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11) 위반의 미학, 장영혜의 불온함 | 이슬비

현대미술포럼





위반의 미학, 장영혜의 불온함



자본, 욕망, 종교, 죽음, 섹스…. 스릴러 영화, 막장 드라마에 나올법한 소재이지만 아이러니와 파격을 좋아하는 작가 장영혜가 작업에서 주로 다루는 내용이다. 그는 도발적인 주제와 성에 관한 노골적인 묘사로 수많은 논란을 불러 일으켰다. 하지만 작업의 외설적이고 가벼운 외양은 권력 관계를 문제 삼거나 사회·정치·역사 문제를 비판하기 위한 예술적 전략이라 할 수 있다.  

장영혜는 서울예고와 동덕여대 회화과를 졸업하고 파리1대학에서 미학전공으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마르셀 뒤샹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989년 두손갤러리에서 열린 국내 첫 개인전을 시작으로 한동안 두터운 붓질로 도발적인 주제를 형상화한 회화 작업을 선보였다. 예를 들어 1992년 갤러리 이콘에서 열린 개인전에서는 중식칼이 식탁 위에 높인 뱀을 토막내는 장면을 그린 회화 연작을 <뱀의 해>라는 제목으로 발표했다. 초기 회화가 다소 상징적이고 모호한 이미지였다면 구체적 실루엣이 드러나는 변화는 이후 설치미술에서 나타났다.

값싼 재료, 경박한 외양  
1992년 파리에서 발표한 <성단>, <노란 예수>, 1994년에 선보인 <파불러스 블루 부다>는 합성수지로 만든 예수상과 부처상의 신체 일부를 절단하고 빨강, 노랑 등의 원색의 인공 안료를 칠해 종교적 상징물을 유희의 대상으로 위치시켰다. 성스러움과 속됨의 긴장관계는 1997년 작품 <배드 드림랜드>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전시장의 방마다 미라와 알전구, 감시카메라를 설치해 낯선 분위기를 연출했다. 하지만 미라는 신문지를 색색의 스카치테이프로 칭칭 감아 만든 것이고, 감시카메라도 종이상자로 만든 가짜일 뿐이다. 엄숙한 죽음을 우스꽝스럽게 표현하고 심지어 살아있는 사람들을 조롱하는 듯하다. 

기존의 관성을 해체하는, 불안정하게 접합된 형상의 출몰은 1998년 작품 <한불의 사랑 : 신들은 즐긴다>에서 좀 더 노골적으로 변모한다. 철사 위에 스카치테이프를 감아 만든 서울올림픽 마스코트 ‘호돌이’와 프랑스 타이어 회사 미슐랭의 마스코트 ‘비벤덤’이 벌이는 일련의 섹스 장면은 사람을 능가하는 큰 사이즈로 부풀려져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나아가 1999년 여성미술제 《팥쥐들의 행진》에서는 다수의 호돌이와 호순이가 성기를 드러내고 그룹 섹스하는 장면을 만들고 <호순이 찾기>라는 제목을 붙여 이 기이한 장면을 자세히 들여다볼 수밖에 없게 만들었다. 가장 보편적인 성의 금기가 ‘성기와 성행위 자체의 노출’임을 상기할 때 이들 작업은 가장 은밀한 부위와 사적 행위를 전면에 노출해 문화적 외피 속에 억압된 성적 본능을 거침없이 드러낸다. 

장영혜는 단순히 양극단의 경계를 허무는 넘나듦에 만족하지 않는다. 1998년 토탈 미술관에서 전시된 <죄송합니다!>에서 그는 다리에 고무 튜브를 낀 채 바닥을 기어 다니며 구걸하는 앵벌이 집단을 만들었다. 신문지로 만든 형상에 옷을 입히고 팔토시와 장갑, 모자 등을 씌운 실물 크기의 인형들은 마치 엎드려 “죄송합니다”를 외치는 듯하다. 장영혜는 값싼 재료로 일부러 엉성하게 만들어 뜻밖의 상황에 더 눈이 가게 한다. 실제로 우리는 길에서 이들을 마주칠 때 모른 채 외면하거나 한낱 동정심으로 돈 몇 푼 쥐여 주고는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라며 선을 긋는다. 장영혜는 항상 곁에 있지만, 인정하고 싶지 않은 현실을 충격적인 이미지를 통해 리얼하게 바라보게 만든다. 

