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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 배형경&김상돈 / 존재의 무게

김종길

존재의 무게


배형경展 9. 7~10. 11 갤러리시몬
김상돈展 9. 1~9. 24 인디프레스


인간에게 실존은 삶의 문제이고 그 문제는 정치에 속한다. 삶이 정치에 속하는 것은 정치가 인간의 본질을 구속하기 때문이다. 인간의 해방은 그 구속의 정치를 끊는 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사람의 형상도 조각가에게는 늘 본질의 문제였다. 그 본질이 또한 실존이어서 조각은 그것에 구속당하기 일쑤였다. 배형경은 그 ‘구속’의 내부로 들어가 ‘속박된 자’의 실체를 엿보았고, 김상돈은 ‘(구속)권력’과 ‘(해방)자유’를 기념비적 토템으로 형상화 했다. 속박된 자의 현실은 ‘가면을 쓴 인격’(persona)이 벗겨진 곳에 있을 터이고, 토템은 ‘가면’만으로 존재하는 ‘헛것’이거나 위대한 신격 그 자체일 것이다.



내가 있다


형상(形象)은 마음에 그 실체를 그리는 일이다. 형상은 마음의 감각에 떠올린 것을 표현하는 것이다. 형상은 본 적이 ‘없는 그것’을 ‘있는 그것’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탄생한 말이다. 배형경의 형상 조각은 존재의 그늘에서 비관 허무 슬픔 따위의 추상을 채굴하듯 길어 올린 것들이다. 그러므로 그의 조각은 그늘의 실체이며 어둠의 형상일지 모른다.   


흰 빛이 쏟아지는, 흰 벽의 네모난 방바닥에 바싹 웅크리고 누운 ‘존재’의 몸들. 빛으로부터 숨으려는 듯, 실존의 무게를 참을 수 없다는 듯 그 몸들은 낮게 움츠렸다. 바닥은 그들이 가 닿은 가장 낮은 곳의 그늘이요, 가장 깊은 곳의 마음(深部)일지 모른다. 그 마음그늘의 바닥에서 벌거벗은 몸의 형상들은 스스로 참혹하다. 관객은, 벌건 대낮에 벌거숭이로 누웠으되 눈 맞춤할 수 없는 이 존재들 사이를 걸어야만 한다.


저 존재의 몸들은 ‘(너로서) 타자’가 아니라 ‘(나로서) 주체’일 것이다. 그들 사이를 걷는 것은 ‘스스로의 순례’일지 모른다. 우리가 저 몸의 존재들을 ‘너-너’로 밀어내지 않고 ‘나-나’로 인식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스스로’가 되고 그 스스로의 주체로서 ‘실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스스로’가 되는 것은 또한 작품(대상)과 주체(나)가 감응하여 심부의 공간에서 ‘하나’가 되는 것일 터인데,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저 조각들처럼 껍질을 벗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상처받지 않은 심부는 본래 스스로 빛나는 존재로서의 ‘(순수한) 나’가 거처하는 곳이니까. 빛나는 존재, 순수한 마음이 곧 ‘이스와라(Iswara : 존재의식/신)’이지 않은가! 


이 존재의 형상들은 엄밀하게 말해 ‘존재의 껍질’일 수 있다. 그는 흙으로 형상을 빚었고 그 형상을 FRP(섬유강화플라스틱)로 떠냈다. 사람의 형상을 한 이 플라스틱 덩어리들은 그러므로 존재의 착란일 수 있다. 그것이 죽은 것인지 산 것인지, 헛것인지 실체인지, 너인지 나인지, 그늘인지 빛인지 온전히 판단할 수 없으므로. 그렇다고 (플라스틱) 존재를 마주하는 (살아있는) 존재들의 번뇌가 다 헛것은 아닐 것이다. 헛것이 아니어서 그 플라스틱은 살아있는 존재들의 ‘(상징적) 실존’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배형경의 조각은 오랫동안 이 실존의 문제를 질문한 것들이었다. 


한 사람이 스스로 깨달아 해방되었다. 그는 삶의 정치에 맞서지 않고 오히려 자기와 싸워 구속을 끊었다. 삶을 둘러 싼 정치는 추상이어서 자기와 맞서지 않으면 실체가 드러나지 않는다. 배형경은 고타마 싯다르타의 ‘앉은’ 모습으로 실존의 첫 사유를 형상화 한 바 있다. 싯다르타는 앉아서 맞섰고 실존의 굴레를 끊었다. 결국 그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를 얻었다(解脫)! 배형경은 그러나 그 자유가 아닌 ‘내가 있다’는 앎 속으로 가라앉았던 그 순간의 ‘실존’을 묻는 일이었고, 그 실존의 그늘 속으로 들어가는 일이었다.   


