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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회화로 본 창작환경과 작가정신의 반추_ 정준모 『한국 근대미술을 빛낸 그림들』

윤지수


『한국 근대미술을 빛낸 그림들』- 정준모, 2014, 컬쳐북스

 

                                             근현대회화로 본 창작환경과 작가정신의 반추

 

근현대회화의 반추와 재조명

덕수궁미술관에서 막을 내린 ‘명화를 만나다-한국근현대회화100선展’은 한국 회화전 사상 관람객 40만이라는 기록을 세우며 지금은 부산(부산시립미술관)에서 관람객을 맞이하고 있다. 우연의 일치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때, 미술평론가 정준모는 『한국 근대미술을 빛낸 그림들』을 출간하였다. 또한 서울미술관의 ‘백자예찬’전과 서양근대 인상주의 작품을 보여주는 프랑스 ‘오르세미술관展’도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다. 근현대 회화가 자연스럽게 재조명되는 분위기이다. 이를 통해 근현대 회화 정신은 무엇인지가 궁금해진다.

 

미술이라는 공간은 독립된 미적 공간이 아니라 사회적 공간과 연계된 상징체계이다._ P.프랑카스텔<본문 중에서>

 

정준모는 프랑스의 예술 사회학자 프랑카스텔Pierre Francastel(1900~1970)의 말을 인용하여 그림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는 그림이란 당대를 살았던 화가들의 세상과 삶, 그가 보고 경험했던 이미지의 총합이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한다. 우리는 근대미술을 통해 역사를 재인식하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근대 미술에 주목해야 하는 것이다.

  저자는 근대 미술 중 한국을 대표하는 작품 108점을 수록하며, 91명의 작가별 생애도 활자화 했다. 또한 책의 말미에는 근대미술사 개론과 연표도 덧붙였다. 필자는 이 책을 통해 몇 가지 단상과 시사점을 제시하려고 한다.

 

근대 회화작품은 보석과 같은 존재

필자는 고흐(1853~1890)의 ‘별이 빛나는 밤’을 좋아한다. 이 작품은 인류의 역사를 굽어 본 채 우주를 유영하고 있는 별을 떠올리게 한다. 별을 보면서 우리는 흔히 '보석과 같이 빛난다'는 표현을 하곤 한다. 따라서 필자는 근대 회화작품 한 점 한 점이 한국 근현대회화사의 별 즉, 보석이라고 생각한다. 근대 회화작품도 우리 미술의 역사를 빛나게 하는 보석과 같은 매개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각각의 보석처럼 근대 회화 작품도 우리에게 그 존재감을 뽐낸다. 정준모는 보석 같은 근대회화 작품들을 이 책에 실었다. 필자는 저자가 선정한 작품 중 몇 점을 먼저 소개하려고 한다.

 

1. 배운성 〈가족도〉

배운성裵雲成(1900~1978)은 다섯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면서 어렵게 성장기를 보냈다. 경성중학교 사환으로 일하면서 야학으로 공부했고 15세 되던 해(1914) 백인기白寅基(1882~1942, 일제강점기 기업가, 친일파)의 집에서 집사로 일하게 되면서 인생의 전환기를 맞게 되었다. 배운성은 1922년 백인기의 아들 명곤命坤(우리나라에 최초로 무성영화를 들여온 인물)의 유학길에 동행했다가 화가의 길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병을 얻은 명곤이 먼저 귀국하자 서울로부터 여비가 끊겨 독일에 눌러앉게 되면서 레벤후크미술학교에서 공부한 뒤 베를린국립미술종합학교에서 수학(1925~1930)했다. 그래서 그는 본의 아니게 한국인으로는 유럽에 최초로 유학했다는 기록을 보유하게 된다.<본문 중에서>


<가족도>, 배운성, 유화, 140*200cm, 1931~35년, 개인 소장


저자는 배운성의 어려웠던 어린 시절과 그가 유럽으로 유학을 가게 된 배경을 설명하고 있다. 그리고 그는 배운성이 오랜 시간 타지생활을 하면서 느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가족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이 작품에 담았을 것이라 추측하고 있다. 또한 그는 우리 근대기의 복식과 집안의 구조가 작품 안에 잘 드러나기 때문에 이 작품이 우리의 역사를 잘 보여준다고 말한다.

  그리고 그는 배운성이 재료와 상반되는 기법을 이용해 작품을 완성함으로써 그만의 개성을 표현해냈다고 이야기 한다. 배운성은 이 작품에 시대적 맥락을 스스로의 기법을 활용하여 잘 담아냈다. 필자는 이와 같은 정준모의 글과 당시 정황을 통해 <가족도>가 우리 근대회화의 대표작품 중 하나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이 그림이 오늘 젊은 작가들에게 일정부분 스스로의 작품 관과 시대상황에 대한 반영을 어떻게 천착시킬지 고민해볼 수 있는 단서가 되었으면 한다.

