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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중미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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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구기호609.1105/김94ㅁ;2021
  • 저자명김현화 지음
  • 출판사한길사
  • 출판년도2021년 1월
  • ISBN9788935668564
  • 가격17,000원

상세정보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영원히 등장하지 않을 것 같은 대규모 집단 문화정치’이자, ‘미술 하나만으로 시대현실을 변혁하고자 한 이례적인 미술운동’이었던, 민중미술을 파고들었다. 민주주의가 침몰하는 혼돈의 정치적 현실에서 싹튼 민중미술의 형성과 전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지니는 의미를 당시 상황과 함께 정리했다. 소집단 운동, 리얼리즘 부활, 노동, 땅, 물질, 통일, 외세, 민중의 원귀 등에 이어 여성이라는 키워드까지 통과하며 민중미술의 한계도 놓치지 않는다. 이제, 민중이 주체가 되는 이상적인 세상을 꿈꾸던 민중미술은 고유명사가 되어 역사에 기록됐다. 그리고 전시장으로, 제도권 미술로 복귀한다. 에필로그에는 소외된 무명의 현장 중심 민중미술가를 뒤로하고 소수의 작가로 대표되는 오늘의 상황까지 담아 그 의미를 다시 생각하게 한다.

책소개

『민중미술』은 1980년대 미술운동으로 시작한 민중미술이 어떤 수식이나 부연설명 없이 ‘민중미술’, ‘Minjung Art’라는 고유명사가 되어 한국 현대미술사에 기록된 과정을 따라간다. 민중미술의 정의는 무엇이고 어떻게 형성되었으며 전개되었는지를 밝히고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풍부한 도판을 곁들여 독자들에게 전달한다.

『현대미술의 여정』(2019, 한길사)을 통해 서양미술사를 예술적‧사회적 관점에서 통찰한 김현화 교수는 ‘민중미술’만큼 예술과 사회가 밀접한 관련을 맺었던 적이 없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민중미술』도 작가나 연도별이 아닌 예술적‧사회적 관점에서 열 개의 키워드로 구분해 설명한다.


① 소집단 결성: 민중이란 이름으로

② 리얼리즘의 부활: 기록, 비판, 현실변혁을 외치다

③ 노동: 사람됨을 위해

④ 땅: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위해

⑤ 물질적 세상: 지옥도地獄圖가 되다

⑥ 통일: 우리 하나됨을 위해

⑦ 반미와 반일: 외세 없는 세상을 꿈꾸며

⑧ 민중의 원귀冤鬼에 바치다

⑨ 민중의 일상과 현장 속으로

⑩ 여성의 현실에 눈뜨다


목차에서 볼 수 있듯이 민중미술은 “1980년대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 분단과 외세 극복을 위한 민족주의 열풍, 사회계급의 평등에 대한 욕구가 만들어낸 시대적 산물이었다”(14-15쪽). 

민중이 주체가 되는 세상이 이상향이 아닌 구체적 현실이 되기 위해서는 민중문화운동이 순수한 문화적 유희 속에 빠져들 수만은 없었다. 이데올로기적 권력투쟁의 성격을 지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민중미술도 군사정권과 격렬하게 대립하면서 군사정권의 전복을 위해 치열하게 투쟁했다. 민중미술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영원히 등장하지 않을 것 같은 대규모 집단 문화정치이자 “미술 하나만으로 시대현실을 변혁하고자 한 이례적인 미술운동이었다”(15쪽).


노동, 휴머니티를 위해


“이 땅의 사람들 하나하나가 주인이라는 민주의식, 억압된 지배와 소외로부터 해방되고 인간다운 삶을 찾으려는 민중의식을 고찰하고자 했다”_86쪽.


낭만적 정취에서 현실비판‧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민중미술가들은 민족을 보존하고 민중을 위한 세상을 건설하기 위한 투쟁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들은 민주화운동이나 노동운동과 연계해 군사정권의 파시즘과 자본주의를 동시에 비판했다. 민중미술에서 노동은 민중성의 획득이었다. “민중미술은 휴머니즘을 불러일으키는 시각적 형상을 통해 현실변혁으로 나아가는 단초를 마련하고자 했다”(86-87쪽). 

