내러티브와 뒤섞이면서 마치 판타지 영화장면에서처럼 기이하지만 아름다운 불협화음을 불러일으킨다. 그로테스크의 미학에 접맥된 마치 악몽과도 같은, 기묘한 비현실적 분위기를 연출해낸다. 그리고 채집과 가공의 방법론에 바탕을 둔 이진용의 작업은 삶의 흔적을 불러일으키며, 그로 인해 서정적인 환기력이 강하다. 앤틱적인 미적 감수성과 결합된 박제된 정물들과 오브제들이 마치 아득한 시간 저편으로부터 건져 올린 듯한 시간의 단층을, 흔적을 암시한다.
또한 올해 열린 전시들 중에서 확장된 조각의 개념을 대상으로 한 주요 기획전으로는 <살림의 경계에서전>(2.18-2.24. 덕원갤러리. 현대문명을 지지하는 근간을 죽임의 논리로 보고, 이에 대해 살림의 논리를 대질시킨 전시. 여기서 살림의 논리는 생명과 생태를 비롯한 일상적인 삶을 아우르는 것), <영 아티스트 네트워크전>(4.21-5.2. 대구문화예술회관. 국내 대안공간과 대안미술의 현실을 살필 수 있는 전시), <일상의 연금술전>(4.24-6.27. 과천 국립현대미술관. 일상의 사물을 예술로 변형시킨 작품들), <롤링 스페이스, 구름전>(6.23-7.31. 마로니에 미술관. 지각과 깊이의 기하학에 대한 공간적 명상으로 이끄는 전시), <공간전>(7.7-8.8. 서울시립미술관. 공간에 대한 상투적인 의미를 동시대 미술작품을 통해 새롭게 해석한 전시), <공간유희전>(11.5-12.5. 가나아트센터), <아틀리에전>(1.7-2.25. 사비나미술관), <지도와 지도그리기전>(2.23-3.20. 성신여대박물관),
(4.1-5.9. 서울시립미술관), <집의 숨, 집의 결전>(4.3-10.29. 전남 영암도기문화센터와 주변 구림마을), <나는 작품을 만지러 미술관에 간다전>(5.28-6.6. 수원미술전시관), <문자향전>(10.8-12.5. 김종영미술관) 같은 전시가 주목된다.
이 가운데 <아틀리에전>은 화가의 작업실 그 자체를 소재로 한 전시이다. 예컨대 간이 막사처럼 바람을 주입하여 부풀릴 수 있는 개인용 이동식 아틀리에, 버려진 건물을 점거하여 작업실로 전용한 점거 아틀리에, 열린 공간에서의 소통과 같은 실천적 행위를 강조한 오픈 아틀리에 등의 각종 대안 아틀리에가 제시되었다. 임시적이고 유동적이고 가변적인 장소성에 대한 형식실험을 통해 일종의 작업실의 사회학에 대해 재고하게 만든 전시였다.
그리고 <지도와 지도그리기전>은 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만나는 일종의 학제간 연구방식에 착안한 전시로서, 전시에서 이는 매핑의 한 형태로 나타난다. 말하자면 미술은 상호간 무관계한 이질적인 것들을 한자리에 그러모아 이를 자의적이고 임의적으로 편집하는 과정을 통해서 인위적인 질서와 체계를 부여하는 고도의 인식론적 행위인 것으로 제시된다. 전시에서 매핑은 미술과 고고학이 만나는 학제간 연구방식을 비롯하여, 일종의 숫자지도, 유전자지도, 인체지도, 시간지도, 그리고 공간지도의 형태로 나타난다. 이 모두는 사실상 세계를 보는 다양한 관점을 반영한 것이며, 동시에 그 관점을 지지하고 있는 인위적인 지식체계를 보여주는 것이다.
또한 은 서울시립미술관 소속 큐레이터 6명이 각각 개념을 설정하고 이에 맞춰 구성한 전시다. 소비게임, 키덜트, 루키즘, 혼자 놀기 등 전시에 나타난 6개의 주제는 유쾌함과 가벼움이라는 동시대 작가들 특유의 코드를 살필 수 있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리고 <집의 숨, 집의 결전>은 총 15명의 작가들이 참여하여, 집을 매개로 하여 전통과 현대가 어떻게 조우하는지를 살핀다. 현대미술의 문맥 속에서 집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또한 어떻게 해석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더불어 집은 생명의 공간인 동시에 역사의 공간임을 드러내 보여준다.
한편 <나는 작품을 만지러 미술관에 간다전>은 시각을 매개로 하여 작품을 감상하던 지금까지의 관행에서 벗어나 촉각을 매개로 한 소통의 전시이다. 따라서 관객이 참여하는 식의 인터액티브 형태의 작업 컨셉트와 함께, 특히 시각장애인에게도 예술작품을 향유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 그런가하면 <문자향전>은 전시 타이틀만 보면 조각 전시로는 좀 의외이다 싶지만, 실은 문자를 조각의 출발점으로 삼고 있거나 문자를 소재로 작업하는 조각가들이 참여한 전시다. 서예에 바탕을 둔 정신성과 조형미를 현대조각에서 어떻게 계승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문제시한 전시로서, 이는 일종의 문자조형의 형식으로 나타나고, 그 주제나 형식이 정통적인 조각의 개념을 넘어서고 있다.
