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用之虛實의 실험과 성공의 단서들 _ 임근혜『창조의 제국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그리고 그후』

윤지수

『창조의 제국 영국 현대미술의 센세이션, 그리고 그후』 - 임근혜, 2012, 지안출판사

 

用之虛實의 실험과 성공의 단서들

 

우리의 오늘은 늘 그랬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시작된다. 그리고 우리의 내일도 평소와 다름없이 시작하고 흘러갈 것이라 우리는 믿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늘 그럴 것 같았던 평범하고 평온했던 일상이 깨지고 만다. 세월호 참사는 우리에게 가장 안전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던 일상조차도 안전의 사각지대에 놓여있을 수 있다는 의심을 하게 만들었다. 세월호 참사, 그리고 그 밖에 많은 사고들은 뜻밖의 사고(accident)로 일어난 것이 아니었다. 인간의 욕심이 낳은 일이었으며 수많은 경고를 무시한 끝에 벌어진 일들이었다.
  결국 인간은 족함을 인지하고 받아들이지 못하는 순간 스스로를 파멸로 이끄는 것 같다. 명심보감에는 '知足可樂(만족할 줄을 알면 가히 즐겁고), 務貪則憂(탐욕에 힘쓰면 근심이 생긴다)'라는 말이 있다. 족함을 깨닫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이 구절을 통해 알게 된다.

 

예술과 足 그리고 用之虛實

 

만족(滿足), 부족(不足)과 같이 어떠한 양이 충분한지 그렇지 않은지를 뜻하는 단어에는 모두 足이 쓰임을 알 수 있다. 필자는 이 단어들에 왜 발을 뜻하는 한자가 쓰이는지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인간이 동물과 다른 존재로 거듭나게 된 것은 두 발로 걸으면서부터 일 것이다. 인간은 두 발로 직립보행을 하게 되면서 두뇌가 발달하였고,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표현하기 시작한다. 그리고 공동체를 꾸리고 그 사회 안에서 다른 이들과 살아가면서 예의와 겸양의 태도를 익히게 된다.
  필자는 인간의 두 발이 한 사회 안에서 남을 생각하는 태도를 갖게 한 근원이기에 양의 충분함을 뜻하는 단어들에 足이 사용된다고 생각한다. 또한 필자는 발이 예술의 시작과도 상당한 개연성을 가진다고 생각한다. 인간이 생각하기 시작한 것은 두 발로 걷기 시작한 이후이다. 그런데 자신의 생각을 표현하는 것이 예술이기에 필자는 인간이 예술을 하는 것은 두 발 덕분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다산 정약용은 용지허실(用之虛實)이라는 말을 했다. 이는 벼를 심는 것과 연꽃을 심는데 있어서 허(虛)와 실(實)이 현격하다는 말이다. 벼를 심는 것은 먹을거리를 제공해줄 수 있으므로 실이지만 연꽃을 심는 것은 감상하는데 지나지 않기 때문에 허이다. 하지만 연을 심는 집안은 반드시 번창하고, 연 심을 자리에 벼를 심는 집안은 반드시 쇠미해진다고 한다. 이는 연꽃을 심으면 그것을 감상함으로써 정신적 여유를 얻게 되고 그것이 인품과 연결되기 때문이다. 필자는 정약용이 연꽃을 통해 예술의 중요성을 말하고자함을 알 수 있었다.
  예술이란 세속적인 현세를 넘어 자신의 이상향을 표현하는 것으로 예로부터 고결한 행위로 인정되었다. 따라서 예술가는 우리와는 다른 특별한 존재로 인식된다. 연꽃 또한 세속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연꽃은 수려함과 고결한 풍요로움을 지닌 꽃이기 때문에 세속을 초월한 깨달음의 경지를 연상시킨다. 정약용의 용지허실은 예술이란 허라고 생각되지만 실은 그 허를 통해 쓸모 있는 것, 바로 실을 창조해낸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우리가 허와 실이라고 받아들였던 것이 사실 무엇이 허인지, 무엇이 실인지 알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實을 만들어 낼 수 없는 위협으로부터의 출구 찾기 -  yBa

