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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 포인트 그림감상 : 원 포인트로 시작하는 초간단 그림감상

  • 청구기호650.4/정381ㅇ;2019
  • 저자명정민영 지음
  • 출판사아트북스
  • 출판년도2019년 12월
  • ISBN9788961963664
  • 가격18,000원

상세정보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 중 한두 가지에 집중 공략하는 그림 감상법을 전한다. 작품 전체의 느낌은 취하돼, ‘원 포인트’를 중심으로 느리게 곱씹는 것이다. 그렇게 탐닉한 내용은 인간, 자연물, 물건들, 그림과 관련한 요소로 나누어 구성됐다. 저자는 또 ‘원 포인트’로 감상한 것을 중심으로 나만의 경험•지식을 더해 글로 이어가길 제안한다.

책소개

감상 포인트를 알면, 그림이 웃는다!

원 포인트로 즐기는 서양 회화와 우리 옛 그림, 우리 근현대미술과 동시대 미술 60점


“아니, 뭐 볼게 있다고 여지껏 있는 거야. 이 따위가 무슨 예술이야, 죄다 사기지”(유홍준, 『정직한 관객』에서).

현대미술, 그것도 설치미술이라는 특정 장르의 잘난 인생들에게 일갈한 말이지만, 어디 이 장르에만 해당될까? 이 정직한 관객의 말은 ‘미술은 어렵다’에서 시작한다. 이 어렵다는 미술을 감상하는 방법이 있기는 있는 것일까?

그렇다면, 이런 그림감상은 어떨까?

미술책 애독자이자 미술 애호가로서 그간 ‘미술과 동행하는 삶’을 추구해 온 지은이가 그림 앞에서 난감해했던 관람자에게 색다른 그림 감상법 하나를 권한다. 바로 원 포인트 그림감상이다.


원 포인트 그림감상이란?

지은이의 전략은 이렇다.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는 다양하다. 그중 소재면 소재, 물성이면 물성, 인물이면 인물, 사물이면 사물, 어느 하나의 요소에 집중하여 공략하는 그림감상법이다. 마치 영화 「주유소 습격사건」에서 배우 유오성(무대포 역)이 “난 한 놈만 팬다”라고 외치며 한 목표물(?)에만 돌진했듯이, ‘그림의 한 요소 패기’ 전략이다. 그렇게 하면 작품 전체 혹은 작가의 의도를 꿸 수 있다는 이야기다.


원 포인트 그림감상은 빨리 보고 많이 보는 수박 겉핥기 식의 ‘패스트 감상’이 아니라 천천히 보고 찬찬히 살펴보는 ‘슬로감상’이라 할 수 있다. 대상을 좀 더 오래 관찰하고 작품을 곱씹어 보면 스스로 마음으로 감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고, 그러면 작품에 보다 밀착하는 ‘깊은 감상’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그림을 감상하고 사유하는 시간을 위해 감상자와 그림 사이에 여백을 두자는 말이다. 그림은 화가의 마음이자 화가가 포착한 세상의 마음이기에, 화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된다.


지은이가 제안하는 그림감상은 작품을 구성하는 모든 조형요소를 제치고 한두 가지 요소에 집중하기 전략이다. 다시 말해 작품 속에 내재되어 있는 조형요소 중 한두 요소를 파고드는 감상법이다. 하지만 전체적인 느낌을 잃어버려선 안 된다. 작품은 관람자의 눈을 통해 감상당함으로써 비로소 생명을 얻기 때문이다. 감상하는 행위를 배제하면 작품은 생명을 잃은 하나의 사물에 불과하다. 감상은 작품에 관람자의 마음을 주고 전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감상 포인트는 직접적•간접적 요소로 나누어 찾을 수 있겠다. 직접적인 요소로는 소재•구성•색상 등이 있고, 간접적인 요소로는 서명•낙관•작품명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초보자가 할 수 있는 최적의 감상 포인트는 ‘원 포인트 소재’에서 찾는 것이다. 감상 포인트를 소재에서 찾아 나름의 요령이 생기면 그때는 자기 방식으로 감상하면 된다. 물론 감상에 정답이란 없다.


