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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산미술 110년 1907-2017 = The art history of 110 years Osan school

  • 청구기호609.11/오52ㅇ;2017
  • 저자명오산미술편찬위원회 엮음
  • 출판사컬처북스
  • 출판년도2017년 11월
  • ISBN9788992074759
  • 가격38,000원

상세정보

1907년 남강 이승훈이 평안북도에 세운 오산학교는, ‘구국 인재 양성’을 목적으로 하여 괄목할만한 인물을 배출했다. 한국전쟁 후에는 서울로 옮겨 현재에 이른다. 개교 110주년을 맞아 오산학교와 근대미술 도입기 학생이던 이중섭 등이 포함된 당대 오산미술을 살피고, 이후 거쳐간 동문 미술인의 활동을 정리했다.

책소개

■ 오산학교 110년, 그리고 오산미술! 

오산미술(五山美術)을 이해하려면 우선 ‘오산(五山)’학교를 알아야 한다. ‘오산(五山)’은 1907년 일제강점기에 남강 이승훈 선생이 평안북도 정주에 세운 오산중·고등학교로, 항일 독립운동을 펼친 민족학교를 말한다. 남강 선생은 ‘구국 인재 양성’ 을 목적으로 교육만이 민족의 앞날을 밝게 해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오산학교를 설립했다. 오산학교는 한국근현대사의 큰 인물인 김억, 백인제, 주기용, 주기철, 김홍일, 한경직, 홍종인, 김소월, 함석헌, 백석, 이중섭 등 교육뿐 아니라 종교, 정치, 사회 분야에서 괄목할만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오산학교는 현재 서울 용산구 보광동에 자리 잡고, 올해로 개교 110주년을 맞았다.

오산미술(五山美術)은 한국근현대미술의 도입기에 오산미술인들의 역할과 성과를 일컫는 말이다. ‘오산미술’ 이라는 표현에는 오산학교를 거쳐 간 미술반원들, 특히 국민작가로 많은 사랑을 받는 이중섭을 비롯한 이승조, 박승범, 한만영 등 많은 오산미술인들이 한국미술계에서 큰 역할을 했다는 자부심이 담겨 있다. 

‘오산미술’은 선후배 작가들의 정기적인 모임과 전시회 등을 통해 미술계 안팎에서 이미 알려져 있다. 1977년‘오산 개교 70주년 기념전’, 1987년 개교 80주년 전시회에서는 이근, 이승조의 발의로 미술부 동문 48인이 뜻을 모아‘대향 이중섭 화비’를 모교 교정에 세웠다. 1997년 5월 ‘오산미술 90년 전’이 열렸고, 2007년에는‘오산창립100년기념동문전’이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다. 올해 5월‘오산미술110년을 기념하고, 이중섭 탄신100년에 맞춰 ’이중섭추모전’이 서울 용산구 용산 아트홀에서 열렸다. 이런 뜻있는 전통은 미술계에서도 보기 드문 일이다. 이는 중․고교 시절에 ‘미술’을 함께하며, 미술가로서의 꿈을 펼친 인연으로 오산미술 동문들이 수십 년 간 교류를 나누며, 한국 미술계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 오산미술의 태동 - 임용련과 백남순, 그리고 이중섭

민족사학 오산학교에서 우리 근대미술 도입기에 큰 역할을 한 인물로 임용련과 백남순, 그리고 이들로부터 그림을 배운 이중섭이 있다. 1931년 임파 임용련(1901~?)과 화가인 아내 백남순(1904~1994)은 평안북도 정주 산골의 오산학교로 부임하여 해방이 되던 1945년까지 15년 동안 오롯이 오산학교에서 후학들을 지도하며 봉직했다. 이들 부부는 당시로서는 매우 희귀하게도, 일본을 거쳐 간접 유입된 서양미술의 기법과 미학이 아니라 서양 미술의 근원이라 할 유럽 미술의 본령을 접하고 공부를 했다. 오산미술인들은 이들로부터 기초와 전통에 충실하되 그곳에 안주하지 않고 새로운 그림을 그리는 실험적인 의지를 실천한 작품을 보여주고 있다. 이중섭은 임용련과 백남순이 귀국하던 1930년 15세 때 오산학교에 입학했다. 그는 3학년이 되던 1932년 9월 당시 동아일보사가 주최했던 제3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 회화 중등부에 〈촌가〉를 출품해 입상했으며, 1933년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에 〈원산시가〉를, 1935년 다시 제6회 전조선남녀학생작품전람회 중등도화부에 〈내호〉를 출품하여 입상한다. 이처럼 이중섭은 임용련, 백남순 부부의 지도를 통해 성장하며, 미술가의 꿈을 키웠다. 


