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시장경제와 공공적 예술
이선영(미술평론가)
경제적 인정이라는 확인 도장
각자의 사적인 이익을 추구하는 사회에서 공공성이란 무엇일까. 공공성과 개인적 이익은 함께 갈 수 있는 것일까. 자명한 듯하나 그렇지도 않은 질문을 생략하고 타성적으로 문화예술의 공공성을 말하는 것도 공허하다. 현실에서 진행되고 있는 상황, 즉 미술대학의 구조조정을 비롯하여, 우리 문화예술계에 부는 돈바람을 봐도 공공성과는 거리가 있다. 인간 사회의 어느 시기에도 경제의 힘은 강력했지만, 현대사회는 경제의 힘으로 가능할 수 있는 영역을 비약적으로 늘리면서 그 영향력에 가속도를 붙인다. 자본주의 역사라는 거시적 관점 뿐 아니라, 개체발생적인 차원에서 되돌아봐도, 돈이라는 명확한 기준 앞에서, 그렇지 않아도 될 많은 것들이 맥없이 순위가 매겨진다. 모든 것은 평탄하게 동질적인 것으로 환원을 시킨 후에야 순위라는 것이 가능할 수 있다. 각자 다르면 비교할 수 없다. 비교할 수 없는 것을 비교하는 것은 동질화, 또는 세속화된 사회의 특징이다.
현대 사회는 문화예술 분야를 비롯한 사회의 불투명한 영역을 일소해 간다. 정치와 달리, 예술의 경우 불투명성은 몽매성과 해방구의 역할을 할 수도 있다. 합리화와 과당 경쟁을 낳는 투명성은 생산 기술에 있어서의 매뉴얼화의 보편화, 그리고 그 방식에 따른 복제의 속도의 비약적인 증가에서 비롯된다. 어느 분야든 한 가지 아이템이 나오면 금 새 번성하며, 좋게 말해서 공유된다. 이러한 추세는 개인이 이익을 구하는 방식에도 빠른 평준화를 낳는다. 그래서 선제적 이익 확보를 위한 차이는 중요해진다. 차이가 생겨나기도 어렵지만, 금 새 그 차이가 사라지는 레드 오션에서의 경쟁은 문화 예술에 대한 접근성은 물론이고, 최소한의 삶을 지탱하기 위한 노력조차 힘겹게 한다. 무한 경쟁이지만, 그러한 경쟁의 성과가 미미한 한국의 현실은 ‘헬조선’이라는 탄식을 낳는다. 모두가 더 많은 것을 가지기 위해 경쟁하는 시대에, 문화예술에 있어서의 창조와 혁신을 비롯한 차이의 감각이 경제적 차이를 위한 경쟁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좋은 의미든 아니든 간에, 역사상 어느 사회보다도 다양하고 역동적인 문화예술을 낳았다는 점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역대의 화가들은 아무런 사건이 벌어지지 않는 평온한 천국 보다는, 지옥 풍경을 더 역동적으로 현실화하곤 했다. 경제적 측면이 작업의 지속가능성을 위한 가장 중요한 요건 중의 하나라는 점에서, 경제적 이익은 어떤 명분이나 당위보다도 강한 설득력을 가진다. 한국에서 2000년대 중반에 유행했던 극사실주의, 그리고 최근에는 한국적 추상미술이라 일컬어지는 모노크롬의 시장에서의 약진은 역사를 거꾸로 돌리는 듯한 효과를 주었다. 그 모든 반발과 저항, 그리고 나름의 성과들이 왠지 돈이라는 평가 앞에 한번에 무너지는 듯한 열패감이 들 수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요즘은 민중미술을 비롯하여, 대학을 중심으로 제도화되었던 추상미술과 경쟁했던 미술사조들의 전시가 앞 다퉈 열리면서, 단순히 ‘미학적, 미술사적, 비평적’ 인정을 넘어서, ‘경제적’ 인정 또한 요구하고 있다.