이외에도 올해 열린 전시들 중에서 확장된 조각의 개념을 바탕으로 한 주요 국외작가 전시로는 <리차드 롱전>(5.4-6.13. 국제갤러리. 대지예술가로 알려진 작가), <무대를 보는 눈, 독일현대작가전>(5.21-8.8. 로댕갤러리. 미술과 연극의 만남을 시도한 무대미술), <에바 헤세전>(10.5-11.19. 국제갤러리. 정통적인 조각의 재료와는 구별되는 여러 형태의 비물질 조각을 통해서 자기 정체성을 묻는 작가), <제임스 터렐전>(10.19-12.27. 백혜영갤러리. 미니멀리즘과 대지미술로 널리 알려진 빛의 작가 터렐의 작업 중, 어두운 실내공간의 벽면에 빛을 투사한 라이트 인스톨레이션. 자연의 빛과 인공적인 빛을 활용한 설치작품이 돋보인다), <제니 홀처전>(12.10-1.23. 국제갤러리. 전광판과 같은 자기 발광성 소재에 나타난 문자메시지를 통해서 여성의 성적 정체성을 묻는 작가), <로버트 인디아나전>(2004.12.15-2005.1.16. 갤러리 현대. 팝아트에 바탕을 둔 그래픽적인 문자조형 조각), <귄터 워커전>(3.4-3.31. 갤러리현대) 등이 주목된다.
이 가운데 흔히 못의 작가로 알려진 귄터 워커는 ‘고통받는 사람들 - 치유의 은사’를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서 이방인에 대한 폭력과 인종차별, 그리고 비방언론과 같은 사회 문화적 현상을 토대로 하여 이로부터 삶의 고통과 치유에 대한 내적 성찰을 미술의 형식으로 끌어낸다. 그에게서 못은 곧 붓이다. 못으로 사회적 회화를 그린다. 나무둥치에 빼곡하게 못을 박아 놓거나, 못으로 합판을 관통시킨다. 그리고 그 표면을 붕대로 칭칭 감싼다. 여기서 나무둥치에 못을 박는 행위는 사회에 만연한 폭력을 주지시키며, 또한 그 표면을 붕대로 감싸는 행위는 폭력에 의한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을 암시한다. 그리고 폭력은 예컨대 목을 조르다, 외치다, 부수다, 비웃다 등의 공격적인 언어로 나타나기도 한다. 작가는 이 폭력적인 언어들을 농기구를 동원해서 흙과 함께 갈아엎는다. 흙의 재생력이 언어폭력에 의해 생긴 상처를 정화시켜준다고 믿기 때문이다.
이외에 <류인 5주기 추모전>(2.18-3.7. 모란갤러리)과 <구본주 1주기전>(12.8-12.28. 사비나미술관, 덕원갤러리, 인사아트센터) 등의 작고작가 유작전이 열렸다. 이 가운데 인체모델링의 상식을 깨트린 파격적이고도 충격적인 류인의 인체조상들은 현대인의 억압된 심리를 그로테스크하게 표출한 것으로 평가된다. 그리고 특히 지난 2003년 9월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구본주는 1980년대 형상조각이후 줄곧 우리 시대의 아버지, 샐러리 맨, 가족 등을 주제로 한 동시대인의 삶의 이야기를 목재와 브론즈 조각에 담아왔다. 한국 사회를 살아가는 보통사람들의 일상적인 모습을 포착한 그의 조각은 권진규, 류인으로 이어지는 한국 형상조각의 맥을 계승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각종 국내외 조각상 수상현황과 남겨진 과제들
올 한해 작가들의 각종 조각상 수상을 보자면 다음과 같다. 최일이 올해 여름 일본의 오이타에서 열린 조각공모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김상균은 제 6회 모란조각대상을 수상했다. 대상으로 선정된 김상균의 작업 <성 城>은 시멘트를 소재로 한 캐스팅 조각으로서, 여러 이질적인 시대양식이 혼재한 건축물의 표면 구조를 보여준다. 이를 통해서 작가는 영향사와 패러디 그리고 복제가 하나로 얽혀 있는 동시대적인 미의식을 증언해주고 있다.
또한 제 17회 김세중조각상에는 박충흠, 제 18회 김세중조각상에는 김인겸, 그리고 15회 김세중청년조각상에는 유영호가 각각 수상했다. 이 가운데 수상작가 초대전 형식으로 열린 전시(5.7-6.27. 환기미술관)에서 박충흠은 용접을 이용해 동판을 이어 붙이는 방법으로써 다양한 형태의 거대한 구조물을 만들었다. 이때 조명을 끌어들여 동판간의 이음새 부위로부터 빛이 흘러나오게 함으로써 정적이면서도 명상적인 특유의 분위기를 유도하며, 자연의 순환적인 질서와 구조를 환기시킨다.
이외에도 김승환이 제 8회 김종영조각상을, 그리고 김세일이 제 18회 선미술상을 각각 수상했다. 이 중에서 수상작가 초대전 형식으로 열린 전시(9.1-9.12. 선아트센터)에서 김세일은 매스를 중심으로 한 정통적인 조각과는 구별되는, 마치 실타래나 새끼처럼 꼰 철사구조물을 보여준다. 그러니까 사물의 한 표면을 기점으로 해서 철사를 꽈나가기 시작해서 결국에는 그렇게 형성되고 부풀려진 망이 외부로부터 사물을 감싸 안는 식의 역설적인 관계를 형상화한 것이다.
그리고 연초에는 공공미술이, 연말에는 미술은행이 각각 공론화 된 것에서 보듯이 올해는 예년에 비해 미술의 공공성 논란 또한 뜨거웠던 한해였다. 여기서 공공미술은 종전의 건축조형물 개념에다가 공공성을 더 강화한다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리고 미술은행은 미술계에 대한 정책적인 지원을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열악한 미술시장을 활성화한다는 방안이다. 방안 자체는 좋지만, 문제는 누가 어떻게 시스템을 운영하느냐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는 이해관계를 달리하는 여러 이질적인 집단 계층간의 합의가 선결되어야 함을 말해준다. 그렇지 않아도 열악한 국내 미술계의 현실이 더 이상 왜곡되지 않도록 이해 주체간의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