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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의 성지를 찾는 이에게 주는 두 가지 체험 _ 유홍준 『명작순례』

윤지수

『명작순례』- 유홍준, 2013, 눌와
 
명작의 성지를 찾는 이에게 주는 두 가지 체험

 
명작순례(名作巡禮): 명작이라는 성지를 차례로 방문하다.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이 책은 독자들을 저명한 작품의 세계로 들어오게 한다. 명작이라는 성지를 처음 방문하면 우리는 생경한 세상에서 주춤하게 된다. 이 책은 불 꺼진 진열장의 불빛 같아 반갑다. 우리에게 길을 안내해준다. 유홍준은 기본이 되는 옛 그림과 글씨 49점 그리고 이에 동반되는 작품 100여점의 도판을 조선 전기, 후기, 말기, 사경과 글씨, 궁중미술 이렇게 다섯 가지 파트로 분류해서 설명해준다.
  그렇다면 명작이란 무엇인가? 명작이란 단어는 名이름명 作지을작. 이 두 한자로 이루어진 단어다.
즉 한자로 그 의미를 풀어보면 ‘이름난 작품’ 혹은 ‘이름을 짓다’라는 뜻을 가진 단어이다. 그렇다면 이름이 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대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 꽃>
 
  김춘수의 꽃이라는 시에서 말하듯이 이름은 존재를 나타낸다. 이름을 부르는 것은 존재를 인식하는 행위이며 이름이 난다는 것은 존재가 널리 알려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명작은 존재가 사람들에게 널리 인식되고 인정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작가는 명작에 두 가지 조건이 있다고 말한다. 첫째가 예술적 감동의 유무이고 둘째가 객관적인 아름다움의 유무이다. 필자는 책을 읽으면서 작가가 명작의 두 가지 조건을 자신의 표현으로써 잘 풀어냈다고 느꼈다. 독자들은 책을 통해 명작을 감상할 때, 아름다움을 두 번 느끼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하나는 작품과의 교류를 통해 감성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고 다른 하나는 미술적 지식을 얻음으로써 이성으로 느끼는 아름다움이다.
 
첫 번째 체험_ 감성으로써 아름다움을 느끼다.
  감동(感動)이란 ‘깊이 느끼어 마음이 움직인다.’라는 뜻의 단어이다. 단어의 뜻처럼 작품을 볼 때 일어나는 정서의 작용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있다. 명작은 우리의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요소들을 분명히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요소들의 존재도 감상자와 작품 간의 상호 교류, 즉 감성의 오고 감이 없다면 무용지물이 될 것이다. 감동의 요소들을 알아채는 주체는 감상자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작품과 감상자 사이의 감성교류는 어떻게 이루어질까? ‘아는 만큼 보인다.’라는 말처럼 감상자의 머릿속에 화가와 작품에 대한 많은 배경지식이 있어야 한다. 감상자의 머릿속에서 배경지식이라는 밧줄들이 모여서 그물망을 형성할 때 비로소 감상자는 감동이라는 체험을 할 수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명작이라는 성지를 처음 방문한 우리는 작품에 대한 아무런 배경지식이 없는데 어떻게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호생관은 성품이 날카로운 칼끝이나 불꽃같아서 조금이라도 뜻에 어긋나면 곧 욕을 보이곤 하였다. 사람들은 모두 그것을 망령된 독이어서 고칠 수 없는 것이라고 하였다. 〈본문 중에서〉
 
  위 글은 최북의 ‘풍설야귀인’이라는 작품을 소개하면서 저자가 담은 글로 이규상의 《일몽고》중〈화주록〉에 기록되어 있는 글을 발췌한 것이다. 이와 같은 발췌문을 읽으면서 필자는 독자들이 명작이라는 생경한 세계를 더 수월하게 마주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작가의 배려심을 느낄 수 있었다. 책 곳곳에 나온 작가의 배려심이 넘치는 글들은 우리에게 배경지식을 제공할 것이다.
  책에는 명작을 그린 화가의 생애, 일화, 작가와 작품에 대해서 다른 이가 쓴 글 등 많은 배경지식이 담겨있다. 그래서 독자들은 책을 읽으면서 지식의 밧줄들을 붙잡게 되고, 책을 덮은 후에는 감동이라는 체험을 하게 될 것이다.
 (87 p)
풍설야귀인도, 최북, 18세기 중엽, 종이에 수묵담채, 66.3*42.9cm, 간송미술관 소장 

