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도서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단행본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상처 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

  • 청구기호653.27/함56ㅅ;2017
  • 저자명함순용
  • 출판사함박누리
  • 출판년도2017년 1월
  • ISBN9791195976911
  • 가격17,000원

상세정보

그로테스크 미학의 정의와 역사를 설명하며, 고야 판화집의 작품을 싣고 미학과 분석을 더해 엮었다. 저자는 예술이라는 창을 통해 세상을 다른 결로 보고 살아가는, 돈키호테류의 사람 중 하나인, 고야의 작품을 빌어 깨어있는 이성과 철학이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 숨쉬기를 바란다.

책소개

“이 싸움은 정의의 싸움으로, 이런 사악한 씨를 이 지구상에서 뽑아 없애는 것은 신에 대한 커다란 봉사이기도 한 것이다.”
“잠깐만 나리”하고 산초가 대답했다.
“저기 보이는 것은 거인이 아닙니다요. 풍차란 말입니다요. 팔이라고 하시는 것은 날개인데, 바람의 힘으로 돌아서 맷돌을 움직이죠.”(중략)
방패로 몸을 가리고 창을 옆구리에 끼고 로시난떼의 네 굽이 달릴 수 있는 최대의 속도로 돌격해 들어가서, 바로 정면에 있는 맨 처음의 풍차를 향해 창을 냅다 찔렀다. 그가 일격을 가하자 세찬 바람을 받아 무서운 힘으로 돌아가는 날개를 찌른 창은 박살이 나고 동시에 사람과 말도 휩쓸려 하늘 높이 떠올랐다가 떨어지면서 들판을 데굴데굴 굴러갔다.
- 세르반테스, 『돈 키호테(Don Quixote)』 제8장중에서 -

세르반테스(1547~1616)는 고야(1746~1828)보다 200년 전에 태어났다. 스페인을 대표하는 문인이며 『돈 키호테』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전쟁에 참전하여 왼팔을 잃었고, 귀국도중 해적의 포로가 되어 5년간 노예생활을 하기도 했다.
고야 또한 벨라스케스와 함께 스페인을 대표하는 화가이며 근대를 연 화가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직접 전쟁의 참상을 보았고 병으로 청각을 잃었다. 세르반테스의 소설과 고야의 그림 속에는 17, 18세기 스페인 사회의 모든 사람들이 등장한다. 왕과 귀족, 상인, 성직자, 농부, 병사, 공작부인, 시녀, 농부의 아내, 창녀, 그리고 말과 소, 개까지…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를 통해서 무엇을 말하고자 했을까. 고야는 그로테스크한 그림을 통해서 무엇을 전하려 했을까.
소크라테스는 “성찰하지 않는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했다. 필자의 집안 어른 함석헌 선생은 “생각하는 백성이라야 산다”며 독재와 싸웠다. 고야는 『카프리쵸스』 43번 그림에서 “이성이 잠들면 괴물이 깨어난다”고 기록했다 그리고 세르반테스는 돈 키호테를 통해 외친다.
“이룩할 수 없는 꿈을 꾸고 / 무적의 적수를 이기고 /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견디며 / 고귀한 이상을 위해 죽고 / 잘못을 고칠 줄 알며 / 순수함과 선의로 사랑하고 / 불가능한 잠에 빠져서도 / 믿음만으로 잡을 수 없는 저 별에 닿는 것 / 그것은 진정한 기사의 임무이자 의무! / 아니! 의무가 아니라, 특권이노라”
“세상이 미쳐 돌아가고 있다면 누가 제정신일 수 있겠소? 너무 똑바른 정신을 가진 것이 미친 짓이요”
고야 사후 200년이 다가온다. 변한 것은 없다. 세상은 살만한가? 사람들은 행복한가? 지구촌은 평화로운가? 언제나 인간에 대한 예의 상실과 삶의 천박함 들이 기승을 부리며 지성인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다.
상처 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는 깨어 있는 이성, 철학을 세상 속에서 함께 살아 숨 쉬게 하기 위한 필자의 노력이다. 예술이란 창을 통해 세상을 다른 결로 보고 살아가는 돈 키호테류의 사람들이 있다. 그들 중 하나인 고야의 흔적을 찾아 기록한 것을 책으로 묶었다. 미흡해서 부끄러움이 크지만 습작들이 쌓여 더 낳은 역사로 진화한다는 믿음으로 견뎌볼 생각이다.