원 포인트로 공략하는 초간단 그림감상

그림감상에서 중요한 것은 관람자 저마다의 감상이다. 작품에 대한 선지식이나 선입견 없이 오로지 관람자의 눈이나 마음으로 바라볼 때, 또는 관람자의 마음속에서 영적인 힘이 발휘할 때 작품은 비로소 가치를 지닌다. 다시 말해 예술작품의 가치는 관람자의 시선에 달려 있다는 말이다. 이에 더해 지은이는 구글링을 적극 활용하여 관련 정보를 감상의 재료로 활용하라고 제안한다. 여기에서 감상은 ‘검색하기’가 아니라 ‘사색하기’가 되겠다.


책을 읽어내려 가면서 지은이가 제시한 그림감상의 원 포인트를 작품에서 숨은 그림을 찾듯이 찾아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품에 따라 원 포인트 소재가 눈에 확 띄기도 하지만 눈을 두어 번 씻어야만 보이는 경우도 있다. 원 포인트 소재가 중의적 표현으로 보이기도 하고, 또 다른 경우 일필휘지의 붓놀림으로 보이기도 하여 쉽사리 찾을 수 없는 작품도 있다. 그런 포인트를 놓치지 않으면 그림감상하는 재미가 배가된다.


지은이는 또한 원 포인트 그림감상에서 그치지 말고, 원 포인트 글쓰기로 나아가길 제안한다. 작품을 감상하면서 포인트를 중심으로 메모를 한 후 거기에 자신만의 경험과 지식이 보태지고 더해져 그것이 글로, 책으로 이어지길 바란다는 이야기다. 세상에 없는, 있지만 크게 주목하지 않은 부분에 관심을 갖고, 작품과 자신의 생을 깊고 넓게 해주는 일, 그것이 ‘원 포인트 그림감상’이자 ‘원 포인트 글쓰기’다.


60개의 감상 포인트로 본 60점의 그림 이야기

본문은 크게 4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장 ‘인간에 눈길을 보내다’에서는 인간 자체인 사미승, 아이, 선비, 남자의 뒤태 등을, 인간의 신체 일부를 이루는 손, 새끼발가락, 손동작, 수염 등을, 인간의 행위나 감정을 드러내는 술주정, 눈빛 등을 다룬다.

살아생전 단 1점의 그림밖에 팔지 못한 예술가, 동생 테오를 제외한 가족에게조차 외면당했던 불우한 빈센트 반 고흐. 그의 데생 작품 「슬픔」에서 지은이는 그림감상의 원 포인트로 빈센트의 마지막 연인이었던 시엔의 새끼발가락을 꼽았다. 화가와 모델로 만나 연인으로 발전한 빈센트와 시엔. 빈센트의 모델을 서 주던 당시 시엔은 서른세 살의 나이에 남자에게 버림받고도 모자라 어린 딸 외에 태중에 아이까지 있었다. 빈센트는 시엔을 진심 사랑했지만 집안의 반대에 무릎을 꿇고 만다. 그래서 그림이 더 슬퍼 보인다.


그녀의 둥근 배와 부푼 젖가슴, 그리고 고개 숙인 슬픔에는 이런 사연이 있다. 슬픔을 강조하는 신체 부위는 또 있다. 그녀의 왼쪽 새끼발가락이다. 새끼발가락의 표정이 애처롭다. 생기다가 만 것 같다. 겨우 새끼발가락임을 증명해 주는 꼴이다. 이 새끼발가락에 그녀의 생이 압축되어 있는 것만 같다. 새끼발가락이 못생겨서 더 슬픈 여자! 그렇다. 내게 그녀는 새끼발가락 때문에 더 슬픈 여자다. (21쪽)


단원 김홍도, 혜원 신윤복과 더불어 조선 후기의 3대 풍속 화가로 꼽히는 긍재 김득신의 작품 중에서 「밀희투전」, 「강변회음도」, 「파적도」의 세 점을 소개하였다. 은밀히 투전을 즐기는 사람들을 묘사한 「밀희투전」, 우리 선조의 피서법 중 하나인 천렵을 실감나게 표현한 「강변회음도」, 도둑고양이가 병아리를 물고 달아나는 한낮의 소동을 그린 「파적도」에서는 각각 감상 포인트로, 투전꾼의 손동작, 나무 뒤에 숨어 있는 아이, 악역을 맡은 고양이에 두었다.