 

영국의 현대미술은 기존의 영국미술이 실(實)을 만들 수 없음을 인식하고 그 생존의 위협을 느끼면서 시작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필자는 그 위협을 4가지로 나누어 살펴보려고 한다.
  그 첫 번째 위협은 새로운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 미술이 나아가야 할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제2차 세계대전을 겪은 후 기성세대에 대한 불신과 증오가 팽배했다. 또한 계급사회의 변화도 겪게 되는데, 이를 통해 노동계급 사이에서 문화 활동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이런 사회적인 변화 속에서 연꽃과 같이 숭고하고 계급지향적인 로열아카데미는 동시대 미술과는 점점 거리를 두게 된다. 그에 맞서 탄생한 것이 ICA(Institute of Contemporary Art)이다. ICA는 예술을 통해 전인교육과 사회변혁을 이루고자 하는 허버트 리드(Herbert Read, 영국 시인이자 비평가)의 취지에 의해 1948년 설립되었다. 이곳에서 토론과 창작활동이 이루어졌으며,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강연회가 개최되는 등 기존의 순수한 예술에 상반되는 각종 활동이 이루어졌다. 가장 주목해야 할 것은 현대미술이 항상 직면하고 있는 예술성과 대중성에 관한 문제가 이곳에서 최초로 논의 되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당시 아카데미와 미술관의 제도 안에 갇혀 있던 고급문화로서의 미술과 물질적 그리고 삶의 욕망이 담긴 일상으로서의 하위문화가 그 경계를 허물어 예술에 대한 인식을 변화시킬 수 있을 것이라는 가능성을 제기했다.
  두 번째는 현대미술에 대한 대중들의 이해 부족, 그리고 문화예술에 대한 공공예산의 축소라는 위협 속에서 예술가들과 미술관들이 생존하고 더 나아가 이름을 날려야 한다는 위협이었다. 대처 수상이 집권할 동안(1979년~1990년) 복지, 교육, 문화 예산은 대폭 축소되어 작가들은 더 이상 국가에 보조금이나 지원금의 혜택을 누릴 수 없었으며 현대미술에 대해 대중들은 이해 또한 부족했다. 이러한 위협 속에서도 작가들은 기존의 단계를 밟아 사회적 지위와 작품의 경제적 가치, 즉 실(實)을 얻으려 하지도 않았다. 평론가의 지원을 받기보다는 직접 발로 뛰어 전시회를 개최하고자하였고 미술시장과 손을 잡아 성공하려 하는 등 벼와 연꽃의 중간에서 벼와 연꽃을 넘나드는, 즉 순수예술과 대중문화를 넘나드는 전략을 펼치게 되었다. 기존의 판로를 바꾼 시초는 바로 yBa(Young British Artists)였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hhhh0521/40199619735

 

① 처음 사치갤러리(The Saatchi Gallery, 1985년 개관)는 성공한 작가들의 작품을 선보였으나, 1980년대 말 데미언 허스트(Damien Hurst),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 마크 퀸(Marc Quinn), 사라 루커스(Sarah Lucas), 채프먼 형제(The Chapman Brothers) 등 yBa작가들을 발굴하는데 힘썼다.
② 골드스미스미술대학 졸업을 1988년, 앞둔 데미언 허스트는 동료들과 함께 ‘프리즈(Freeze)'라 명명한 전시를 개최한다. 미술계에 존재도 알려지지 않았던 이들은 겨우 도클랜드(Dockland) 지역의 빈 창고를 겨우 빌려 시작한 전시는 개성과 패기 넘치는 yBa를 탄생케하는 계기가 되었다.
③ 사치가 소장한 yBa작가들의 작품이 중심이 된 ‘센세이션(Sensation)’전은 1997년 로열아카데미에서 처음 열렸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이 전시는 30만 명의 관람객이 다녀갈 정도로 큰 파장을 일으켰다. 이후 뉴욕과 베를린에서도 개최되었으며, 호주나 캐나다에서는 도덕성 문제로 전시가 무산됨으로써 오히려 국제적으로 관심이 더욱 집중되었다. 이를 통해 영국이 새로운 현대미술의 메카로 자리 잡는 계기가 되었다.   