서문
‘추의 미학’은 당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려는 시대정신의 산물이라 할 수 있다. 아놀드 하우저는 “모든 예술가가 자기 발전의 과정에서 대치하게 되고 어떠한 방법으로든 해결해야 할 문제는 어떻게 사회와 사회의 인습에 가장 잘 적응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아니라, 반대로 어떻게 그가 그것들로부터 가장 성공적으로 해방될 수 있느냐”의 문제라 했다. 이와 같은 미적 범주로서 추의 영역에 존재하는 긍정과 부정의 공존의 대표 개념 중의 하나가 그로테스크이다.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는 계몽주의 시대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로 궁정화가였다. 그의 유화작업이나 궁정화가로서의 작업은 벨라스케스를 능가하지 못한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미술사에서 근대를 연 화가로서, 여전히 현대성을 가지는 화가로서 평가받고 있다. 이 배경에는 미술이 가진 추함, 즉 그로테스크에 주목하였기 때문이다. 판화 연작 시리즈에서 보여 지는 그로테스크한 풍자 미학은 고야를 근대인으로, 나아가 스페인 회화사에서 여전히 살아있는 전설로 남게 하는 근거가 되었다.
저자는 고야의 판화 연작 『카프리쵸스』(Los Caprichos), 『전쟁의 참화』(Los Desastres de la Guerra), 『투우』(La Tauromaquia), 『어리석음』(Los Disparates) 전 작품에 나타나는 그로테스크 미학의 본질을 말하고자 한다.
계몽주의 시대 스페인의 대표적인 화가인 프란시스코 호세 데 고야(Francisco Jose De Goya, 1746~1828)는 회화사에서 두드러진 예술 사조에 속한다기 보다는 바로크, 로코코, 신고전주의, 낭만주의 등 18세기에서 19세기를 풍미한 여러 예술사조의 경향 속에 존재한다. 대표적인 궁정화가로서 왕가를 중심으로 한 실내 유화를 많이 그렸다.
이 당시까지는 벨라스케스의 아류 정도로 취급되던 고야가 현재까지 주목받는 화가가 된 것은 극심한 고통의 결과물이 있기 때문이다. 고야는 45세가 되던 1792년 인플루엔자에 감염되어 청력을 잃게 된다. 이후 구토와 현기증, 일부 시각 장애와 청력 상실로 이어졌다. 또한 그의 머릿속에 이상한 소리가 울리는 이명 현상으로 고통 받았다. 고야는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고 이러한 고야의 고통은 광기로까지 이어진 반 고흐의 그것처럼 예술의 의학사에서 하나의 수수께끼로 남은 사건 중의 하나로 기록될 정도였다. 이러한 고통의 순간에 대부분의 화가는 이젤을 덮는다. 그러나 고야의 해결 방식은 달랐다. 이젤을 덮는 대신에 고야는 소형 그림(cabinet picture) 시리즈에 의욕적으로 매달렸다. 양철판에 유화로 참화의 묘사, 감옥의 내부, 달빛이 비치는 정신병원의 마당, 피 흘리는 투우의 장면 등 질병과 우울증으로 고통 받는 한 남자를 북돋워주는 어떠한 소재든 닥치는 대로 그렸다. 회복단계에서 고야는 길고도 풍부한 인생에서 창조성의 위대한 숲을 하나 발견하게 된다. 판화가 그것이었다. 물론 고통스런 경험 이후에 「벌거벗은 마하」나 「1808년 5월 3일」, 「카를로스 4세의 가족」등의 뛰어난 작품들이 세상에 주목을 받기도 했지만 사실상 고야를 고야답게 만든 것은 다른 장르였다.
그의 예술철학은 화려한 채색으로 빛나는 곳에 있지 않았으며 온전하게 그의 판화집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고야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 속에다 추상적 의미를 붙여 시대정신이 사라져가는 스페인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카프리쵸스』는 고야 정신이 온전히 담긴 채 1799년 2월 6일 총 80장의 에칭과 애쿼틴트로 제작되어 세상에 선보인 첫 번째 판화집이다. 당시의 비평가이자 시인으로 활약한 보들레르는 고야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그의 예술세계를 전하고 있다. 마치 고야의 판화를 통해서 그로테스크에 대한 정의를 내리고 있는 듯하다.
