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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사적인 현대미술 : 아티스트 10인과의 친밀한 대화

  • 청구기호600.04/톰87ㅇ;2017
  • 저자명캘빈 톰킨스 지음 ; 김세진, 손희경 옮김
  • 출판사아트북스
  • 출판년도2017년 3월
  • ISBN9788961962896
  • 가격17,000원

상세정보

문화 평론 시사잡지인 『뉴요커』에서 40년 이상 동시대 미술과 예술가를 전해온 저자가, 1999년 발표한 데이미언 허스트에 관한 글부터 2008년 존 커린에 관한 글까지 10년에 걸쳐 쓴 예술가 10인의 삶과 작품세계를 엮었다. 당시 상황이 생동감 있게 적힌 글에는 그들의 이후 행보도 함께 적어넣어 흥미를 지속시킨다.

책소개

40년 이상 『뉴요커』에서 동시대 미술과 예술가에 관해 예리한 통찰을 보여주었던 캘빈 톰킨스가 이 시대의 가장 핫한 예술가 10인의 삶과 작품세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데이미언 허스트, 신디 셔먼, 줄리언 슈나벨, 매슈 바니, 제임스 터렐, 리처드 세라, 마우리치오 카텔란, 재스퍼 존스, 제프 쿤스, 존 커린이 그들이다. 테크닉의 연마나 철저한 훈련은 더 이상 아티스트에게 요구되는 자질이 아니다. 예술은 이제 삶에 대해 어떻게 접근하느냐의 문제가 되었다. 그렇기에 그들의 삶을 지근거리에서 바라보고 그것을 그들의 작품과 연결시킨 톰킨스의 글은 현대미술을 이해하는 열쇠가 된다. 


'아티스트의 삶과 작품은 분리할 수 없다!'

『뉴요커』의 40년 붙박이 미술평론가, 현대미술을 생중계하다

‘작가와 작품은 별개다.’ 형식주의 비평의 금언과도 같은 말이다. 하지만 이 책의 지은이는 여기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은이는 이 책의 원제인 ‘아티스트들의 삶(Lives of the Artists)’에서부터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이 제목은 1550년 ‘최초의 미술사학자’ 조르조 바사리가 르네상스 시대의 뛰어난 화가, 조각가 그리고 건축가들의 삶에 관해 써서 펴낸 책에서 가져온 것으로, 제목만으로도 톰킨스는 이 책이 나아갈 바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동시대 아티스트들의 삶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것에 너무나 필수적인 요소이기에 그 둘은 분리해서 고려될 수 없다. 작품이 흥미롭다면, 삶 또한 그럴 가능성이 크다. _「서문」에서


지은이 캘빈 톰킨스는 1960년 『뉴요커』의 필진으로 합류한 후 이제까지 그 지면을 통해서 대중에게 현대미술을 소개해왔다. 특히 그는 미술 그 자체보다는 아티스트의 라이프스타일과 작품 창조를 둘러싼 조건들에 초점을 맞춘다. 그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보다 현대미술을 둘러싼 시대적 상황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미술에서 '전통, 기술, 엄격한 훈련, 형식에 관한 지식 같은 이 모든 오래된 요건들은 서서히 사라지거나 선택사항이 되'어버렸으며 아티스트들에게 허용된 자유는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인정받은 아티스트가 '이게 예술이야'라고 제시하는 것은 무엇이나 예술로 받아들여지는 오늘날의 풍토에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열 명의 동시대 아티스트들에게 '미술은 무엇보다도 삶의 문제에 대한 접근'이 된다.