■ 김창복 - 오산미술의 근간을 세우다

광복 이후 오산학교의 미술반이 중·고등학교 미술부 활동을 넘어서서 작가들을 길러내는 산파역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사실 김창복이라는 걸출한 교육자가 있어 가능했다. 일본 유학까지 마치고 장래를 촉망받던 그는 기라성 같은 동료 화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는 좋은 화가이기 이전에 교육자였다. 김창복의 교육관은 무엇보다 기본기를 강조했다. 연필과 목탄 소묘를 끊임없이 독려하고, 특히 정확한 형태와 구조는 물론, 채색에서도 대상의 묘사를 중시해 성실하게 표현할 것을 강조했다. 그렇다고 대상의 외면을 사진처럼 정확하게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대상 고유의 본질과 양감, 질감을 파악하도록 했다. 또한 틈틈이 강한 터치와 색채의 표현주의적인 그림도 그리게 해 학생들의 개성을 살려 주었다. 또 관찰력을 길러 주기 위해 기물들을 살펴보고 이를 구조적으로 파악하는 훈련을 시켰는데, 어디든 지나다 그림 그릴 만한 정물이 있으면 직접 들고 와 학생들에게 그려 보도록 했다. 김창복은 당시로서는 구하기 어려운 다양한 석고상들을 구입하여 미술실에 비치하고 학생들에게 데생을 하도록 했다. 사실 미술가로서 활동하는 데 가장 기본기가 되는 것이 석고 데생이라 할 수 있는데, 이는 양감과 질감을 단색인 연필이나 목탄으로 표현해 내야 하기 때문이다. 오산학교 출신 화가들이나 디자인, 응용미술이나 조각 등 현역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의 경우에도 꽤나 파격적인 작업임에도 불구하고 조형성이나 색채, 구성 등이 짜임새가 있다는 평을 듣는데, 이는 바로 김창복으로부터 기본기를 확실하게 연마 받았기 때문이다. 

오산학교 미술부는 김창복이 부임해 온 1953년부터 학교를 떠나는 1978년까지 각종 전국 단위의 언론사, 각 대학이 주최하는 실기대회에서 최고상을 비롯해서 수많은 입상자를 내면서 기염을 토했고, 미술부가 오산학교의 대명사처럼 알려졌다. 특히 1959년 고등학교 3학년에 재학 중인 이승조가 국전에 〈굴비〉로 입선을 하고, 1960년 중학교 3학년이던 박승범이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주최 미술실기대회에서 최고상인 홍익대학교상을, 1962년과 63년 한만영이 국전에 연이어 입선하는 등 특별활동 부서를 넘어서서 미술학교에 버금하는 독특한 전통을 쌓았다. 


■ 오산미술! 영화 속 한 장면 같은 그 시절

어느 누구고 어떤 학교 건 간에 추억과 미담 그리고 학창시절의 무용담이 없을까만, 오산학교 미술부의 추억은 어렵던 시절이라는 공통분모와 그림이라는 다소 예술적인 소재가 가미되어 더욱 극적인 것이 사실이다. 사실 그림은 당시에도 여전히 사치였다. 전쟁이 끝나고 모두가 어렵던 시절 미술 재료를 구한다는 것은 사치였다. 그래서 학생들은 잠실벌까지 나가 미루나무를 꺾어 와 정성껏 목탄을 구워 만들어 석고 소묘를 했다. 어쩌다 기성품 목탄이 생기면 아끼고 아껴 썼다. 중학생도 고등학생도 유화를 접했지만 캔버스 구입이 어려워 학교에서 쓰다 버린 책상이나 의자 다리로 틀을 만들고, 천막 천을 남대문 시장에서 사다 캔버스 틀에 매 썼다. 학교 부지가 원래 공동묘지였던 터라 비가 많이 내린 후 썩은 관이 노출되어 인골이 수습되던 일도 가끔 있었는데, 유도를 하는 미술부 고학년이 어느 날 해골을 주워와 깨끗이 닦은 후 미술실 정물대에 갖다놓는 바람에 저학년 학생들이 공포에 떨면서 그림을 그려야 했다. 학교 주변은 한강은 물론 온갖 야채밭과 자두, 복숭아밭이 있어 봄에는 꽃이 만개한 복숭아밭이 학생들의 야외 스케치 터가 되어 주었다. 학교가 한강변 높은 언덕에 있어서 미술실 안에서 관악산을 배경으로 반포 쪽으로 굽이쳐 내려가는 한강과 이촌동 쪽 넓은 모래사장이 보였는데, 그림 오른쪽 하단부에 이런 풍경을 그려 넣는 것은 미술부 선배들로부터 어깨너머로 전수받은 멋진 구도였다. 화가는 경험으로부터 본질적인 아름다움을 길러낼 수 있다는 가르침으로 미술실을 벗어나 현장을 옮겨 다니며 실사를 했다. 미술부원들은 자주 남산에 올라 중앙청(현재는 철거)과 경복궁 등의 서울 시가를 직접 사생했고, 잠실벌에 일렬횡대로 서 있던 미루나무 그늘 아래에서, 압구정 한강변 소나무 숲속에서도 그림을 그리며 화가의 꿈을 키웠다. 당시에는 고등학생도 국전이나 각종 공모전에 출품할 수 있었는데, 출품할 작품을 빌린 리어카에 싣고 보광동 학교에서 전시장이 있는 경복궁까지 그 먼 길을 끌고 밀며 운반해 출품하기도 했다. 이때 유화가 마르지 않아 이동하며 생긴 흠집을 현장에 도착해서 가져간 화구로 고치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마치 연화 속 한 장면 같지만 오산미술 동문들의 학창시절 이야기이다. 


