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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의 숭고함을 일깨운 화가 마크 로스코_아니 코엔 솔랄,『마크 로스코 슬픔과 절망의 세상을 숭고한 추상으로 물들이다』

윤지수

『마크 로스코 슬픔과 절망의 세상을 숭고한 추상으로 물들이다』 -아니 코엔 솔랄, 다빈치 

 

인간의 숭고함을 일깨운 화가 마크 로스코

 

로스코의 작품은 왜 숭고한가
살다보면 우리는 평소에 경험하기 힘든 특별한 체험을 할 때가 있다. 필자에게도 그런 순간들이 있다. 그때마다 필자는 감정이 유연해짐을 느낀다. 필자가 안고 있던 일상의 문제는 지극히 사소해지고 모든 것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최근 필자는 마크 로스코Mark Rothko(1903년-1970년)의 작품 앞에서 특별한 체험을 했다. 숭고한 힘이 그림으로부터 뻗어 나와 나 자신을 따뜻하게 휘감는 느낌. 내 자신이 무척이나 작게 느껴지지만 동시에 마음이 안정 되고 보호를 받는 느낌. 로스코의 작품을 보는 것은 감상보다는 의식에 가까웠다. 실제로 그의 작품 앞에서 감정을 주체하지 못해 눈물을 흘리는 관객들이 있다. 그들은 자신의 상처와 화해하는 극적인 순간을 그곳에서 맞이하는 것이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작품은 위대하다고 말할 수 있다. 
  그의 작품에는 숭고미가 있다고 한다. 그렇다면 그의 작품에 숭고미가 있는 이유는 왜일까? 필자는 그의 작품이 심연에 잠겨있던 인간의 숭고함을 표면으로 끌어올리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관람객은 그의 작품 앞에서 본인에게 내재한 존재의 경이로움과 마주한다. 마주하는 순간 정적은 잠시 일고 이내 고요가 된다. 우리는 아주 익숙한 편안함을 느낀다. 인식의 지배를 받기 전, 모든 것이 감정에 따라 흘러가는 순간으로 되돌아간다. 흐르는 색 덩어리들은 죽은 듯이 잠겨있던 감정의 세포를 깨운다. 그 과정에서 인간의 아름다움이 완전히 깨어난다. 감정이 모두 깨어난 인간, 이것이야 말로 그가 가장 숭고하다고 생각한 존재이며 그가 가장 그리고자 한 주체이다.

 

태초의 감정 그리고 인간
로스코는 신화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 그의 작품은 유럽을 닮았다. 그러나 그것은 동시대에 존재하는 유럽이 아니었다. 문명의 요람인 어머니 유럽이었다. 필자는 그가 인간을 숭고한 존재라고 여기게 된 것이 그리스 신화로부터 기원한다고 생각한다.
  그리스 신화에 따르면 태초에 혼돈이 있었다. 그 혼돈 속에서 대지의 여신 가이아가 태어났다. 대지의 신 가이아는 스스로 하늘의 신 우라노스를 낳는다. 그들은 헤카톤케이레스와 키클로페스 그리고 티탄 족의 거인들을 낳는다. 가이아와 우라노스가 붙어있었기 때문에 자식들이 활개를 펴고 살 곳이 없었다. 가이아는 많은 고민 끝에 우라노스를 쫓아내기로 한다. 그녀의 자식들 중 막내 크로노스가 이 계획에 동참한다. 크로노스는 어머니에게 받은 낫을 들고 아버지의 남근을 자른다. 그 순간 피가 튀며 하늘과 땅이 서로 떨어진다. 비로소 빛이 드는 공간이 생긴다1). 아버지의 성기를 잘라 하늘과 땅을 떼어놓는 이 사건은 그리스의 시작을 알리는 사건인 동시에 인간의 탄생을 암시하는 사건이다. 하나였던 존재가 분리되고 빛과 어둠이 공존하는 세상이 탄생하자 그리스 신들의 세상이 열린다. 그들의 세상은 이성의 지배를 받는 동시에 질투와 배신, 그리고 기쁨과 쾌락으로 인한 사건이 끊이질 않는다. 마치 인간들이 사는 세상처럼 말이다.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이자 엘레아학파의 시조인 파르메니데스Parmenidēs(BC 515? - BC 445?)는 존재는 하나이며 끊임이 없고 서로 이어져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면의 실체에 대해 논하면서 존재론을 펼친다. 그에게 존재는 변화하지 않는 충만한 것이다. 로스코의 작품세계는 그의 존재론과 깊은 연관이 있다. 로스코도 어떤 존재에 관해 깊은 탐구를 했다. 필자는 그가 진정으로 탐구하고자 한 존재가 감정이라고 생각한다. 감정. 그러나 그것은 기쁨, 슬픔, 우울함, 두려움과 같은 기분이 아니다. 그는 태초의 감정을 연구한다. 문명의 어머니 유럽이 간직한 태초의 감정. 그는 그 감정이 파르메니데스가 주장한 ‘존재’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리고 그 존재를 인간이 아직도 품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감동했을 것이다. 감동의 주체는 그에게 숭고한 대상이 된다.