 

yBa는 열다섯 명의 골드스미스대학 졸업반 동기들로 구성된 예술가 단체이다. 마이클 크랙 마틴(Michael Craig Martin) 교수의 혁신적인 교육방식과 이들을 경제적으로 지원해주며 탁월한 마케팅 전략을 펼쳐 지금에 와서는 21세기의 '메디치 가문'으로 불리게 된 찰스 사치(Charles Saatchi, 1943~)로 인해 젊은 작가에 불과했던 이들은 아트스타가 된다.
 



사진출처: http://blog.naver.com/dohnynose/150180606662

 

  이 소수로 이루어진 단체는 아티스트의 고상한 이미지를 버리고 적극적으로 사회와 관계 맺고 스스로 마케팅까지 나서는 새로운 태도를 보여주어 영국 현대미술의 새로운 시작을 알렸다. 거기서 더 나아가 이 작은 떨림은 거대한 진동이 되어 영국의 현대미술을 바꿔놓았다. 그리고 테이트모던미술관(Tate Modern Collection)이 생존의 위협 속에서도 만든 것이 바로 터너상(Turner Prize)이다. 터너상은 젊은 작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분위기를 받아들여 젊은 미술인의 축제가 되었다. 그리고 영국의 진보적 방송인 채널4와 손잡아 대중적인 미디어 이벤트로 진화하게 되었다.
  세 번째 위협은 미국의 영향 속에서 위협받는 영국 현대미술의 아이덴티티였다. 1986년 런던 증권시장의 개방 이후 영국 사회는 미국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다. 심지어 미술조차도 그랬다. 영국인들은 미국을 좋아했고 미국 대중문화를 즐겼으며 미국의 가치체계에 동조했다. 뉴욕은 현대미술의 메카가 되어 그 트렌드를 주도하였으며 나머지 국가들은 그 트렌드를 따라가려고 했다. 그러한 현상 안에서 영국미술의 아이덴티티를 새로 확립하려는 움직임도 관측되었다. 미국 미술과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립하는 작가들의 운동이 그것으로 영국 개념미술의 역사를 회고하는 전시와 컨퍼런스들이 활발하게 열려 그 진가를 제대로 인정받지 못한 yBA이전의 영국 현대미술에 대한 그 위상을 온전히 새로 정립하게 된다.


 


▷ 테이트모던미술관(사진출처: http://blog.daum.net/ahnhohyun/18327159)

 

  네 번째 위협은 지역경제의 생존에서 오는 위협이었다. 테이트모던미술관의 설립으로 인해 런던에서 가장 낙후된 지역이었던 템스 강 남동쪽 지역은 경제적으로 발전하게 된다. 테이트모던미술관은 1970년대 오일쇼크 이후 10년간 가동이 중단된 채 방치되어 온 뱅크사이드화력발전소를 개조하여 만들어졌다. 미술관이 생긴 후 미술관 주변에 호텔, 식당, 상가들이 들어섰고 그로 인해 최소 2000개의 일자리가 늘어났다.
  테이트모던 못지않게 문화예술을 통해 지역경제가 발전한 곳은 게이트헤드이다. 게이츠헤드는 19세기까지 탄광산업으로 부유한 생활을 누렸지만, 1970년대 말 광산이 폐쇄되면서 경기침체에 빠져들었다. 이런 오랜 경기침체에서 벗어나기 위해 문화를 내세운 도시재생(Culture-led Urban Regeneration)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제작된 것이 바로 ‘북방의 천사(Angel of the North)’다. ‘북방의 천사’는 게이츠헤드 공공미술 프로젝트로 영국정부의 복권기금으로 세워진 안토니 곰리(Antony Gormley, 1950~)의 작품이다. 게이츠헤드 시는 ‘북방의 천사’를 계기로 이후 문화관광 도시로 도약하게 된다.