  윤두서가 그린 ‘짚신 삼기’를 보자. 필자가 이 작품을 아무런 배경지식 없이 감상했을 때는 ‘여름날 농부가 나무 그늘에 앉아 한가롭게 삼고 있구나. 눈을 아래로 깔고 작업하는 모습과 그 배경에서 여유로움이 느껴진다.’ 정도만을 생각했다. 그런데 배경지식(시대 때문에 펼치지 못했던 윤두서의 학문의 꿈, 모든 것을 포기하고 해남으로 낙향해서 현실을 그림에 담은 점 등)을 담고 감상을 하니 농부가 윤두서 자신을 표상하는 것임을 알 수 있었다. 여유롭게 작업하는 농부의 한때에 삶에 대한 초연함, 현실에 대해 만족한 듯이 살아가고 있지만 그렇지 못한 화가 자신의 속내를 담아냈음을 읽을 수 있었다. 다른 시각으로 작품을 감상할 수 있었으며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으로 인한 화가의 슬픔도 느낄 수 있었다.
 (51 p)
왼쪽_송하취면도, 윤두서, 18세기 초, 모시에 수묵, 32.4*22.6cm, 해남윤씨종가 소장 
오른쪽_짚신 삼기, 윤두서, 18세기 초, 모시에 수묵, 32.4*21.1cm, 해남윤씨종가 소장  
 
두 번째 체험_ 이성으로써 아름다움을 느끼다.
  괴테는 아름다움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美는 예술의 궁극적인 원리이며 최고의 목적이다.” 아름다움이라는 최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작가들은 작품 안에 미술적 지식을 담는다. 그렇기 때문에 작품을 감상할 때 미술적 지식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가 느끼는 감동의 차이는 클 것이다. 이 책은 명작 감상의 입문서로써, 수묵화의 기법, 초상화를 그리는 법, 조선 후기 회화의 특징 등 전문적으로 미술이라는 분야를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르는 다양한 지식을 담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독자들은 이러한 전문적 지식들이 머리에 쌓아, 작품의 객관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강세황이 그린 ‘강세황 자화상’을 보자. 필자가 초상화에 대한 이론적 지식이 없이 이 작품을 감상했을 때는 단순히 사실적이고 잘 그린 초상화라는 생각밖에는 못했다. 그러나 초상화에서 전신법(傳神法)의 쓰임, 삼차원의 모습을 이차원의 평면에 옮길 때 형상의 특징을 요약하는 법, 인체 데생의 비례, 얼굴을 표현한 비율 등 미술적 이론을 겸비하고 다시 보니 화가의 노고가 서려있는 작품이라는 것을 크게 느낄 수 있었다. 이 작품은 인체 데생의 어긋남이 없고 태서법(泰西法)이 가미되어 적절한 음영효과가 들어있다. 그리고 모델의 정신이 눈빛과 얼굴에 잘 드러나 있다. 이런 미술적 지식을 알고 작품을 감상하니 이성으로써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었다.
 (93 p)
자화상, 강세황, 1782년, 비단에 채색, 88.7*51cm, 국립중앙박물관 소장(진주강씨 백각공파 종친회 기탁), 보물 제590-1호 

  필자는 많은 사람들이 예술을 동경하면서도 막상 예술을 접하는 것에 두려움을 가지고 있음을 느낀다. 두려움의 이유는 단 한 가지였다. 접해보지 못해서이다. 전에 이런 작품들을 감상해본 적이 없어서, 전시회를 가본 적이 없어서이다. 명작을 처음 접했을 때도 그 세계의 문을 열고 들어가기를 두려워하는 것 같다. 예술에 대한 경외심(敬畏心)을 갖는 것과 그 이유는 같다. 한 번도 접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두려운 것이다. 그리고 잘 모르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이 책을 읽고 난 후엔 그 두려움을 조금은 떨쳐내도 좋을 것 같다. 명작순례(名作巡禮)란 이름 그대로 명작이란 성지를 방문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새로운 공간으로 들어가기 위해 노크를 하듯 책을 펼치고 명작의 세계를 음미해보았으면 한다.  jisu(yoonsart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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