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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과 미술: 19세기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근대미술사_M. 칼리니스쿠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윤지수

모던과 미술: 19세기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근대미술사

  “근대 세계를 통해서 과학과 진보의 제 가치를 움직이는 힘을 받아들이는 반면, 근대인은 삶을 하나의 전체로 보고자 하며 이리하여 근대적 조건들 하에서 삶을 하나의 전체로 선고하고자 하는 경향이 있다.” 이 텍스트는 스테펀 스펜더(Stephen Spender, ?-?)의 저서 『근대인의 고투 Struggle of the Modern(1963)』에 등장한 글로 1960년대에 이미 근대와 동시대를 구분 짓는 단서가 나왔음을 보여준다. 모던(modern)과 동시대(contemporary)를 구분하지 못하고 사용하는 사람들이 아직까지도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한 일이다. 실제로 모던, 현대, 동시대라는 표현은 일상에서 자주 사용되지만 그 의미가 명확하게 인지되지 않는 것 같다. 필자는 이 세 단어 중 ‘모던’에 집중해보았다.  
  필자는 M. 칼리니스쿠의 책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을 최근에 읽고 모던과 관련된 다양한 역사적 논의들을 알 수 있었다. 모던에 대한 내용을 이해하고, 미술사적인 내용을 함께 소화한다면 근대미술과 동시대 미술을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더 나아가 현대사회의 구조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근대사회의 시스템이 현대에도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는 이 글을 통해 많은 사람이 사용하지만 잘 모르고 있는 ‘모던, 혹은 근대’에 대한 사회적, 미술사적인 내용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그리고 더 나아가 19세기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 근대미술사와 그 미술사적 의의에 대해 간략하게나마 소개하고자 한다.

Modernity, Modernism
  우리나라에서 근대화가 19세기에 진행된 것과는 달리, 서양에서는 14-15세기에 이미 근대화가 진행되었다. 물론 한 개념의 출현 시점을 정확하게 추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모더니티’라는 단어는 논쟁적이고 복잡한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더욱 어려운 일일 것이다. 그러나 단어의 어원이나 기록을 통해 나마 유추해볼 수는 있다.
모더니티라는 단어는 19세기에 프랑스에서 신조어로 사용되었다. 그런데 이 단어는 영국에서 최소 17세기부터 널리 쓰이고 있었다. 이는 옥스퍼드 사전의 1627년 기록을 통해 알 수 있다.
서구 역사가 고대-중세-근대의 세 시대로 구분됨에도 불구하고, 사실 모더니티라는 단어는 언어학적으로 중세에 기원을 두고 있다. 형용사이자 명사인 모데르누스 modernus라는 단어는 5세기에 사용이 시작된 중세 라틴어로서, 전 유럽에 걸쳐 광범위하게 사용되었다. 또한 모데르누스라는 단어가 모도 modo(최근에, 바로 지금)라는 부사로 만들어진 것은 중세 때였다. 모데르니타스 modernitas(근대 modern times)나 모데르니 moderni(동시대인 men of today) 와 같은 개념 역시 자주 등장했는데 특히 10세기 이후에는 더 빈번하게 사용되었다.1) 그리고 신구논쟁(고대 옹호론자와 근대 옹호론자 간의 대립)이 암흑기였던 중세 12세기에 시작되었다는 것은 놀랍다.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서구의 역사는 고대–중세-근대로 구분되는데, 이는 르네상스 시기에 연원을 두고 있다. 그리고 시기마다 가치판단이 부여되었다. 고전적 고대는 빛과 연관되었고, 중세는 암흑시대로 비유되었으며, 근대는 암흑으로부터 탈출한 ‘부활’의 시대로 생각되었다. 또한, 17세기 후반에 ‘고대적’이라는 단어와 ‘근대적’이라는 단어는 반의어로써 여겨졌고, 고대 옹호자와 근대 옹호자들 간의 격렬한 신구논쟁이 있었다. (물론 신구논쟁의 시작은 중세이다. ) 오랫동안 지속되었던 신구논쟁은 철학과 과학 분야에서 합리주의와 진보의 원리가 권위에 맞선 싸움을 승리로 이끌기 이전에는 결과를 얻어 내지 못했다.2) 그렇다면, 근대화된 사회는 어떤 특징을 지니길래 사람들은 이렇게나 중세와 근대를 구분 지을까? 그리고 이렇게 격렬하게 논쟁해왔을까?
  근대화된 사회는 다음과 같은 특징을 지닌다. 1. 자연이 아닌 곳에 터전을 짓는 도시화 시스템이 시작되었다. 2. 사람들을 감시하고 통제하는 감시시스템이 구축되었다. 3. 국가를 중심으로 체제와 입법 시스템이 마련되어 민족국가이자 독립국가라는 개념이 국민에게 심어졌다. 4. 자본주의를 떠받치는 산업시스템인 산업혁명이 시작되었다. 5. 모든 것이 상품으로 취급되기 시작했다. 6. 문화· 도덕· 가치가 상대화되어 다양한 판단의 기준이 생겼다. 
이러한 특징으로 사람들은 과거보다 변화가 잦아서 불확실한 사회에서 살아야 했고, 과학과 기술을 힘을 믿기 시작했다. 또한, 개인의 자유가 늘어난 만큼 그 책임도 오롯이 개인이 짊어지게 되었다.         
  Modernity가 ‘근대’의 포괄적인 개념과 특징을 이야기한다면 Modernism은 Modernity의 범주 안에 있는 인간 문화적 형식을 의미한다. 그리고 사회적인 범주의 모더니즘과 미적 모더니즘은 그 개념과 발생 시기가 다르다. (사회적인 범주의 모더니즘이 더 빨리 시작되었다.) 문학의 경우 문학사가 들은 제임스 조이스(James Joyce, 1882-1941), 버지니아 울프(Virginia Woolf, 1992-1941), 프란츠 카프카(Franz Kafka, 1883-1924)가 쓴 작품을 모더니즘 문학으로 분류한다. 미술의 경우 피카소(Pablo Picasso, 1881-1973), 칸딘스키(Wassily Kandinsky, 1886-1944), 미로(Joan Miro, 1893-1983) 등이 근대작가로 꼽힌다.
미적 모더니즘이 사회적 모더니즘과 다르지만, 사회적 범주의 모더니즘으로부터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19세기 후반부터 시작되어 20세기 초까지 지속한 근대 서양미술은 영국의 산업혁명과 프랑스의 시민혁명으로부터 영향을 받아 시작되었다. 종교와 상류층의 요구에 부흥하기 위해 제작되었던 기존의 미술작품은 점차 화가의 생각에 더 큰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다. 또한, 주문자의 요구나 계약에 의한 선주문 방식의 제작 방법이 사라졌고, 상류층보다는 시민들의 미적 취향에 맞는 작품들이 제작되었다. 근대 서양미술은 크게 4가지 사조로 나뉜다. 로코코와 후기 바로크에 대한 반발로부터 탄생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인간의 내면적인 감정을 적극적으로 묘사하는 낭만주의(Romanticism), 보이는 그대로의 자연을 충실하게 묘사하는 자연주의(Naturalism),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객관적으로 재현해내는 사실주의(Realim)가 그것이다.