 



사진② 출처: http://sin4742.blog.me/80180612258
사진①③④ 출처: http://blog.naver.com/nanumlotto/30068418789


  우리는 영국 현대미술이 직면했던 네 가지 위협과 그 위협 속에서 영국 미술이 어떻게 발전해나갔는지를 살펴보았다. 영국 미술은 이런 위협들 안에서 생존했고 그것을 뛰어넘어 새로운 창조자가 되었다. 그러나 필자는 영국 미술이 맞닥뜨린 더 큰 위협이 “대중성과 예술성 사이에서 미술은 어떻게 존립해야 하는가?” 라는 풀리지 않은 질문으로부터 온다고 생각한다.

 

허에서 실의 혁신 - 영국 현대미술의 창조적 소수자

 

인간은 혼자 태어난다. 하지만 혼자 태어나지 않는다. 모순이 아닐 수 없지만 사실이다. 인간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다른 이들과 함께 사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과 살기 위해 인내하고 만족하는 태도를 지녀야 한다. 이 사회는 타당성이라는 명목을 앞세워 인간에게 규율을 정해주고 예의를 갖출 것을 요구한다. 인간은 이렇게 최소 세 번은 참아야 하고 최소 세 번은 만족해야 한다. 필자는 동물과도 같은 욕구를 꼭꼭 숨기며 살아가는 인간을 해제 시키는 것이 대중예술이라고 생각한다. 인간은 누구나 힘을 갖고자 하는 욕망이 있고 성적인 욕망이 있다. 대중예술은 자본주의 안에서 힘이 되어버린 돈이라는 요소를 부각시켜 인간의 세속적 욕망을 달래준다.
  또한 성적인 요소들을 보여줌으로써 인간의 숨겨진 욕구를 해제시킨다. 이렇게 족해야 한다는 것을 인식하고 살아온 인간들은 그것을 풀어주는 대중예술에 환호하게 된다. 따라서 미술도 대중이 좋아하는 코드를 담지 않으면 그 생존의 유무를 알 수 없는 상황에 직면했다. 심지어는 예술성이라는 뿌리까지 흔들리고 만다. 예술은 허에서 실을 만들어내는 고귀한 일이었기 때문에 예술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은 실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길고 멀더라도 기꺼이 그 과정을 즐겨왔다. 그러나 필자는 그 고귀한 일이 더 빠르게 실을 얻어내기 위한 지름길이 생겨남으로써 훼손되었다고 생각한다. 물론 현 사회에서 대중성은 예술에 힘을 실어주어 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긍정적인 면을 지닌다. 하지만 땅에 일정부분의 벼와 연꽃이 존재하듯 작품 안에 예술성과 대중성도 적절한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국 현대미술은 많은 긍정적 요소와 그리고 풀리지 않는 문제를 보여준다. 이러한 현상들을 관찰함으로써 우리는 현 미술계를 돌이켜 보고 앞으로의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 우리가 영국 현대미술사에서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할 부분은 yBa라는 창조적인 소수자 집단이다. 少數라는 단어 안에는 굉장히 깊은 뜻이 있음을 알 수 있다. 적을 소(少)는 ‘작다.’를 뜻하는 小와 삐침별(丿)이 합쳐진 한자이다. 그리고 小는 ‘갈고리’를 뜻하는亅와 나눔을 뜻하는 八이 합쳐져 만들어진 한자다. ‘갈고리로 나누어 어떠한 것을 작게 나누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나눔을 실천하여 더 크고 값진 것을 되돌려 받는다. 소수라는 단어에는 나눔의 뜻이 담겨있다. 그래서 ‘작은 수’라는 의미의 소수는 역설적이게도 정반대의 뜻을 동시에 품고 있는 것이다. 예로부터 혁신을 만들어낸 것은 소수의 사람들이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듯이 말이다. 영국에 yBa라는 창조적 소수자집단이 없었다면 영국미술은 다른 혁신적 존재로 거듭나지 못했을 것이다. 이렇게 우리 미술계도 창조적 소수자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렇게 영국 현대미술사는 우리에게 족함을 인지하는 것의 중요성, 그리고 허가 사실은 진짜 실이라는 사실, 소수의 힘을 말해주고 있음을 알 수 있다.

 

 jisu(yoonsar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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