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미술작가론_박미진〕
타자의 깊은 우물에서 '감성의 물'을 긷다.
김성호(미술평론가)
작가 박미진이 찾는 것은 타자들의 감성이다. 궁극적으로 찾고자 하는 자신의 감성을 그녀는 타자(들)에게서 발견하려고 한다. 그것의 시작은 자신에게 이미 '충분히 혹은 너무 많이' 존재하는 감성의 유무조차 가늠할 수 없는 혼돈의 상태에서 찾아 나선 '길 찾기'였던 것으로 보인다. 작가에게서 이러한 길 찾기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작된 일이었으나, 아직 그 길 찾기는 완결되지 않은 현재진행형의 일이다. 그녀의 길 찾기의 목표지점, 즉 '감성 찾기'는 그대로이되 그것의 방법론이 새로운 방식으로 끊임없이 변주되고 있기 때문이다.
타자로부터 : 내안의 잠재된 감성을 찾아서
흐르는 색색의 물감덩어리를 얼굴에 뒤집어쓰고 관객을 응시하는(실상은 자신을 응시하는) 퍼포먼스 영상(2008)으로부터, 그것의 무수한 번안처럼 보이는 신체의 부분 이미지를 클로즈업해서 탐구하는 회화들(2008-2010)에 이르기까지 그녀의 이전 작업들은 묵직한 '인간 존재론'과 그것으로부터 유발하는 '감성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였다. 또한, 어디엔가 있을 '미지의 감수성'을 포획하고자 여전사의 복장으로 들판으로 나가 갈대숲을 헤치며 화살을 겨누길 수없이 반복하는 불안하고 처연한 몸부림을 담은 퍼포먼스 영상(2012)으로 그녀의 길 찾기는 지속되어 왔다. 이처럼, 그녀의 회화나 퍼포먼스 영상에서 나타난 일련의 조형언어는 '인간 감성 인식'에 대한 문제제기이자 그것에 대한 처절하기조차 한 탐색의 몸부림이었다. 그녀는 자신 속에 내재해 있는(혹은 있을 것으로 예견되는) '감성'을 왜 타자들로부터 찾고자 하는 것일까?
'나는 매일 사냥을 한다./ 이곳은 비옥한 땅도 풍성한 열매도 모두 메말라버렸다./ 남은 거라곤, 이름 모를 나무 몇 그루와 갈대 뿐...'
그녀가 '타자들의 벌판'으로 나서는 까닭은 '이곳'이라는 '자신의 벌판'에 아무 것도 남아있지 않기(않다고 믿기) 때문이다. 그녀는 현재에 메마른 '자신의 우물'에서 감성의 물을 긷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임을 인정하고 고백함으로써, '타자의 우물'로부터 감성의 물을 길어 올리는 '사냥 여행'을 떠날 명분을 비로소 얻는다. '내 안에 갇힌 나'로부터 탈주하는 역설의 여행을 통해서 그녀는 결국 자신 안에 분명코 잠재하고 있는 감성의 근원적 물줄기를 찾아낼 수 있을 거라 확신한다. 타자를 '새로운 눈'으로 지각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감성을 새로이 발견할 수 있다는 확신 말이다.
박미진, 난 예술가가 아니야, 감성을 좇을 뿐이지,_Acrylic_On_Canvas, 2012.
타아(他我) : 자아를 타자화시키는 몸
그녀가 타자의 우물에서 '감성의 물' 찾기를 구체화하는 방식은 일견 아이러니 그 자체이다. 그녀가 실제로 타자들을 찾아 나서기 보다는 자신의 피폐해진 감성의 골짜기로 되돌아가 재성찰하는 일을 반복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신을 객관화시키고 제 3자화시키는 방식, 즉 '자아를 타자화시키는 방식'을 그녀가 일관되게 취하고 있는 까닭이다. 달리 말해 그녀가 '스스로 자신을 고찰할 때에, 고찰하는 자아의 대상이 되는 나'라고 하는 '타아(他我)'로서 자아를 고찰함으로써, 자신을 타자화시키는 방식을 취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보라. 흘러내리는 물감을 뒤집어쓰고 있는 인물은 다름 아닌 작가 자신으로서, 스스로 캔버스와 같은 회화의 바탕이 됨으로써 물감들의 침입을 주저 없이 받아들이게 되는 것이다. 눈, 입, 배꼽, 가슴 등 부분별 신체 이미지 또한 작가의 몸을 재현한 것이지만, 표면상으로는 인간 보편자의 모습과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그것은 자신의 몸을 도구화삼고 타자화시키는 방법으로 모색하는 '자아의 익명화된 타자화' 즉 '타아'의 정체성 찾기에 다름 아니다. 특히 캔버스 위에 튜브로부터 밀려나오는 물감들을 중첩시켜 레이어를 올려놓은 작품들은 이러한 '자아의 익명화, 타자화, 제3자화'라고 하는 '타아'의 정체성 찾기를 여실히 드러낸다.