이 책에서는 1999년 『뉴요커』에 발표된 데이미언 허스트에 관한 글부터 2008년 역시 같은 잡지에 발표된 존 커린에 관한 글까지 모두 10년에 걸쳐 열 명의 현대 아티스트들을 소개한다. 잡지에 수록되었던 것을 사소한 수정과 덧붙임만 붙였을 뿐 당시의 글을 거의 그대로 수록했다. 때문에 글이 쓰인 당시의 현장감이 더욱 도드라지는 효과가 있다. 가장 최근에 쓰인 존 커린에 관한 글이 2008년의 것이었으니, 마지막 글이 쓰인 지 또 10년의 세월이 흘렀지만 여기 소개된 열 명의 아티스트들은 지금도 현재진행형으로 최고의 위치에 올라 있으며 화제성으로나 작품 가격으로나 관심이 집중되는 이들이다. 어린 시절부터 아티스트가 되고자 결심한 계기며 청년 시절, 그리고 작가로서 초년생 때부터 글이 쓰인 당시 시점까지, 개인적인 이야기와 작품의 발전 상황을 특유의 쿨하고 유머감각 넘치는 글로 담아낸 짧은 전기들을 읽다 보면, 언뜻 이해하기 어려웠던 현대미술에 좀 더 친근히 다가갈 수 있다. 지근거리에서 아티스트들을 바라보며 그들과 친분을 쌓은 지은이의 글이기에, 독자들로서는 이 글들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알 수 없었을 이들의 개인적인 모습을 알 수 있고 또 그런 모습이 작품에 어떻게 반영되었는지를 흥미롭게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에는 도판이 수록되어 있지 않다. 시인이자 비평가인 윌리엄 코르벳은 이 점에 대해 '이 책의 즐거움 중 하나는 도판이 없다는 데에 있다. 독자들은 자신의 기억과 톰킨스의 꾸밈없는 일급 묘사력에 기대어 판단을 내려야 한다'라고 썼다. 그 말대로 인물에 대한 생생한 묘사와 자신이 본 것을 솔직하게 전달하는 톰킨스의 필력에 힘입어, 도판이 없더라도 이 책을 읽는 데는 무리가 없고 흥미 또한 떨어지지 않는다. 다만 작품 이미지를 찾아보며 읽으면 내용에 대한 이해가 한층 깊어지리라는 것은 분명하다. 때문에 한국어판에서는 언급된 작품 이미지와 직접 연결되는 URL을 웹문서로 정리해서 QR코드로 다운받을 수 있도록 했고, 본문에 참고 이미지마다 번호를 매겨두어 해당 문서에서 찾아보기 쉽도록 했다. 책을 읽을 때 스마트폰이나 노트북 등을 옆에 두고 다운받은 문서를 통해 작품을 찾아보면 더욱 즐거운 독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세상을 집어 삼키려 한 아티스트 | 데이미언 허스트

포름알데히드에 넣은 뱀상어부터 8,601개의 다이아몬드를 박아 넣은 해골까지, 내놓는 작품마다 논란을 몰고 다닌 그야말로 ‘핫한’ 아티스트다. 골드스미스 대학에 다니던 시절 허스트는 매년 연말마다 학생들이 여는 전시의 기획을 맡아 빈 창고를 빌려 〈프리즈〉라는 제목의 전시를 열었고, 이는 YBA(젊은 영국 아티스트들)라는 거대한 흐름을 만들어냈다. 기획의 천재로서 한때는 미술가보다 화상, 큐레이터가 되리라는 기대를 받았다는 그는 이제 하는 일마다 화제를 몰고 다니며 록스타에 버금갈 만한 인기를 끄는 스타로, 작가로서는 물론이고 사업가로서도 왕성하다. 데이미언 허스트라는 이름은 하나의 ‘브랜드’가 되었다. 이 글 속에서 여전히 아무 데서나 바지를 내리고 폭음을 일삼으며 파티를 즐기는 악동이지만 한편으로는 동료들의 작품을 사 주는 관대한 컬렉터이자 아이와 파트너에게 다정한 의외의 면모를 보기이도 한다.


