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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 대지의 역사를 새기다 - 손장섭 회화

김종길


 

대지의 역사를 새기다

- 손장섭의 회화

 

김종길 | 미술평론가

 

“역사 속에 서 있는 자각한 인간은 결코 사회적 모순이나
비인간적 현실을 외면하거나 방관할 수 없다.” _ 손장섭

 

손장섭의 회화는 ‘그리다’의 동사를 ‘새기다’로 바꿔야 더 잘 보인다. 그는 캔버스에 무엇을 그려서 ‘그림’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붓으로 새겨서 깊이 각인(刻印)시키는 ‘마음의 회화’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마음의 회화는 기억의 새김이고 기록의 새김이며, 그래서 그것은 ‘역사화’의 얼굴일 것이다. 나는 그 얼굴에서 이 땅의 산하와 그 산하에서 자란 나무와 숲과 바다와 민중들의 서사를 읽는다. 사람들이라 하지 않고 굳이 ‘민중들’이라 표현한 것은 그 산하의 회화적 돋을새김이 금강산이고 설악산이고 북한산이고 백령도이고 독도이고 통일전망대이고, 동해의 철책이기 때문이다. 또 그 나무의 돋을새김이 수백 수천 년을 이 산하에 뿌리박은 신령한 은행나무요 느티나무요 관음송이요 백송이요 향나무요, 주목이기 때문이다. 한반도의 산하와 나무와 숲과 바다와 거기에 오래 깃들어서 그것으로 풍경의 한 일부가 된 ‘신령한’ 사람들이 곧 이 땅의 민중이지 않은가!

 


 

신령한 민중

 

역사를 창조해 온 직접적인 주체이면서도 역사의 주인이 되지 못한 사회적 실체로서의 민중, 그런 민중에의 인식은 그가 민중미술 그룹 ‘현실과 발언’ 창립에 참여했고, 민족미술인협의회의 초대 회장을 지낸 그 스스로의 민중적 삶의 이력과도 무관하지 않겠으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화력(畵歷)을 시작할 무렵인 약관(弱冠)의 어린 나이에 4.19혁명을 겪은 것과 관련이 깊을 것이다. 서라벌예고 3학년이던 그해 1960년 봄, 그는 데모 현장에 나갔다가 덕수궁 대한문 근처 골목에서 학생들이 뛰쳐나오는 장면을 목격했다. 마음의 회화로 첫 ‘새김의 미학’을 창조한 작품이 바로 그 장면을 새긴 <사월의 함성>(1960)이다.

 

그 작품은 4.19의 ‘가투’(가두투쟁, 거리시위) 현장을 빠른 필체로 스케치하듯 형상화 한 것이다. 대상의 묘사나 구체적인 표현보다는 그날의 긴박했던 순간을 기록하려는 의지로 가득 차 있다. 그래서 어떤 미적 형식이나 사조의 흔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 회화가 새김의 미학으로 읽히는 것은 부상당한 한 사람과 그를 어깨걸기로 부축하고 있는 두 사람 때문이다. 그것은 마치 17세기 피에르 파울 루벤스(Pierre Paul Rubens)가 그린 <십자가에서 내려지는 예수>를 보여주는 듯하다. 세 인물은 화면의 맨 앞에서 주제를 압도하고 있으며, 그들 뒤로는 펼침막을 들고 뛰는 수많은 학생 시위대가 이어진다. 그 혁명은 미완이었으나, 혁명의 물결은 실제로 5.18민주항쟁과 지난겨울의 촛불혁명으로 이어졌다. 그는 역사에 바쳐진 한 ‘희생’과 그 뒤를 따르는 거대한 ‘함성’을 깊게 새겨 놓음으로써 시대의 첫 벽화를 직조해냈던 것이다.