 

로스코, 화폭에 감정을 옮기다
로스코에게 언어는 감정을 전달하는 매체였다. 그에게 언어는 인간이 하는 소통 수단이 아니다. 그에게 언어는 인간 그 자체다. 슬픈 감정을 가질 때 슬픔을 숨기려고 해도 우리에게는 그 감정이 드러난다. 인간의 신체, 분위기 그리고 모든 행동은 감정의 언어를 한다. 그는 이러한 인간이라는 감정의 화폭을 자신의 화폭에 담으려했다.     
  로스코는 음악이 감정의 언어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음악을 너무나 사랑해서 소파에 누워 몇 시간이고 음악을 듣기도 했다. 그는 니체의 사상에서 영향을 받았다. 니체는 음악이 감정을 표현하는 진정한 언어로 보았다. 그의 책『비극의 탄생』에서 그는 비극을 디오니소스적 극단과 아폴론적 극단의 종합이라고 했다. 디오니소스는 음악 예술의 신, 아폴론은 조각 예술의 신이라 불리는데 니체에게 비극은 이 두 극단의 충돌을 표현하는 것이었다.  니체가 말한 비극은 인간에게 존재한다. 인간은 늘 디오니소스와 아폴론의 양 극단을 오가며 매 순간 합일점을 찾아간다.
  음악에 심취한 것처럼 로스코는 인간이라는 언어에 심취한다. 태초의 감정을 지닌 인간, 디오니소스적 욕망과 아폴론적 이성의 양 극단을 오가는 인간. 그는 이를 오롯이 표현하고자 했다. 그래서 그는 인간의 형상을 시각적으로 분해한다. 인간을 분해해나가면서 그는 형이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의 그림엔 점차 형이 사라지고 색채 덩어리들과 그들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만이 존재하게 된다.

 


 

