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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중업 다이얼로그》 기자간담회,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김정현

한국현대건축의 1세대인 김중업(1922-1988)의 30주기를 맞아 《김중업 다이얼로그》 전이 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중앙홀과 2전시실에서 열린다. 8월 28일 오전 기자간담회가 있었다.



이번 전시는 김형미, 정다영 학예연구관이 담당했다. 사진은 정다영 학예연구관.


국립현대미술관 바르토메우 마리 관장은 이번 전시를 '회화와 조각 등 순수미술의 범주를 넘어 건축 등의 영역까지 한국적 모더니티를 탐색하고자 하는 미술관의 의지가 담긴 전시다.'라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전시는 안양에 위치한 김중업건축박물관과 공동주최로 이루어졌다. 그가 30여 년 동안 설계한 건축물과 관련된 사진과 자료 3,000여 점, 주요 건축을 새롭게 촬영한 사진과 영상 신작으로 전시가 구성되었다.    


메인섹션 4개로 ‘세계성과 지역성’, ‘예술적 사유와 실천’, ‘도시와 욕망’, ‘기억과 재생’이다.




건축가 김중업은 1922년 평양 출생으로 요코하마 고등공업학교 졸업 후 1948년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조교수로 재직했다. 한국전쟁으로 부산에 머물며 예술가들과 활발히 교류하던 그는 1952년 베니스에서 열린 1회 세계예술가회의를 계기로 1952년 10월부터 1955년 12월까지 파리의 르 코르뷔지에의 아틀리에에서 일했다. 그는 귀국 후 서울에 ‘김중업건축연구소’를 설립하고 부산대학교 본관, 주한프랑스대사관 등을 설계하며 모더니즘과 한국의 전통성을 결합한 독창적인 작품을 선보였다.


1971년 광주대단지 필화사건(1971년 8월 10일 광주대단지 주민 5만여 명이 정부의 무계획적인 도시정책과 졸속행정에 반발하여 일으킨 사건으로, 이에 대해 발표한 글로 권위주의 정권의 제재를 받음)을 계기로 파리로 추방을 당하기 직전 발표했던 삼일빌딩은 후기 대표작 중 하나로 빠른 속도로 개발되는 서울의 위상을 상징하는 당시 최고층 건축물이었다. 


한국 사회가 급변하는 상황과 함께 1978년 프랑스에서 한국으로 돌아온 김중업의 건축은 전과 다르게 미래주의적 면모를 띄게 되었다. 하지만 그의 말년 계획안들은 대부분 실현되지 못했고, 88올림픽을 기념하는 ‘세계평화의 문’이 유작으로 남기고 지병으로 타계하였다.








김형미 학예연구관이 전시를 설명하고 있다.




김환기, 이중섭, 윤명로, 이승택, 백금남 등 미술인들과의 교류를 엿볼 수 있는 서신들이 아카이브 서랍장에 들어있다.














전시는 12.16까지. 김중업 생전 유일한 작품집이었던 『건축가의 빛과 그림자』(열화당, 1984)와 짝을 이루는 별도 단행본이 10월 중 출판사 열화당에서 출간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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