고야는 언제 봐도 위대한, 가끔은 무섭기까지 한 화가이다. 고야는 세르반테스 시대에 절정에 달했던 유쾌하고도 익살맞은 스페인의 풍자정신을 바탕으로 그 위에 대단히 현대적인 요소, 즉 현대로 넘어와서야 집중적으로 추구하는 한 특성을 추가했다. 그것은 설명할 수 없는 것에 대한 사랑, 극단적으로 대조되는 것들에 대한 느낌, 본질적으로 공포스러운 것에 대한 느낌, 그리고 외부 환경의 영향으로 짐승 같은 성질을 가지게 된 인간의 모습에 대한 느낌이다. 이 같은 정신이 18세기의 비평 및 풍자 운동에 뒤이어 모습을 드러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아마 볼테르라면, 수도승들을 다룬 고야의 온갖 풍자들에 깃들인 사상을 무척 고마워했을 것이다.
기존의 고야서적들이 『카프리쵸스』의 풍자성에 집중되었다면 본 책은 『카프리쵸스』를 비롯한 4편의 모든 판화집을 분석한다는데 의미를 찾을 수 있다. 『카프리쵸스』 80여점 중에서 그로테스크 미학을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소재는 제한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4개의 연작이 각각 다른 의미의 그로테스크 성을 보여주는 재료들이기 때문에 고야 판화의 풍성한 의미를 분석하는데 필요한 작업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고야 판화의 분석이 자주 논의되는 배경에는 고야 자신이 분석해 놓은 ‘설명서’ 혹은 ‘제목’들 때문이다. 간결하게 흑백 처리된 에칭만 존재한다면 어떤 뜻으로 그렸을지 알기 어려운 그림들에 고야는 마치 광고 카피와 같은 간략한 설명을 붙여놓고 있다. 이러한 원 재료는 연구 분석의 매력적인 자료가 된다. 저자는 텍스트와 비주얼에 대한 공평한 의미 판단과 작품 전체의 일괄 분석을 통하여 좀 더 풍부하고 기초적인 고야의 작품세계를 소개하였다.
현대의 회화는 회화를 읽는 과정 자체가 미술에 대한 이해, 미술에 대한 하나의 새로운 지평을 여는 작업처럼 되어 있다. 미학과 미술, 철학과 예술의 경계를 넘나들고 있는 것이다. 고야가 살았던 고전주의에서 낭만주의로 넘어가는 당시의 미술, 회화는 분명한 의도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작업이 중심이었다. 다의적인 해석의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은 좋은 작업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고야가 자신의 판화집들에 설명을 붙여놓은 것은 그러한 역사, 사회적 상황과 관련이 있을 것이지만 역으로 이러한 설명은 고야의 다른 의도를 숨기기 위한 작업이었다고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고야 판화집의 근대성, 애매 모호성이 현대에 오면서 주목을 받게 된 것이다.
텍스트가 붙어있는 고야의 판화집들은 때로는 이러한 설명 때문에 정확한 분석을 방해할 수도 있다는 평을 듣기도 한다. “의미의 층위들은 미끄러져 사라지고 더 이상 발견할 수가 없다”는 것이다. 슐츠는 시각적 분석 위에 문자적인 증거를 선호함으로써 작품을 ‘텍스트화 했다’고 비판하고 있다. 또한 고야는 『카프리쵸스』에서 계몽주의적 신념을 작품에 강렬한 메시지로 담아내고 있다. 그러나 그의 생각과 이념을 작품에 그리면서 그 표현방식은 낭만주의적이다. 이러한 점이 고야에 대한 해석을 모호하게 만드는 것 중의 하나이다. 계몽주의가 이성 중심적 사고를 기반으로 한다면 감성적 사고를 기반으로 하는 낭만주의적 특성은 어찌 보면 대립적이고 상충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고야는 두 가지의 가치 체계를 병존시키고 있다. 본고에서는 고야의 다의성을 해석하는 이론적 배경으로 그로테스크 미학을 원용하고자 했고 그로테스크 리얼리즘의 선구자적 길을 걸었던 그의 판화미학을 통해서 상충하는 가치체계에서 창조된 고야의 예술론을 새롭게 해석하고 해답을 찾고자 하였다. 그리고 그로테스크한 판화연작의 전 작품 분석을 시도하여 당대 사회의 모순을 비판하고자 한 고야의 시대정신이 어떻게 ‘추의 미학’ 속에서 구현되었는지를 분석 하였다.