피부로서의 몸
피부는 자신을 타자화시키는 몸으로서 '타아'가 현실화되는 자리이다. 그것은 한 인간주체가 세계 혹은 타자들을 받아들이는 '입구'이자 자신의 육체 내면 어디론가 잠입해 있는 감성들을 끄집어내어 몸 밖으로 던져내는 '출구'이기도 하다. 즉 피부란 자아와 타자를 연결하고 매개하는 인터페이스(interface)로서의 몸이자 매개의 공간이다. 그것은 피부 속에 무수히 열린 구멍들을 통해서 자아가 세계와 대면하면서 오감을 펼치는 '일차적인 몸'이다.
그런 면에서 이러한 피부 위에서 살고 있는 눈, 입과 같은 감각기관을 클로즈업해서 그리는 박미진의 최근 회화는 의미심장하기조차 하다. '눈과 입'은 피부의 레이어, 즉 피층(皮層) 안에 존재하는 무수한 구멍들이 특화시킨 '또 다른 구멍'이기 때문이다.
최근작은 이전 작품들에서 나타난 무수한 피부의 구멍들을 하나둘 닫는 대신, 피부의 특화된 존재인 입술만을 화면 위에 살포시 올려놓음으로써, 이전의 거칠고 어두운 '타아(他我)'의 소리로부터 정제되고 청아한 '자아(自我)'의 소리로 변화한다. 그것은 내면의 상흔으로 포효하던 수성(獸性)의 날 것의 소리로부터 내면의 깊은 울림으로부터 울려나오는 정제되고 맑은 악기의 청아한 소리로 변화한 것이기도 하다.
박미진, 난 당신의 감성이 필요해, Acrylic On Canvas, 91 x 91cm, 2012
박미진, 난 예술가가 아니야, 감성을 좇을 뿐이지,_Acrylic_On_Canvas,163 x 163cm,2012.
박미진의 최근작은 이전의 '자아를 타자화시키는 몸'으로부터 탈피하고 비로소 '자아가 자신의 정체성으로 바로 서는 몸'을 실행하고자 한다. 그럼으로써 타자의 깊은 우물에서 '감성의 물'을 긷는 일을 비로소 자아 스스로 실행할 수 있게 만들기에 이른 것이다. 그것은 타자를 커뮤니케이션의 쌍방형 주체로 맞서게 하는 당당한 자아를 구축한다.
그런 까닭일까? 최근작에서 '살포시 오므린 입술' 형상이 타자(들)에게 던지는 다음과 같은 언어적 메시지는 차라리 '유혹의 목소리'처럼 들리기조차 한다.
'당신을 기다리고 있어요./ 난 당신의 감성이 필요해./ 난 예술가가 아니야, 감성을 좇을 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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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을 쓴 김성호는 파리1대학교에서 미학 전공으로 미학예술학 박사를 취득했다. 96미술세계 평론상을 수상하고, 모란미술관 큐레이터, 성남문화재단 전문위원, 2008창원아시아미술제 전시감독, 쿤스트독미술연구소장, 중앙대 겸임교수를 역임했고 현재 2014금강자연미술비엔날레 총감독으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창작의 커뮤니케이션과 미술비평』(2008)외 다수가 있다.
출전 /
김성호, “타자의 깊은 우물에서 ‘감성의 물’을 긷다”, (박미진 작가론)『미술과 비평』, 2013. Spring, pp.106-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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