장영혜의 작업에 저항적 측면은 권위적인 문화와 순수 예술이 내세우는 위엄을 경박한 외양과  외설적인 문맥으로 조롱하는 혼종성에 있다. 그의 작업은 금기에 끊임없이 도전하고 기호 간의 관계를 난폭히 변화시켜 그 안에서 기능하던 사유구조를 파괴한다. 현실의 이면은 오직 금기의 위반을 통해서만 드러나기 때문이다. 조르쥬 바타이유(Georges Bataille, 1987~1962)에 따르면 장영혜의 작업의 특성은 위반의 미학이라 할 수 있다. 사물의 질서는 권력을 지속하기 위해 삶을 억제하는데, 위반의 미학은 그 질서를 파열시키기 위해 폭력을 필연적으로 수반한다. 장영혜의 작품을 통해 느끼는 충격과 불편함도 바로 이러한 이유에서 비롯된다. 

금기의 위반, 그리고 삼성  
장영혜는 ‘예수’, ‘부처’와 같은 종교적 모티프도, ‘섹스’ ‘앵벌이’와 같은 민감한 이슈도, ‘박정희’ ‘김정일’과 같은 실명도 자신의 작품 속에서 마음껏 거론한다. 그의 작업에서 금기의 한계는 없다. 오히려 터부시하는 것을 직접적으로 건드린다. 대표적으로 한국 사회에서 여성이 성적 자유를 누리고 쾌락을 추구하는 것은 금기에 해당한다. 남성 중심의 사회에서 여성은 남성의 시선에 맞춰 재현되고 소비되는 대상이지 소비의 주체는 결코 아니다. 

2000년 인사미술공간에서 열린 개인전에서 선보인 <북조선 구강섹스>1)는 북한이라는 도발적 소재를 다루는 데, 김정일이 입술을 붉게 칠하고 북한 사회를 홍보하는 영상의 내용은 더욱 충격적이다. 김정일은 공산주의 국가의 경제적 실패를 인정하는 대신 남녀의 성적 평등을 선전한다. 여기에서 말하는 성적 평등은 이 작품의 영어 제목인 ‘Cunnilingus in North Korea’ 2) 가 암시하듯 여성의 성적 자유를 전제로 한다. 김정일은 북한 남성들의 헌신을 통한 여성의 오르가슴을 강조하는데 이는 북조선 공산주의의 승리로 귀결된다. 이 작업의 도전적 측면은 가부장제 사회가 강요하는 정숙한 여자, 착한 여자 콤플렉스에 대한 저항에 있다. 남성 중심의 쾌락에 대한 정면 도전으로 여성이 자신의 섹슈얼리티를 탐색하는 능동적인 성적 주체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장영혜가 1999년 쌈지스페이스 오픈 스튜디오에서 비디오 작업 연작 <삼성 프로젝트>를 내놓았을 때 미술계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삼성>은 ‘내 사랑’ ‘나의 영웅’ ‘국가의 구원자’ 등 눈에 거슬릴 정도로 삼성에 대한 찬양 일색의 내용이다. <삼성의 뜻은 쾌락을 맛보는 것이다>는 한술 더 떠서 한 여성이 설거지하다 말고 삼성을 통해 오르가슴을 느끼며 삼성이 자기를 철저히 지배하길 원한다. 

이 작업은 여성이 남성의 지칠 줄 모르는 성적 능력에 수동적으로 반응하는 포르노그라피의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하는 듯하지만, 핵심은 성적인 행위가 아니라 여성의 오르가슴에 있다.  여성이 발화의 주체이며, 쾌락의 주체라는 점에서 분명히 다르다. 또한 장영혜 작업 특유의 도발은 섹슈얼리티를 거대 자본에 대한 환상과 욕망을 결부시키며 더욱 노골화된다. 작중 화자인 여성이 성적 오르가슴을 느끼게 하는 유일한 상대는 남편 혹은 남성이 아니라, 삼성이다. 여성은 쾌락을 만끽하기 위해 스스로 삼성에 정복되기를 바라는 노예적 시선을 의도적으로 연출한다. 