그로테스크의 원형적 조형미 ; 고야의 판화미학

1) 『카프리쵸스』 (Los Caprichos)
고야의 천재성이 스페인의 국경을 넘어 널리 인정받게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위대한 스페인 화가로 알려진 이는 바로크파 벨라스케스였지 진지한 이국풍의 고야가 아니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의 비평가들이 증명하듯 고야의 찬란한 환상의 세계는 결국 주목을 받는다. 여기에는 그의 대표작으로 알려진 「벌거벗은 마하」나 「거인상」, 「1808년 5월 3일」, 「사투르누스」, 「카를로스 4세의 가족」 등의 뛰어난 작품들이 세상에 주목을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그의 예술철학은 화려한 채색으로 빛나는 곳에 있지 않았으며 온전하게 그의 판화집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었다. 고야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 속에다 너무나 현실적이고 구체적 의미를 붙여 시대정신이 사라져가는 스페인 사회를 고발하고 있다. 『카프리쵸스』는 고야 정신이 온전히 담긴 채 1799년 2월 6일 총 80장의 에칭과 애쿼틴트로 제작되어 세상에 선보인 첫 번째 판화집이다.

삶과 죽음에 대해 고야가 그려낸 수많은 작품들은 거의 대부분이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그는 침묵하며 광기의 시대를 광인의 모습으로 검은 그림에 담아 흔적을 남겼다. 그의 판화집은 고야의 한 평생을 읽는 ‘풍부한 저장고’이다. 판화집만 본다면 푸코의 견해처럼 고야는 광기의 시대를 산 천재적인 광인임에 틀림없다. 다르게 말하면 우울증이나 심한 히스테리 환자였는지도 모른다.
처음 『카프리쵸스』가 제작된 시기는 1797년에서 1798년 사이로 간주되며 이때는 영, 불 혁명이 끝나고 유럽에서 계몽사상이 만연되고 있던 때이다. 카를로스 3세의 죽음으로 정치적 문외한인 카를로스 4세가 왕위를 계승하여 정치적 파국을 맞고 있던 때이다. 작품의 내용은 당시의 악정에 대한 지성인들의 생각을 나타낸 것으로 즉, 당시 퇴화된 조정의 분위기에 대하여 조정 내의 혁신파들과 소수 계몽주의자들의 이념과 논조에 고야가 뜻을 같이 한 것이다. 고야는 그 시대의 가장 탁월한 인물들과 접촉을 가진, 폭넓은 교양을 지닌 화가였다. 고야는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들에다가 추상적 의미를 붙여 여러 의미로 해석할 수 있는 제목을 남기고 있다. 모델은 주로 악정의 주역인 수도원장이나 승려, 정치인들로 이들은 마귀나 귀신, 동물로 치환되고 있다. 이 시리즈는 극히 다재다능한 자극과 영감에 의한 것이고 독창적인 사회풍자 이미지들이다.

