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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론 | 여기, 차안의 나루터에서/저기, 피안을 춤추는 - 무늬만 커뮤니티의 수행

김종길



여기, 차안(此岸)의 나루터에서
저기, 피안(彼岸)을 춤추는
- <무늬만 커뮤니티>의 미학적 수행과 ‘무늬들’  


김종길 | 미술평론가



‘삶정치적’ 공동체, 무늬만 커뮤니티


커뮤니티(community)를 일반적인 의미의 지역사회가 아닌 사회적 관계로서의 ‘공동체’, 혹은 공통의 가치와 정서적 유대로서의 ‘공통적 관계’로 해석할 수 있다면, 예술가 그룹 <무늬만 커뮤니티>는 10여 년 동안 탈(반)예술적 기획과 수행적 실천으로 그런 ‘커뮤니티’의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개념을 뒤흔들었다. 그들이 유쾌하면서도 시니컬하게 사용해 온 ‘무늬만’이라는 형용구는 근대적 지식과 체험으로 형성된 ‘상상의 공동체(Imagined communities)’를 비웃기라도 하듯 커뮤니티의 실체를 희미하게 흩뜨리는 힘을 가졌기 때문이다.


1945년 이전의 식민지 경험이 ‘민족/민족의식’을 강화하는 기제였다면, 1970년대 이후의 급격한 도시화․산업화는 ‘공동체/공동체의식’을 갖게 하는 기제였을 것이다. 그런 의식들은 식민지․도시화․산업화에 대한 강력한 반작용이었다. 그런데 21세기에 접어들자 어쩌면 그런 반작용의 의식들이 실제로는 허구일 수도 있다는 의심이 떠돌았다. 민족은 누구이며 공동체는 어디에 있을까, 그것은 근대 국가가 형성시킨 근대성의 프레임이 아닐까, 이런 질문들을 던지면서 <무늬만 커뮤니티>는 등장했고, 그들은 역설적으로 ‘(소수자 혹은 소외자로서의) 개인’을 보기 시작했다.




비아냥거리는 말로 ‘무늬만 커뮤니티’의 숨은 속뜻은 ‘공동체도 뭣도 아니다’이다. 수 십 년 동안 한국사회는 봄가을에 ‘이사철’을 맞으며 민족의 대이동을 겪었고, 그에 따른 사회적 관계는 거의 직장 내에서만 존재할 뿐 사실 상 붕괴된 지 오래다. 1946년 수도권(서울․경기․인천)의 인구는 246만 명이었다. 현재 수도권의 인구는 2,600만 명이 넘는다. 대부분 노동이동(labor mobility)과 신도시 유입이 결정적이었다. 노동이동의 두드러진 현상 중의 하나는 아시아 노동자들의 국내 취업이다. 경기도에만 30만 명이 일하고 있다. 공동체는 과연 존재하는 것일까? 


‘공동체’가 수면위로 떠오르는 순간은, 그런 노동이동과 인구 과밀화와 붕괴된 사회적 관계들이 어떤 사건들을 터트렸을 때였다. 경기도 안산의 이주 노동자 거주지역인 ‘국경 없는 마을’에서, 경기도 수원의 한 폐업 유흥업소와 철거 지역에서, 경기도 안양의 인덕원 거리 술집에서…. ‘없이 있는’ 개인들이 ‘무늬’을 일으키며 등장한 것이다. 공동체도 뭣도 아닌 ‘무늬만 커뮤니티’가, 그러니까 ‘없이 있는’ 개인들의 삶이 위태롭거나 위기에 몰렸을 때 커뮤니티의 무늬가 드러난 것이다. 그 ‘무늬’는 정치적 삶의 작용과 결코 무관하지 않았다. 그러므로 ‘무늬만 커뮤니티’는 ‘삶정치적(biopolitical)’ 공동체로 바꿔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무늬만 커뮤니티>가 지향해 온 미학적 수행 또한 우리 사회의 수많은 ‘무늬만 커뮤니티’가 근대적 프레임과 맞서서 싸워 온 ‘삶정치적’ 현상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 그들은 공공의 정책이 지원을 통해 끊임없이 드러내고자 했던 ‘(국민/민족)공동체’을 가장 위험한 공동체라 주장하기도 했다. 무늬가 없는 ‘국민/민족’은 국가주의가 조장하는 표상에 가깝다. 무늬는 개인들의 ‘삶정치적’ 생명활동이다. 그리고 그런 인식이 ‘무늬만’을 부정이 아닌 긍정의 개념으로 뒤바꿔 놓는다.




무늬들, ‘개인’을 구원하는


‘무늬’을 ‘개인’으로 돌려놓으면, ‘무늬만 커뮤니티’의 의미는 ‘살아 있는 개인들(만)의 공동체’가 된다. <무늬만 커뮤니티>의 기획은 그러므로 인간이 그리는 무늬가 아니라, 살아 있는 개인들의 ‘무늬’를 찾는 것에서 출발한다. ‘무늬’의 발견은 ‘살아있음’의 발견인 것이기도 한 것. 그리고 그것은 ‘개인’이라는 ‘삶정치’의 진리를 묻는 하나의 화두(話頭)와 같다. 예컨대 그들은 <다기조아 10호점>(2007)의 ‘싸장님’(‘사장님’이 아닌 ‘싸장님’은 <무늬만 커뮤니티>가 치킨집 사장을 호명하는 방식이었다. 그 말에는 변두리 B급 언어의 색채와 현실적 호감을 나타내는 표현 모두가 뒤섞여 있다)에게 주목한 바 있다. ‘닭이 좋아’의 표준어를 입말로 풀어 ‘다기조아’라 한 뒤, 그 말을 프랜차이즈 상호로 쓰는 후라이드 치킨집 ‘다기조아 10호점’. <무늬만 커뮤니티>는 그 집 ‘싸장님’의 인테리어 문화코드에서 ‘무늬’를 발견했고, 그것을 ‘하이아트의 순수예술계’에 위치시키는 프로젝트를 진행했었다. 그것은 싸구려 키치의 혼성 무늬가 하이아트의 미학이 되는 기획이었다. 


