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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흥분청문화박물관을 아시나요?

편집부


전라남도 고흥의 역사와 문화를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고흥분청문화박물관 (2017.10.31 개관)

대한민국 최대 규모의 분청사기 요지로 국가 지정문화재 사적 제519호로 지정된 곳에 자리하고 있다.


1980년 운대리가마터 발굴을 시작으로 37년간의 장기프로젝트 끝에 고흥분청문화박물관은 

지상 3층 2,943평의 규모로, 5개의 전시관과 더불어 설화와 분청사기를 테마로 한 문화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고흥의 손꼽히는 절경 열가지와 연표가 소개된다.




우리나라 단위 면적당 고인돌 최대 밀집 지역인 고흥
고흥에 고인돌 분포 현황, 전남지방문화재로 지정된 4개의 고인돌군,
고인돌의 양식 3가지가 지도와 사진, 재현 모형으로 전시되고 있다.




삼국시대에 활발한 해상 무역의 관문 역할을 했던 고흥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했다.
일본식 무덤 양식, 일본식 투구 등이 발견되었고, 이를통해 외국의 세력을 가진 사람이 무역을 하면서 
이 지역에 살았음을 짐작할 수 있다.




판옥선 복원품
임진왜란 당시 조선군은 바다에서 연전연승을 거두었다. 이런 승리의 밑바탕에는 조선 수군이 보유한 판옥선과 거북선이 있었다. 판옥선은 배 밑바닥이 평평한 형태로 크고 높아서, 빠르고 거친 물살을 잘 견디며 갑판을 이중으로 구성해 1층에는 격군이 2층 상갑판에는 전투병이 나누어 탑승하여 저투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었다. 또한 판옥선은 높은 선체로 일본군이 뛰어 오르기 어려웠고, 일본 배보다 화력이 월등했다. 다만 일본배보다 이동 속도가 느린 것이 단점이었는데 이를 보완하기 위해 이순신 장군은 거북선으로 적의 대열을 흩뜨린 다음 판옥선에서 화포 공격을 주로 사용하였다.

해상방어의 전략적 요충지 고흥 외구로부터 바닷길을 지키는 중요한 지역이었다.
육군이었던 이순신이 처음 수군으로 내려온 곳이 고흥 발포진이었고, 임진왜란 12년 전이었다.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끌었던 수군으로서의 질약과 전략을 쌓고, 중요한 인간관계를 형성했던게 이곳에서의 시간이었다.




분청사기실에 들어가면 도자의 역사, 가마터가 발견된 곳곳이 표기된 고흥 운대리 지도,
운대리 분청사기의 일곱 가지 장식기법이 전시되어 있었다.

이씨왕조가 조선을 세우고 정권이 교체되면서,
고려왕실을 위해서 최고급 사기를 만들었던 왕실 기술자는 적폐청산으로 내쳐지게 되었다.
이들은 좋은 흙과 뗄감, 물길 3박자를 고루 갖춘 곳을 찾아 떠났는데
가마터 발굴을 통해 고흥 운대리에 많은 기술자들이 자리 잡았음을 알 수 있다.




 아름다웠던 한국의 분청사기실

철저하게 왕권을 위한 도자를 만들었던 기술자들은 왕실을 떠나게되면서
소박하면서도 한국적인 미가 자연스럽게 묻어난 백성들을 위한 도자를 만들기 시작했다.




운대리 가마터가 1/2축소 크기로 재현되어 있었고,
벽쪽으로 분청사기 쪼가리들이 한가득 채워져 있었다.
가마터 주변에서 발굴된 이런 조각들이 천오백 박스나 된다고 한다.

덤벙기법으로 도자에 분장을 하고 있는 모형도 전시되어 있었다.




2층에는 분청을 직접 만들어볼 수 있는 체험학습 공간이 있었다.




박물관 최고의 포토스팟이었던 구간
분청사기 무냥이 프린트 된 하늘하늘한 천이 겹겹이 계속된다.




박물관 중간정원에 자리하고 있는 실제 고인돌

구비구비한 절경 속에 위치한 고흥분청문화박물관에는 
여러 명의 해설사가 상주하고 있어 자세하게 전시를 살필 수 있었다.

박물관 아랫쪽으로 조종현·조정래·김초혜 가족문학관, 분청문화공원, 한옥체험관, 음식점 등이 있다.
볼거리 즐길거리 먹거리를 모두 누릴 수 있었다.






http://buncheong.goheung.go.kr/


글, 사진 - 예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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