『카프리쵸스』를 통해서 고야는 다양한 캐릭터를 개발하고 있다. 그리고 장면마다 두 개 또는 그 이상의 캐릭터 사이에 긴장을 불어 넣거나 상황을 연출하고 있다. 때로는 여성이 쥐와 함께 등장하거나 예술가는 꿈속에서 또는 현실을 오가며 박쥐나 올빼미에게 둘러싸인다. 각각의 상황들은 유괴, 음모, 거짓말, 관음증, 조롱, 폭력 등으로 구성되어 진다. 이러한 모든 행위들은 우리 주변의 비행들을 고발하고 있으며 등장 캐릭터 또는 인물들은 항상 신체적으로 학대를 받고 있거나 강제적인 죽음의 압력에 노출되어 있다. 그들이 묶여 있을 때는 삶에서 거짓말이거나 공범자와 나쁜 짓을 계획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왕후, 귀족, 성직자, 법률가, 정치가, 의사, 학자, 군인, 고리대금업자, 밀수입자, 난봉꾼, 부자, 가난한 사람, 출세한 사람 등 당대의 사회의 인물을 괴기한 모습으로 등장시켜, 일종의 가면극을 연기시켰다. ‘이 세상은 가장 무도회다. 얼굴도 복장도 목소리도 모두 꾸며져 모두가 자신이 아닌 것을 보는 것처럼 바라고 있고, 모두가 다르다, 서로에게 누구도 해결해주지 않는다.’ 라고 6번 작품에서 이세계의 인물들의 성격을 나타낸다.
이런 『카프리쵸스』는 무서울 정도의 집념(병마, 실명, 실연, 질투)의 소산으로 만들어졌다. 당시의 계몽주의, 지적자유주의의 사상에 물들었다고는 해도, 청각을 잃어버린 고야의 피 속에는 인간의 조건에 깊이 뿌리박힌 부조리한 원죄의 의식이 단절되지 않고 존재해 있는 것이다.

2) 『전쟁의 참화』 (Los Desastres de la Guerra)
『전쟁의 참화』는 고야의 판화 중에서 가장 사실적인 기록으로 리얼리즘이 강하게 표현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스페인의 독립 전쟁동안 고야는 사라고사에서 체재하였으며, 이 도시에서 개인적으로 경험한 잔인한 전쟁의 결과와 대면함으로 1808년 5월초에 사라고사에서 겪은 전쟁 인상을 처음으로 판화 시리즈로 바꿀 의도를 가진 것으로 보여진다. 여기에서 고야는 인간의 실제 경험이 영향을 끼친 한 구체적인 사건들, 다시 말해서 정복, 전쟁, 기근, 죽음 등의 주제를 그가 받은 충격 이상으로 재창조해내고 있으며 그러므로 『카프리쵸스』에서와는 상이한 자세를 보여주고 있다. 잔인성, 광신, 공포, 부정, 비탄, 죽음 등은 전쟁과 정치적인 억압의 숙명적인 결과들이며, 그 중요성을 선택된 일화적인 주제들과 기억들을 초상화들의 후면에 숨기지 않고 표현하였다.