살아 있는 개인의 무늬를 놀랍도록 재위치 시킨 첫 프로젝트는 <독서는 마음의 양식>(2005)이었다. 폐품수집용 수레에 어딘가에서 수거한 종이박스를 쌓고, 그 위에 그런 종이박스와 박스 테잎으로 제작한 ‘독서하는 소녀상’을 올려놓은 작품이다. 한국사회에서 극빈층 노인들의 ‘무늬’는 폐지를 수거하는 모습에서 자주 드러난다. 그 ‘무늬’는 참혹한 생존의 무늬였다. 그들은 공공의 지원금으로 노인에게서 폐지를 구입한 뒤[지원금(국민세금)을 노인에게 되돌려주는 방식이다], 그 폐지(廢紙)로 국가주의 훈육의 상징물인 ‘독서하는 소녀상’(<무늬만 커뮤니티>의 김월식은 이 ‘소녀상’을 화이트칼라로의 계습상승을 위한 훈육된 독서의 아이콘으로 보았다)을 세웠다. 




그런데 그 노인들의 ‘삶정치적’ 무늬가 <매점불>(2013)과 <시장불>(2014)로 살아나면서는 완전히 다른 상징어가 되기 시작했다. <시장불>은 650명 마산시 부림시장 상인들의 소원을 복장(伏藏)했고, 해인사 육각정에 조성한 <매점불>은 전국에서 폐지를 줍는 108명 노인들의 폐지를 구입해 조성한 것이다. 노인들의 ‘무늬’는 하루 생존을 위한 노동이었으나, <무늬만 커뮤니티>는 그 가난한 노동의 가치를 모아서 불상을 빚고 안치했다. <독서는 마음의 양식>이 산업사회의 육체노동과 정신노동의 비윤리적 그늘을 다룬 것이라면, <매점불>과 <시장불>은 노인들의 무늬, 혹은 노동의 무늬가 ‘개인’의 생존을 가능케 할 뿐만 아니라, 바로 그 ‘살아있음(生存)’의 무늬가 공동체의 실체이자 해체된 공동체를 구원하는 빛이기도 하다는 사실을 인식시킨다.


<무늬만 커뮤니티>은 하루 생존이라는 ‘노동의 무늬’(현실)를 진인(眞人)의 실체적 형상인 ‘불상’(미학)으로 바꾸어 놓는 자리에 무늬로서의 ‘노인(들)’을 상상케 함으로써 ‘상상의 공동체’를 실체화하는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왜? 그래야만 이 사회가 겨우 견디면서 나아갈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희망’이 아니라 가장 실재적인 의미에서의 삶을 ‘질문하는’ 방식이다.




피안을 춤추는, 개인들


<무늬만 커뮤니티>의 예술가들과 함께 했던 개인들은 안산과 일본의 장애우였다. 이곳저곳, 전국의 노인들이었다. 그가 살았던 안양의 인덕원 치킨집, 수원 지동의 중국 음식점, 슈퍼마켓 사장들이었다. 제주 4.3사건의 현장에서 살고 있는 이웃들이었고, 네팔 산악지대의 마오이스트와 그들의 형제들이었다. 그 개인들이 없이는 <무늬만 커뮤니티>도 존재할 수 없었다.


<무늬만 커뮤니티>의 ‘무늬’는 그러므로 그들이 만났던 모든 ‘개인들’의 무늬에서 비롯한다. 그 개인들의 무늬를 ‘공동체’라고 부를 수는 없을 것이다. 그들은 어딘가에 ‘무늬’로 존재하면서, 공동체를 지향할 뿐이다. 아니 그들의 공동체는 있을 수도 있고 없을 수도 있다. 그러므로 그 공동체는 ‘무늬만’에 불과할 수 있다. 그러나 개인들의 ‘무늬’가 선명하면 할수록 공동체의 ‘무늬’도 뚜렷할 것이다.


살아있는 ‘무늬’는 밝고 활기 찬 빛을 연상시킨다. 그런 빛이 ‘신명(神明)’이다. <무늬만 커뮤니티>가 지향해 온 것은 개인들의 ‘무늬’를 일깨워 더 밝고 활기차게 바꾸는 것이었다. 신명을 깨웠던 것. 신이 난 아이처럼 신명이 밝게 터지면 사람은 그 이전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춤추는 존재’가 되기 때문이다. <커뮤니티를 위한 모뉴멘트>(2015)의 중국집 사장님이 그랬고, <총체적 난극>(2013)의 장애우들이 그랬으며, <후미코 컴퍼니>(2009)의 후미코가 그랬다. 어디 그뿐일까? 사실 그 춤의 내력은 <무늬만 커뮤니티>가 탄생한 그 순간부터 시작된 것이리라. 그들도 그들 스스로가 사건이 되는 순간을 기획하면서 ‘무늬’를 가졌을 테니까 말이다.


*** 이글은 2017년 9월, 국립현대미술관 '올해의 작가' 추천을 위해 집필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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