민중계급을 간접적으로 체험한 미술가들은 드라마틱한 감성에 젖어 있었다. 그들은 깊은 연민으로 가난하고 고통받는 자들에게 낭만적인 영웅성을 부여하는 양상을 보였다. 가령 박건의 〈출근〉(1985)은 민중미술가들의 소시민에 대한 예리한 관찰과 애정을 볼 수 있지만 “고발성과 투쟁성보다는 정서적으로 정겨운 느낌을 준다. 민중생활의 소박한 초상화라 할 수 있을 정도다”(89쪽). 


〈출근〉과 〈라면 식사〉와 같은 작품들은 척박하고 열악한 현실을 떠올리게 하지만 투쟁성보다는 낭만적인 향수를 먼저 느끼게 한다. “이에 대해 미술가가 노동자적 정서를 직접 체험하지 않고 관념에 근거하여 표현하기 때문이라는 반성도 제기되었다”(92쪽). 홍성담은 초기 작품(〈라면 식사〉)에서 볼 수 있듯 낭만적인 정취를 느끼게 하는 감성을 보여주지만 5‧18민주화운동을 겪은 후 투쟁에 앞장서게 된다. 이처럼 홍성담이 낭만적 정취, 현실비판, 현실변혁을 위한 투쟁으로 발전하는 단계가 바로 “민중미술의 발전단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93쪽). 


자본주의 사회와 탈인간화

민중미술가들은 자본주의 사회가 생산의 극대화만 추구하면서 노동자를 기계 취급하는 것이 인간중심적 사회를 해체하고 탈인간사회로 만든다고 인식했다. 민정기의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1981)는 반복되는 일상에 지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영화를 보는 장면이다. 민중은 대중소비사회 속에서 창조적인 문화의 주체가 되지 못하고 단지 주입되고 있을 뿐이다.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는 사회라는 거대한 집단 속에서 대중이란 이름으로 매몰되어버린 우리 자신의 모습이다.


“이들이 일제히 바라보는 노란색 사각형은 영화 스크린을 은유한다. 영화는 일상에 지친 대중이 찾아낸 가장 대중적인 생활 쾌락이다. 〈영화를 보고 만족한 K씨〉는 휴식조차 획일화되어가는 현대인의 삶을 비유한다. 화면 오른편에는 인간 군상들이 거대한 화면을 향해 모여들고 왼편에는 영화를 본 K씨의 만족을 줄자로 재고 있다. 현대인은 휴식조차 그 결과를 자로 측정해서 만족도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대중은 휴식을 통한 만족감조차 주관적으로 느끼지 못하고 자로 쟀을 때 나타나는 수치를 통해 느껴야 하는 대중소비사회의 노예가 되었다. 그들은 어떤 저항감도 없이 무표정하게 사회의 구조 속에 맞춰진 채 살아가고 있을 뿐이다”_101쪽.


땅,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위해


땅, 민중의 몸

민중미술은 땅을 인간중심적 담론 안에 위치시켰다. 우리 민족은 오랜 세월 동안 마치 혈연처럼 땅에 집착했다. 땅의 상처는 곧 민중의 상처이고 민중미술에서 땅의 훼손은 민중학살을 은유한다. 

임옥상은 풀 한 포기 없이 붉게 물든 황무지인 〈땅-붉은 땅〉(1978)을 제작한 후 “누가 우리의 땅을 이렇게 만들었는가”(111쪽)라고 통탄했다. 임옥상에게 ‘붉은 땅’은 1980년 5월의 따뜻한 봄날 정의와 자유를 위해 투쟁하다 피투성이가 된 민중이 흘린 피로 물든 국토를 상징한다. 〈땅 IV〉(1980)은 5‧18민주화운동으로 상처입은 땅을 은유한다.  


“광주는 어떤 말도 허락하지 않았다. …너무나 많은 아픔과 상처로 뒤범벅된 우리의 국토는 어딜 가나 그 핏빛 자국으로 얼룩져 있다. 어디 국토만 그러한가. 사람들의 몸과 가슴속 저 깊은 곳은 또 어떤가”_112쪽.

임옥상은 〈땅〉연작뿐 아니라 〈나무〉〈불〉 연작을 통해 5‧18민주화운동으로 상처받고 훼손된 땅에 바치는 제의적 경건함을 보여주었다. 동시에 붉은 피를 흘리며 죽어간 민중을 추모하고 그 땅을 지키지 못한 후손의 속죄의식을 함축한다. “임옥상의 회화는 억압으로 고통받고 원통하게 죽은 민중을 위한 제의로써 질기게 생존해온 민중의 역사를 말한다. 이렇게 그의 회화는 역사화가 되기도 하는 것이다”(118쪽).