3) 『어리석음』 (Los Disparates or Los Proverbios)
『어리석음』은 무엇인가. 그것은 분별없고 터무니없는 것과는 정반대다. 그것은 분별없고 어리석은 짓으로 제시되어야만 비로소 햇빛을 볼 수 있는 부류의 것이고, 여기서 분별없는 어리석음은 논리의 역설과 같다고 해석하는 편이 좋을 것이다. 『카프리쵸스』는 사회라는 평면에서의 평면적 풍속비판, 고야자신의 도덕주의적 측면의 표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다양한 인간적 정념, 사회의 일그러진 모습, 동시대인들의 악덕과 비참함 등에 대한 풍자와 비판이 사진처럼 평면적인 방식으로 그로테스크하게 묘사되어 있다. 하지만 『어리석음』은 풍자나 비판이라는 대항적 자세를 뛰어넘어, 고야가 살아온 긴 생애의 두께가 전면에 나와 있다. 묘사되는 사물들은 입체화되고 한 사회의 역사와 그 상태는 마치 압착기로 누른 듯이 선과 악, 풍자와 비판 따위도 모두 짓눌려 부서진다. 따라서 묘사하는 방식, 묘사되는 방식, 또는 새기는 방식이 과거의 판화집들과는 전혀 다르다. 배경 하나만 보더라도, 과거의 배경은 늘 밤이나 낮이었지만, 여기서는 밤도 낮도 없다. 그것은 밤인 동시에 낮이다. 이 판화집은 오랫동안 불가사의한 작품, 늙은 거장의 변덕, 무의미한 유희, 단순한 넌센스,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그린 엉터리로 간주되어 무시를 당해왔다. 이 난해한 판화집의 암호를 푸는 열쇠를 발견한 사람은 이제껏 아무도 없다고 전해진다. 고야 작품의 독창성중 하나인 해석의 다의성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어리석음』 판화집이야말로 고야가 지닌 그로테스크한 창조력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이라고 말할 수도 있다.


지은이 | 함순용

연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박사 학위(예술철학전공)를 받았다. 30년 전 광고회사 화산기획을 창업한 후 (주)한호정보통신, (주)AUSKO의 대표이사를 역임했고, 초대 예술철학회 회장을 지냈다. 지금은 대학과 기업에서 예술을 통한 삶의 지혜와 철학의 귀함을 전하고 있다. 저서로는 <상처입은 지성, 그로테스크 고야>가 있다.


목차

1. 서문

2. 그로테스크 미학의 역사
1) 풍자적인 것과 장난적인 것 - 필립 톰슨 (Philip Thomson)
2) 적대적이고 낯설고 비인간적인 것 - 볼프강 카이저 (Wolfgang Kayser)
3) 현대 미학적 입장에서의 그로테스크 정의
4) 라블레의 세계를 통해 본 바흐친의 그로테스크

3. 그로테스크의 원형적 조형미 ; 고야의 판화미학
1) 고야의 생애와 시대적 배경
2) 고야 판화연작의 개요

4. 잔인한 풍자와 차가운 웃음의 세계 ; 『카프리쵸스』(Los Caprichos)
1)『카프리쵸스』의 제작배경과 의미
2)『카프리쵸스』의 구성
3)『카프리쵸스』(Los Caprichos) 1~80번 작품 분석

5. 공포, 무섭고 낯선 세계 ; 『전쟁의 참화』(Los Desastres de la Guerra)
1)『전쟁의 참화』제작의미와 구성
2)『전쟁의 참화』(Los Desastres de la Guerra) 작품 분석

6. 절망과 카타르시스 ; 『투우』(La Tauromaquia)
1)『투우』제작의미와 구성
2)『투우』(La Tauromaquia) 1~33 작품분석

7. 음산한 가면의 모티브 ; 『어리석음』(Los Disparates or Los Proverbios)
1)『어리석음』제작의미와 구성
2)『어리석음』(Los Disparates) 1~22 작품 분석

8. 고야와 그로테스크
1)『카프리쵸스』43번의 그로테스크
2) 바흐친 시각에서 본 낭만주의 그로테스크와 고야

9. 부 록
프란시스코. 고야 약력 연보
참고문헌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