「밀희투전」은 투전판의 미묘한 심리 상태를 보여 준다. 방 안에는 긴장감이 감돈다. 판돈이 꽤 걸렸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투전꾼들의 심리가 두드러진 신체 부위는 어디일까? 바로 뒤쪽 사내들의 손동작이다. 얼굴이 불콰한 남자는 시선이 왼쪽을 향해 있지만 투전 쪽을 뭉쳐 쥔 두 손은 오른쪽 아래로 가 있다. 자기 쪽을 숨긴 채 상대방에게 신경을 쓰는 중이다. (37쪽)


그가 지금 보고 있는 사람은 오른쪽의 어른이다. 누구일까? 아버지와 아들일까?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일까? 아이는 이 어른 때문에 나무 뒤에서 눈치만 보고 있다. 그런데 이런 아이를 보고 있는 시선이 하나 있다. 역시 뒷모습으로 앉아 있는 맨 앞쪽의 아이다. 숨어 있는 아이와 동떨어진 어른, 그리고 뒷모습의 아이. 이들의 묘한 관계가 그림에 재미를 더한다. (67쪽)


그림의 초점은 고양이에 모아진다. 마루 위에서 고양이를 향해 몸을 날린 영감과 그런 영감을 붙잡으려는 아낙, 그리고 마당에서 달려드는 암탉의 방향이 달아나는 고양이를 향하고 있다. (중략) 이때 주목할 것은 고양이 대가리의 방향이다. 병아리를 입에 문 고양이의 몸은 왼쪽으로 달아나고 있지만 대가리는 오른쪽을 향하고 있다. 달려드는 영감과 닭 쪽으로 시선을 두고 있는 것이다. 달아나는 방향과 시선의 방향이 서로 어긋난다. 여기서 그림의 재미는 배가된다. (180∼181쪽)


유영국•박고석•이중섭•장욱진•한묵•김영주 등과 동시대에 활동했지만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은 한국 추상화 1세대 작가, 극재 정점식. 그의 작품 「즉흥」에서 지은이가 제시한 원 포인트 ‘누드’는 쉽게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정점식이 추상화가로서 여성 누드 드로잉을 많이 남겼다는 사실을 알고 있더라도 말이다. 그야말로 숨은그림찾기다.


네 개의 넓고 빠른 붓질이 화면을 구성하는 가운데 황색의 작은 붓 터치가 변화를 주었다. 숨은그림찾기 하듯이 자세히 보면 누드를 찾을 수 있다. 아래쪽의 큼직한 붓질 속에 표현된 다리와 엉덩이, 몸체 등의 부분적 실루엣이 누드를 암시한다. 그런데 이 작품은 완전 추상으로 이행하기 전의 작품 같다. (76쪽)


민중을 소재로 나무판을 깎고, 다듬고, 파고, 문지르며 치열하게 작품활동을 하다가 마흔한 살의 나이에 요절한 한국 목판화의 보통명사로 일컬어지는 오윤. 굵은 선과 흑백의 대비가 강렬한 그의 목판화 「애비와 아들」은 아버지의 손이 감상 포인트다. 부성애를 유감없이 표현한 지점에서는 전율이 느껴진다.


아버지와 아들이 같은 방향을 주시하고 있다. (중략) 여기서 우리는 불안한 상황에서 자식을 지키려는 아버지의 강한 부성애와 만난다. 아버지는 뜻밖의 광경인 듯 입이 벌어져 있지만, 노동으로 단련된 단단한 몸집과 마디 굵은 손으로 닥쳐올 공포에 맞설 준비가 되어 있다. 아들의 어깨를 감싸쥔 (중략) 굵은 손에서 자식을 보호하려는 아버지의 본능을 감지하게 된다. 단지 아버지의 손이 어깨를 부여잡았을 뿐인데, 든든하다. (86쪽)


2장 ‘자연에 마음을 주다’에서는 하늘•보름달•바위•소나무•대나무•나뭇가지•폭포소리 등의 자연물과 개•고양이•제비 등의 동물을 다룬다.