“예술은 인류의 기억이고 역사의 진실을 가시화한다”_119쪽.


제주도 출신 강요배는 제주도뿐 아니라 우리 현대사의 비극적 역사인 제주 4‧3사건을 주제로 삼았다. 강요배는 1980년대 말부터 제주 4‧3사건을 직접 체험한 사람들이 구술한 증언을 토대로 〈4‧3〉연작을 제작했다. 제주 4‧3사건의 비극을 극대화한 작품으로는 〈젖먹이〉(2007)가 있다. 강요배는 아래의 증언을 토대로 〈젖먹이〉를 그렸다.


“우리 마을 북촌리에 대학살이 벌어지던 그날, …네댓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중엔 한 부인이 있었는데 업혀 있던 아기가 그 죽은 어머니 위에 엎어져 젖을 빨더군요. 그날 그곳에 있었던 북촌리 사람들은 그 장면을 잊지 못할 겁니다”_120쪽.


이 그림의 절제된 감정표현은 오히려 더 큰 울림을 준다.

강요배의 민중 역사화는 끝난 과거가 아니라 현재의 민중적 삶과 연결된다. 강요배는 이 땅 위에서 살다간 민중의 삶 자체를 가시화하기 위해 노력했으며 회화와 민중이 동등한 계급임을 표현하는 예술을 추구했다. 

“강요배는 민중의 삶과 함께하는 진정한 민중미술을 실현하기 위해 작품을 전시할 때도 액자를 사용하지 않았다”(122쪽). 벽에 못이나 핀으로 그림을 고정해 순수미술의 귀족성과 권위를 버리고자 했다. 그림을 알림장이나 벽보처럼 붙여 대중과 거리감 없이 진정으로 친문하게 소통하는 회화를 추구했다. “그에게 회화는 민중과 동등한 위치에 있다. 그는 소용돌이치는 역사 속에서 억척스럽고 질긴 민중의 삶을 탄탄한 서술적 구조로 표현했다”(122쪽).


땅, 산업화에 대한 저항

민중미술은 이분법적인 잣대로 농촌을 선善으로, 도시와 선업화는 악惡으로 규정했다. 민중미술가들은 가난한 농촌에는 무한한 애정을 보였고 산업화된 도시에는 증오의 감정을 드러냈다. “민중미술이 자본주의와 산업화에 반감을 보이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풍요로운 문화적 진보와 경제적 이윤이 도시의 기득권층에 쏠리는 사회적‧경제적 현상에 대한 거부감 때문이었다”(125쪽).


〈풍요로운 생활을 창조하는-럭키 모노륨〉(1981)은 당시 대부분 아파트에서 유행했던 럭키 모노륨이 깔린 도시 중산층의 거실과 논에서 모를 심는 농민을 대립시켜 도시와 농촌의 갈등과 대립구조를 가시화한다. 

“도시의 거실은 밝은 색채를 사용해 직선적이고 매끄러운 붓질로 표현하면서 문명의 혜택과 안락함을 드러낸다. 반면 모를 심는 아낙네의 뒷모습은 어두운 색채를 사용해 거칠고 울퉁불퉁하며 무작위적인 붓질로 문화적‧경제적으로 소외된 고달픔을 강조한다”(125쪽).

이종구는 1980년대 초 쌀부대 종이에 아버지의 초상을 그리면서 아버지의 땅, 민족의 땅인 농촌이 당하는 수모와 상처를 환기했다. 이종구의 아버지는 일제강점기에 태어나 평생을 가난과 싸우며 자식을 공부시키는 것을 숙명처럼 여긴 전형적인 우리 민중의 한 사람이었다. 

이종구의 〈아버지〉연작은 작가 개인의 아버지 초상이 아니라 농촌의 주인이자 농민의 표상이며 우리 민족의 지표로서 보편적인 ‘아버지’상이다. “이종구는 ‘아버지’를 민중의 전형이자 객관적 기호로 제시했다”(141쪽).