조플링이 내게 들려준 이야기다. '그때 데이미언이 던진 질문은 잊을 수가 없습니다. ‘인생에서 가장 좋아하는 게 뭡니까?’ 전 말했죠. ‘잘 모르겠는데, 당신은요?’ 그러자 그는 이글거리는 눈으로 이렇게 말하더군요. ‘모조리 다요.’' (pp.28~29)


작품 속으로 사라지다 | 신디 셔먼

신디 셔먼이 ‘실제로’ 어떻게 생겼는지 아는 사람은 드물다. 스스로의 모습을 사진으로 찍어 유명해진 작가라는 것을 생각하면 기이한 일이지만, 사실이 그렇다. 그녀의 모습이 벽마다 걸려 있는 개인전 오프닝에 참석한 손님들이 '신디 셔먼이 누구냐'고 묻는 일도 드물지 않다. ‘변장’을 하고 ‘다른 사람’이 되어 사진을 찍는 그녀는 실제 삶에서도 스포트라이트를 무척 부담스러워하는 수줍은 성격이며, 아티스트답지 않게도 ‘친절, 겸손, 온화함, 배려, 침착함을 갖춘 사람’이라고 한다. 10대 소녀처럼 극장 좌석에 무릎을 끌어올린 자세로 앉아 슬래셔 무비를 지은이와 함께 보며 즐거워하는 신디 셔먼의 모습은 톰킨스의 글이 아니었다면 짐작하기도 어려웠으리라. 하지만 그녀의 작품은 때로 폭력적으로 느껴질 정도로 강렬하며 그녀의 얌전한 외양 밑에는 엄청난 에너지와 자신에 대한 분노가 도사리고 있다.


셔먼은 바로 이 의자에 앉아 의상과 메이크업, 조명, 표정에 수천 번씩 미세한 변화를 주어가며 각각의 캐릭터를 만들어갔다. '그냥 의자에 앉아 과장된 연기를 했어요. 거울을 통해 제 모습을 확인하면서요.' 셔먼은 원하는 결과물을 미리 생각하지 않는다. 캐릭터는 작업을 하는 도중에 떠오른다. 그녀의 말에 따르면 '마치 꿈속에 있는 듯하며',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릴 수도 있는 과정이다. '잘 되어갈 때는 정말 신나요. 제가 다른 사람처럼 보일 때 셔터를 누르죠.' (pp.73~74)


그 아티스트의 거대한 자아 | 줄리언 슈나벨

인터넷에서 줄리언 슈나벨의 이름을 넣으면 ‘영화감독’이라는 설명이 먼저 나오는 처지가 되었지만, 이 글이 쓰인 시점에 「비포 나잇 폴스」로 호평을 받고 있던 슈나벨은 누군가 이제 그림 대신 영화를 만들 생각인지 묻자 '이보세요. 전 지금까지 그림 천 점을 그렸고 영화는 고작 두 편 찍었을 뿐입니다. 전 화가예요' 하고 발끈한다. 슈나벨은 미술시장이 매우 활황이었던 1980년대에 그와 함께 나타난 미술계의 문제들―‘자기PR, 선전공세, 터무니없는 가격, 투기 성향 구매’―의 집약체처럼 보였던 인물이다. 글 속에서 넘치는 에너지를 발산하는 그의 성격은 대담하고 거침없는 작품과 그 이미지가 딱 맞아떨어진다. 그는 성공적인 화가이자 인테리어 디자이너 또 영화감독으로서 사치스럽고 화려한 삶을 누리고 있다.


1980년대 미술은 이제 재평가의 대상이다. 슈나벨과 살리, 피슬 등 여러 화가들은 20년 가까이 활동을 계속해왔고, 오늘날 그보다 젊은 아티스트와 평론가, 큐레이터 들이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그들의 작품을 지켜보고 있다. 화가 존 커린은 말한다. '슈나벨은 많은 아티스트에게 도움이 될 만한 본보기를 보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마도 사람들은 그 점을 인정하지 않겠지만요. 저는 그 사람 덕분에 남들에게 보이기 난처한 것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거든요.'(pp.99~100)


육중한 강철의 가벼움 | 리처드 세라 

세라는 주변에서 ‘대하기 힘든 사람’으로 통한다. 그는 '지나칠 정도로 활동적이고, 상대방의 기를 죽일 만큼 의사표현이 분명한 사람'이다. 그는 자신이 믿는 바에 대해서는 거침이 없고 확신에 가득 차 있으며 눈치를 보는 일 따위는 없다. 그렇게 무지막지한 고집으로 밀어붙이는 작품세계는 그의 성격만큼이나 박력 있고 압도적이다. 그런데 어마어마한 규모의 강철판은 어떤 지지대도 없이 공간에 스스로의 물리력으로 서 있다. 세라의 작품은 공간을 구획하며 공간의 형태를 새로이 만들어내며 관객이 그것을 ‘체험’함으로써 비로소 존재하게 된다.