신토불이 인상주의 화가 오지호의 대표작 「남향집」에서는 고목의 그림자에 주목한다. 그것도 그림자는 검은색이라는 일반적인 인식에 딴죽을 걸듯이 표현한 보라색의 그림자에 감상 포인트를 주었다. 오지호 활동 당시 이 땅에 들어온 인상주의 화풍은 프랑스에서 직수입한 것이 아닌 일본을 통해 에돌아 들어온 일본화한 인상주의였다. 하지만 오지호가 개척한 토종 인상주의 화풍은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따사롭다.


여기에 추임새를 넣는 소재가 고목의 그림자다. 초가지붕과 담장에 드리워진 그림자는 보라색으로 생동한다. 고목보다 그림자가 더 매혹적이다. 오지호는 색을 칠하되 붓 터치를 짧게 끊어가면서 리드미컬하게 처리했다. 잔잔한 터치들이 숨 쉬듯이 꿈틀거리는 것만 같다. 만약 그림자를 어둡게 처리했다면 어떠했을까? 지금과 같은 따사로운 맛을 내지는 못했을 것이다. (115쪽)


김홍도의 「소림명월도」와 김두량의 「월야산수도」에서는 그림감상 포인트로 달을 삼았다. 「소림명월도」에서는 달이 성긴 숲을 어루만지며 나무에 가려져 있는 반면, 「월야산수도」에서는 초겨울 적막한 밤에 깊이를 더하며 두둥실 떠 있다.


숲에 앙상한 가지만 남은 잡목들이 듬성듬성 서 있다. 나무 뒤에 둥근 달이 떠 있다. 한쪽에서는 개울물이 졸졸거린다. (122쪽) 가을 달밤이 주는 정취를 은은하게 우려낸다. 아무렇게나 자란 잡목이 적막하면서도 쓸쓸하다. 가난한 숲이다. (124쪽)


‘분위기 메이커’는 보름달이다. 만약 보름달이 없었다면, 이 그림은 대낮의 산속 풍경이라고 해도 무방하다. 보름달 때문에 달빛이 교교한 밤 풍경이 되었다. 그림의 중핵은 보름달이다. (149쪽)


흔히 화가는 화풍, 즉 그림 스타일로 말한다. 그 스타일을 혼이라고 말할 수도 있겠다. 쇠라는 점묘법으로, 박수근은 마티에르로, 김창렬은 물방울로, 피터르 몬드리안은 기하학적 추상으로 말한다. 몬드리안의 「붉은 나무」에서는 나뭇가지에 주목한다. 「붉은 나무」는 몬드리안이 구상화에서 벗어나 기하학적 추상화로 나아가는 모색기의 그림으로, 원석 같은 그림이다.


야수파적인 채색으로, 나무의 형태가 비교적 자세히 그려져 있다. 거미줄처럼 얽힌 나뭇가지가 춤 을 추는 듯하다. 땅의 기운이 나무 둥치를 타고 가지로 뻗어간다.

나뭇가지를 통해, 자연계에 결여된 정확하고 기계적인 질서를 창조하기 위한 조형적인 탐색이다. 수직과 수평선으로 변하기 전, 나뭇가지가 연출하는 조형미가 역동적이다.

나뭇가지가 문어다리처럼 엉켜서 꿈틀거리는 듯하다. 지금 나무는 자유로워지기 위해 부단히 외형을 버리는 중이다. (135쪽)


술에 미쳐 불우하게 살다 간 최북. 애꾸눈에 몸집마저 왜소하고 거기에 더해 성격마저 까칠한 그가 의지한 술은 화가적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마중물에 다름 아니었다. 그의 그림 「풍설야귀인도」에서는 스스로를 개와 같은 인생에 비유한 자신과 평생 술기운에 의지해 그림을 그려온 그의 체취가 느껴진다.


