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고


컬럼


  • 트위터
  • 인스타그램1604
  • 유튜브20240110

연재컬럼

인쇄 스크랩 URL 트위터 페이스북 목록

전시평/권옥연 회고전- 권옥연의 길, 그 아름다운 상실의 과정

윤지수

 

권옥연 회고전- 권옥연의 길, 그 아름다운 상실의 과정

 

 

삶 속에서 우리는 상실의 체험을 하곤 한다. 고통과 우울함에 허우적대고 짧게는 며칠에서 길게는 몇 년까지 상실의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상실을 수용할 때야 비로소 나아가게 된다. 상실을 겪을 때 담담하기는 어려운 일이다. 가끔 마주하는 이 존재는 암세포처럼 퍼져 온 몸과 마음, 그리고 모든 신경을 무기력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상실을 달고 사는 존재이다. 상실감에 잡아먹히면 창작을 할 수 없다. 언제 어디서 습격할지 모르는 그 아이를 잘 타이르고 달래야 한다. 그리고 함께함에 적응해야 한다. 더불어 상실감을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러므로 예술가는 큰 용기를 가진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예술가로 권옥연權玉淵(1923년~2011년)화백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그는 작업을 할 때 모든 사물과 인물의 상을 자신의 관념에 투영시켜 새롭게 구성했다. 기존의 이미지들을 자신 안에서 상실시켜 창조로 나아간 것이다. 그래서 그의 모든 그림엔 작가의 얼굴이 배어있다1). 작가로서의 그의 삶 역시 상실의 과정과 닮아있다. 그를 회고하며 그 상실의 여정을 기록하고자 한다.

 

공간1. 권옥연의 맨 얼굴. 사이. 부인.

전시장에 들어가면 곧바로 우리는 권옥연 화백의 작업실과 마주한다. 작업실은 이 여정의 시작점이자 종착점이었으며 상실의 모든 과정이 이루어진 유, 무형적 공간이었다. 우리는 오픈된 그의 작업실로부터 밀실과 같은 은밀한 인상을 받는다. 마치 우측 벽에 위치한 그의 초상처럼. 이는 왜일까? 작업실은 그가 보이길 원하지 않았던 맨얼굴이기 때문이다. 그는 미술 사조를 따르거나 단체 활동에 적극적이지 않았으며 작업실에 그 누구도 출입을 허락하지 않았다. 부인인 이병복李秉福(1927~) 여사에게도 마찬가지였다.  
  작업실 왼쪽 벽에는 긴 발이 달려있다. 그는 매일 달력을 찢어 꼬아 도넛 모양으로 만들었다. 이는 무대 미술가였던 부인을 위해 그가 만든 것이다. 이 모양 하나하나는 실로 엮여 벽면을 장식하고 있다. 가까이 하면 멀어지고 멀리하면 가까워졌다는 부인의 말처럼 그와 부인의 사이는 딱 이 벽의 거리만큼 이었을 것이다. 매일 만지던 팔레트보다는 더 멀지만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 부인은 늘 그곳에 자리하며 그의 일상을 채웠을 것이다.      

 




 

 

공간2. 부인의 초상, 민예품들

그의 작업실 너머에는 그가 그린 정물화와 인물화가 있다. 벽에는 1호, 2호 크기 밖에 되지 않는 그의 여인상과 정물화가 위치한다. 우리는 이 작은 그림들에 그가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알 수 있다. 그 아래에는 갈색 나무함이 자리 잡고 있는데 화가가 평소에 민예품 수집에 취미가 있었다는 것을 고려하여 배치한 것이다. 민예품들은 전시장 곳곳에 위치하여 그림을 받쳐주는 소품 역할을 하기도 하고, 주인공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의 작품과 민예품은 서로가 만나 어떤 느낌을 완성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 느낌이 작가 권옥연과 닮아있음을 알게 된다. 
  벽 건너편에는 1951년에 그가 그린 부인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그림에는 부인에 대한 그의 낭만적 감정이 담겨있다. 그녀는 의자에 앉아 머리를 만지며 새침하게 눈을 흘긴다. 그리고 그녀의 초상 앞에는 나무 의자가 있다. 그녀를 그릴 때 그가 앉은 의자일까. 그녀가 앉았던 의자일까. 의자는 우리에게 이런 질문을 던지며 한 공간을 따스하게 채운다.       