높이가 4미터나 되는 ‘소용돌이 모양의 나선’ 두 개는 강철 재질의 입구를 통해 관객이 내부로 들어갈 수 있게 했다. (……) 내부에 들어간 관람객들은 방향감각을 상실하면서 흥미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둥글게 감싼 모양의 벽은 그 구조를 전혀 짐작할 수 없다. 그 때문에 안쪽으로 들어갈수록 폐쇄된 느낌, 확장되는 느낌을 번갈아가며 받게 된다. 양끝의 육중한 코르텐강 탓에 걸어 다닐 때에는 다소 무섭기도 하지만, 마침내 중심부의 열린 공간에 들어서면 문득 희열을 느끼게 된다. 사방의 모든 공간이 갑자기 후퇴하면서, 거대한 형태가 가볍게 공중으로 떠오르는 듯하다. 세라는 자신의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그 내부나 주변을 거닐며 느끼는 관객의 체험이라고 강조한다.(p.111)


제임스 터렐 | 빛 속으로의 도피

터렐은 '빛을 매체로 작업하는 아티스트다.' 그는 공간 속에 빛을 그려낸다. 그것도 어마어마한 규모로. ‘로덴 분화구’는 애리조나 북부 오색사막 서쪽 변두리에 있는 사화산으로, 여기에 터렐 미술세계의 본령이 있다. 1974년 자가 비행기를 몰고 다니며 물색한 끝에 이곳을 발견한 터렐은 지금까지도 '자연 속에 미술을 들여다 놓는 작업'을 완성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여기에 들어가는 어마어마한 비용은 여러 미술 재단의 지원금에 스스로 운영하는 농장 수익금과 작품 판매비로 충당하고 있다. 실생활에서 터렐은 ‘알기 힘든 사람’이라는 평판이다. 오랜 친구 한 명은 그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책임, 가정환경, 헌신적인 관계 앞에서 달아나는 사람이에요. 하지만 그 사람이 추구하는 미술의 본질은 온갖 종류의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한 것이니까요. 그는 관객들 또한 그렇게 할 수 있게 해주죠.'


터렐의 모친과 할머니는 퀘이커 교도였다. 세 아이 중 막내인 터렐은 예닐곱 살 무렵을 패서디나에서 보냈다. 그는 할머니가 퀘이커교 예배에 대해 들려주던 이야기를 기억한다. '안에 들어가서 빛을 영접한단다.' 그 빛이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의 빛이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어릴 때에도 터렐은 빛의 물리적 현존에 매료되었다. 낮에도 별과 별자리의 이동을 실험하려고 침실 암막커튼에 열심히 작은 구멍을 뚫기도 했다. 10대가 되자 퀘이커교 예배에 가는 일을 그만두었지만 2년 전에는 휴스턴의 퀘이커교 예배당을 설계했다.(pp.155~56)


매슈 바니 | 아름답고 난해한 크리매스터의 세계

매슈 바니는 세계 미술계에 그야말로 혜성처럼 등장했다. 이 잘생긴 젊은 아티스트는 데뷔 직후부터 엄청난 비평적 호평을 받으며 승승장구했다. 고등학생 때 풋볼 팀의 쿼터백이었고 또 모범생이기도 해서 예일대학에 입학했던 그는 모델 일을 해서 학비를 충당할 정도로 뛰어난 외모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는 겨우 서른다섯 살이라는 나이에 데뷔 후 8년간의 작품세계를 개괄하는 대형 멀티미디어 전시를 구겐하임 미술관에서 개최할 정도로 큰 성공을 거뒀다. 그가 창조해낸 ‘크리매스터 사이클’이라는 세계는 도무지 무슨 뜻인지 알기 힘들 정도로 난해하지만 또 눈을 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매슈 바니에 대한 기대는 여전히 높지만, 크리매스터 사이클에 필적할 만한 대작은 내놓지 못하고 있다.


