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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 리뷰 | 민정기 / 화엄의 색, 장엄의 미

김종길

화엄의 색, 장엄의 미



《대동여지도》는 22첩의 절첩식 지도(잘라서 이어 붙인 지도)다. 120리 간격의 22층에 80리 간격의 한 면인데, 두 면을 한 판으로 각 층의 판을 병풍식으로 접어 첩을 만든 것. 김정호는 이 땅의 산하를 수없이 걸어야 했기에 접어서 첩이 되는 지도를 구상했을 것이다. 그것은 또한 축지(縮地)와 같아서 땅을 접어 걷지 않으면 볼 수 없는 풍경이었다.


민정기의 회화적 수행도 바로 그 걷기에 있었다. 그의 걷기는 두 발과 새의 눈으로 이뤄진다. 언젠가 그가 경기창작센터에 입주해 있을 때 그의 스튜디오를 찾았는데 그는 벽면 가득 캔버스 천을 펼쳐놓고 안산 일대의 지리적 구조와 교통로, 그리고 풍경의 세목 따위를 마치 지도처럼 그려놓고 있었다. 그런데 눈을 떼지 못하고 한 참을 보게 된 것은 거기에 산세와 지세를 끼고 둥지를 튼 수백 년의 구(舊) 안산이 있고, 바다를 메워 도시를 세운 신(新) 안산이 있었으며, 시화호와 그 건너 송도 신도시, 대부도까지 이어지는 옛길과 외곽순환도로와 앞으로 뚫리게 될 길의 흔적들이 쌓여 있어서였다.


하나의 풍경에 옛 시간과 미래의 시간이 겹치고 회화적 형식이 해체된 자리에서 다시 회화가 탄생하는 기묘함이 난무했다. 금호미술관의 <민정기>전은 그때의 그 미학적 실험이 더 커져서 과거, 현재, 미래가 카오스처럼 펼쳐진 우리 현실과 그 현실의 굴곡과 터널과 그림자와 빛의 서사가 성취한 탁월한 ‘작가전’이었다.  

 
작품의 해석학적 상징 주제를 달지 않은 이 전시는 민정기라는 ‘작가’를 전시장에 호명했고, 그 호명의 형식은 작가세계를 형성하는 시대적 층위, 미학적 층위, 그리고 그 층위에 투영된 ‘뜻’을 지하에서 지상 3층에 이르는 공간에 마치 감로탱(甘露幀)의 상중하단 구조처럼 펼쳐놓은 것이다.



참혹하고 질긴 삶의 현실


회고전이 아니라 초대전이었기 때문에, 전시의 층별 구성은 지하 1층 전시실에 구성한 1984~87년 사이의 에칭과 석판화들, 즉 <한씨 연대기>(1984), <숲에서>연작(1986), <숲을 향한 문>연작(1986), <역사의 초상>연작과 <일터를 찾아서>(1983), <택시>(1985), <세수>(1987)를 하부구조에 두고, 최근에 그린 풍경화 27점을 그 위층 공간들에 배치하고 있었다. 판화 작품과 풍경화는 30년의 시차를 두고 가파른 긴장의 언어를 토해내고 있었으나, 그 긴장이 주는 느낌은 불편이 아니라 차라리 황홀이요 환희였다.     