한국근대미술사_19세기말부터 1960년대 앵포르멜 운동까지
  우리나라에 서양문물이 들어오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말 조선의 문명 개화론자들의 수용의 분위기를 적극적으로 만든 뒤부터이다. 서양문물의 도입은 우리 사회가 근대 문명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일본이 1873년 비엔나 만국박람회에서 ‘Kunstgewerbe’를 번역한 ‘미술’이라는 신조어가 1884년 『한성순보』에 처음 등장하게 되었는데, 이것이 계기가 되어 우리나라 화단에는 동양과 서양의 관계가 더욱 긴밀하게 작동한다. 그런데 1995년에 일본의 동경미술학교에서 서양화를 배우고 귀국한 1세대 서양화가가 등장하기 전까지 국내에서 서양화를 직접 볼 기회는 없었다. 우리나라의 1세대 서양화가에는 고희동(高羲東, 1886-1965), 김관호(金觀鎬, 1890-1959), 김찬영(金瓚永, 1889-1960) 등이 있다. 첫 일본 유학생들은 대부분 동경미술학교에 입학했고, 그곳에서 프랑스식 미술 아카데미의 방법으로 교육받았다. 대표적인 화가로 김인승(金仁承, 1910-2001)이 있다. 그의 작품 속 인물들은 서구적인 마스크에 인체비례를 지닌다.
1920년대에는 서양의 모더니즘 미술이 많이 소개되기 시작했고 서화협회전(書畵協會展), 조선미술전람회(朝鮮美術展覽會)와 같은 전람회가 활발해져서 일반인들은 서양화를 볼 기회가 많아졌다. 1920년대에는 이미 후기 인상주의의 선두주자인 세잔(Paul Cezanne, 1839-1906), 야수주의, 표현주의, 미래주의, 다다 운동과 같은 서양 모더니즘이 한국 사회에 꽤 알려진 상태였다. 그리고 1930년대 후반부터는 서양 고전미술에 대한 작가들의 관심이 커졌다. 이는 서양근대미술에 대한 연구가 진행된 시점에서 더 근본이 되는 고전미술에 대한 갈급이 커졌기 때문이다.3) 
  1950년대 후반부터는 앵포르멜(Informel) 회화가 한국 미술계에 도입되었다. 앵포르멜은 프랑스어인 Art Informel에서 따온 용어이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 이후 유럽과 미국 사회는 기존의 질서가 붕괴 된다. 사람들은 허탈함을 크게 느꼈다. 특히 예술가들은 인간실존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고 기존의 관습에서 이탈하여 파격적인 방식의 미술 형태를 창조해낸다. 앵포르멜은 유럽의 화단에서 시작된 새로운 운동이었다. 앵포르멜 화가들은 강렬한 원색 대비를 사용하거나 화면의 거친 텍스처나 풍부한 마티에르를 보여주는 등의 다양한 방향성으로 파격을 시도했다. 대표 작가로는 장 포트리에(Jean Fautrier, 1898-1964)와 장 뒤뷔페(Jean Dubuffet, 1901-1985)가 있다. 미국 화단에서는 창조적인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데 초점을 맞추고, 과정 자체를 중요시하는 운동인 추상표현주의를 통해 기존의 관습에서 이탈한다. 대표 작가로는 잭슨 폴록(Jackson Pollock, 1912-1966), 윌렘 드 쿠닝(Willem de Kooning, 1904-1997), 한스 호프만(Hans Hoffmann, 1880-1966)이 있다. 
전후 새로운 국제 질서 속에서 한국미술계는 국제성에 관한 담론의 설정과, 전후 세대교체가 이루어지는 사회적 상황, 그리고 ‘대한민국 미술전람회’에 대한 저항(대한민국 미술전람회는 보수적인 아카데미즘의 온상이었다.)이 맞물려 앵포르멜이 거대한 운동으로써 대두된다. 이는 추상미술이 국내에 유입된 이후 곧바로 2차 세계대전이 닥쳐서 뿌리내릴 시간적 여유가 없었던 탓이다. 한국전쟁 이후 한국의 서양화단에는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가 공존하게 되는데, 이는 이전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 시기 한국화단의 앵포르멜 운동은 기존 세대에 대항하는 아방가르드적인, 그리고 정치적인 성격을 띠었다. 젊은 작가들은 이 운동을 통해 보수적인 국전에 대항했고 미술계의 개혁을 요구했다.4) 실제로 앵포르멜은 한국 정치와도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 이 운동은 5·16 군사 정변 이후의 군정 기간과 맞물려 확산되었으며 1960년 4·19 혁명을 통해 반항과 열정이라는 저항의 표상이 되었다.
  1965년 막을 내린 앵포르멜 운동은 ‘모방과 필연성’의 논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유럽과 미국으로부터 들어온 사조를 모델로 하는 20세기 한국미술은 모방의 문제에 늘 예민했다. 왜냐하면, 시대적인 흐름을 따라 단순히 해외 사조를 따와서 모방한 것과 모방하여 자기화하는 문제는 굉장히 다르기 때문이다. 후자는 전자와 다르게 필연성이 있다는 데에 그 의의가 있다. 1950년대 말에 등장하여 10년 이내에 집단적 흐름으로 번진 앵포르멜 또한 마찬가지였다. 기성세대 화가들은 한국 화단의 앵포르멜 운동 도입의 필연성에 대해 의구심을 품었다. ‘앵포르멜에 대한 이념은 서 있지 않은데 표현양식부터 가져왔다.’ 라는 주장과 함께 ‘이념이 서있기 때문에 한국화단에 도입된 필연성을 찾을 수 있다.’라는 논쟁이 제기되었다. 그리고 앵포르멜 운동의 전성기가 지난 1960년대 후반이 되어서야 비로소 이 논쟁은 정리되었다. 앵포르멜의 미술 형식은 외래 사조의 영향이나 한국의 토양에 맞아 뿌리를 내렸다고 받아들여진 것이다.5)