1980년대 과열됐던 미술시장의 붕괴로 수많은 내부자들이 뭔가 새롭고 다른 것을 찾게 되었고, 강렬하고 육체적인 능력을 요하는 바니의 퍼포먼스와 스포츠 메타포, 의료기구 그리고 기이한 재료를 기묘하게 섞은 작품은 그 모든 것을 대변했다. '곧바로 큰 반향이 일었어요.' 바버라 글래드스톤의 말이다.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은 그해 12월에 바니의 개인전을 열어주었다. 이듬해에는 대형 국제 미술 전시 중 가장 중요한, 독일 카셀에서 열리는 도쿠멘타 IX에서 바니를 초대했다. (……) 1950년대 후반의 재스퍼 존스 이래 이토록 젊은 아티스트가 그처럼 큰 영향을 끼친 예는 없었다.(pp.184~85)


마우리치오 카텔란 | 판의 규칙을 깨뜨려버리는 말썽꾼

하는 일마다 실패를 거듭한 학교 부적응자. 마우리치오 카텔란을 설명하는 말들 중 일부다. 그는 심지어 정규 미술교육을 받지도 않았지만 이제 세계 주요 미술 행사와 미술관에 빠지지 않고 모습을 드러내는 것은 물론 미술시장에서도 고가에 작품이 거래되는 세계적인 아티스트다. 무엇이든 미술이 될 수 있는 시대가 규칙에 얽매이지 않는 카텔란에게는 물 만난 고기 같았으리라. 무릎 꿇고 기도하는 히틀러, 관 속에 누운 케네디, 운석 조각을 맞고 쓰러진 교황 등 카텔란은 ‘이게 예술인가?’ 싶은 의구심을 일으키는 작품들, 충격적이고 잊을 수 없는 이미지들을 내보이지만 대개의 관객들은 그 앞에서 웃음을 터뜨리고 만다. 하지만 일단 웃고 나서 그 뒤에 숨은 사회적 의미들을 곱씹게 하는 묘한 작품들이다(그는 이탈리아 트렌토 대학에서 사회학 명예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여전히 전쟁과 권력, 독재를 통렬하게 비판하는 화제성 짙은 작품들을 내놓고 있다.


'전 관람객에게 말을 거는 경향이 있는데, 생각을 많이 하는 식으로는 아니에요. 그건 이상하잖아요. 저는 태생부터 멍청했고 그건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그렇더라도 일상 속에서 무언가를 조금씩 배우고 있죠. 제가 일반적인 미술계에서 벗어나 다양한 유형의 관람객을 아우르는 가능성에 혹한 것은 분명합니다. (……) 그렇지만 아시다시피, 저는 제가 작품의 주인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작품이 바로 대장이에요. 아니면 여주인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하겠네요. 작품은 저에게 즐거움을 주는 동시에, 상당한 고뇌를 안겨줍니다. 제가 만든 것이 무엇이든, 그건 제가 아닌 제 안의 무언가에서 나온 겁니다. 그렇다고 제가 그것의 주인은 아니죠.' (p.230)


재스퍼 존스 | 존경받는 거장 화가의 알 수 없는 속내

미국 국기를 모티프로 한 작품으로 데뷔한 직후부터 미국을 대표하는 아티스트로서 승승장구해온 재스퍼 존스. 그 덕분에 그는 겉보기에는 화려하지 않지만 사실은 무척 여유롭고 호화로운 삶을 누리고 있다(지은이는 이를 두고 ‘수도승의 호화로움’이라고 부른다). 그는 알기 쉬운 사람은 아니다. 작품의 의미를 캐내려는 시도는 그를 짜증나게 하고, 그의 작품 방향은 비평적 기대와 어긋나기 일쑤다. 여러 차례 시도한 끝에 겨우 성사된 이 인터뷰에서 지은이는 재스퍼 존스에게서 그간 듣기 어려웠던 가장 내밀한 이야기를 이끌어내려고 노력하고 일부분 성공을 거둔다. 어린 시절부터 이제는 결별했지만 서로 큰 영향을 주고받은 로버트 라우션버그와의 관계, 작업 방식 등 속내를 알기 힘든 거장 아티스트에 관한 흥미로운 이야기들이 펼쳐진다.