로스코가 인간에 주목한 이유
로스코는 혼란스러운 유년기를 보냈다. 그의 본명은 마르쿠스 로트코비치로 러시아의 도시 드빈스키에서 태어났다. 그의 가족은 유대교 신자였는데 당시 러시아에서는 대규모 유대인 학살이 자행되고 있었다. 그가 아직 3살도 채 되기 전인 1905년과 1906년에 드빈스키의 근접한 지역에서는 유대인 대학살이 벌어졌다. 그리고 대학살이 자행되는 지역은 갈수록 드빈스키와 거리가 점점 좁혀졌다. 그의 아버지 야코프 로트코비치는 가족을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지키기 위하여 미국으로의 이민을 결심한다. 그래서 로스코가 열 살 때 그의 가족은 미국으로 건너가게 된다. 그의 가족은 미국 오리건 주의 포틀랜드에 새롭게 자리를 잡는다. 그의 방황기는 이민을 간 이후에도 계속된다. 미국에 도착하고 일곱 달 만에 아버지 야코프가 죽어 가족들은 가난에 허덕인다. 각 가족 구성원들은 생계를 잇기 위한 다양한 일자리들을 얻는다. 어린 로스코는 단기간에 영어를 배워야만 했으며 생계에 보탬이 되는 일도 해야만 했다. 또한 그는 러시아에서와 마찬가지로 미국에서 인종차별을 겪는다. 링컨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처음으로 비유대교 세계와 접하게 되는데 유대인이라는 이유로 학교의 토론 학회의 가입할 수 없었다.
  그가 심리적인 방황기를 겪는 동안 유럽은 최악의 격변기를 겪고 있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 황태자 부부가 암살되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 사건으로 인해 제1차 세계대전이 시작된다. 4년간 전쟁이 지속되었으며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해체된다. 러시아 제국 또한 종말을 고한다. 그리고 1917년 4월 미국은 독일에 전쟁을 선포한다. 그와 그의 가족이 피하고자 했던 정치, 사회, 인종간의 갈등은 포틀랜드시에서 똑같이 일어나고 있었다. 제1차 세계대전이 끝난 1920년대에는 외국인 혐오주의가 사회에 만연해있었다. 미국 사람들은 이민자들을 불신했고 이민자들을 배척했다. 로스코는 예일대학에 입학한  후 자신이 더욱 극심하게 차별 당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결국 그는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퇴를 한다2).
  필자는 로스코의 혼란스러운 유년기와 그가 겪었던 사회적 격변기가 그를 인간에 주목하게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차별을 겪었고 끊임없이 새로운 무리에 동화되기 위해 노력해야만 했다. 이러한 경험들은 로스코 자신을 비참한 인간이라 치부하도록 만들었다. 그러나 서서히 그는 사회적 문제로 시선을 돌렸을 것이다. “이러한 이유가 계급을 나눌 만큼 인간이 무가치한 존재인가?” 그는 이렇게 물었을 것이다. 많은 사건을 겪으면서 그는 끊임없이 되물었을 것이다. 필자는 로스코가 오이디푸스와 닮았다고 생각한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에게 예견된 비극적 운명을 겪고 옷핀으로 눈을 찔러 어둠 속에 잠긴다. 장님이 되어 암흑 속에 갇힌 이후 그는 인간이 무엇인지 고심한다. 인간이라는 본질적 물음에 관한 탐구가 시작된 것이다. 로스코도 자신에게 닥친 현실적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차 본질을 파고든다. 인간에 대해 연구하고 인간의 숭고함을 깨닫는다. 

       

 

 

로스코가 우리에게 들려주는 메시지




애플사를 설립한 스티브잡스는 말년에 로스코의 작품에 심취했다. 그는 로스코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가 만든 애플사의 제품과 로스코의 작품은 인간을 생각해서 만들었다는 점, 본질에 초점을 두었다는 점에서 닮았다. “어떻게 하면 누구나 쓰기 편하고 아름다운 제품을 만들 수 있을까?”에 집중한 잡스. 그는 더하기보다 빼기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가 만든 제품들은 인간답다는 호평을 받는다. 인간의 숭고함을 오롯이 화폭에 담고자 했던 로스코. 그는 인간을 숭고하게 만드는 감정에 초점을 맞춘다.
  우리는 평소에 너무나 많은 쓰레기와 소음에 덮여 산다. 이로 인해 눈이 침침해지고 귀는 들리지 않는다. 삶은 더욱 복잡해진다. 중요하지 않은 것들에 관심을 두고 살아가며 내 내면보다 외부의 이야기에 더욱 신경 쓴다. 이렇게 살아가는 우리에게 로스코는 묻는다.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고. 로스코는 인간이라는 존재, 그 자체를 최우선으로 두었다. 그는 인간을 가장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는 작품을 통해 우리는 그 자체로 숭고한 존재라는 메시지를 전한다.
 

 

주석)

1) 이경덕,『하룻밤에 읽는 그리스 신화』, pp.162-165참조, 알에이치코리아, 2014년
2) 아니 코엔 솔랄,『마크로스코』,pp.21-63참조, 다빈치, 2015년
3) 제이콥 발테슈바,『마크로스코』, p.57참조, 마로니에 북스, 2006년 
 

그림출처- 제이콥 발테슈바,『마크로스코』, p.57참조, 마로니에 북스, 200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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