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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피카소를 모르랴

박옥순


나는 타오르는 의욕을 가진 미래의 작가들 속에서 산다.

그들에게는 한여름 수목처럼 풋풋하고 끈끈한 향기가 있다.

좋은 작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쉽지 않은 화두를 가지고 Gaudi 2002의 물결이 출렁이는 바르셀로나를 다녀 왔다.

1852년출생의 Gaudi, 1882Picasso, 1897Miro, 1904Dali............. 

이들을 키워낸 바르셀로나는 스페인에서도 부와 자존심을 자랑하는 까딸료나 지방의 중심도시이다.

 

시내에 있는 P.M.B.(Picasso Musiem, Barcelona)는 오래된 나무 서까래와 현대적 콩크리트의 드러난 속살이 잘 어울리면서 효율적 공간 배치가 돋보이는 건물이다. 누가 피카소를 모르랴. 우리들은 엄청난 천재 작가 피카소를 알고 있다. 그러나 손바닥만한 유년의 그림으로는 거장 피카소를 떠올리기가 쉽지 않았다. 무명의 피카소는 솜씨 있고 가난하고 열심히 고뇌하는,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젊은 화가였다. 그러나 몇 개의 방을 지났을 때 마티스, 앙그르, 세잔의 번안화가 여러 장 보이더니 벨라스케즈의 <궁녀>는 형형색색의 모습으로 번안되어 큰 전시실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칠십대 중반의 노익장이 44장을 그렸다고 하니........ 고전에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해 내는 그 탐색력이야말로 하버드 리드가 감탄한 마르지 않는 영감의 샘이 아닐까. 작가의 끈질긴 탐색과 엄청난 땀의 무게에서 천재 작가 피카소의 진면목을 볼 수 있었다. P.M.B.를 보기 전에 나는 천재 피카소가 신에게서 받은 <영감의 샘>을 부러워했다. 그러나 지금은 창작의 깊은 숲을 헤쳐 나온 그의 무한한 노력과 열정을 존경하게 되었다.

 

몬쥬잌 언덕에 있는 Miro의 미술관은 여유 있는 정원과 옥상에 입체 작품을 전시하였고, 젊은 작가에게 전시 공간도 배려하고 있었다. 미로는 가우디의 영향으로 초현실 세계의 문을 열었고, 유명해진 고향 선배 피카소의 우정어린 지원을 받았지만 독자적인 작품세계를 개척하였다. 지금까지 보지 못한 작품이 대부분이어서 반가웠는데, 유명한 작품이 있기까지는 드러나지 않은 많은 작업들이 있음을 말해 주었다. 특별히 가슴에 닿는 전시장이 있었다. 화선지에 먹으로 그린 느낌의 흑백유화인데, 뿌리고 흘린 듯 격렬하고 처절한 터치의 작품이 넓은 전시장을 메우고 있었다. 스스로 비극적이고 과묵하다고 표현한 작가의 말이 생각 났다. 우리가 즐기고 있는 재기 넘치고 유머러스한 미로의 작품은 다양한 모색과 치열한 작업의 열매였음을 실감했다.

 

Dali의 생가는 바르셀로나에서 꼬박 하루가 걸리는 한적한 마을이었다. 친구의 아내를 부인으로 만든 철저한 자기 본위의 작가이지만, 현대인의 고민. 불안 .절망을 기괴하고 초현실주의적인 기법으로 표현하고 있다. 여러 가지 오브제와 실제 작품에서 느끼는 분위기의 생동감을 맛볼 수 있는 소중한 기회였다. 마치 손에 닿는 모든 것을 작품의 오브제로 사용한 듯 오브제의 바다에 있는 느낌이다. 숫가락, 전등갓, 옥수수, 여러 가지 거울이 만들어 내는 신비한 세상....................기괴하고 약간 거친 듯한 오브제 작업과는 다르게 귀금속 작품의 전시장에서는 치밀하고 기발한 달리의 또 다른 면모를 볼 수 있었다. 보석 세공에서 입술이나 심장의 정교한 움직임은 실제보다 더 은밀한 숨결이 느껴졌다.

