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선영
사막을 횡단하기
이선영(미술평론가)
영천예술창작 스튜디오에서 열리는 이태호의 ‘passage’전에 편재하는 선인장의 이미지에는 사막 같은 세상을 횡단하는 예술/예술가의 모습이 있다. 혹서와 혹한이 교차하는 사막을 횡단하는 자 또한 그 가혹한 환경을 내면화할 것이다. 개체는 환경의 반영이자, 환경에 대한 반동이다. 선인장은 땡볕과 모래바람이 부는 가혹한 기후를 견디기 위해 부드러운 잎을 가시로 변형시켜 부드러운 속내를 보호하고 자기 항상성을 유지한다. 깊이 뿌리를 내리지 않고 횡적으로 뻗어나가며 증식하는 리좀적 구조 또한 가혹한 환경과 관련된다. 리좀이란 그때그때의 상황에 맞게 자신의 촉수를 뻗으며 나아가는 것이다. 그것은 본질적 원칙 보다는 실존적 상황에 따라간다. 사막같은 세상을 횡단하는 자들 또한 딱딱한 외피를 가졌을 것이며, 리좀 같은 방식으로 살아갈 것이다. 리좀은 사막 같은 끝없는 표면의 세계를 횡단, 또는 활주하는 대안적 삶의 방식이다.
‘passage’라는 전시부제는 경계의 넘나 듦, 또는 경계의 가변성을 암시하면서, 끝없는 통과 과정을 강조한다. ‘passage’전의 공간은 덧없는 시간의 흐름들로 가득 차 있다.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고 넘나드는 존재는 강력함과 취약함을 동시에 가진다. 대개 강력함은 취약함의 결과이고, 그 역도 성립된다. 이태호의 유목적 주제는 근 몇 년 사이의 전시에서 일관된 것으로, ‘부유(浮游)’ 전(2011년) ‘길 위의 삶-사보텐’ 전(2014년)이 그 예이다. 2013년에 열린 ‘진화’ 전의 평문은 ‘불확실성의 시대, 노마드적 삶의 알레고리’(장미진)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유목은 우리시대를 설명하는 키워드 중 하나다. 자크 아탈리는 [21세기 사전]에서, 몇 십 년 후에는 적어도 인류의 10분의 1일이 가난하든 부유하든 유목민이 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현대에 뿌리 개념은 점차 희박해지고 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시민이나 소비자 배우자 혹은 노동자가 되듯이 앞으로는 유목민이 되리라는 것이다.
아탈리는 또 다른 책 [미로]에서 유목민의 자질을 언급한다. 그에 의하면 유목민은 거추장스러운 물질적 재산 보다는 경험을 쌓고 영원히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 이러한 해석은 유목민의 근본주의적 이미지 보다는 미래적 이미지를 강조한다. 용접으로 이루어진 이태호의 작품은 완결된 형태감을 가지지만, 그러한 형태들이 또 다른 단위가 되어서 설치 작품이 될 때 ‘passage’가 연출된다. ‘passage’는 고정된 형태 보다는 변모의 과정을 강조하는 현대조각의 주요 개념이다. 평평한 면, 둥그스름한 외곽선, 구멍, 가시, 딱딱함, 빛남 같이 선인장을 이루는 형태 또는 속성은 모듈처럼 조합되면서 다양하게 변모한다. 이태호의 선인장은 변신의 귀재다. 심지어는 의자 같은 모습으로도 변모한다. 환경조각 작품으로도 구현되었던 선인장 의자는 현대인들의 불안한 자리를 은유한다. 선인장은 씨앗이 아닌 잘려진 한 단편에서도 개체로 성장할 수 있으며, 상이한 개체들 간의 접목도 용이하다.
작업장 안마당에는 그렇게 증식된 선인장들이 무성하게 자라고 있다. 공장처럼 생긴 작업실 안에서도 새로운 조합을 기다리는 단위들이 널려있다. 이태호의 13번째 개인전은 선인장 모양으로 용접된 작품 30여점과 선인장의 구성요소들로 이루어진 설치전이다. 금속 선인장에 가시를 표현하기 위해 뚫은 구멍은 마치 별자리처럼 보인다. 그래서 고대인들은 밤하늘의 별을 천구에 뚫린 구멍 사이로 들어온 빛으로 상상하기도 했다. 작가는 선인장의 화분에 북두칠성이나 카시오페아 성좌 등을 새겨놓기도 했다. 천정에 걸린 설치작품에서 선인장 모양의 타원형 7개에는 작은 LED 전구들이 발하는 빛이 북두칠성처럼 빛난다. 별은 하루아침 사이에도 모래 언덕의 형세가 변화무쌍하게 변하는 사막을 통과하는 이들의 나침반이 되어주었을 것이다. 시시각각 변하는 가변적인 지형, 그 미로 같은 공간에서 방황하는 이들은 절대적 기준을 원한다. 종교의 역사는 유일신 사상이 유목민들로부터 탄생했음을 알려준다.
