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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회화의 형성 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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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청구기호653.11/정94ㅎ;2017
  • 저자명정형민 지음
  • 출판사학고재
  • 출판년도2017년 8월
  • ISBN9788956253589
  • 가격20,000원

상세정보

한국 회화에 일어난 근대기의 변화를 적은 책이다. 20여 년 동안 관련 내용을 연구해온 저자는 한국과 중국ㆍ일본의 서양 미술 수용과 변화 교류의 흐름에서 근대 이전에는 중국 미술계의 상황을, 이후에는 일본 미술계의 상황을 파악하는 것이 선행돼야 한다고 전한다. 이미 발표했던 연구 결과 중 9편을 골라 엮은 내용에는, 영문으로 냈던 것을 번역하기도 하고 20여 년 전에 쓴 글도 있다. 이들은 현재 학계의 상황과 다를 수 있으나 연구 당시 상황을 보여준다는 의미에서 큰 오류를 제외하고 그대로 실렸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먼저 중국 명대 말부터 청대 중엽에 대한 글로 시작한다. 아직 미술사적 연구가 많이 이루어지지 않은 마테오리치의 역할이 ‘예수회 선교사업과 중국 회화’로 보여지고, ‘건륭제의 초상화’ㆍ‘임원경제지’ 등으로 진행된다. 근대적 의도의 대한제국 목표와는 달리 오히려 보수적인 행보를 보여준 '대례의궤'를 통해 한국 근대 미술의 여명기를 마무리한다. 두 번째 부분은 의궤도와는 다르게 등장한 새로운 형식, 한국 근대 역사화로 근대 회화 변화의 문을 연다. 이로부터 1910-20년대를 거쳐 1930년대 식민치하 미술 검열 상황 분석까지 제시함으로써 한국 근대 미술에서 모더니즘의 수용과 아카데미즘의 정의, 누드화의 전개와 일본 화단과의 관계 등 새로운 시각의 필요성과 앞으로 연구ㆍ분석으로의 확장 가능성을 이야기했다.



책소개

한국 근대 미술의 여명기,

서양 미술 매체와 기법, 양식, 도상 그리고 서구 미학의 도입

동서양 미술 교류의 역사와 한국 근현대 회화론

근대기에 역전된 문화의 전래와 흐름: 명말 청초 중국-한국-일본의 근대화와 서구 문화 수용

조선은 일제강점기, 1876년 개항 이후에 서양과 만났다. 사상과 종교, 상업 교류로 대륙에서 불교가 전래되고 문화 전반에서 중국과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흐름에서 벗어나, 일본을 거쳐 서구 문화와 예술을 만난 것이다. 이전까지 동아시아 역사는 일본이 조선을 통해 선진 문화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흘러왔지만 근대에 이르러 이 관계가 역전됐다.

수 세기 앞서 서양과 교류한 일본을 통해 한국 미술계에도 비로소 서양 미술이 유입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서화(書畵) 외에 토용, 능묘조각, 도자처럼 종교적이거나 실용적으로 기능하던 전통 조형물에도 새로운 예술적 장르로서 조각, 공예라는 위상이 부여되었다. 궁중 도화서(圖畵署)가 없어지고 서화미술학교 같은 전문 미술 교육 기관이 생겼고, 전람회 등 작품 공개, 유통 기관과 제도가 만들어졌다. 그리고 전통 화론과는 판이한 서양의 근대 미학도 들어왔다.


서양의 사실주의 회화 양식에 눈뜨다

서울대학교 미술관장과 국립현대미술관장을 지낸 저자 정형민은 지난 20여 년간 한국이 중국과 일본, 그리고 서양 미술을 어떻게 수용하고 또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해왔다. 그 연구 결과 가운데 아홉 편을 추려 이 책에 담았다. 크게 1부에서는 마테오 리치가 중국에 머물던 명말 청초, 예수회 사제들의 선교활동에서 비롯된 중국의 근대화 과정부터 우리 문화예술의 바탕이 된 동서양 미술의 교류 양상과 역사를 다루고, 2부에서는 서양 미술 매체와 기법, 양식, 도상 그리고 미학이 유입되면서 전환기를 맞은 우리나라의 근대 미술론을 소개한다.

