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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깔을 볼 수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함께 살아가는 법

제다빈

아트선재센터 <색맹의 섬> : 색깔을 볼 수 있는 이와 그렇지 않은 이가 함께 살아가는 법



세상에 나와 단 한명의 타인이 산다고 가정해보자. 나는 세상의 색깔이 눈에 보이지만 다른 한 사람은 색을 보지 못한다. 과연 색깔이 보이는 나는 색맹인 친구를 비정상 혹은 유전적 결함으로 인한 질병이라고 생각할 수 있을까? 아마 그저 나와 보는 방법이 다를 뿐이라며 별 개의치 않고 도움이 필요한 부분에 있어서는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갈 것이다. 안타깝게도 색깔을 보지 못하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소수가 된다면 이야기는 조금 달라진다. 색을 볼 수 있는 사람들이 색맹의 이웃들을 세상의 아름다움을 보지 못하는 안타까운 사람들이라고 여기기 시작할 것이기 때문이다.


아트선재센터 기획전 <색맹의 섬>은 이러한 다수의 경향성을 극복한 작은 섬의 공동체, 핀지랩에서 영감을 얻어 우리가 나아가야 할 사고의 확장을 제안한다. 핀지랩은 인구의 5%이상이 색맹인 섬으로, 소수의 색맹 인구가 다수의 색각 인구 안에 섞여있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핀지랩의 주민들 모두는 색맹으로 태어난 아이들의 특별한 능력에 대해 인지하고 있으며, 그들이 지각하는 세계의 모습과 필요한 환경에 대해 사회 전체가 이해하고 있다. 나아가, 서로 다르게 보이는 세계의 아름다움에 공감을 표하며 다르게 보이는 세상에 대해 각자가 부여한 질서와 의미를 존중해준다. 색맹의 이웃들은 비정상의 소수가 아닌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타자에 대해 우리가 해낼 수 있는 최선의 공감은 어떤 모양새일까. 결코 완벽히 이해못할 다른 생명들과 공동체를 이루며 살기 위해서는 어떤 공감이 필요할까. <색맹의 섬>은 이 질문들에 대한 탐구를 시각언어로 표현한 작품들을 소환했다.


 
  

우르술라 비에만 & 파울로 타바레스, <산림법>, 2014. 2채널 비디오, 설치, 혼합매체. 38분.


검은 암막커튼 사이로 슬그머니 새어나오는 자연의 소리를 따라 비디오 상영관에 들어가면 푸르도록 빽빽한 자연 속 겸손히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토착민에게 귀를 기울이게 된다. <산림법>은 에콰도르의 아마존 지역에 거주하는 사라야쿠 토착민들의 자연에 대한 가치관을 취재한 비디오 설치작이다. 에콰도르 아마존 지역이 외국기업의 석유 및 광물 추출 작업에 무분별하게 착취되자, 사라야쿠 주민들이 숲과 자연의 사법적 권리를 주장하며 그들에게 맞선다. 자연을 개발을 위한 도구나 수단으로 보는 기업에 반해, 사라야쿠 공동체는 숲과 식물 또한 살아있는 생물으로서 사법적으로 권리를 보장받아야 마땅하다고 여긴다. 그들에게 지구와 자연이란 인간과 공생해야 하는 살아있는 유기체이며, 인간에게 터전과 식량을 비롯해 모든 사물의 재료를 제공해주는 신성한 공간이다. 살아있는 숲에 대한 그들의 가치관은 인간이 아닌 생물들의 법적지위를 공고히 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기업을 상대로 한 재판에서 승소하게 되는 획기적인 판례가 된다. <산림법>은 이것을 가능케 한 사라야쿠 사람들의 가치관을 천천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기록한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같은 장면을 두 개의 다른 앵글로 녹화했다는 점인데, 와이드 앵글로 보여주는 화면은 참 자연스럽다. 좀 더 넓게 보이는 자연 속에서 상대적으로 아주 작아진 인터뷰 대상자의 모습을 보여주거나, 정면을 녹화중인 카메라도 함께 화면에 담는 등의 시도를 통해 하나의 시각의 독점을 배제한다. 이러한 시도들은 자연스러운 우리의 지구를 이해하는 사라야쿠 공동체의 생각을 은유적으로 드러내 평화로운 느낌을 아늑히 전달해준다. 숲을 뚫어서 기반시설과 도로를 만들면 더 편리할 거라는 외부자들의 회유에 씁쓸한 웃음을 지으며 자신들의 행복의 지표는 물리적인 제반시설에 있는 것이 아니라, 고마운 자연 속에서의 풍요로운 영혼의 추구에 있다고 말하는 그들. 고개를 끄덕이며 필자는 노트에 한 사라야쿠 사람의 말을 적어뒀다. “Somos ricos, no pobres.” (우리는 결코 가난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부자입니다.)


상영관을 나와 쏟아지는 빛에 눈이 적응하다보면 공중에 걸려있는 커다란 고목나무가 보인다.