개의 크기가 보통이 아니다. 덩치가 사람만하다. 디테일까지 살아 있다. 네 다리며 꼬리, 짖는 주둥이 등을 실감나게 그렸다. 사실성 면에서 개가 행인들보다 더 생생하다. 개를 그만큼 신경 써서 그렸다는 뜻이다. 차디찬 세상에서 맨몸으로 컹컹 짖고 있는 폼이 천생 그를 닮았다. (171쪽) 개가 서 있는 곳을 보면 집 ‘안’이 아니라 ‘밖’이다. 그 위치가, 중인의 신분으로 양반들과 시서화를 논하고 교유하면서도 자신을 아웃사이더의 자리에 두었던 최북을 연상케 한다. (172쪽)


3장 ‘옷과 생활도구를 음미하다’에서는 셔츠•옷고름•색동고무신•파이프•화병•괭이 등의 각종 기물을 다룬다.

세잔의 전시를 기획하고 수많은 화가의 작품을 출판하기도 한 화상 앙브루아즈 볼라르는 또한 세상에서 가장 많은 화가들이 그의 초상화를 남긴 행운아이기도 하다. 세잔 또한 그에게 초상화를 그려주었다. 이름하여 「볼라르의 초상」. 그림은 세잔의 괴팍한 성격으로 말라빠진 바게트빵에 가깝다. 왜? 세잔은 그림을 그리다가 화가 나면 종종 그림에 화풀이를 해대는 탓에 모델을 선 볼라르는 최대한 이 초상화를 위해 100번 하고도 15번을 정물처럼 가만히 앉아 있을 수밖에 없었다. 볼라르가 입고 있는 희디흰 셔츠에 주목하자. 화가와 모델 간의 관계를 짐작케 한다.


(볼라르는) 용기를 내어 모델을 자청했다. 흰 셔츠가 돋보이는 정장 차림이었다. 그림은 쉽게 끝나지 않았다. 그리다가 중단하기를 반복했다. 살얼음판을 걷듯이 조심했다. 자칫 성질을 돋우기라도 하면 초상화는 ‘칼질’의 수모를 피할 수 없었다. (208쪽) 비록 미완성으로 끝났지만 이 초상화는 거장의 명성과 더불어 그를 불멸의 존재로 만들었다. 셔츠가 밝게 빛나는 까닭은 그것이 흰색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화가와 모델 사이에 빚어진 긴장감 넘치는 사연 탓이 크다. (209쪽)


혜원 신윤복의 작품으로 추정하는 「사시장춘」은 주인공이 베일 속에 가려져 있다. 그럼에도 남녀의 신발이라는 소품을 활용하여 조선시대 춘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주인공 격인 남녀가 일절 신체를 드러내지 않은 채 신발의 포즈만으로 에로틱한 감정과 관음증을 극대화하는 의뭉스런 그림이다.


신발의 포즈에는 긴박한 상황이 담겨 있다. 두 켤레의 신발이 가지런하지 않다. 여자의 것은 가지런한 데 비해, 남자의 것은 한 짝이 비뚤게 놓여 있다. 이 흐트러진 포즈는 무얼 의미할까? 남자가 달뜬 것 같다. 마음이 앞선 나머지 신발을 반듯하게 모아두지 못하고 급하게 방으로 들어간 모양이다. 비뚤어진 왼쪽 신발 한 짝이 상황을 실감나게 증언한다. 게다가 기둥 쪽에 흐드러지게 핀 꽃이 ‘염화시중의 미소’처럼 방 안의 열기를 전한다. 만약 남녀의 신발이 ‘가지런하게’ 놓였다면 에로틱한 감정은 덜했을지 모른다. 비뚤어진 신발 한 짝은 ‘신의 한 수’다. (232~233쪽)


한적한 시골길에 생뚱맞게 패러글라이더가 비행 중에 있다. 추니박의 「노란 길이 있는 풍경」이다. 진경과 관념산수의 경계를 넘나들며 작품활동을 하고 있는 추니박은 라면•고무•분필 등 재료에 구애받지 않고 표현 가능하다면 그 무엇이든 그림 재료로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그만의 모필 사생을 통해 ‘추니준(峻)’, ‘라면준’을 일구어냈다. 그림 하단 오른쪽에 남녀상열지사에 버금갈 숨은그림찾기도 그림에 재미를 더한다.