명대 말부터 청대 초기에 관한 미술사 연구는 대부분 서양의 사실주의 양식 수용에 초점을 맞춘다. 유럽 성화 화풍에 경이감을 품은 중국 전통 화단이 그림에 빛의 방향과 명암을 표현하고 원근법을 도입해 입체감을 묘사하게 된 것이 ‘서양 화법 수용’의 시작인 것이다. 이외에도 기독교 선교사업의 일환으로 서양 그림이 전파되면서 자연스럽게 기독교 성화의 도상이 중국 전통 도상과 결합하기도 했다. 전통 보살상에 성모의 도상을 입힌 ‘중국 성모상(Chinese Madonna)’이 그런 예다. 미술에 관심이 많던 건륭제는 예수회 신부들의 뛰어난 그림 실력을 높이 사 이들에게 황실 공식 초상화를 그리게 하고 역사적 행적을 그려 기록하게 했다. 나아가 화원들도 이들의 기법을 배웠고, 청나라 궁에서 예수회 화가들은 상당한 지위도 얻었다.

그런가 하면 예수회 신부들이 대거 들여온 서양 과학 서적에는 여러 기술도(technical drawing) 삽화가 담겨 있었다. 이러한 삽화로 중국의 전통 기술도는 큰 전환점을 맞는다. 통치자의 치적을 찬양하는 등 통치의 당위성과 연관된 서사가 주를 이루던 것이 비로소 기술을 ‘과학적’으로 도해하기 시작했고, 이러한 삽화 형식은 조선에도 소개되어 조선 후기 기술도와 풍속화에 영향을 미쳤다. 조선도 1876년 개항 이후 서양 선교사, 외교관, 탐험가 들을 맞으면서 외부의 관심에 부응하는 그림을 대량으로 만들어냈고, 한국 미술사에 처음으로 해외 시장을 겨냥한 ‘수출 미술품’이 등장했다.


한국 회화에 일어난 변화와 근대의 바람

한국 회화에도 격변이 일었다. 이전까지 역사화는 의궤 기록물 정도에 그쳤으나 20세기 일제 치하에서 추상적인, 하지만 근대적 의식인 ‘민족주의’를 표명할 만한 인물을 담기 시작했다. 근대 역사학의 인물 중심 서술 방식을 반영한 ‘전기적 인물 초상화’라든지, 동시대의 정치사회 이념을 전달하는 ‘이념적 역사화’가 그런 경우다. 또 구체적인 사건보다는 인간의 내적 갈등, 선악 같은 윤리 주제를 우화적으로 표현한 ‘알레고리적 역사화’, 신문이나 문예지에 삽화 형식을 빌려 정치사회에 관한 작가의 비평 또는 자조를 드러낸 ‘풍자적 역사화’도 있었다. 이러한 역사화는 식민치하에서 검열을 비켜가는 방법인 동시에 ‘메시지 전달’이라는 역사화의 원천 기능을 지키고, 조선시대에 없던 자각의식 혹은 민족주의 같은 근대성을 표현하게 해주었다.

또 일본과 유럽에서 유학하면서 새로운 흐름을 접한 화가들이 본격적으로 활동하기 시작했다. 배운성은 일본에서 르네상스 미술을 접한 뒤 미켈란젤로의 역동적인 인물 묘사를 원형으로 삼았다. 이뿐만 아니라 원죄, 최후의 심판 같은 성서 속 상징을 차용해 극적인 인간을 표현했는데, 종교적 도상이 이처럼 파괴, 잔악, 상실, 환희, 인간애 등과 같은 인간 심리의 표정을 그리는 데 차용된 것은 폭넓은 공감대를 끌어내는 데 적합했기 때문이다. 배운성은 유럽 성화 형식을 자의식적인 초상화에 사용하기도 했다.

1920년대 초 우리 미술계는 큐비즘과 후기인상주의를 언급했고, 당시 모더니즘 미술의 특성을 ‘자아 표출’이라고 논했다. 사실주의, 인상파, 표현주의, 포비즘, 큐비즘 등 근대 유럽 미술사조도 거론했다. 하지만 서양의 아카데미 사실주의나 모더니즘 미술 양식이 도입되는 과정이 우리 현실에서는 너무 단기간에 이뤄졌다. 일본은 이미 에도 시대부터 네덜란드 상선을 통해 유럽 화풍을 접하다가 메이지 시기에 서구와 미국에 유학하면서 구미 화단과 거의 동시에 새로운 미술사조를 공유한 반면, 우리 작가들은 1910년 국권 피탈 후 이미 모더니즘 사조가 유입된 일본에서 서양 미술의 기초인 사실주의를 채 소화하기도 전에 변형된 양식을 접한 것이다. 결국 형태 변형이나 거친 붓 운용을 중심으로 한 표현주의적, 야수파적인 작품이 한국 근대 서양화의 주조를 이루었고, 큐비즘, 구성주의, 초현실주의 같이 분석적이고 화면을 재구성하는 모더니즘 사조는 제대로 수용되지 못했다.