  

임동식, <친구가 권유한 방흥리 할아버지 고목나무 여덟 방향>, 2010. 캔버스에 유화, 100*80cm.


여덟 방향에서 포착한 고목나무를 실제 고목나무의 뚱뚱한 줄기와 같이 느낄 수 있도록 영리하게 전시되어 있다. 서로 다른 방향에서 본 고목나무를 따라 천천히 한바퀴를 도니 나무에 대한 임동식 작가의 애착이 물씬 느껴진다. 임동식은 충남 공주 부근 마을에서 자연과 함께 사는 방법을 터득한 마을 주민들에게 큰 감동을 받아 그들이야말로 자연예술가라 여긴다. 그 중에서도 공주 시내의 한 식당 사장인 우평남이 하나하나 수집한 수백점의 소나무 뿌리들을 발견하고 크게 감명을 받아, 우평남과 진정한 우정을 이어나간다. 임동식은 우평남의 도움을 받아 마을 인근의 자연물들을 탐험하고 그들을 바라볼 시선에 대해 꾸준히 고민한다. 위 작품의 고목나무도 제목이 드러내듯 진정한 친구라 여겼던 우평남이 권유한 자연물이다. 작가는 나무 줄기를 이젤삼아, 흙과 토양을 버팀목 삼아 각기 다른 각도에서 고목나무를 관찰했고, 캔버스에 남긴다. 흥미로운 점은 서로 다른 시간의 지평에서 관찰한 고목나무가 색감과 질감에 있어서 차이가 거의 없다는 점인데, 이것은 뚱뚱한 줄기의 고목나무가 보여주듯 오랜 세월 속 뚝심있게 마을을 지켜온 나무의 영원함을 드러내 주는 듯했다. 세월의 흐름 속에서 굳건한 나무가 고작 그림 그리는 시간 사이 변함이 있을 수 있을까. 


방흥리 고목나무는 모네가 오랜 시간 지독하게 관찰하여 그린 <루앙 대성당>을 떠올리게 했다. 모네는 변화무쌍한 빛의 반사와 그에 따라 달리 보이는 대성당의 모습을 매번 다르게 기록했다. 영원성을 띈 대성당이라는 건축물 또한 찰나적 순간에 있어서는 매번 다르게 보인다는 점에서 그리고 또 그렸던 것이다. 모네는 시시각각 변하는 빛의 묘미를 담고 싶었다. 그런데 임동식은 빛 또한 나이가 지긋히 든 할아버지 고목나무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 순 없다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클라우드 모네, <루앙 대성당> 연작, 1894. 캔버스에 유화. 107×73.5cm, 오르세미술관

 

3층에 오르면 흥미로운 영상들이 각기 다른 화면에 재생되고 있다.



마논 드 보어, <벨라 마이야와 닉: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인가로, 

무엇인가에서 다른 무엇인가로, Part 1>, 2018. 싱글 채널 비디오, 사운드. 26분



마논 드 보어의 <벨라 마이야와 닉: 아무것도 아닌 것에서 무엇인가로, 무엇인가에서 다른 무엇인가로, Part 1> 에서는 저멀리 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흰색의 방에 악기를 가진 세 명의 청소년이 등장한다. 그들은 짜임새 있는 음악을 생산해보자는 목표가 아니라 그저 소리라는 소재를 자유로이 사용하며 어디론가 흘러가는 음악을 만들어낸다. 물론 그 음악은 세 명의 말소리, 웃음소리, 창문을 두드리는 소리 등을 모두 포함한다. 어지로운 촬영시점 변화와 편집으로 떡칠된 요즘의 영상들에 둘러싸여 있다가,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은 듯 보이지만 가슴 깊이 고요한 공명을 주는 행복한 세 청소년들의 영상은 과연 주옥같다. 서로 다른 소리를 조율해나가는 그들의 모습에서 색맹의 섬 주민들의 모습을 언뜻 보였다.


전시를 다 보고 아트선재센터 오른편에서 시작되는 한적한 감고당길을 따라 내려가니 이미 따뜻해진 마음이 더 포근해진다. 어떻게 지구와 공감하며 ‘잘’ 살아갈 수 있을까 터득한 듯한 가득찬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 감고당은 인현황후 민씨가 왕비 지위를 잃고 궁에서 나와 살던 집이다. 숙종과 인현왕후, 장희빈, 그리고 서인과 남인들이 아트선재센터에 들렀다면 좋았을 텐데.


전시는 5월 17일부터 7월 7일까지.

 

전시전경 출처: 아트선재센터



참조

•김해주, 색맹의 섬, The island of the colorblind 전시주제문, 2019.

•이주헌, 50 일간의 유럽 미술관 체험, 학고재, 1995, 159-161.

•“임동식에 대하여”, 나는 어떤 이야기의 일부인가. 2015년 6월8 일 수정, 2019년 6월 16일 접속 

https://fellini.tistory.com/entry/임동식에-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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