경제적 인정이라는 확인 도장은 경쟁하는 사조들의 존재 의미를 결정하고 있는 셈이다. 이러한 집단적 반발력이 얼마만큼의 효과를 나타낼지는 아직 미지수지만, 미술시장은 작가들의 이러한 자생적인 움직임을 동력으로 활용하곤 한다. 시장은 그것이 무엇이든 이익을 낳는 우량 상품이면 된다는 논리를 가지기 때문이다. 미술인들 역시 시장이 반응하지 않을 때 심드렁해지는 엄혹한 상황에서, 공공 문화 예술은 여전히 ‘그런 것이 있으면 좋을 것이다’ 또는 ‘있어야 한다’라는 희망이나 당위에 여전히 호소할 수 있을까. 공공 문화예술은 신념을 가진 소수의 헌신만으로 지탱될 수 있을까. 중요한 것은 관념이 아니라 물적인 조건이다. 또는 어떤 관념을 낳는 물적 조건이다. 물론 그 역의 방향도 있을 수 있다. 상부구조에 속한 예술은 늘 상 경제라는 하부구조를 무시해왔던 면이 있다. 2016년 시점에서 공공예술을 논의할 때 중요한 것은 이러한 경제적 감각의 대세 속에서, 공동체에 기반 하는 문화예술의 입지는 어떠한가에 대한 물음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은 다소간 냉소적이다. 나날이 펼쳐지는 일상적 경험에 의거하건데, 실재적으로 다가오지 않는 공동체에 대한 막연한 기대나 맹목적 확신을 버려야 할 것이다. 공공 문화 예술에 대한 사회의 투자가 당장의 이익은 아니더라도 장기적으로는 이익이 될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지 않는다면, 오늘 진행하고 있는 작업이 내일 가능할지 알 수 없게 된다. 어떤 동기보다도 각자의 이익추구가 가장 중시되는 사회에서 문화예술의 공공성, 또는 그 기반이 된다고 믿어지는 공동체에 대한 담론이 얼마만큼의 보편성과 설득력을 확보하고 있는가. 이는 공공문화 예술 또한 미술계의 여러 항목 중의 하나로 타성화 된 것은 아닐까에 대한 자문이다. 문화예술에 투자된 공공기금은 별다른 성과물도 없이 공중에 흩뿌려진 것일 뿐이라는 의혹 또한 적지 않다. 공공 문화 예술을 ‘다원주의’를 형성하는 여러 구성요소 중의 하나가 되었다는 자그마한 사실에 만족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각자 자기이익만을 추구하는 시대에 문화예술 또한 공공적이든 아니든 공동(空洞)화 되었다.
공동(空洞)화된 공공영역
시장이라는 물신적 체계 속에서 극소수의 작가만 작품으로 생존하고 있고, 대다수는 크고 작은 제도의 안팎에서 고단한 작업의 길을 병행하고 있다. 내가 왜 예술을 시작했고 지금 내가 하고 있는 것이 맞는가, 맞든 안 맞든 앞으로도 계속 할 수 있을까 하는 원초적인 질문에 누구도 대답해주지 않는 외재적 삶의 연속들이다. 물론 예술에 대한 공공 지원 시스템은 모든 분야의 체계화와 더불어 늘어났지만, 문화예술이 그만큼 더 풍요로워진 것 같지는 않다. 제도화가 낳는 타성 또한 증가되었기 때문이다. 그나마 정치세력의 부침에 따라 고무줄처럼 늘었다 줄었다 하는 자의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 정보혁명을 비롯한 과학기술의 생산력과 체계화가 지배적으로 되면서 문화와 예술 역시 공공적 지원체계 속에서 그 생태계를 형성해왔다. 각 지역의 문화 재단의 출범 등과 겹쳐지는 그 기간이 길지는 않았지만, 미술계에서 하나의 장르라고 해도 될 만 한 흐름을 형성했다.