jisoo(yoonsart21@hanmail.net)



<주석>
1) M. 칼리니스쿠,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시각과 언어, 1993, p. 23
2) M. 칼리니스쿠, 위의 책, pp. 33-37
3) 김영나, 「선망과 극복의 대상: 한국 근대미술과 서양미술」,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Vol. 23, 서양미술사학회, 2005, pp. 91-98
4) 김영나, 위의 글, p. 105
5) 신정훈, 「모방과 필연: 1950-1960년대 한국 미술비평의 쟁점」, 『미술사와 시각문화』, Vol. 19 No. 0, 미술사와 시각문화 학회, 2017, pp. 131-135


<참고문헌>    
김미정, 「한국 앵포르멜과 대한민국미술전람회 -1960년대 초반 정치적 변혁기를 중심으로」, 『한국근현대미술사학(구 한국근대미술사학)』, Vol. 12 No. 0, 한국근현대미술사학회, 2004.
김영나, 「선망과 극복의 대상: 한국 근대미술과 서양미술」, 『서양미술사학회논문집』 Vol. 23, 서양미술사학회, 2005.
M. 칼리니스쿠, 『모더니티의 다섯 얼굴』, 시각과 언어, 1993.
신정훈, 「모방과 필연: 1950-1960년대 한국 미술비평의 쟁점」, 『미술사와 시각문화』, Vol. 19 No. 0, 미술사와 시각문화 학회, 2017.
정무정, 「추상표현주의와 한국 앵포르멜」, 『미술사연구』, Vol. 15, 미술사연구회, 2001.
최윤철, 『근대미술의 이해와 감상 서양편』, 창지사,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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