패러글라이더가 공중에서 바람을 타는 놀이인 만큼, 비가시적인 하늘의 존재와 대기의 흐름이 비행 중인 패러글라이더를 통해 확실해진다. 정작 보고 있으면서도 못 느끼는 대기가 패러글라이더 때문에 비로소 감지된다. 패러글라이더는 시각적인 활력소이기도 하다. 검은색 일색인 먹그림에 악센트를 주면서 산수풍경을 ‘럭셔리’하게 만든다. (263쪽)


4장 ‘그림의 구성요소를 곱씹다’에서는 작품명•캔버스•색점•낙관•부감법 등의 그림의 구성요소를 다룬다.

드가•르누아르•모네•뒤피 등 ‘이’ 대신 ‘잇몸’으로 정신 승리를 일군 화가들이 있다. 이 길에 마티스도 합류한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마티스는 맹장염을 앓고 요양 중에 기분 전환을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것이 인생의 방향을 튼 계기가 된다. 말년에는 이러저러한 수술로 인해 그 후유증으로 손떨림까지 오자 ‘종이 콜라주’라는 장르로 선회한다. 일명 ‘가위로 그린 소묘’이다. 그 작품이 「푸른 누드 Ⅳ」다.


푸른색의 조형미가 매력적인 「푸른 누드 Ⅳ」(1952)도 ‘가위로 그린 소묘’ 작품이다. 마티스 식 누드의 특징이 고스란히 압축된 이 작품은 조형적인 배치가 절묘하다. (중략) 특히 이 작품에서는 작가의 ‘손맛’ 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파란 색지를 조각조각 붙인 이음자국이 고스란히 노출되어 있다. 또 각 색지의 색상 차이가 아기자기한 맛을 더 해 준다. (중략) 마치 물감을 매끈하게 칠하다가 일부러 남긴 붓 터치 같다. ‘눈맛’이 삼삼하다. 이 작품은 버려진 색지들을 모아서 재활용한 것처럼 보인다. 누드를 구성하는 색지가 최소 마흔 조각은 넘는다. 니스의 물빛을 닮은 푸른색과 이어붙인 흔적이 작품의 조형성을 깊게 판다. (275~276쪽)


화가에게 작업실은 내밀한 영역이다. 그렇다면 화가에게 작업실은 자화상에 다름 아니다. 작업실에 화가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다면 작업실을 통해 화가의 마음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렘브란트•벨라스케스•페르메이르•쿠르베•드가•피카소•마티스 등 수많은 화가가 자신의 작업실을 소재로 작품을 남겼다. 그중에서 렘브란트의 「작업실의 화가」는 구성이 남다르다. 마치 화가의 작업실이 용맹정진하는 수도승의 단출한 방처럼 휑하다. 대형 캔버스와 비례에 맞지 않는 작은 체구의 화가가 화면을 지배할 뿐이다.


그림에서 가장 눈에 띄는 소재는 캔버스다. 덩치가 ‘K-1’의 최홍만 선수처럼 크고 위압적이다. 맞선 상대는 각종 붓으로 무장한 왜소한 체구의 화가다. 거인과 소인의 대결 구도. 화가와 대면한 캔버스의 뒷모습이 심각하다. 로댕의 조각 「생각하는 사람」처럼 표정이 무겁다. (300쪽)


그림을 구성하는 요소 중 화룡점정은 단연 낙관이다. 낙관은 그림이나 글씨 한구석에 작가의 이름이나 호를 쓰고 도장을 찍는 것을 이른다. 이로써 그림이나 글씨가 완성되는 셈이다. 장우성의 문인화 「눈」은 상단의 팝콘처럼 흩날리는 눈발과 왼쪽 가운데 세로로 자리 잡은 화제와 오른쪽 아래 붉은 낙관이 그림의 공동 주연인 셈이다. 장우성의 「눈」은 붉디붉은 낙관으로 작품에 날개를 달았다.