기존의 공공 장식물에 대한 대안으로 등장했던 공공 문화예술 운동도 그 중 하나이다. 그러나 기초과학 연구처럼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하지만, 그만큼의 ‘객관적’ 성과를 확인하기 힘든 문화예술에서의 손익계산서는 불투명하기 그지없다. 지금처럼 이익을 중심으로 대학 같은 아카데미의 영역까지 크게 흔들리고 있는 상황에서, 공공영역에서의 문화예술의 존립기반은 확실하지 않다 문화 예술의 공공성이란 무엇보다도 장기적인 안목을 요구하지만 갈수록 단기적인 성과를 중시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사회의 모든 부문이 체계화되고 있기에, 문화예술 뿐 아니라, 모든 영역이 공공적으로 접근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한정된 자원을 개인 또는 그 개인이 속한 어떤 집단에 유리하게 활용하기 위한 경쟁이 있다는 것, 공공 문화 예술에 대한 담론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은 확실하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경제 중심주의 사회가 문화예술에 끼친 영향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경제는 이제 외재적인 것이 아니라 내재적인 것이 되었기 때문에, 경제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현사회의 사태의 추이를 추상적으로 원망만하는 것도 부조리한 현상의 유지에 일조한다는 점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체계는 불만을 해소할 수 있는 작은 영역을 한정지으면서, 문화예술인들로 하여금 그 안에서만 놀라고 한다. 그나마 그러한 영역도 지배적 체계와 잘 맞는 또는 맞춰진 전략적 집단들이 선점하는 상황이라면, 문화예술계의 대다수는 이중의 소외를 경험하게 될 뿐이다. 인간이나 예술의 자율화가 그랬듯이 자율화란 해방과 소외를 의미한다. 경제 또한 마찬가지다. 찰스 테일러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서 근대사회에 와서야 사회를 하나의 경제로 보기 시작했다고 본다. 이때 경제는 일련의 상호연계 된 생산과 교환, 그리고 소비 행위들로서, 고유한 법칙과 역학을 갖는 체계를 이루는 것으로 이해된다. 근대적 의미의 경제관념은 객관화된 실재로서의 경제를 말한다.
이전의 전통적 사회는 ‘존재의 대사슬’같은 상징적 우주로 위계화 되었지만, 근대에 와서는 그 사슬이 끊어진다. 세계는 마법적 힘이 사라지고 탈 주술화 되었다. 동시에 공동체도 와해되었다. 태양-신-왕-성직자-아버지....등등의 수직적 위계질서로 연결된 의존의 긴 사슬은 고도로 인격화되어 있었다. 원자화를 낳았던 근대적 평등은 존재의 연쇄가 끊어지면서, 즉 매개가 사라지면서 생겨난 것이다. 사회는 수평적으로 상상되었고, 개인과 성스러움을 매개하는 특권을 부여받은 대리인은 인정되지 않았다. 찰스 테일러가 말하는 ‘직접 접속사회’는 매개성(mediacy)의 형식들이 추방당하고 직접 접속의 이미지가 확산되는 급진적 수평성을 함축한다. 그 사회의 구성원은 제각기 전체에 직접 닿아 있다. 근대의 경우 이러한 직접성은 인쇄문화를 통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근대의 공공영역에서 팜플렛, 책자, 신문 같은 인쇄 매체와의 관계는 밀접하다.
정보화시대는 인쇄라는 미디어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직접 접속 가능성을 높인다. 정보화시대에는 각자가 가진 디지털 기기에 접속할 뿐, 타인이 필요가 없다. 타자와의 관계는 극히 피상적이다. 근대로부터 가속화된 소통방식의 혁명은 인간을 더욱 개별화한다. 물론 새로운 미디어를 통한 공동체가 생겨나기도 하지만, 그것은 일시적이다. 찰스 테일러는 상상된 직접 접속의 양식들은 근대적 평등과 개인주의에 연계된다고 본다. 그것은 우리를 균질적으로 만들며, 이는 평등해지는 한 가지 방법이다. 성스러움을 매개한다는 성직자는 물론 전통적 지식인이나 아방가르드처럼 누가 누구를 대신하는 것도 의문시 된다. 마치 재현예술처럼 말이다. 근대에 펼쳐진 새로운 판은 연극적 무대에서의 일방적 재현이 아니다. 그것은 모두가 주인공일 수 있는 공동의 축제가 열릴 가능성이기도 하다. 공공예술은 누가 누구를 대신하여 발언하고 표현한다는 주/객체의 이원론에 입각한 소통을 거부한다.