대부분의 위대한 현대 아티스트들이 그렇듯 존스에게 그림은 의견의 표명이 아니며 사전에 짜둔 계획에서 나오는 것도 아니다. 모든 붓질은, 최초의 붓질마저도, 버스에서 혹은 아티스트의 정신에서 이전에 일어난 어떤 일에 대한 응답이다. 그리고 이는 또 그다음에 일어날 일에 영향을 미친다. 존스는 자기 그림들에서 관객들이 나름의 의미를 스스로 구성해내길 바란다.


제프 쿤스 | 사랑을 갈구하는 현대미술의 영업사원

커다란 동물 모양 풍선, 포르노라 해도 무방한 이미지들, 작은 식물들로 이뤄진 거대한 조각상…… 보통은 고고한 미술계에서 마주칠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 것들이다. 거대한 규모의 ‘작업실’을 운영하며 작품들을 공장에서 상품 제조하듯 만들어내는 것을 보고 혹자는 혀를 끌끌 찰지도 모르지만, 사실 그의 작업실에서 만들어지는 ‘예술품’의 엄밀한 완성도를 알게 된다면 그의 예술성에 대해 곧 수긍하게 될지도 모른다. 게다가 장난스런 외양과는 달리 그는 자신의 미술세계가 성스럽고 영적인 의미를 갖추고 있다고 무척이나 진지하게 믿고 있다. MoMA의 티켓 판매원과 주식중개사로 일하던 초년병 시절부터 아티스트로서의 성공, 요란했던 이탈리아 포르노 배우 치치올리나와의 관계와 양육권 소송부터 미술시장의 불황에 따른 추락과 화려한 복귀까지, 이 짧은 전기는 쿤스의 미술세계를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쿤스를 가장 심란하게 한 것은 오해받고 있다는 생각이었다. '사랑이 담긴 섹스는 좀 더 높은 차원의 일입니다. 인간이 영원을 살아가고 영원으로 들어가는 실재적인 차원이죠. 제가 사람들에게 보여준 게 그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작품이 포르노그래피가 아닌 것은 그런 이유죠.' 물론 관람객은 작품이 환기시키는 좀 더 고차원적인 상태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작품 이미지들은 희한하게도 자극적이지 않다. 진짜 포르노에서 빠질 수 없는 치졸한 솔직함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이다. 어쨌거나 쿤스는 크게 낙담했다. '제 작품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을 보면 늘 기분이 좋지 않습니다. 단 한 명도 실망시키고 싶지 않거든요. 그런 경우에는 제 자신이 실패한 사람 같아요.' (p277)


존 커린 | 옛 거장의 테크닉으로 그린 현대 풍속화

정교한 유화 테크닉으로 그려낸 포르노 이미지, ‘아름다움과 추함의 공존.’ 두 가지 상충적인 성질이 존 커린의 미술세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동안 주변부로 밀려나 있던 구상회화는 이제 다시 주류로 복귀했고 그 중심에 커린 같은 화가가 있다. 처음 미술계에 등장했을 때 성차별적인 내용으로 큰 비난을 받기도 했던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눈길을 두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화면에 구현해낸다. 결국 과거에 그를 비난했던 평론가가 자신의 말을 주워 담을 수밖에 없도록 만들 정도로 말이다. 이제는 미술학교에서도 거의 가르치지 않는 과거의 테크닉을 공부하고 연마함으로써 습득한 기술로 그는 자신이 그려내는 내용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마저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아름다움을 만들어낸다. 커린은 캘빈 톰킨스를 위해 그를 작업실로 초대해 작업하는 과정을 시연해 보여주고, 이를 톰킨스는 생생히 담아내고 있다.