미술관을 찾는 즐거움은, 책 속의 작가가 바로 우리 옆에 나와서 그의 인간 냄새를 풍기며 그의 길이 우리에게도 낯설지 않음을 알려 주는 것이다

 

Gaudi!

대담성의 눈부신 폭발을 유기적 환상의 세계로 표출한 신령한 건축가!

스페인, 더구나 가우디에 관해서 우리에게 소개 되고 있는 것은 매우 제한적이고 그 엄청난 가치에 비해 대단히 빈약하다.

가우디는 Sagrada Familia(성가족)성당의 예수 수난상을 만들 때, “건물의 아치가 파괴되고 열주를 쓰러뜨리더라도 희생의 피 흘림을 상기시킬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했다. 그의 작품에는 입체에 관한 환상적인 해석과 환경과의 각별한 어울림이 있다. 바르셀로나 시내 곳곳에 있는 그의 건축물은 중요한 관광 명소였다. 그는 건축가일 뿐 아니라 뛰어난 환경 조각가였다. 구엘 공원 분수대, 입구의 천정, 산책로의 빙빙 틀어 올린 사선 기둥, 모자잌 벤치........이전에 생각해 본 적이 없는 상상력과 표현 방법의 조화로움이었다.

미로와 달리의 재능과 상상력을 사로잡아, 잠재 의식과 꿈의 세계를 열어 준 사람 가우디.

그는 믿기 어려운 직관력과 엄청난 상상력의 초현실주의 작가이다


 

                                                                                            La Pedrera(밀라의 집) 굴뚝 

La Pedrera(밀라의 집)1910년에 지어진 아파트인데 90여년이 지난 지금도 사용 중이었고 그 일부를 관광객에게 공개하고 있다. “자연에는 직선이 없다는 괴테의 말에 영향을 받은 가우디는, 건물의 기본 형태에서부터 문의 손잡이나 창문 난간에 이르기까지 예측 불허의 선과 면으로 마무리하였다. 가우디 특유의 환상적인 천정과 벽으로 된 공동의 공간은 가우디 전시실로 사용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 작품의 백미는 옥상의 굴뚝이다. 만화영화에서 본 듯한 마술나라의 착각 속에서 이 건축물이 왜 유네스코 지정 문화재가 되었는지를 깨닫게 된다. 가우디는 생전에 학문이 원리를 연구하는 것이라면 예술은 고대의 작품을 통해 새롭게 창조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의 밤하늘을 연상케 하는 천정 처리나 자유 분망 하면서도 완벽하게 끝나는 타일 작업은 알함브라 궁전에서 보는 이슬람 문화의 맥을 느끼게 한다. 이슬람 세계의 스페인 지배는 한 때의 쓰라린 치욕이었지만, 아랍 문명의 진수가 기독교 문화와 접목 되면서 독특한 스페인 예술로 꽃피고 있다

밀라의 집에 있는 하인의 방과 구엘 공원에 있는 외롭고 초라한 가우디의 방이 비교 되어 마음 아팠지만, 성가족 성당 건축에 모든 것을 다 바치고 간 예술가의 자기헌신에 가슴 깊이 경외감을 느꼈다.

 

누가 피카소를 모르랴. 미술사에 나오는 미로. 달리. 가우디도 알고 있지.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그들은 잘 정리 된 미술사적 사실들일 뿐이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얼마나 깊이 고전의 바다를 탐색했는지, 고뇌의 늪을 헤매며 얼마나 많은 땀을 흘렸는지도 알아내자. 그들이 새롭게 일구어낸 창작의 길이 어떤 것이었는지도 물어 보자. 칠십육세의 유명해진 피카소가 왜 17세기 벨라스케즈 그림을 수 십장씩이나 그렸는지도 물어 보자. 그래서 우리도 언젠가는 이룰 수 있는 꿈을 갖고 자신을 태워 보자.

                                                                    경기소식 2002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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