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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현대미술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 전

편집부



국립현대미술관으로 내가 향한 이유는 사실 <불확정성의 원리>를 보러 가기 위해서였다. 양자물리학 이론을 전제로 기획된 이 전시는, 수능에 도움이 안 된다고 과학을 일찌감치 포기한 뒤로 늦게나마 이과계열에 기웃거리곤 하던 나에게 안성맞춤인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나의 흥미를 끈 것은 <크지슈토프 보디츠코: 기구, 기념비, 프로젝션>이었다.




폴란드 출신 작가인 보디츠코의 초기작부터 한국사회를 소재로 한 신작 <나의 소원>(2017)까지 그의 전시를 볼 수 있는데, 내가 주목한 것은 1980년 대 이후로 제작된 사회적 문제를 작품에 녹여낸 작품들이었다. 전시에 들어가기 앞서 작가 소개에 ‘공공 예술’, ‘사회 개입적 예술’ 에 대한 소개가 있는데, 왜 이러한 단어를 쓴 것인지 전시에 입장해서야 이해할 수 있었다. 작가 소개 글의 일부분을 인용하며 전시를 소개하겠다.
‘수십 년간 겪은 남북 분단이라는 특수한 정치적 상황으로 인하여, 예술 분야에서 정치∙사회적인 특성에 집중하는 것이 금기시되어 왔는데 이러한 금기가 조금씩 해체되고 있다. 정치적인 예술에 대한 억압으로부터 조금씩 벗어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사회적으로, 예술적으로 적절한 시기에 보디츠코의 예술을 만나게 되었다.’









보디츠코는 각 나라의 참혹한 상황을 인터뷰하고, 그 인터뷰 내용을 빔으로 쏘아 상영하였다. 90년대 작품들은 각 나라의 기념비적인 건물에 그 빔을 쏘는데, 인터뷰하는 인물의 손, 혹은 입같이 그들의 일부분만을 투사하였다. 얼굴 전체를 투사하지 않아도 그 당시에 그들이 느꼈던 절망이나 공포가 여실히 드러났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히로시마 원폭 피해자들을 인터뷰한 <히로시마 프로젝션>(1999)는 와 닿지 않았다. 물론 그들도 피해자이고 전쟁과 관련이 없는 민간인이겠지만, 그들이 우리에게 행한 일을 알면서도 그러한 연민이 다가오게 하기엔 무리가 컸다.
한국인인 나에게 가장 크게 다가온 작품은 위에서도 언급한 <나의 소원>(2017)일 것이다. 2000년대에 접어든 이후로 보디츠코는 각 나라를 대표하는 인물의 동상에 피해자들의 인터뷰를 투사했는데, 우리나라의 그 기념비적인 인물로 백범 김구를 선정하였다.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 글이 생각나며 매우 전율이 이는 순간이었다. 세월호 참사로 아이를 잃은 어머니, 해고노동자로 장기간 공장이 아닌 거리에 섰던 노동자, 새로운 삶을 위해 사선을 건너온 탈북 예술가 등 서로 다른 시련을 겪은 사람들이 모아져 김구 선생의 동상에 투사되었다. 매우 가슴이 아프고 가슴 한 켠이 시큰했다. 이러한 작품을 우연찮게 만날 수 있었던 점이 매우 특별하게 느껴졌다.

- 편집부 남혜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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