  

2. 오지호 〈처의 상〉

오지호吳之湖(1905~1982)는 한국에 정통 인상파를 도입한 인물로, ‘한국의 회화가 어디에 있는가?’라는 과제를 가지고 최초로 한국의 자연을 주제로 조형화를 시도한 작가로 평가 되고 있다. 그의 회화는 자연과의 합일合一을 통해 얻어진 한국의 자연이자 정신세계 그 자체였다. 인상주의 화론은 밝고 맑은 한국의 자연을 그리기 위한 가장 좋은 회화적 수단이라고 믿었던 오지호는 자신과 자연을 결부하여 그 속으로 녹아드는 그림을 그렸다. 이렇듯 한국의 풍광을 토대로 민족 회화를 창조하기 위해 매진한 그는 나름의 회화론을 완성하고 실현하는 데 전력을 다했던 화가이다.<본문 중에서>

 

<처의 상>, 오지호, 유화, 72*52,7cm, 1936년, 국립현대미술관 소장

 

정준모는 1930년대 화풍에 대한 소개와 오지호의 회화 이념이 상반됨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우리 근대기가 일본, 미술과 유럽 미술이 직면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오지호가 민족 회화의 구현을 위해 인상주의적 화법을 사용한 것은 매우 의미 있는 일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오지호가 우리 화단에 인상주의를 토착화시킨 이유와 어려서부터 남다른 민족의식을 가졌다는 즉, 그의 부친이 3.1운동 이후 나라를 잃은 슬픔에 비통함을 느껴 자결했다던가하는......, 내용이 보다 잘 드러났다면 하는 아쉬움을 지울 수 없다.

 

3. 이중섭 〈흰소〉

이중섭李仲燮(1916~1956)은 오산고등보통학교 재학 시절 임용련任用璉(1901~?, 한국인 최초의 예일대 미대 수석졸업생, 한국 최초의 구미 유학 부부화가)의 지도를 받아 미술에 입문했다. 짧은 삶에도 한국 미술사에 비중 있는 작품들을 발표한 그는 일본 데이고쿠미술학교帝國美術學校와 분카학원文化學院에서 수학하며 자신의 천재성을 키워나간 후 귀국. 대표적인 소 그림을 비롯한 서귀포 시절의 은지화와 유화 등을 통해 역량을 과시했다.

  그는 작지만 역동성 넘치는 화면 구성으로 어떤 대작과도 대적 가능한 기념비적인 작품들을 남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피난 생활의 고충과 일본에 떨어져 살고 있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지 못하고 신경쇠약과 간염으로 고생 끝에, 무연고자로 적십자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본문 중에서>


<흰소>, 이중섭, 합판에 유채, 30*41.7cm, 1953~54년경, 홍익대박물관 소장


정준모는 이 작품에서 흰소가 우리 민족이자 작가 자신을 상징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리고 이중섭 특유의 붓 터치 기법이 소가 분노하는 느낌을 만들어낸다고 말한다. 작품에 드러난 기법과 작품의 전체적인 느낌이 이 글에서 비교적 잘 드러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다만 글에서 왜 이중섭은 이 작품을 통해 우리 민족의 분노를 표현했을까? 당시 조국을 빼앗긴 우리 민족이 느낀 슬픔과 분노 그리고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했던 핵심적인 정황 그로인한 작가의 심리적 불안감을 흰소를 통해 표현하고자 했을 것이다.라는 내용 등의 설명이 보다 심도 있게 다뤄졌다면 하는 생각을 갖게 한다. 이중섭은 박수근(1914~1965)과 함께 소위 국민화가의 반열에 올라와 있다. 따라서 이미 밝혀진 일반적인 사실보다는 새로운 단서를 찾아내어 그의 작가정신과 미학을 보다 깊이 이해하는데 노력함이 보다 중요하다고 하겠다. 
 
현 미술계에 대한 성찰
지난 2월호 모 미술전문 월간지는 국내에서 활동하는 2535세대 작가들을 다룬 'NEW FACE 100'이라는 특집을 다룬바 있다. 여기에서는 큐레이터 50인이 20대 중반에서 30대 중반의 작가 각 4명씩을 추천해 그중에서 100명을 선정하여 상세히 소개했다. 이를 통해 필자는 오늘 우리미술계의 현상을 다소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내용 중 미술평론가 박영택 교수(경기대)의 지적은 미술계의 단상을 잘 지적해주고 있어 주목된다.
 