눈 풍경은 화제와 낙관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 만약 화제와 낙관이 없거나 위치가 바뀌면 이 그림의 무르익은 적막감은 흐트러지고 만다. (321쪽)

그만큼 화면 경영이 엄격하다. 무엇 하나 더하고 뺄 것이 없다. 절제된 형태미에서 삼엄한 정신의 향기가 우러난다. 낙관이 동백꽃처럼 붉디붉다. (322쪽)


한 작품, 세 가지 포인트로 즐기기

보론으로, 오지호의 「남향집」을 대상으로 감상 포인트를 달리한 세 편의 글을 실었다. 즉 딸바보 아빠의 시선으로, 낮잠 삼매경에 빠진 강아지에 마음을 둔 시선으로, 존재감 없어 보이는 미약한 나무를 부각시킨 시선으로 각각 그림을 감상하였다.


지은이 | 정민영

미술책 애독자이자 미술 애호가이다. 계명대학교 미술대학에서 서양화를 전공했고, 정신세계사와 문학동네, 세계사에서 편집 일을 했다. 월간 『미술세계』 편집장과 단행본 스타일의 미술교양지 계간 『이모션 편집인을 지냈다. 지금은 미술출판 일을 하고 있다. 그동안 세 권의 책을 냈다. 미술출판인으로서 미술 대중서의 기획 노하우를 밝힌 『정민영의 미술책 기획노트』와 책의 몸을 사랑하는 법을 토로한 『편집자를 위한 북디자인』을, 미술책 애독자로서 미술 대중서를 리뷰한 『미술책을 읽다』를 각각 썼다. 그리고 미술 애호가로서 정리한 『원 포인트 그림감상』은 서양 회화, 우리 옛 그림과 근현대미술, 동시대미술 60점에 관한 색다른 감상기이다. 함께 지은 책으로 『일그러진 우리들의 영웅-한국 현대미술 자성록』 『기전미술 2005』 『편집자로 산다는 것』 『29개의 키워드로 읽는 한국문화의 지형도』 『21세기 한국인을 무슨 책을 읽었나』 등이 있다.