한국의 정체성: 전통 유지와 시대정신

근대 한국 미술은 새로운 서양 미술 매체와 기법, 양식, 도상 그리고 미학 유입으로 전통과 단절된 것처럼 이야기된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양 근대 사상 가운데 하나인 민족주의가 문화의 기원을 영토에 연계시키는 민족주의적 문화관으로 전개되었고, 전통에 대한 담론은 ‘조선색’, ‘향토색’이라는 말로 활발하게 펼쳐졌다.

정체성 문제가 중요하게 거론되는 현재에도 근대에 발단한 전통 집착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해방 이후 한국 미술계가 서양 미술에 전면적으로 동화되었지만 전통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전통과의 연계를 바탕으로 유지된 동양화는 더 이상 조선시대에 누리던 위세를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1920년대 초부터 새로움과 순간성으로 특징지어진 ‘근대성’의 기준으로 볼 때 전통에 천착하는 동양화는 ‘시대정신이 결여됐다’는 비판을 받게 된 것이다. 이 같은 상황에 대처하기 위해 전통은 더 이상 고정된 것에 머물지 않고 시의적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특히 최근에는 한국 미술계가 전통과 현대의 융합이라는 화두를 내세우면서 전통의 의미가 지필묵이라는 재료 기법이나 선(線)적인 미 같은 표현 형식에 한정된 것이 아니라 시간과 공간 개념, 미적 태도와 향유 같은 개념 틀에서 파악되고 있다. 

정형민의 연구는 한국 근대 미술에서 모더니즘 수용, 아카데미즘의 정의, 누드화 전개, 일본 화단과의 관계 등을 새로운 각도에서 분석하게 하는 실마리가 되면서 앞으로 연구가 개진될 무한한 확장 가능성을 제시한다.


지은이 | 정형민

미국 웰즐리 대학 에서 서양미술사를 전공하고 미시간 대학교에서 동양미술사로 석사학위를,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 미술사 교수로 재직했으며(1994-2017), 예술의전당 전시감독(1999~2001), 서울대학교 미술관장(2006~2012), 한국미술이론학회 회장(2006~2008), 국립현대미술관장(2012~2015)을 역임했다.


목차


I 동서양 미술의 교류: 한국 근대 미술의 여명기

1 예수회 선교사업과 중국 회화: 마테오 리치의 사실주의

1. 중국 회화에 대한 마테오 리치의 견해 

2. 리치의 견해에 대한 중국인의 반응 

3. 리치가 가져온 그림과 예수회 화풍


2 건륭제의 초상화: 도상의 적응주의

1. 공식 초상화 

2. 행락도: 비공식적인 배경 속의 공식적 초상화 

3. 불화 속 건륭


3 『임원경제지』의 삽화: 19세기 조선의 기술도

1. 중국 농서의 기술도 

2. 조선 농서의 기술도 

3. 서유구와 『임원경제지』


4 대례의궤: 대한제국 선포

1. 중국의 전례와 『대한예전』 

2. 『대례의궤』 

3. 『대례의궤』 도설과 반차도


II 한국 근대 회화와 근대 미술론

5 한국 근대 역사화 

1. 근대 이전 역사화 

2. 한국 근대 역사화의 유형 


6 한국 근대 회화의 도상 연구: 종교적 함의

근대기 종교적 도상의 등장 


7 한국 미술론에서의 근대성: 1910년대 중엽~1920년대 중엽을 중심으로

1. 용어 연구 

2. 광의의 근대성 

3. 협의의 근대성 


8 김용준의 근대 미술론

1. 근대기의 미술론 대두와 개념 

2. 김용준의 미술론 

3. 김용준의 회화 작품: 전통의 서양화와 낭만화 


9 1920~1930년대 총독부의 미술 검열

1. 총독부 미술 검열 표준 

2. 치안방해 검열 

3. 풍속괴란 검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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