<주식에서의 삼성>은 삼성 시계가 알리는 시간의 리듬과 재즈 음악에 맞추어 한 남성의 성기가 상승하고 하강하며 욕망의 분출과 좌절을 은유적으로 보여준다. 삼성의 절대적 권능은 <통일 : 테이크 투>, <승천>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김정일, 성모 마리아까지도 지배한다. 한국 사회에서 삼성은 단순한 대기업의 이름이 아니라 자본주의 지배 권력의 상징이자 도착적 에로티시즘을 의미하는 코드다. 장영혜는 금기의 위반을 극단적인 형태로 재현하여 우리의 일상을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메커니즘을 비판한다. 

장영혜가 그 무엇보다 삼성이라는 기호를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1998년 삼성 소유의 건물 옥상에 무단으로 친입해 ‘불법’으로 연출한 <불법의 설치>를 시작으로 2004년에는 장영혜중공업의 개인전이라는 명목으로 삼성 소유의 로댕갤러리에서 ‘합법’적인 전시를 개최했다. 그리고 2017년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장영혜중공업 개인전에서 삼성이라는 지배 권력의 상징을 다시 호출했다. 장영혜는 20여 년이라는 시간 동안 삼성을 줄기차게 언급했지만, 문제가 되는 상황은 전혀 개선되지 않았다. 씁쓸한 것은 앞으로도 우리의 삶이 삼성의 매트릭스에서 벗어나기 쉽지 않아 보인다는 사실이다. 

모방과 위장의 전략 
장영혜는 2001년 10월 26일 지인들에게 ‘오늘은 박정희 전 대통령의 22주기 추모일, 박정희기념관 오픈, 2001년 10월 29일 월요일 오후 5시.’라는 제목의 짤막한 이메일을 보냈다. ‘박정희기념관’이란 제목만 보고 지워버린 사람, ‘지옥에나 가라’는 격렬한 회신으로 대응한 이, 박정희기념관이 벌써 문을 여느냐는 의문을 제기한 관계자 등 예상보다 뜨거운 관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정작 이 메일은 갤러리 현대에서 열리는 ‘제1회 에르메스코리아미술상’의 수상 기념전을 알리는 초대장이었다. 

전시장의 각 층을 천국과 지옥으로 설정한 <박정희기념관>에서 대통령은 반복되는 새마을 노래에 맞춰 휘파람을 불거나 국민체조의 구령에 따라 끊임없이 몸을 흔드는 모습으로 등장한다. 미술평론가 류병학은 이러한 모습 자체가 마치 탄탈로스(Tantalos)의 형벌과 같다고 언급한 바 있다. 장영혜는 지배 권력을 향해 거침없이 도전하지만, 결코 비판적인 외양을 갖춘 적은 없다. 정작 그는 주류에 편승하고자 하는 열망을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3) 반어와 역설, 풍자의 어법은 그의 예술적 전략으로 체제 저항적인 면모를 더욱 증폭시킨다. 

이러한 위장의 전략은 장영혜와 중국계 미국인 마크 보주(Marc Voge)가 1999년에 결성한 아티스트 그룹인 장영혜중공업 4) 의 활동에서 더욱 정교해진다. 웹아트라는 비물질적인 작업을 만드는 이 그룹은 명칭부터 의미심장하다. 장영혜중공업은 남성 중심주의에 대한 거부로 여성인 장영혜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웠고, 오늘날 한국의 경제구축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중공업을 내걸었다. 이들의 명칭은 수출 중심의 중공업 정책을 내세우던 박정희 정권 당시 국가 차원에서 가부장제의 구조가 가장 견고하게 작동하던 시기였음을 떠올려 볼 때 단순히 언어유희로 그치지 않는다.     