이들 그림이 내게 큰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 아름다움에 있다. 오늘날 대부분의 포르노그래피는 사진이고 그 기저에는 성인의 섹슈얼리티에 대한 경멸을 내비치는 냉담함이 있다. 커린은 포르노 모티프를 사용하지만 다른 매체를 씀으로써 그 온도를 바꾼다. 유화의 감각적 즐거움이 사진에 빠져 있는 것을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이 그림들을 그린다는 데에는 일종의 코미디적 측면이 있어요.' 그가 내게 말한다. '포르노그래피는 사진과 너무도 관계가 깊어서 카메라는 당신과 대상 사이를 중재하지 않는다는 아이디어에 크게 기대고 있습니다. 제 작업 동기 중 하나는 분명히 천하고 아름답지 않은 이것을 제가 그림에서 아름답게 만들 수 있을지 보려는 것입니다.' (pp.305~06)


지은이 | 캘빈 톰킨스 (Calvin Tomkins)

1960년 이래 『뉴요커』의 전속 미술평론가로 글을 써왔다. 『뉴요커』에 합류하기 전인 1957년에서 1959년에는 『뉴스위크』의 편집장으로 있었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는 뉴욕 미술계의 기록자로서 팝아트, 대지미술, 미니멀리즘, 비디오 아트, 해프닝, 설치미술 같은 장르와 운동의 발전을 보도했다. 1980년부터 1986년까지는 『뉴요커』의 공식 미술비평가로서 거의 매주 잡지에 미술비평을 실었다. 그는 마르셀 뒤샹, 존 케이지, 로버트 라우션버그, 머스 커밍엄, 버크민스터 풀러, 필립 존슨, 줄리아 차일드, 조지아 오키프, 리오 카스텔리, 프랭크 스텔라, 카멜 스노, 크리스토와 잔클로드, 프랭크 게리, 데이미언 허스트, 리처드 세라, 매슈 바니, 그리고 재스퍼 존스 등 아티스트는 물론 20세기의 주요 인물들에 대한 기사를 『뉴요커』에 기고해왔다. 

쓴 책으로 『신부와 총각들The Bride andthe Bachelors』 『상인들과 명작들Merchants & the Masterpieces』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Living Well Is the Best Revenge』 『엉뚱한―로버트 라우션버그의 초상Off the Wall: A Portrait of Robert Rauschenberg』 『뒤샹 전기Marcel Duchamp: A Biography』가 있다. '각별히 따뜻하고 관대하며 이해력 높은 비평가'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탁월한 예술 저술 작업에 대해 수여하는 ‘클라크 상’의 최초 수상자(2006)다. 뉴욕에서 아내 도디 카잔지언과 살고 있다.


옮긴이 | 김세진

홍익대학교 독어독문학과와 고려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영어, 독일어, 일본어 전문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자존감의 여섯 기둥』 『발칙한 현대미술사』 『모마 하이라이트』 『집과 작업실』 『바나나』 등이 있다.

옮긴이 | 손희경

서울대학교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미술이론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미술관 100% 활용법』 『뜻밖의 미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노트북』(공역)을 번역했으며, 편집자로 일하고 있다.



목차

서문 


데이미언 허스트 | 세상을 집어 삼키려 한 아티스트

신디 셔먼 | 작품 속으로 사라지다

줄리언 슈나벨 | 그 아티스트의 거대한 자아

리처드 세라 | 육중한 강철의 가벼움

제임스 터렐 | 빛 속으로의 도피

매슈 바니 | 아름답고 난해한 크리매스터의 세계

마우리치오 카텔란 | 판의 규칙을 깨뜨려버리는 말썽꾼

재스퍼 존스 | 존경받는 거장 화가의 알 수 없는 속내

제프 쿤스 | 사랑을 갈구하는 현대미술의 영업사원

존 커린 | 옛 거장의 테크닉으로 그린 현대 풍속화


감사의 글

작품 찾아보기

색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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