 

<사월의 함성>이 체험된 민중혁명의 역사적 장면을 마음에 새긴 것이라면, <우리가 보고 의식한 것들>(2011)은 40여년의 역사적 층위를 탐색하고 몽타주한 것이다. 40여년이라고는 하나 그 층위에 내재된 흔적들의 그림자 실체는 식민과 해방과 분단과 미군정기와 6.25전쟁이지 않을까. 손장섭 개인의 서사와 예술적 표현을 결합한 이 몽타주는 마치 에이젠슈테인(Eisenstein)의 ‘충돌의 몽타주’처럼 이미지들의 상호 작용을 불러일으키도록 유도한다. 일종의 헤겔의 변증법적 충돌과 대조일 터인데, 거대사와 미시사, 집단과 개인, 전쟁과 분단, 독재와 혁명, 억압과 항쟁, 산업화와 민주화, 북한 남한 통일 국토 영토 쿠데타 숭배 애도 등의 역사어 정치어 상징어 심지어 종교적 언어까지 엮이고 섞여서 쏟아진다. 분절된 시간들의 몽타주는 ‘역사’라는 언어의 카오스다. 마셜 맥루한(Herbert Marshall McLuhan)이 미디어는 메시지라고 했듯 손장섭의 이미지는 그러므로 우리 근현대사의 응축된 말이요, 메시지일 것이다.

 


 

그 말과 메시지가 숭엄한 색채로 먼저 새겨진 것이 <역사의 창-6.25>(1990)이다. 가로 길이 384cm의 이 그림은 일반적인 회화보다는 기념비적인 벽화에 가까워 보인다. 그림의 형식을 굳이 다른 분야에 비교하면 잘 새긴 색채 부조일 것이다. “그 희부옇고 푸르데데한 우수의 색조”는 “<역사의 창> 연작에서처럼 그의 화필이 직접 역사를 겨누었을 때, 역사에 대한 반성을 벼락같은 깨달음으로 이끄는 작용을 하기도 한다.”(고종석)고 하지만, 실상 그 살풍경의 벽화는 너무나 쓸쓸했고 메말랐으며 그래서 더 보잘 것 없어 보였던 시대의 초상일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살풍경의 초상조차도 그 시대를 견디고 살았던 민중들의 초상이기에 그는 새기지 않을 수 없었다. 역사의 창에 새겨진 그 숱한 인물들의 얼굴은 그래서 때때로 하나의 ‘물질’로서만 읽힐 뿐이다. 나는 그 물질의 물성에서 어떤 영험의 기운을 느끼기도 한다. 예컨대 목판을 판각한 판목에 색을 입힌 <유월 춤>(2015)은 5.18의 산자와 죽은 자, 1987년 6월 9일의 최루탄에 맞은 이한열, 그리고 6.10항쟁 당시 이애주의 ‘시국 춤’과 한풀이 춤 등을 몽타주한 것인데, 이애주의 입에서 뿜어 나오는 신묘한 숨결이 영험하다. 또 화면의 중앙에서 흰 옷을 입고 춤을 추는 (이애주의 분신같은) 여성과 (이한열 열사를 받쳐 든) 그녀의 손과 (전경과 대치한 한 여성을 가리키는) 발이 범상치 않다. 이것은 단지 하나의 이미지로 읽힐 수도 있지만, 나무에 판각을 하고 그렇게 판각한 나무에 장엄하듯 색을 입힘으로써 물성은 애니미즘이 되고 있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그것은 ‘이미지 토템’이다. 그리고 그 이미지 토템의 가장 신령한 주제가 ‘나무’ 연작이다.