하나의 전시는 작품이 놓이는 공간의 그물을 통해 작품의 내재적 언어와는 전혀 다른 전시 특유의 언어를 획득한다. <민정기>전은 관객을 지하 1층에서 바로 공간그물에 포섭하는 전략을 치밀하게 준비한 듯했다. 작가의 미학적 뿌리인 1980년대 초기 판화 작품들을 정교하게 배치함으로써 민정기라는 작가가 어떻게 탄생했는지 그 탄생의 비밀에 빠질 수밖에 없도록 해 놓았으니까. 더군다나 그곳은 두 개의 공간이고 그 공간의 안쪽 깊은 곳에 시대의 가장 아래쪽을 설치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푸른 벽에 건 흑백 판화 55점은 ‘작가가 직접 목격하고 겪은 사회적 모순과 혼란, 그리고 문학으로 간접 경험한 역사적 상황을 포착’한 것들이었다. 바꿔 말하면 작가 민정기의 탄생은 1980년대라는 모순의 시대와 혼란의 현실로부터 비롯된 것이다. 그리고 그가 길어 올린 그 시대의 미학적 언어들은 <한씨 연대기>, <역사의 초상>, <숲을 향한 문>에 새겨진 6.25전쟁과 분단과 희생과 그것들의 어두운 존재성으로 가득했다.


소설 속 삽화를 새기듯 드로잉 에칭으로 표현한 <한씨 연대기>, 칼라 슬라이드 포토 이미지에 몽타주하듯 흑백의 역사이미지를 오버랩 시킨 석판화 작품 <숲을 향한 문>과 <역사의 초상>은 20세기 한국 근현대사를 사유하는 작가의 놀라운 성찰적 회화가 아닐 수 없다. 특히 <역사의 초상>은 동학 이후 조선의 근대적 초상을 흑백 포토몽타주 형식에 거친 드로잉을 섞어 석판화로 제작한 것인데, 그 미학적 상징은 물론 메시지의 무게가 현재의 박근혜, 최순실 게이트와 겹쳐서 적지 않게 다가온다.


세 연작 판화를 보고 읽는 동안 우리는 식민지 근대와 6.25전쟁과 5.16군사쿠데타와 유신독재와 5공화국의 권력이 어떻게 솟았다가 몰락했는지를, 또 민중의 삶이 얼마나 참혹하고 질긴 것인지를 깨닫게 될 것이다. 반면, <숲을 향한 문>과 상대적 관점에서 해석할 수 있는 <숲에서>는 현실 너머의 현실(자연[自然])을 상상했던 작가의 순수의지를 엿볼 수 있다. 그리고 <일터를 찾아서>, <택시>, <세수>는 1970년대의 시대령을 빠르게 건너 온 80년대 당시의 도시화와 산업화의 민낯일 게 분명하다.


감로탱의 하단은 인생의 고통과 재난과 무상을 표현한다. 그 시대의 사회현실을 반영할 뿐만 아니라 유랑예인집단의 여러 연희 종목과 지옥의 실상을 새겨 넣기도 한다. 민정기의 판화 작품들은 그곳에서 있는 그대로 아수라의 현실을 드러낸 공간이었고 그 위에 펼쳐진 풍경화들의 뿌리였다.   


 

꽃으로 장엄한 풍경들


판화 전시실을 빠져 나오는 곳에 <임진리 나루터>가 걸려 있었다. 지하의 첫 공간에 걸린 세 작품 <임진리 나루터>, <임진리 도솔원>, <임진리 나루터 정경>(이상 2016)은 왜 판화 전시실과 대련을 이루듯 배치되었을까? 아수라의 현실이 ‘지하세계’를 이루는 그림자의 상징이라면 임진리의 현실은 실체로서의 분단 현실이 아닐까. 작가는 그래서 한국 근현대사의 출구를 임진리에서 시작한 듯하다. 북한의 최남단이요 남한의 최북단인 임진나루. 강을 사이에 두고 남과 북이 마주하고 있는 나루터는 굳게 닫힌 철문과 그 길 양 옆의 시멘트 콘크리트 대전차 방어물이 현재의 남북을 보여주는 듯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작가는 그곳 ‘도솔원’과 ‘나루터 정경’을 길게 펼쳐서 산세와 물의 흐름에 주목해 그린 두 점의 작품을 걸어두고 있었다. 그 그림들 속에서 철조망은 한 낱 색채에 불과할 뿐 풍경의 이쪽과 저쪽을 가르지 못한다. 올 수 없고 갈 수 없는 곳으로서의 접경지는 미래의 궁궁처(弓弓處)일 수 있다. 후고구려를 꿈꾸며 궁예는 그곳에 도성을 세웠으니까.