그리고 그 그늘은 지독한 삶의 현실이고 정치이기도 했다. 그는 “제가 학생이었던 시절 학생들의 데모는 일상 풍경이었어요. 부당한 현실에 목소리를 높이는 청년들이 많았죠. 그리고 지난해에는 많은 사람들이 사회에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저는 제 작업이 굉장히 정치적이라 생각해요. 어느 정당을 지지하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내는 것 자체가 현실에 참여하는 정치적인 활동이라고 할 수 있죠. 그리고 사회를 구성하는 사람에 주목하는 제 작업은 당연히 정치적일 수밖에 없고요. 예술은 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고 생각해요.”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토템, 촛불 혹은 태극기의


악어는 2억 년 전에 출현했으나 거의 진화를 거치지 않았다. 이 대형 파충류의 이빨은 날카롭고 조밀해서 먹이를 한 번 잡으면 놓지 않는다. 인디프레스 건물 입구 왼쪽의 윈도우 갤러리에 김상돈은 <신 부족-악어>를 설치했다. 신 악어부족의 출현은 허리띠를 죄어 고정시키는 쇠붙이(buckle) 속 악어로 쉽게 알아 볼 수 있다. 그는 박물을 채집해 진열하듯 최근 등장한 악어부족의 의상과 가면을 전시했다. 악어토템의 그 부족은 악어가 그렇듯이 육식공룡의 본능을 곧잘 드러낸다.


그가 채집한 다른 ‘신 부족’은 전시장 1층에 <신 부족-산>, <신 부족-독수리, 왕>의 이름으로 서 있다. 색색의 박스가 여러 개 쌓인 좌대 위에서 그것은 동상들처럼 ‘기념비적 형상’의 모습을 취한다. 검은 구두에 면바지, 또는 흰 운동화, 등산화에 면바지를 입은 반신상으로. 허리띠 버클에 새긴 문양으로 봐서 이들이 ‘산’(홀로 서 있음), ‘독수리’와 ‘왕’(등을 맞대고 함께 서 있음)의 부족(장)임을 알 수 있다. 좌대 색상으로는 더불어민주당(짙은 파랑), 자유한국당(빨강), 국민의당(녹색), 바른정당(옅은 파랑), 정의당(노랑) 등의 ‘당 정치성’을 유추할 수도 있는데, 그것들에서 ‘산’과 ‘독수리’와 ‘왕’의 실체가 사실은 어떤 권력과 잇닿아 있음을 알아차릴 수 있다. ‘지지기반’으로서의 이 좌대는 그러므로 해석에 따라서는 민주와 독재의 양면성을 동시에 갖고 있을 것이다.


김상돈은 이 기념비들 사이에 타원형의 ‘알’ 작품들을 벽에 걸고(알이 기념비를 둘러쌌거나 혹은 포위한 것으로 생각할 수 있다.), 입체작품 <알 no.6>를 기념비가 양쪽으로 보이는 한쪽 귀퉁이에 세웠다. 가는 철심봉 뼈대에 죽창을 든 초랭이를 헐겁게 만들었는데(초랭이 탈을 슬쩍 변형시킨 것으로 보인다. 할미탈과 백정탈의 이미지를 뒤 섞은 것일 수도 있다.), 그 형상이 사뭇 아프리카나 파푸아뉴기니의 원시조각을 닮았다. 죽창에 ‘기메’(무당이 종이를 오려 만든 종이 정령)를 주렁주렁 달았고 청동거울로 보이는 스테인리스 둥근 원반도 매달았다. 하회별신굿탈놀이에서 초랭이는 행동이 불손하여 자주 양반을 골려 먹을 뿐만 아니라 영악하고 경망스럽다. 양반과 선비의 허위의식과 모순을 꼬집고 부조리한 삶의 실상을 폭로하는 것이 그의 입이다. 그렇다면 이 초랭이는 지난겨울과 올해 봄, 촛불을 들었던 숱한 시민들의 초상일 수 있을 것이다.


‘알’의 상징은 <알 no.3>에 붙은 ‘기메’로 그 의미를 생각할 수 있다. 죽은 것이 다시 산 것으로 돌아오는 것이 윤회이기 때문이다. 그 기메의 모습은 마치 잉태한 순간의 아이처럼 생겼다. 그래서 생각하는 바, 2층의 ‘신 부족’들은 1층의 ‘알’들을 새 생명으로 품고 출현한 부족들이 아닐까? 관념과 부조리와 모순의 세계를 깨고 새 세계를 여는 ‘아프락사스’(Abrxas)의 신들이 아닐까? 권력을 부수고 정치의 판을 바꾸는 ‘말뚝이’들이 아닐까? 상처받은 민중과 소외 받는 자들의 대변자로 거침없이 행동하면서 풍자와 해학으로 울리고 웃기는 그 말뚝이!


그들은 하나같이 두 눈을 부릅뜨고 입구를 향해 도열해 있다. 보랏빛 낮은 좌대에 서서 한 판 탈놀음을 펼칠 듯이 관객을 매료시키고 있다. 매료(魅了)는 ‘도깨비 홀림’이다. 그러니 그것들은 그것들의 몸으로 치장한 오브제들을 두드리고 울리면서 이 세계를 홀릴 것이다. 정월 대보름 별신굿은 서낭대에 신이 내려 깃들어야 탈놀이를 벌였다. 이 신 부족들은 그렇듯 신이 깃든 뒤에 탈놀이를 펼치는 그 광대들의 모습이고, 신일 것이다.


촛불이 타오르고 태극기가 휘날리는 광장에서 이 가면(극)의 ‘토템’ 형상들은 사악한 것들을 내 쫓고 권력을 비꼬고 뒤집는 위대한 기념비였을 것이다. 신 부족들은 이쪽과 저쪽에서 그들이 세운 ‘기념비’를 숭상했고 서로 맞섰으나 한 세계는 기울고 한 세계는 섰다.   
            

아트인컬쳐_2017년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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