반미와 반일


외세 없는 세상을 꿈꾸며

민중미술은 외세 침입에 저항하고 민족의 통일을 추구하기 위해 ‘반미’와 ‘반일’을 유기적으로 연결시켰다. 반미와 반일은 미국을 위시한 주변 강대국의 밀착된 이해관계 속에서 민족의 운명이 좌지우지될 수 있다는 위기감에서 촉발했으며 식민지성의 극복이라는 과제를 던진다.

손장섭은 〈조선총독부〉(1984)에서 민족수탈의 역사를 다룬다. 그림에는 일장기가 거의 화면의 절반을 차지할 정도로 크게 그려져 있다. 화면 왼쪽에는 조선총독부 건물이 있고 더 멀리 독립문도 보인다. 화면 전경에 숫자가 적힌 경계선은 남북한의 분단 상황을 떠올리게 한다. 또한, 일장기 안에 있는 붉은 원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민중의 모습은 우리의 역사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수탈의 연속이었음을 알린다.


“일장기 안에 있는 붉은 원의 안쪽과 바깥쪽에서 신음하며 죽어가는 민중의 모습은 우리의 역사가 일제강점기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침략과 수탈의 연속이었음을 알린다”_194쪽.


민중미술에서 반미와 반일은 주권찬탈이라는 동일한 맥락에서 다루어진다. 임옥상은 〈일월도 I〉(1982)에서는 미국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이 조선왕조의 〈일월곤륜도〉를 유린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이는 왕조의 영원한 안녕을 기원하는 병풍화다. 임옥상은 ‘일월곤륜도’를 조선왕조의 세계관이 그대로 투영된 빼어난 병풍장식화로 여겼다. “그것이 디즈니 만화 주인공들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는 것이다”(199-200쪽). 미국 문화에 침수당하는 한국의 전통, 더 나아가 모욕당하는 한국의 자주성과 주체성에 대한 애통함을 시사한다. 


“여기에 서양만화의 주인공들을 불러들이면서 나는 너무나도 슬펐다. 이 땅이, 이 해 돋는 나라가 서구인들의 유희장이 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_200쪽.


민중의 일상과 현장 속으로


전시장에서 현장으로

민중미술은 초기에는 현실비판에 주력하면서 전시장 활동을 전개했지만 “후기로 갈수록 전시장에 갇혀서 바깥세상을 비판하는 소극성에서 벗어나 직접 세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는 자성론이 제기되었다”(241쪽). “전국의 각 지역에서도 자생적으로 현장 중심의 민중미술운동 조직인 ‘광주전남미술공동체’, ‘충북민족미술인협의회’, ‘부산미술운동연구소’, ‘전주겨레미술연구소’, ‘수원미술인협의회’, ‘대구경북민족미술인협의회’, ‘탐라미술인협의회’ 등이 출범했다”(242쪽). 이러한 단체들은 서로 연대해 활동성을 보다 강화해나갔다. 


민중과 소통하기 위한 매체로 가장 중요하게 여긴 것은 벽화였다. 전시장이 봉쇄되고, 거리로 내몰린 청년작가들은 전시장 밖의 미술, 이른바 거리미술인 벽화에 주목했다. 

“미술관 울타리에서 벗어나 거리나 골목 그리고 광장에서 민중과 직접 소통하는 벽화가 민중미술의 주요한 매체가 되었다. 벽화는 평면적인 매체에 그림을 그렸다는 점에서 미술의 원초적이고 전통적인 기능에 충실한 장르인 동시에 미술관이라는 공간의 한계에서 벗어나 불특정 다수에게 항상 보여줄 수 있었다”(256쪽).


“민중미술의 벽화는 실제로 거주하는 공간에서 누구나 아무런 제약 없이 볼 수 있고 메시지를 쉽게 이해시키는 장점도 있어 민족과 민중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민중성을 함양하는 매체로서 적합했다”_258쪽.


걸개그림

민중미술운동사에서 걸개그림의 최절정은 통일에 대한 염원을 담은 〈민족해방운동사〉(1989)였다. 1988년 12월 ‘민족민중미술운동전국연합 건설준비위원회’는 지역 간 연대 창작물인 걸개그림 〈민족해방운동사〉 제작을 결정했다. 

서울의 ‘가는패’, 광주의 ‘시각매체연구소’, 전주의 ‘겨레미술연구소’, 대구의 ‘민중문화연구회 미술분과’, 부산의 ‘미술운동연구소’ 등이 참여했다. 총 11폭으로 한 폭의 크기가 세로 2.6미터, 가로 7미터, 총길이 77미터에 달하는 걸개그림이다. 주제는 갑오농민전쟁부터 조국통일운동에 이르기까지 역사의 대하 드라마였다. 