 


 


 

산하의 역사를 살아낸 ‘우주나무’

 

그의 나무는 최소한 수백 수천 년을 산 나무들이다. 그 시간을 살았으되 그 꼴과 풍채가 또한 압도함을 가진 나무들이다. 그렇다고 그 압도함이 어떤 공포심을 자아내거나, 두려움이 엄습하도록 하는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 품이 너무나 넉넉하여 아름답고(<인천 남동구 은행나무>, 2016), 그 기골이 장대하여 신기가 드세며(<강화도 은행나무>, 2012), 천 년의 세월을 가늠키 어려워 먹먹하고(<용문사 은행나무>, 2016), 희부옇고 푸르데데하여 온 정신이 홀딱 벗겨지는 것만 같으며(<이천 백송>, 2016), 큰 바위에 뿌리박고 굳건히 하늘 신목으로 자란 것이 우람하고(<성흥산성 느티나무>, 2016), 동해 울릉도 산자락에 거대한 등걸로 말라 죽었으나 한 가지 끝에 세차게 싹을 틔운 것이 힘찰 뿐이다(<울릉도 향나무>, 2012). 이런 그의 나무들은 신격을 가진 독립적 존재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위엄과 숭고와 비범의 자태를 뿜어내는 그 나무들이야 말로 민중의 삶은 물론, 이 산하의 역사를 온 몸으로 살아낸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그런 나무들은 세계수(世界樹), 우주나무라고도 하지 않은가!


민속학자 장장식 박사는, 몽골에선 아직도 ‘어머니 나무’ 신앙이 전해져 온다고 전한다. ‘어머니 나무’는 몽골어로 ‘에지 모드’라고 하는데 ‘아브개 모드’(아낙네 나무) 또는 ‘오드강 모드’(무녀나무) 등으로도 불린다. ‘오드강 모드’는 여자 무당을 가리키는 ‘오드강’과 붙어서 만들어진 말이지만, 버드나무를 뜻하는 ‘오드’의 다른 음으로도 해석되기도 한다. ‘어머니 나무’의 다른 이름인 ‘오드강 모드’는 그러니까 버드나무 신목을 뜻하는 것이다. 우주나무는 여러 경전이나 세계 곳곳의 신화적 모티프에서 등장한다. 하늘과 대지를 잇고 뿌리로는 지하를 연결하는 의미를 가지면서. 우리 민족은 그것을 신수(神樹), 신단수(神壇樹), 서낭나무(당산나무)로 불렀던 것이다. 고대 몽골인들은 대지와 물의 주인을 에투겐(et gen)이라 불렀고, 에투겐을 멩케 텡게리, 즉 하늘 신에 버금가는 숭배대상으로 삼았다. 에투겐은 ‘어머니·어머니의 배(腹)·어머니의 자궁’을 뜻하는 말에서 비롯된 것이다. 손장섭의 ‘나무’는 그런 모든 것들의 신화를 은유적으로 함축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나무들의 대지가 그의 국토 풍경들이다. 그가 새긴 국토는 이 땅의 민중들이 하늘 신에 기원하는 어떤 염원의 숭고함이 깃들어 있다. 금강산을 그릴 때 그것은 절경이 아니라 두 손을 모은 감탄이며 환희이고 슬픔이다. <상팔담>(2002)의 산봉우리가 두 손을 모은 것이요, 그 봉우리를 감싸고도는 물웅덩이가 눈물로 보이는 이유다. “퍼런 색덩이를 산세 속에 마구 부려넣은”(노형석) 감흥이 환희다. 설악에서 동해에서 독도에서 백령도에서 소래포구에서 통일전망대에서 그리고 울산바위에서 그의 붓은 감흥의 붓질이 되어 국토를 새기고 있다. 그런데 그런 감흥이 크면 클수록 그의 회화는 희뿌연 한 색채에도 불구하고 산세와 지세와 기암괴석이 ‘대지의 뼈’를 이룬 듯 기골이 크고 힘차다는 것이다. 마치 그 뼈에 새겨질 새 역사의 새로운 서사는 아직 시작도 하지 않았다는 듯이 말이다. 밝달(밝은 해의 나라) 겨레의 밝은 색조가 온 땅에 비추어 밝달 산하를 이룬 손장섭의 회화는 그러므로 아직 끝이 없다.    
               
*** 아트인컬쳐, 2017년 7월호 포커스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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