연행길이었던 1번 국도는 목포에서 신의주까지 이어진다. 임진나루는 그 길의 중요한 길목이었다. 민정기는 1990년대 초반 그 길을 여행한 적이 있다. 중국에서 인도에 이르는 실크로드를. 그리고 이번 전시의 작품들은 임진나루에서 아래로 걷는 길의 풍경이다. 1번 국도를 따라 내려오는 길. 임진나루에서 시작되어 홍지문을 지나 번화한 홍제동과 경복궁 어귀에 이르는 길.


산과 땅과 물을 접어서 펼치고 다시 그 위에서 새의 눈으로 조망하는 시간들은 반드시 지금 여기의 풍경으로만 비쳐지지 않았다. 영화 <인터스텔라>에 등장하는 블랙홀의 표면은 삶의 시간이 촘촘하게 그리드로 짜여서 존재한다. 그의 화법이 만들어내는 씨줄날줄은 마치 그 홀의 삶의 시간처럼 과거와 현재가 쌓여서 표현되었다. 산세가 민둥머리 땅의 시간에서 시작되어 초록의 숲이 되는 과정이 엿보이고, 본래의 거대한 암괴 형상에 덧칠하듯 새겨진 불상이 또한 그렇다. <묵안리 장수대>, <유 몽유도원>, <경주 칠불암>(이상 2016)은 그 중에서도 인문지리학적인 작가의 철학과 인식이 펼쳐낸 최고의 수작이라 할 만하다. 고지도는 물론이요, 신화적 서사와 민화적 상상력, 게다가 하늘과 땅과 물의 흐름으로 인간의 삶의 이치를 따졌던 주역의 풍수지리 역술과 그것의 술수(術數)까지 그의 회화는 차라리 ‘장엄(莊嚴)의 미학’이라고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피안의 세계는 따로 있지 않고 속세가 곧 피안이라고 말하는, 화엄(華嚴)의 색채를 보고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이 현실이 꽃으로 장엄한 화엄의 세계는 아닐 것이다. 예순 일곱에 이른 노작가가 인식하는 현실은 몽유도원을 치고 들어앉은 연립주택과 고급빌라와 포장된 도로가 보여 주듯이 상실과 욕망이 동시에 현존하는 부조리의 현실이다. 백악산 밑으로 파고든 현대식 건축과 도로와 자동차들, 벽계구곡을 가로지르는 긴 고속도로와 터널, 옥천암 위로 횡단하는 거대한 고가도로…. 길들은 땅 위의 굴곡을 따라 걷기의 흔적으로 새겨지지 않고 자동차 속도에 맞춘 직진구조의 구조물이 길을 덮었다. 도시 풍경이 엄습한 곳들에서 산들은 그 산의 시간들은 그 시간의 거대한 역사는 한 낱 조망권에 불과한 자본이 되고 말았다. <북악 옛길>, <홍제동 옛길>, <백악이 보이는 서촌>, <옥천암 백불>(이상 2016)은 그렇게 옛 것들과 새 것들이 혼재한 풍경들이다. 그리고 우리는 전시 공간의 상단부에서 여전히 옛 것들과 공존하는 자연과 마주한다. <경기 칠불암>과 <화엄사 뒷길>(이상 2016)은 도시를 통과한 시선이 자연으로 파고든 것들이다. 판화 연작 <숲에서>의 시선은 이곳에 와 있다. 숲은 햇살이 쏟아내는 색비늘로 가득하다. 그는 이 숲에 서 있다. 그리고 그는 이 숲에서 아마도 잡화엄식(雜華嚴飾)의 다음 장을 구상하는 듯하다.


아트인컬쳐_2016년 1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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