자크 아탈리는 [미로]에서 유대민족이 계율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사막에서 길을 잃고 헤맸기 때문이라고 본다. 사막에서 발생한 이슬람교도 마찬가지다. 유목민은 신을 필요로 했고 그래서 신을 창조했다. 아탈리에 의하면, 신은 유목민의 집합장소이고 그의 시선을 끌어당기는 한편 그를 위안하고 안내해주는 희망이다. 지금은 신 대신에 돈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인지 이태호의 작품에서 성좌는 마치 ‘허의 공간에 부유(浮游)하는 모습’이다. 와이어로 늘어뜨려 높낮이가 다른 ‘별’들은 원래 별자리가 한 평면에 단단히 박혀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일정한 형태로 자리 잡은 별들의 모습은 착시현상일 뿐이다. 그중 어떤 것은 이미 사라져 없을 수도 있다. 수많은 세월이 흐른 후에 누군가는 그 자리에서 다른 별자리를 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시차는 별빛이 지구의 관찰자의 눈에 도달하기까지의 광대한 거리를 생각하게 한다.
광물질적인 외관을 가지는 식물인 선인장은 오랫동안 인내하고 변화했던 시간을 암시한다. 선인장은 별보다는 가까이 있는 존재다. 둥근 별의 ‘가시’는 반사광이 만들어내는 환영이지만 선인장의 가시는 실제다. 멀리 보이는 별/선인장이 광학적이라면, 가까이 있는 선인장/별은 촉각적이다. 그자체가 트라우마를 연상시키는 선인장의 특이한 몸체는 수많은 세월의 진화가 각인된 결과다. 정처 없는 유랑생활에서 갑옷처럼 단단해진 외피는 거친 환경 속에서 살아가는 ‘선인장의 꿈-희망’(작품제목)을 역설적으로 드러낸다. 그래서 이태호의 작품에서 선인장은 ‘정상적인’ 이파리 모양으로 형상화되기도 한다. 환경과의 조화로 활짝 핀 꽃처럼 펼쳐진 잎 새들은 환경과의 불화로 뾰족하게 움츠러든 가시와는 사뭇 다른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미학으로도 고양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미학자는 환경과의 관계를 통해 감정이입적인 자연주의적 예술과 추상을 구별하기도 했다.
‘추상/감정이입’(보링거)의 논리라면, 자연의 가혹함에 문명의 가혹함까지 더해진 현대의 대세는 추상이다. 물론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비롯된 근대적 추상이 아니라, 진공의 공간에서 만들어진 추상, 즉 코드일 것이다. 이미 시작된 추세지만 미래는 코드의 지배가 보편화될 것이고, 몸과 물질은 이러한 코드화에 저항하는 최후의 식민지로 남아 길항작용을 할 것이다. 이태호의 작품에서 가시는 표피를 덮을 뿐 아니라, 그자체가 몸체가 되기도 한다. 철조망으로 만든 선인장이 그것이다. 세상의 사막화가 더 진행되면 안팎의 구별마저도 사라진 철조망 선인장 같은 존재가 나타나지 않을까. 철조망이나 옷걸이, 솔 같은 사물들로 형상화된 경우는 생명을 부동하는 사물과 완전히 일체화시킴으로서 고난으로부터 무감각해지려는 의지를 보여주는 경우다. 금속으로 용접된 선인장은 자신의 결핍을 감추기라도 하듯 화려한 색을 입고 있으며, 가시는 몸통과 대조되는 색깔로 강조되기도 한다.
9개의 패널로 구성된 작품 [Temptation]은 솜으로 뒤덮인 부드러운 평면에 날카로운 핀들이 숨어있다. 따스함과 부드러운 솜은 그 반대의 속성을 내장한다. 이 작품은 선인장에 대한 작가의 느낌을 일련의 패턴으로 확장시킨다. 가시는 선인장의 강점이자 약점이다. 그것은 거친 환경에 대한 대응이지만, 잔뜩 곤두선 형태는 유연하지 못한 모습이다. 예술은 그 상반된 두 가지가 분리될 수 없이 연동되는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 콤플렉스가 없다면 예술 작품은 만들어지지 않는다. 작가란 작품(작업) 외에 콤플렉스를 해소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자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다른 방법이 있다면 그 길로 가면 된다. 그 길이 미로와도 같은 예술이 길이 아님은 분명하다. 선인장은 사막을 연상시키지만 이태호의 작품에서는 모래 한 줌 발견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이 전시장의 벽, 바닥, 천정을 모두 활용하면서 열린 공간으로서의 사막을 떠올리게 한다.
알루미늄 구조의 몸체 안 발광체들은 도시와도 닮았다. 초고층 빌딩으로 가득한 도시처럼 지상으로부터 멀리에 붕 떠있다. 도시는 자연을 사막화하면서 성장해왔다. 그리고 곧 도시 자체도 사막이 되어간다. 장 보드리야르는 [아메리카]에서 사막의 건조함과 불모성을 미국의 도시와 비교한 바 있다. 그는 해가 뜨면 다시 사막으로 돌아가는 라스베가스의 예를 들면서, 아메리카는 꿈도 아니고 실재도 아니라고 본다. 그것은 하나의 극실재(hyperreality)다. 유럽인인 저자의 용법에서 아메리카는 특정 지역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의 시뮬라크럼인 세계의 모든 현대도시를 상징한다. 사막을 횡단하는 이들에게 저 멀리 떠있는 신기루들은 총체적 가상이 지배하는 시대의 증후다. 그러나 붉게 칠해지곤 하는 가시가 있는 이태호의 선인장들은 우리를 꼭 찌르면서 신기루로부터 각성효과를 주는 듯하다. 특히 피모 같은 돌기들은 의외의 연결을 용이하게 하면서 악무한(惡無限)이 아닌 선순환의 통로를 통과하는데 도움을 줄 것이다.
출전; 영천예술창작스튜디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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