목차

머리글

‘슬로 라이프’를 위한 ‘원 포인트 그림감상’을 권함


1장. 인간에 눈길을 보내다

새끼발가락| 슬픔에 슬픔을 더하다/ 빈센트 반 고흐, 「슬픔」

여인| 아내에게 바친 헌화가/ 박수근, 「나무와 두 여인」

남자의 뒤태| 뒤태로 말하는 남자/ 에드워드 호퍼, 「밤샘하는 사람들」

손동작| 투전꾼의 심리학/ 김득신, 「밀희투전」

황금비| 관능미 빵빵한 다나에/ 구스타프 클림트, 「다나에」

선비| 빨래터의 에로티시즘/ 김홍도, 「빨래터」

수염| 수염 하나 그렸을 뿐인데/ 마르셀 뒤샹, 「L. H. O. O. Q.」

사미승| ‘신 스틸러’가 펼치는 반전 드라마/ 신윤복, 「단오풍정」

여인| 돛배를 타고 찾아가는 영원한 안식처/ 카스파어 다비트 프리드리히, 「돛배 위에서」

아이| 아이가 숨어 있는 뜻/ 김득신, 「강변회음도」

손| 아주 특별한 손과 손 사이/ 앙리 마티스, 「춤 2」

누드| 체온이 느껴지는 추상/ 정점식, 「즉흥」

술주정| 술잔을 기울이며 희망에 취하다/ 이응노, 「취야」

손| 세상에서 가장 크고 따뜻한 손/ 오윤, 「애비와 아들」

실루엣| 얼굴 없는 실루엣으로 말하다/ 안중식, 「성재수간도」

눈빛| 눈빛으로 다시 쓴 평전/ 강형구, 「푸른색의 빈센트 반 고흐」

요정| 당신이 잠든 사이에/ 신선미, 「당신이 잠든 사이」


2장. 자연에 마음을 주다

소리| 폭포소리를 그리다/ 정선, 「박연폭포」

고목의 그림자| 돌담에 속삭이는 그림자같이/ 오지호, 「남향집」

하늘| 비로소 하늘을 그리다/ 존 컨스터블, 「건초마차」

달| 가난한 숲에도 달은 뜬다/ 김홍도, 「소림명월도」

바위| 큰 바위들의 기이한 초상/ 강세황, 「영통동구도」

나뭇가지| 기하학적 추상의 원석 같은 그림/ 피터르 몬드리안, 「붉은 나무」

등이 휜 소나무| 소나무, 그 외롭고 높고 쓸쓸한/ 이인상, 「설송도」

강변| 대동강이 낳은 첫 누드화/ 김관호, 「해질녘」

보름달| 심야의 분위기 메이커/ 김두량, 「월야산수도」

대나무| 병든 국화의 마음을 그리다/ 이인상, 「병든 국화」

초록잎의 나뭇가지| 해방공간 속의 ‘희망의 증거’/ 이쾌대, 「군상 Ⅳ」

소나무| 소나무가 있는 서늘한 풍경들/ 장이규, 「푸르른 날」

개| 개 같은 인생을 짖다/ 최북, 「풍설야귀인도」

제비| 자화상의 간을 맞추다/ 장욱진, 「자화상」

고양이| 악역의 미친 연기력/ 김득신, 「파적도」

고환| 황소로 변신한 사내/ 이중섭, 「흰 소」

굴비| 대합실에 꽃핀 ‘그때 그 시절’/ 이양원, 「대합실」

얼음| 얼음의 아르카디아/ 박성민, 「아이스캡슐」

물결| 물오리 커플의 ‘1급수 러브스토리’/ 홍세섭, 「유압도


3장. 옷과 생활도구를 음미하다

셔츠| 사과처럼 그린 초상/ 폴 세잔, 「볼라르의 초상」

옷고름| 그녀의 옷고름/ 신윤복, 「미인도」

색동고무신| 그는 왜 고무신을 그렸을까?/ 이인성, 「여름 실내에서」

술병| 탁족에 약주를 더하다/ 이경윤, 「고사탁족도」

파이프| 흰 파이프의 비밀/ 구본웅, 「친구의 초상」

신발| 산수화로 포장한 춘화/ 전 신윤복, 「사시장춘」

괭이| 괭이에 생을 싣고/ 장 프랑수아 밀레, 「괭이를 든 사람」

다리| 사선으로 절규하다/ 에드바르 뭉크, 「절규」

기와집| 피보다 진한 우정/ 정선, 「인왕제색도」

화병| 매화 덕후의 지극한 매화 사랑/ 조희룡, 「매화서옥」

백자항아리| 나의 가장 가까운 친우/ 도상봉, 「정물」

패러글라이더| 누가 패러글라이더를 보았나/ 추니박, 「노란 길이 있는 풍경」

치마| 보여 주지 않기 위해 보여 주다/ 이호련, 「오버래핑 이미지」


4장. 그림의 구성요소를 곱씹다

가위 자국| 가위로 그린 누드/ 앙리 마티스, 「푸른 누드 Ⅳ」

그림들| 액자식 구성을 한 자화상/ 폴 고갱, 「황색 예수가 있는 자화상」

등나무 문양| 콜라주, 캔버스 위의 혁명/ 파블로 피카소, 「등나무 의자가 있는 정물」

작품명| 작품의 심연을 비추는 불빛 하나/ 강요배,「생이여」

서명| ‘서명’이라는 마침표/ 클로드 모네, 「인상, 해돋이」

캔버스| 젊은 렘브란트의 작업실/ 하르먼스 반 레인 렘브란트, 「작업실의 화가」

색점| 점으로 껴안은 파리의 휴일 오후/ 조르주 쇠라, 「그랑자트 섬의 일요일 오후」

영원| 지금까지 내가 부르던 노래/ 김환기, 「영원의 노래」

붉은 서명| 한 장의 자화상으로 남다/ 이중섭, 「자화상」

낙관| 낙관, 그림을 살리다/ 장우성, 「눈」

부감법| 농촌 풍경의 특별한 변신/ 이원희, 「이사리에서」


보론

‘원 포인트 그림감상’에서 ‘원 포인트 글쓰기’로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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