장영혜중공업의 웹아트는 텍스트들이 읽기 어려울 만큼 빠른 속도로 점멸하고, 배경음악의 비트 있는 리듬은 보는 이를 흥분시킨다. 작업을 한번 클릭하면 그 이야기를 쫓아갈 수밖에 없다. 상호작용성의 허상을 뒤엎는 이들의 작업은 동시대 광고만큼이나 집요하고, 디지털 매체의 공격적인 속성과 닮았다. 동시대 자본이 쓰는 전략과 상통한 것이다. 장영혜의 작업이 장영혜중공업 이후 아날로그 기술에서 디지털 기술로 전환한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과정일 것이다. 회화, 조각 등 물질적 매체에 기반을 둔 이미지가 고착되고 불변하는 시각적 특징을 가진다면, 끊임없이 변하고 이질적인 세계가 공존하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은 그 자체로 위반의 미학을 내포한다. 무엇이든지 자신의 작품에서 빠져나갈 수 없는 덫을 마련해 놓고, 정작 자신은 위장하고 경계를 넘나든다. 


이슬비(1982~), 이화여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석사, 미술평론가 

ㅡㅡㅡㅡㅡ

1)  이 작업은 비디오 버전으로 동일한 내용에 기반을 둔 동명의 웹아트 작업이 있다. 

2)‘Cunnilingus’는 남성이 입술이나 혀로 여성의 성기를 애무하는 행위를 말한다. 

3)  그룹 명칭에 중공업이 들어간 것에 대해 이들은 한국인들이 대기업을 사랑하기 때문에 자신들도 사랑받고 싶다는 황당한 설명을 한다. 텍스트 중심의 작업 특성상 20여 개의 언어로 번역되는데 초기작을 제외하고는 기본적으로 영어 작업을 우선으로 하는 데 이것도 오늘날 영어가 차지하는 위상, 권력 관계를 암시한다. 2004년 로댕갤러리에서 전시할 때도 인터뷰에서 “저희는 삼성을 사랑합니다. 저희는 삼성을 조롱하지 않습니다. 저희는 모든 사람처럼 자본도 좋아하고, 권력도 좋아합니다. 그리고 삼성 미술관이 저희를 좋아한다니 그저 우쭐해집니다”라고 답했다. 심지어 2017년 개인전 당시 인터뷰에서는 “아트선재센터에서 개인전을 2016년 3월 제의받고 그즈음 가능한 콘셉트를 생각했고 작품도 시작했습니다. 지금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을 예견한 것 같아 정말 기괴해요. 지금 사태를 보면 예술이 삶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삶이 예술을 모방한다고 볼 수 있겠네요. 훌륭한 예술은 그런 방식으로 기능합니다”라고 말한 바 있다. 

4)  장영혜중공업은 웹아티스트 그룹으로 픽션형 기업을 설정하는 독특한 전략을 취한다. 장영혜는 그룹에서 최고경영자(C.E.O., Chief Executive Officer), 마크 보주는 지식 총괄책임자(C.I.O., Chief Information Officer)를 맡고 있다. 작업 대부분은 장영혜중공업 홈페이지(http://www.yhchang.com)에서 확인할 수 있다.




1. 장영혜, <배드 드림랜드>, 1997, 토탈미술관《배드 드림랜드》(1997) 개인전 설치장면, 사진: 월간미술 제공




2. 장영혜, <호순이 찾기>, 1999, 예술의 전당 《팥쥐들의 행진》(1999) 전시 설치장면, 사진: 월간미술 제공




3. 장영혜, <죄송합니다>, 1998, 토탈미술관 《프로젝트8》(1998) 전시 설치장면, 사진: 쌈지컬렉션 제공
 



4. 장영혜중공업, <장영혜중공업이 소개하는 지옥의 문>, 2004, 
로댕갤러리 《장영혜중공업이 소개하는 문을부숴!》(2004) 개인전 설치장면, 사진: 삼성미술관 Leeum 제공 




5. 장영혜중공업, <삼성의 뜻은 죽음을 말하는 것이다>, 2017, 
아트선재센터에서 열린 개인전 당시 외벽에 걸린 대형 배너 작업, 사진: ⓒ 김상태, 아트선재센터 제공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