“오늘날 젊은 작가들의 미술적 활동이란 결국 작업을 한다기보다는 그것을 수단으로 삼아 화려하고 그럴듯한 경력을 만드는 알리바이에 머물고 있다는 게 정확한 진단일 것이다. 부모의 희생을 담보로 해서 말이다. 혹은 자신의 청춘을 죄다 소진하면서다. 그리고 경제적 사정으로 인해 40대 이상의 미혼 작가들이 넘쳐난다. 이는 개인의 문제라기보다는 잔인한 무한경쟁을 촉발시키는 한국 사회와 경력을 요구하는 미술계 제도의 문제이다.
  결론적으로 세대의 특성은 사회가 만든 것이다. 따라서 청년세대를 분석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탐구하려면 한국 자본주의의 현재에 대해 말해야 한다.”_ 박영택, 「월간미술」 2월호 ‘NEW FACE 100’ 중
 
우리는 후기 자본주의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우리는 너무나 빠른 변화의 흐름에 정신을 차리지 못할 때가 많다. 급변하는 사회 환경에 따라 작가들은 더 다양한 작품 활동을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작가들은 지나친 경쟁으로 인해 그 속에서 살아남기 위한 방편으로 대중들이 원하는 것에 지나치게 끌려가게 된다. 따라서 작가의 정신이 담기지 않은, 가벼운 작품들이 나오게 된다. 이런 환경에 노출되어있지만 이를 성찰하지 못하는 것 또한 현실이다. 우리가 현 미술계의 환경을 되돌아보고 새로운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역사』-현재를 성찰하고 미래를 만들기 위해 되짚어야 할 것
필자는 우리가 현 미술계의 환경을 성찰하고 새로운 분위기를 창출하기 위해 근대회화라는 ‘역사’를 되짚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역사(歷史)’의 어원은 ‘진실의 탐구’, ‘탐구한 결과의 이야기’이다. 이 의미는 기원전 5세기 헤로도토스Herodotos(BC484?~BC425?)가 페르시아전쟁Greco-Persian War(BC499?~479)에 대한 책을 쓰면서 그 책의 제목을 『역사』라고 붙인 것에서 유래한다. 『역사』가 등장한 이후, 사람들은 역사 서술이 과거를 통해 미래를 예측하게 하여 후세인後世人에게 교훈을 주는 데 있다고 인식하게 되었다. 우리는 과거를 살펴봄으로써 현재 우리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고 미래를 예측하게 되는 것이다.
  필자는 우리 미술계의 단상을 되짚고자 정준모의 책을 매개로 근현대 회화를 주제로 이번 글을 썼다. 오늘날 미술계에서는 작가 자신의 생각이 잘 반영되지 않은 트렌드화 된 작품들이 적지 않다. 우연의 일치일 수 있지만 현 미술계의 현상과는 반대로 한편에서는 회화정신과 그 당시 사회상이 뚜렷하게 내재된 근현대 작품들이 재조명되고 있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을 가볍게 넘어가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근현대 회화를 소개하는 정준모의 저서를 선정해보았다. 정준모는 그의 책 머리말 ‘책을 펴내며’에서 그림을 ‘시대의 증인’이라고 말하며 이러한 시각에서 작품을 들여다봐야 한다고 이야기 한다.
  따라서 필자는 이 책이 근현대 회화의 역사성을 되짚어 봐야 한다는 필자의 생각을 대변해 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했다. 그러나 전반적으로 그의 글은 근현대 회화 작품에 대해 표면적인 현상을 답습하는데 보다 치중한 나머지 앞에서 필자가 언급한 현 미술계의 현상에 대해 작가들이 깊이 있게 되짚어볼 기회를 제공하는 데는 어느 정도 한계가 있었음을 발견하게 된다.
  또한 내용의 객관성 확보와 독자들에게 관련내용에 대한 탐구의지 획득에 도움을 줄 수 있는 차원에서 본문은 물론 뒤편에 실린 논문 「한국 미술의 근대와 근대성」에도 참고문헌이 표기되지 않은 점은 적지 않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혼돈이 만연한 오늘의 미술환경에서 이 책이 근현대 회화를 다시 꺼내어 보여주었다는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된다. 끝으로 필자는 앞으로도 근현대 회화를 볼 수 있는 전시가 다양하게 열려 우리 미술계에게 근현대 회화 정신을 복권시킬 수 있는 단서를 제공해 주었으면 한다.

Jisu (yoonsar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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