 




 

 

공간3. 권옥연의 여인들, 정적인 앵포르멜

계단을 통해 2층으로 올라간다. 올라가자마자 우리는 벽면을 가득 매운 여인의 그림을 보게 된다. <Woman with scarf 스카프를 한 여인>, <Woman playing cello 첼로를 켜는 여인>을 포함하여 7작품 모두가 여인의 상이다. 그의 작품 다수에 출연하는 여인. 그에게 여성이란 어떤 존재일까? 그에게 여성은 죽음과 생명을 동시에 지닌 자연체를 상징한다. 그래서 그의 작품 속 여인들은 흙빛의 회색을 띤다. 또한 그에게 여인은 욕망의 기호였다. 그래서 여인의 상에는 그의 열망과 열망으로부터 파생하는 상실, 그리고 그리움이 공존한다. 그의 여인들은 처연하고 아름답다. 그래서 우리는 그들로부터 쉽게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여인들이 차지한 공간 너머에는 정물화와 풍경화가 있다. 우리는 이 작품들을 통해 파리 유학 이후의 변화한 그를 만난다. 1957년에 권옥연은 부인과 함께 파리로 유학을 간다. 그는 파리의 아카데미 드 라 그랑드 쇼미에르에서 수학하며 추상 작품을 제작하기 시작한다. 초기 구상적인 작품 세계를 보여주었던 그가 추상의 세계로 나아간 것이다. 당시 파리에서는 청년 작가들을 중심으로 한 앵포르멜의 열기가 뜨거웠고 그도 이 운동에 동참했다. 그런데 다소 극단적인 앵포르멜을 추구했던 다른 작가와는 달리 그는 정적인 앵포르멜을 추구했다. 고분벽화, 민예품, 도자기와 같은 우리의 것에 감성을 녹여 화면에 풀어낸 것이다. 그래서 그의 추상은 한국적이다2). 우리 골동품을 사랑하는 그의 마음은 화면을 주도하는 색채에도 영향을 주었다3). 그는 회색을 주 색채로 사용하기 시작했는데 이로 인해 작품은 더욱 정적이고 환상적인 면모를 드러낸다.  
               



 

 

공간4. 초현실주의적 세계, 부재의 환상에서 존재의 환상으로

짧은 복도를 지난다. 다른 전시 공간으로 넘어가는 사이, 그의 붓글씨가 우리를 반긴다. 서예는 그의 한 단면을 보여준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할아버지에게 서예를 배웠다. 그리고 추사 김정희秋史 金正喜(1786~1856)의 글씨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그의 붓글씨는 그가 수집한 골동품처럼 권옥연을 드러낸다. 그리고 작품을 더욱 그답게 만든다.
  복도를 지나 또 다른 전시공간에서 우리는 옛 대문, 둥그런 도자, 불상, 갑골문 등의 형상을 만나게 된다. 이는 그가 추구한 정적인 앵포르멜의 연장선이다. 이 작품들은 그가 추구하던 환상적인 면모를 드러내며 동시에 또 다른 갈래의 환상을 보인다. 바로 우리 조상들의 토착신앙에 맞닿아있는 것이다. 그의 작품은 부재의 환상에서 존재의 환상으로 넘어왔다. 묘연하게 떠돌던 공상은 그 뿌리를 찾았고 권옥연의 관념은 거울에 반사된 상처럼 보다 선명하게 작품에 투영되었다. 
  



 

 

전시장을 나오며

전시장을 나오며 우리는 그를 회고하는 긴 여정을 마친다. 생을 마감한 작가의 생애를 떠올리고 정리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꼭 해야 하는 작업이다. 설령 불가능한 일이라 할지라도 말이다. 그의 가족과 친구들, 제자들, 또는 그를 잘 모르는 이들은 모두 각기 다른 방식으로 그를 떠올리고 정리할 것이다. 그러나 어떠한 방식이던 간에 우리는 그가 상실한 많은 것들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 작가로서 권옥연의 삶에는 늘 상실이 함께했기 때문이다. 그는 상실 당했고 또 상실시켰다. 그래서 해가 지날수록 작품에는 그가 완전히 스며들었다. 어쩌면 삶은 덜어지고 또 덜어내는 과정의 연속일지 모른다. 용기 있게 이 과정을 충실히 수행한 그를 그리워하며 이 글을 마치려한다.           

  

 





 

 

 jisu(yoosart21@hanmail.net) 

 

 

 

 

 

주석) 

1) 최은주,「權玉淵의 繪畵 : 이미지와 象徵性」,『현대술관연구.통권 제12호 2001. 12)』p.87, p.98, 국립현대미술관, 2001년 
2) 각주1) pp.92~98참조
3) 김종근,「Adieu! 마지막 로맨티스트 권옥연」,『Art & Collector.제21권 (2012년 1/2월)』p.28, 옥션앤컬렉터, 2011년 


 




하단 정보

FAMILY SITE

03015 서울 종로구 홍지문1길 4 (홍지동44) 김달진미술연구소 T +82.2.730.6214 F +82.2.730.9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