‘열정에서 이해관계로’
근대적 경제사회 속에서 개별로 흩어진 인간 들 속에서 공동체의 기반은 사라졌다. 그것은 평등과 자유를 낳았지만 가능성으로서 뿐이다. 평등과 자유를 명목적으로가 아니라 실제적으로 획득하기 위해서는 개인들 간의 단합, 즉 공동체가 필요하다. 공동체는 늘 상 위험에 처한 개인들의 요구였던 것이다. 전근대사회에서의 위험성은 자연의 변덕과 권력을 가진 위정자들의 변덕이었을 것이다. 서로 연계된 상업경제를 통해서 보다 익명의 소비자들을 만나는 일은 두 가지 변덕을 극복하는 방식이다. 질이 양으로 변화한 사회는 긍정만큼이나 부정적으로 다가왔다. 찰스 테일러는 [근대의 사회적 상상]에서 근대의 평준화가 불러일으킨 두려움에 대해 묘사한다. 상업사회의 도래와 더불어 효용성 없는 대의에 대한 진심어린 헌신, 위대성, 영웅주의는 쇠퇴했다는 것이다. 근대의 평등주의와 평화적인 생산기술은 위대함, 영웅주의, 목숨을 건 용기, 번영보다 더 고귀한 무엇인가에 대한 열망을 대가로 얻어진 것이라는 의구심이다.
그것은 근대사회에 대한 낭만주의적 비판의 주된 내용이었고, 그 이후에도 니이체를 비롯한 수많은 예술가적 인물들이 성토하는 내용이 되었다. 시장은 인간의 심성을 바꿔놓았다. [근대의 사회적 상상]은 상업의 부드러움을 강조한다. 즉 상업은 호전적 가치와 군사적 생활양식을 부수적인 역할로 전락시켰던 것이다. 몽테스키외가 [법의 정신]에서 말한 ‘부드러운 상업’은 귀족들이 추구하는 군사적 영광으로 인해 빚어지는 야만적 파괴와 대조되었다. 사회가 상업에 의존할수록, 그것은 더 세련되고 문명화되며 더욱 탁월한 평화의 기술을 갖추게 된다는 것, 그리고 돈벌이는 우리의 이해관심에 봉사하며 이해관심은 열정을 견제하고 통제할 수 있다는 관념이다. 이해관심의 조화라는 주의주장에는 경제를 중심에 두는 새로운 자연 질서의 개념이 있다. 앨버트 허쉬먼는 ‘고전적 자본주의 옹호론’이라는 부제가 붙은 [열정과 이해관계]에서 이러한 주제를 전면화한다. ‘열정이 인간을 사악해지도록 부추키지만 이해관계에 얽매어 그럴 수 없는 상황에 놓인다’는 몽테스키외의 말처럼, 이해관계가 인간행위를 이해하는 비결이라는 생각이 우세해졌다.
막스 베버는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에서, 상업행위와 같은 금전추구 행위가 오랫동안 탐욕으로 간주되었는데, 근대에 이르러 어떻게 존경받게 되었는가를 탐구한다. [열정과 이해관계]에 의하면, 마키아벨리는 군주에게 ‘열정이나 일시적 충동에 휩쓸리지 않는 보다 합리적인 의지’를 권했고, 버틀러 주교는 ‘합리적 이기심’을 열정에 반하는 도덕적 덕목으로 꼽았다. 앨버트 허쉬먼은 대부분의 열정적 행위가 변덕스럽다는 점이 강조한다. ‘사람들이 열정의 충동을 받는 한 본질적으로 서로 다르고, 동일한 사람도 열정에 의해 움직이면 지극히 가변적이고 변덕스럽다’(스피노자) 이해관계의 사회에서 영웅적 열정은 돈키호테같은 모습으로 비춰진다. 앨버트 허쉬먼은 자본주의가 인간의 충동과 어떤 성향들을 억누르고 좀 더 단순하고 예측 가능한 일차원적인 인간성을 만들어 내리라고 기대했다고 말한다. 오늘날에는 이상하게 들리는 이런 입장은, 특정한 역사적 시기에 상존하던 분명한 위험을 걱정하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많은 열정으로 충만한 ‘완전한 개성’의 세계였던 이전의 시대에는 세상이 몰아내야할 사악함으로 가득하게 보였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이해추구가 적정수준의 경쟁을 넘어서 전쟁이 된 순간, 상업과 산업의 발달로 예상되는 정치적 효과가 낙관적일 것이라는 주장은 설득력을 상실한다. 다만 이해관계에 충실하여 쌓인 모든 화폐화 된 형태의 부는 전통사회를 결정적으로 무너뜨렸다는 점은 인정된다. 이러한 경제적 과정에 의한 탈전통화는 근대화의 모델이 된 서구 뿐 아니라, 전 세계에 거의 보편적으로 관철되었다. 정치와 문화는 약간씩 달랐을지 모르지만 경제가 돌아가는 방식은 같았다. 돈 슬레이터는 [소비문화와 현대성]에서 상품세계의 확장, 새로운 역동적 소비방식, 상업 조직화 등이 그러한 부를 가능하게 했다고 본다. 그러한 바탕 하에 역동적인 근대문화와 예술도 꽃피웠다. 타일러 코웬도 [상업문화 예찬]에서 자본주의는 개인이 예술 활동을 통해 자립할 수 있을 정도로 부를 키워냈다고 본다.