민중미술가들은 노동조합과 연계해 파업, 임금투쟁 등의 노동운동을 거들어주거나 노동자들이 파업하는 동안 미술학교를 열어 노동자들과 함께 벽화와 걸개그림 등을 제작했다. 이런 작품들은 현장에서 대중의 성취욕을 드높이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했기 때문에 조형성이나 미적 가치를 따지기보다 대중과의 소통을 더 강조했다.


“〈민족해방운동사〉는 첫째 폭 ‘갑오농민전쟁’(전주겨레미술연구소), 둘째 폭 ‘3・1민족 해방운동’, 셋째 폭 ‘항일무장투쟁’(청년미술공동체 작), 넷째 폭 ‘해방과 대구 시월’, 다섯째 폭 ‘4・3과 여순 사건, 6・25’(대구 민중문화연구회 미술분과와 대구지역 미술대학생 모임), 여섯째 폭 ‘반공정권과 4월 혁명’, 일곱째 폭 ‘민주화 운동과 부마항쟁’(부산미술운동연구소. 부산미술대학생연합 준비모임 작), 여덟째 폭 ‘광주민중항쟁’(광주시각매체연구소 작), 아홉째 폭 ‘민중생존권 투쟁과 6월 항쟁’(전남광주지역미술패연합 작), 열 번째 폭 ‘민족자주화 운동’(청년미술공동체 작), 열한 번째 폭 ‘조국통일운동’(서울, ‘가는패’)으로 구성되어 있다”_264쪽.


민중미술의 현장 활동은 지배계급의 억압에 항거하고 민중 생존과 존엄성을 확인하는 대중선전과 투쟁을 위한 실천적 도구로서 현실변혁의 절박함을 널리 알려 군사독재 정권이 종식되는 데 대단한 역할을 했다. 그러나 민중미술의 현장 활동이 예술성을 추구하는 미술로서의 기본적 가치를 소홀히 했다는 비판이 꾸준히 제기되었다. 군사정권이 물러나고 민주주의가 실현되자 사회는 민중미술의 현장활동을 요구하지 않게 되었고 투쟁성이 예술성보다 앞섰던 현장 활동가들의 진로도 불투명하게 되었다.

민중미술운동은 민족적 정체성과 민중의식을 성취해내는 큰 성과를 거두었고, 또한 작품의 창작에만 국한되었던 전통적이고 일반적인 미술의 역할을 거부하며 미술의 체제와 제도의 본질적 구조를 변화시켰다. 유홍준은 민중미술을 “우리 시대의 삶과 정신 그리고 예술혼을 진정으로 드러내기 위한 예술”(296쪽)이라고 말했다.


지은이 | 김현화

프랑스 파리 제1대학에서 미술사학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2021년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대학원 미술사학과, 미술대학 회화과 교수로 미술대학 학장, 숙명박물관 관장을 역임했다. 서양미술사학회 회장, 한국연구재단 문화융복합단 책임전문위원,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 운영위원 등으로 활동했으며 현재 정부서울청사 미술품 전시, 운영 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20세기 미술사: 추상미술의 창조와 발전』(한길아트) 『성서 미술을 만나다』(한길사) 『현대 미술의 여정』(한길사) 등이 있고, 주요 논문으로는 『하이퍼리얼리즘, 20세기의 눈속임(Trompe-l’oeil): “나는 너의 거울이 될 거야”」 「민중미술: 「원시(原始)를 꿈꾸다」, 바타이유(G. Bataille)와 루카치(G. Lukacs) 사상으로 접목 고찰」등이 있다.


목차


1980년대, 문화정치의 시대

프롤로그


1 소집단 결성

민중이란 이름으로


2 리얼리즘의 부활

기록, 비판, 현실변혁을 외치다


3 노동

사람됨을 위해


4 땅

자연과 인간의 합일을 위해


5 물질적 세상

지옥도地獄圖가 되다


6 통일

우리 하나됨을 위해


7 반미와 반일

외세 없는 세상을 꿈꾸며


8 민중의 원귀冤鬼에 바치다


9 민중의 일상과 현장 속으로


10 여성의 현실에 눈뜨다


전시장 복귀와 제도권 미술로의 진입

에필로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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