■ 오산미술 동문 62명의 작품과 관련 자료 수록

이 책은 오산학교 출신의 미술인들이 지난 오산학교 미술 110년 역사를 정리하고, 현재도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동문작가들의 작품 250여 점을 수록하고 있는 한국근현대미술사의 귀중한 자료가 될 것이다. ‘오산미술 110년’은 오산학교와 남강 이승훈, 오산이 배출한 인물들, 그리고 근대미술 도입기의 임용련과 백남순, 이들에게서 배운 이중섭과 문학수를 비롯한 당대 오산미술을 살피고, 한국전쟁 이후 김창복에게서 배운 미술동문작가들의 활동을 정리하였다. 

회화에서 이승조, 차대덕, 박승범, 한만영을 비롯해, 조각에서 윤석구, 임승오 판화에 전년일, 김준권, 일러스트 이복식, 그래픽디자인 분야의 명계수, 미술정책, 큐레이팅 분야의 정준모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하는 오산미술 동문작가들의 프로필과 작품을 수록하였으며, 참고 자료에는 오산학교 교지 〈다섯메〉에 실린 미술반원의 글과 고고미술사학자 고 김원룡 선생의 ‘한국 고미술의 세계’ 등을 재수록 하였다.


엮은 곳 | 오산미술편찬위원회

〈오산미술 110년〉 발간은 김지원, 한만영 편집 고문을 중심으로 명계수, 류재성, 임승오, 신수철, 차기율, 정해광, 하정민 등이 2016년‘오산미술편찬위원회’를 조직하여, 2017년에 ‘오산창립110년’과 ‘이중섭 탄생 100주년’를 기념하는 도서 출간과 전시를 진행하기로 결정하고, 2007년 세종문화회관에서 열렸던‘오산창립100년기념동문전’의 자료를 토대로 동문들의 학창시절 기억이나 미담, 사진, 전시 자료, 개별 프로필 등을 수집하고, 최홍원 선생님 댁 탐방, 전선택, 차재기 선생님과 인터뷰, 고인(故人)이 된 박종승, 이승조, 박종국, 홍윤표 동문의 가족들이 보내온 자료를 모으고, 류재성과 정준모가 조사한 문헌 자료와 신수철이 발품을 팔아 동문들을 찾아가 면담한 구술기록을 중심으로 작성되었다. 류재성이 보광동 시절 오산학교 미술부 역사와 일화를, 정준모가 한국 전쟁 이전의 미술부를 중심으로 기록하였으며, 편찬위원회의 감수를 거쳐 전체 내용을 가다듬었다.



목차

Ⅰ 발간사

축사

책을 엮으며


II 오산미술 110년

1. 들어가는 말 16 

왕대밭에 왕대난다 21 

2. 한국미술에서의 다섯 뫼 25

가. 정주 시절 - 임용련과 백남순 25

나. 정주 시절, ‘다섯 뫼의 아해들’ 30

다. 대향 이중섭과 다섯 뫼 38

라. 보광동 시절의 김창복 44

마. 오산미술의 큰 나무들 55 

3. 나오는 말 74


III 오산미술 동문작가

1910년대 : 문학수, 이중섭, 승동표, 김창복 

1920년대 : 어순우, 전선택, 차재륜·차재기, 최홍원

1930년대 : 박종승, 이면순

1940년대 : 이 근, 이승조, 김지원, 차대덕, 박승범, 전년일, 한만영, 김성구, 윤석구, 이복식, 최수동, 박종국, 최세완, 이신철, 김주성, 이영희

1950년대 : 오용환, 이태영, 명계수, 임철순, 홍윤표, 성재현, 류재성, 민경훈, 임인호, 함승호, 김언경, 김준권, 김종헌, 임승오, 장상철, 신수철

1960년대 : 김기희, 김진석, 최수현, 남궁산, 손하담, 신경균, 차기율, 남상국, 임성실, 정해광, 박기복, 박태욱, 하정민, 조상근, 양미란 

1970년대 : 김혜자, 이석민, 백경인, 진은수, 


책을 엮고 나서


IV 참고 자료

오산미술 동문 인명록, 오산미술 활동작가 인명록, 교지 〈다섯메〉 표지 목록,

교지 〈다섯메〉를 정리하면서, 교지 〈다섯메〉에 실린 오산미술 동문 자료,

교지 〈다섯메〉에 수록된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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