타일러 코웬은 노골적인 약탈이나 우연히 발견한 천연 자원 등 그 밖의 여러 유발적인 요소로 부를 축적한 사회와 자본주의 사회를 구별해야 한다고 본다. 시장경제는 자발적인 교환의 연결망을 이루며, 상업과 산업, 기술 및 시장이라는 진보된 체계를 지탱한다. 이러한 토대 위에서 근대 예술가들은 현대사회의 고유한 특성인 자유와 창조성을 추구했다. 근대사회는 시장 경제를 통해서 전통적인 공동체로부터 분리된 자율적 개인을 낳았지만,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지는 못했다. 물질적 생활의 기본을 이루는 경제, 그리고 그것을 지탱해주는 관료제적 국가가 만든 균열은 경제적인 면을 고려하지 않고서는 극복될 수 없다. 역사상 가장 역동적이었던 근대 내내 그 토양이 만들어졌던 경제적 토대는 부정의 대상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조건이다. 도래해야할 미지의 가치로서 공동체를 앞당기기 위한 문화예술은 많은 이들에게 이익이 될 수 있다는 합리적 설득력을 가져야 하며, 객관적 시장을 활용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참고도판
1. 아프리카의 식수탑 warka water 프로젝트(이에 대한 자세한 설명은 인터넷 참조)
한 건축가가 자신의 재능을 물이 부족한 아프리카 사람들을 위해 사용할 수 없을까를 고민하다가 고안한 식수 탑 warka water. 일교차가 큰 아프리카의 기후를 이용하여 물을 맺히게 하여 식수를 모으는 원리로, 4명이 3시간 정도의 작업으로 만들 수 있다. 대나무 작업에 익숙한 현지인들도 만들 수 있고, 평소에는 그늘로도 사용한다. 건축가 Arturo Vittori는 이를 2012년에 고안하여 인터넷을 통해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여 기금을 모아서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적 아이디어와 소통의 그물망이 공동체에게 유의미한 사회적 생산으로 이어진 경우이다.
2. 노르웨이의 마을에 설치된 태양의 거울
설치작가 마르틴 안드레센은 노르웨이의 남부 지역, 깊은 협곡에 있어 일 년의 반 이상이 햇빛이 들지 않아 어두컴컴한 한 마을에 인공태양을 만들었다. 산꼭대기에 설치한 반사경은 태양의 경로를 따라 미세하게 움직이면서 마을 광장에 빛을 반사한다. 설치비용인 9억 원은 공공기관을 포함하여 다방면의 모금을 통해 모았으며, 그 결과가 불확실한 프로젝트에 대한 공공을 이해를 구하는 과정 자체가 작업의 중요한 부분이 되었다. 한 마을 공동체는 이 작업을 통해 자연이라는 공공재를 공유하게 됐다. 이 인공거울을 통해서 마을 광장에 빛이 들던 날 마을사람들은 축제를 벌였다고 한다.
출전; NJP 살롱 강연록(백남준아트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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